성격이란 무엇인가?
성격에 대한 정의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성격이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방법론이 집약돼 있는 DNA이다.'
라는 설명입니다.
일종의 내장된 "인생공략집"인 셈이죠.
성격은 당신 행동의 예언서이다.
사람들 중에는 예민한 사람이 있고 둔감한 사람이 있는데,
성격심리학자들은 이 둘이 어떻게 다른지를
삶을 대하는 태도와 전략에 대한 차이로 설명합니다.
가령,
둔감한 사람들의 전략은 상황적인 디테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어차피 확률 상 사건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니,
백에 구십 이상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전략인 셈이죠.
비유하자면,
화재 위험에 대한 역치를 최대한 높여놓은 화재 경보기와 같은 겁니다.
(정말 불이 날 것만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만 경보가 울리도록 설정된)
이런 전략의 장점은,
평상시 위협에 대한 경보가 울릴 일이 거의 없으므로,
걱정, 불안, 초조 등으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할 일이 웬만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상황들은 별 생각없이 그냥 무던하게 넘겨버리면서 유유자적 지낼 수 있는 것이죠.
반면,
예민한 사람들의 전략은 살면서 최대한 많은 디테일에 신경을 쓰는 것입니다.
화재 경보기로 비유하자면,
화재 위험에 대한 역치를 매우 낮게 잡아놓음으로써,
조금만 낌새가 있어도 사이렌이 울리게끔 최대한 빡빡하게 설정해 놓은 것이죠.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그 누가 화재 경보기를 민감하게 설정해 놓고 싶어 할까요?
어차피 다들 화재가 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만 온도가 높아져도 삑삑 울어제끼는 화재 경보기가 번거롭고 짜증나서라도
경보기의 민감도를 최대한 줄여버리고자 할 겁니다.
자, 여기서 관건은,
화재 경보기의 유효성은 환경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화재 경보기가 효과적인지는 절대적인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어떠한지,즉, 불이 잘 나는 환경인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문제란 것이죠.
성격도 똑같습니다.
성격은 반드시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특정 성격이 지니는 유효성은 환경이 어떠한지에 따라서 시시각각 달라지게 됩니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어떤 성격을 타고날 지는 유전적으로 결정돼 있지만,
그렇게 태어난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살게될 지는 미지수란 점이에요.
가령, 둔감한 성격을 타고났는데 태어나보니 사방이 위험천지인 아포칼립스 세계관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성격은 얼마 버텨내지 못하고 일찍 사망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왜?
위협에 대한 경보 시스템이 너무 둔감해서, 위험 인지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죠.
다행스럽게도 현재 인류는 굉장히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데,
이러한 환경은 둔감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적합한 생태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불이 거의 안나는 환경에서는 둔감한 화재 경보기가 제일 효율적이듯이)
내가 선대로부터 둔감 유전자를 물려받았는데,
마침 태어나보니 환경이 둔감한 사람들이 훨씬 더 잘 살 수 있는 평화로운 시대이다,
즉, 성격과 환경의 핏이 매우 잘 맞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자,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시대적으로는 그럴지라도,
개인적으로 우리는 충분히 열악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지금이 평화로운 시대라한들,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국가의 어린이들에게는 굉장히 가혹한 환경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렇다면, 개별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민한 성격이 오히려 둔감한 성격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을까?
549명의 시리아 난민 청소년들을 조사한 한 연구에서,
(Role of childhood adversities and environmental sensitivity in the development of PTSD in war-exposed Syrian refugee children and adolescents)
연구자들은 전쟁 전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경험했던 예민한 청소년들이
오히려 전쟁 전에 안정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예민한 청소년들보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수준이 훨씬 더 낮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도대체 왜?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아이들은 불우한 성장 과정 속에서
타고난 생존 본능을 통해 나름대로 살아남는 법을 잘 터득하고 있었던 겁니다.
물론 괴롭고 힘들었겠죠.
하지만 그러한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생존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민한 기질은 가혹한 환경에서 육체적 생존의 가능성을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특성이지,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특성은 아니니까요.
반면, 예민하지만 안정된 성장 과정을 거친 아이들은
자신들의 기질이 주는 생존 본능의 이점은 개발시키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의 예민한 성격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스트레스만 받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전쟁이 터져버리니 전자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갈고 닦아온 생존 마인드로 인해 전쟁을 오히려 더 잘 버텨나갈 수 있었던 것이고,
준비되지 못한 후자의 아이들은 급변한 환경에 버텨내지 못하고 더 세게 PTSD를 맞게 된 것입니다.
'기질은 당신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맞이하게 될 미래를 대비할 수 있게끔 인도하는 것이다.'
- Elaine Aron
인류에게 변산(variance : 다양성)이란 개념은 진화적으로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성격을 갖는다면,
환경이 급변했을 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모두 전멸할 우려가 있었겠죠.
하지만, 성격에 다양성이 존재한다면,
예를 들어,
환경이 혹독할 때는 유리한 기질인 예민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환경이 안정적일 때는 유리한 기질인 둔감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이런 식으로 환경과 성격이 상호작용하며 각양각색의 인류가 그 오랜 시간을 쭉 영속해 올 수 있었던 겁니다.
즉, 성격은 유전된다는 말의 의미는
우리는 특정 패턴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한 유서 깊은 집단의 후손이라는 뜻이고,
내 성격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효과적일지 여부는 우리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뿐,
애당초 다양성의 문제이지, 더 효율적인 성격, 덜 효율적인 성격으로 나뉘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같은 평화로운 시대에,
예민한 성격은 환경과 맞지 않는 핏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민한 성격은 인간을 살아남게 만드는 기질이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질이 아니거든요.
반면, 내가 지금 개인적으로 굉장히 불우하고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면,
그건 내가 예민한 성격이라 정신적으로 훨씬 더 견디기 힘든 것일 수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예민한 성격이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이 내 생존 본능을 자극하여
이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을 예언해 주기도 합니다.
예민한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는 필연적인 산물입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늘상 어려움을 이겨내고 최악의 고통으로부터 날 예방하고 방어해나가는데 성공하죠.
인생은 언제나 아이러니합니다.
고통을 모르고 살면, 내 삶을 바꿔야 할 필요가 없으므로 항상 똑같은 삶을 되풀이하지만,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조금씩이나마 자신의 삶을 개선시켜 나가거든요.
고통 속에서 살아남고 성장한다는 서사를 지닌 예민함이라는 DNA
어쩌겠습니까? 예민한 당신이 이러한 핏줄의 후손인 것을.
인정하면 편해요.
HSP 여러분은 고통이라는 아버지, 성장이라는 어머니의 자녀라는 것을요.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무던함을 가장하는 스킬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릴때부터, 전쟁나면 잘 살 자신이 있었는데 제 생각이 맞았군요ㅎ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궁금한것이 하나 있습니다만
예민해서 다양한 상황에 대비하는 기질이란것 자체가 보통 사람보다 평소에도 여러가지 상황 시뮬레이션을 할수 있고 더 예민한 안테나를 가지고 주변 환경의 변화에 대한 판단을 할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고 볼수 있는데 이건 보통 사람보다 지능이 높아야 가능한것 아닌가요?
특정 영역에서만 발동하는 것이니 지능과는 별개의 부분 아닐까 하네요
예를들어 결벽증 같은 경우도 이 더러움으로 인해 일어나는 위생적 문제에 대한 강박일텐데 사실 좀 더러워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다는걸 깨닫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는거처럼요
감각과 지능은 교집합(예측, 준비, 판단, 분석 등)도 있지만 다른 부분도 큰 게,
가령, 아무리 지능이 뛰어난 책사라고 하더라도 예리한 감각이 없고 매우 둔감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면,
탁상공론에는 능하더라도, 막상 전쟁터에서는 실력 발휘를 못 할 가능성도 있겠죠.
반면, 지능은 평범해도 매우 예리한 감각을 가진 책사라면 뒤에서 전략을 꾸미는 일보다는 현장에서 실전 감각을 뽐내는 편이 더 나을 겁니다.
매우 위험한 환경에서 생존이 목표가 되었을 때,
지능과 초감각이 각각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교집합도 있지만 따로 차집합도 있다고 보는 게 가장 현실적인 관점인 것 같습니다.
@무명자 제 질문은 감각이 예민하다면 지능도 높을 가능성이 높지 않느냐였습니다.
반대로 둔감하다면 지능이 평범한 경우가 많지 않겠냐는 질문이기 때문에 두개를 별개로 두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항상 예외는 있겠지만 경향성이란 것도 있으니까요.
답변주신 것은 두개를 별개로 두었을때라 제가 물어본것과는 살짝 요지가 다른데 설명이 부족했나 봅니다 ^^;;
지능과 기질이 별개로 동작하는 경우라면 말씀하신 경우가 맞겠습니다만..
제가 알기론 인간은 지능이 고도로 발달해서 동물이 느끼지 못하는 여러가지 지점에서 감정과 사고를 느낀다고
알고 있기에 질문드려봤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 )
@조던황제 감각과 지능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영재 연구 중에서 감각과 지능 사이의 상관이 입증된 연구들이 꽤 많습니다.
감각이 예민하다는 것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인풋되는 정보의 양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아무래도 정보처리능력이 발달할 수 밖에 없겠죠.
@무명자 그렇다면 앞서 제가 궁금해했던 것처럼 예민할 수록 지능이 높다는 가설이 실제 입증된 것이라는 거군요.
다만 무명자님이 앞서 설명했듯이 반드시 두개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므로 지능이 높더라도 둔감한 개인은 경향성에선 벗아날지언정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네요. 약간 심리학하고 다른 질문인데도 답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
명상을 통해 편도체 안정화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