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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은 따져본다면 일본식 표현(乾パン, 堅パン이라고도 합니다)입니다.
일어에서도 건빵은 건빵이죠.
뭐 빵이란 말 자체가 일어에서 나온거지만서도.
건빵이란 놈이 도대체 언제부터 나왔냐는 누구도 모릅니다.
아닌 말로 말린 밥(건반)이나 미숫가루가 언제나왔냐를 알아보는 것만큼 허무한 결과
가 나올 수도 있다는거죠.
아마도 오래전, 빵만들어 먹던 누군가가 빵이 마르면 오래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
아냈겠죠.
그리고 그걸 겨울나며 여행가며 먹기 시작했을 겁니다.
그러다 아예 만들 때부터 건조시켜버린다는 것을 생각한 것이겠죠.
아울러 사실상 이 건빵은 비스킷 그 자체입니다.
비스킷하면 과자로 생각하시겠지만 적어도 비스키툼(Biskitum)이라 부른 로마시대나
그 이후, 비스킷은 과자가 아니라 빵의 한종류일 뿐이었습니다.
반죽을 판위에 올려서 굽다 다시 뒤집어 구은 것일 뿐이니. (그럼 비슷하게 보이는 쿠
키는? 안뒤집고 끝까지 부풀리면서 잘 굽습니다)
로마군 역시도 이 유서깊은 물건을 먹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건빵은 대항해시대에 들어서며 다시 각광받게 됩니다.
특히 이 시기는 유럽에서 건빵 제조업이 크게 발전해나가던 시기기도 합니다.
오랜 기간 항해하는데 건빵은 굉장히 중요한 존재였으니 말입니다.
지상에서라면 불을 피울 수 있으니 건빵외에도 그 당시 널리 사용된 듯이 곡물가루를
가져다니며 뭔가 만들어먹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가령 중세 기사들이나 군인, 여행자들의 짐에 뭐가 들어갔냐를 본다면 그 당시 지상에
서의 여행용 식사(혹은 전투식량)에 대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건빵등도 있었지만 흔히 밀에서 귀리등등의 곡물가루를 가져다니며 이걸로 죽을 쒀먹
거나 전병(인도식으로 자빠띠라 할까요?)따위를 부쳐먹었죠.
이는 유목민들의 식사와도 어찌보면 홉사합니다.
그러나 배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물론 배에도 화덕이 있고 요리가 가능합니다.
메리로즈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에서도 이미 밝혀졌던 적어도 그 시대 배에는 화덕을
갖춘 큰 주방이 있었고 선원들이건 고급장교들이건 따뜻한 식사를 한끼는 먹을 정도
는 됐습니다.
문제는 땔감을 구하는게 귀찮아지는 원양항해가 시작되며 또 배라는 초대형 창고를 갖
춘 시스템에서 나온 저장식품에 대한 요구에서 건빵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겁니
다. (단, 메리로즈의 경우는 주로 연안에서 돌아다녔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죠.)
이미 이 시기에 들어서면 2번구워 벽돌처럼 만든 건빵이 선원들의 일상을 지배하게되
죠.
여기서 19세기까지 한참 잘나가던 영국해군의 식단을 보면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1일당.
ship's biscuit이라 흔히 불리며 hard tack이라고도 불린 건빵 1파운드. (개당 중량은
보통 1/4 파운드가량)
2 ~ 4파운드의 쇠고기 혹은 돼지고기.
2파운드의 콩.
1.5파운드의 오트밀.
6온스내외의 당류(흔히 설탕같은)와 버터, 치즈등등.
음식들은 대부분 염장상태에 건조상태였고 고기는 거진 염장입니다.
선원들은 곧잘 접시에 익히기도 하지만 날 것인 경우가 흔했던 염장 고기와 비스킷 두
덩어리 정도, 한잔 가량의 맥주나 다른 술을 받습니다.
당시의 건빵은 곡물가루에 소금, 효모약간을 넣고 반죽한걸 한번 굽고 살짝 식힌 다음
다시 뒤집어 완전히 구워낸다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만들어졌고 또 그 단단함 역시
전통적이었답니다.
빵이란 놈 자체가 대부분 단단함을 자랑하던 시기였지만 건빵은 그걸 뛰어넘을 정도
로 단단했다고 하죠.
그래서 천상 물이나 수프따위에 불려먹습니다.
안그러다간 이빨이 나갈 정도였고 특히 괴혈병 환자에게는 이빨을 모두 잃는 기회가
됐으니 말입니다.
또한 오랜 항해기간동안 건빵은 벌레먹기 일쑤였고 그래서 선원들은 지급받은 건빵을
어두운 곳에 뒀다 갑자기 꺼내 탁자에 두들기거나 물따위로 적시며 벌레가 나오길 기
다렸다 먹는게 습관이었다고 하죠.
간혹 영국해군등에서는 견시임무중 졸다가 걸릴 경우 건빵과 물만을 받고 일주일정도
배의 선수부분 그물속에 같혀있어야 했다고 합니다.
몸이 그렇게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당했다간 죽을 수도 있는 형벌이었다고 하죠.
지상에서도 건빵은 군대의 식량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특히 장거리 행군을 수반하는 원정이 흔해진데다 이미 군대의 규모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지며 대두된 보급문제를 해결하는데 건빵같은 것은 유용한 것이었죠.
오래가고 다른 빵처럼 제빵업자의 영업장이나 혹은 그런 류의 시설이 더욱 커져 만들
어진 공장에서 만들어낼 법한 것이니 말입니다.
덕분에 지상의 병력들도 불평하며 건빵을 먹어댑니다.
세월이 흘러 산업혁명이 벌어지며 건빵 역시 그 물결을 타게 됩니다.
작은 제빵소가 아닌 본격적인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어져 상자나 통, 푸대등에 포장되
어져 나오게된 것이죠.
이런 건빵의 대량 생산은 미국의 집안싸움에서 정말 본격화됩니다.
남북전쟁 당시의 미군들이 worm castle, iron cracker, teeth dullers, digestible
leather, angel cakes, ammo reserves등등으로 부른 건빵들은 공장에서 생산되어져 나
무상자에 포장되어 전선으로 보내집니다.
이전 시대의 배에서 그랬듯이 휴대한 건빵은 흔히 벌레먹은데다 몇몇은 너무나 단단하
여 소총 개머리판으로 후려쳐야만 부숴질 지경이었다고 하죠.
벌레먹은 건빵은 건빵이 통조림화되고 더 위생적이 되기 전인 19세기말까지 계속된 일
이었습니다.
출하당시 규정상 깨끗하고 햇빛에 충분히 말린데다 위스키로 처리한 나무상자에 담으
라고 했지만 문제는 병사들이 받을 때나 휴대하고 가져다니는 동안 이미 벌레먹어버리
는게 흔했다고 하죠.
여튼 병사들은 이런걸 1회 식사당 두서너개받아 먹습니다.
먹는 방법들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고 하죠.
1. 그냥 먹기 - 절대 비추천인 방법.
2. 물, 연유(통조림 농축우유), 커피등으로 불려먹기.
3. 스프나 스튜에 넣어서 불려먹기.
4. 기름등을 바르고 굽기.
6. 물이나 커피, 연유에 불리고 돼지고기 지방이나 베이컨 기름에 볶아 먹기.
이 때도 건빵의 기본적인 제조법은 이전과 다를바 없었습니다.
1. 밀가루, 물, 소금을 혼합하여 반죽. (밀가루 1컵당 물 반컵, 소금 1작은 술)
2. 두께 1/4인치에 가로세로 3인치정도로 반죽을 잘라넣고 작은 구멍들을 냄.
3. 화씨 400도 정도로 가열한 오븐에 표면이 노릇노릇해질 정도로 구움.
4. 구운걸 끄집어내고 살짝 식힘.
5. 다시 오븐에 넣어 3번보다 낮은 온도로 10분정도 표면이 연한 갈색이 될 때쯤 꺼
냄.
일본의 경우.
이미 16세기경 유럽과 접촉하며 건빵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전국시대에 전투식량으로 건반(마른밥)을 먹던 일본인들중 건빵의 효용성에 관심을 가
진 경우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전국시대당시 일본인들은 흔히 건반과 건반찬을 야전식사로 삼았던 판이니 서양식 건
빵에 관심을 가져볼만도 할겁니다.
그러다 후일, 서양과 본격적으로 삐걱대던 시절을 지나 근대화된 군대를 서양에서 배
워오던 시기에 서양군대처럼 건빵을 급식용으로 쓸 생각을 합니다.
덕분에 서남전쟁때 관군을 중심으로 이미 건빵을 급식으로 지급받게 됐다고 하죠.
당시 기록에서 건빵은 급식외에 화폐로도 사용된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건빵을 주고 주변에서 필요한 다른 식품을 구입했다는데 구입인지 총구를 들이대고 반
강제적으로 협조받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여튼 건빵은 군대와 먹는 것간의 관계가 항상 그렇듯이 일본군에서도 지랄맞은 식료품
정도로 인식됐고 병사들은 重煙麵匏이란 정식명칭을 비웃으며 중상(重傷)이란 별명까
지 붙여줍니다. (重煙麵匏를 풀어보면 많이 구운 국수박이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국수
란건 딴게 아니라 밀가루등을 쓴 식품을 통칭한 거죠. 그러니 다시 제대로 다듬으면
잘구운 밀가루덩어리정도가 되려나요?)
이러나저러나 중상이라 부르건 어쩌건 러일전쟁에서 건빵의 효용성은 큰 인상을 남깁
니다.
휴대가 간편해 각종 전투상황에서 좋다라는 호의적 평가를 받으니 말입니다.
반면 물이 많은 식단을 즐기던 일본인들에게는 여전히 개도 안먹을 음식이었던가 봅니
다만 이런 소소한 문제(?)는 넘어가고 일본군은 곧 건빵을 표준적인 전투식량에 올립
니다.
아마도 여기에는 영국해군의 관습을 철저히 받아들인 일본 해군도 나름대로 큰 역활을
했을 겁니다.
타이쇼 시대를 거치며 일본의 건빵은 변화가 생깁니다.
이전에는 큰 덩어리로 한끼에 2개정도 주던 것이 더 작아진데다 밀가루외에 쌀가루가
첨가되며 당분이 첨가되며 심지어 달걀까지 포함되려 합니다.
또 10g가량의 별사탕이 추가적인 당분을 보충하기위해 더 추가되죠.
일본군이 크게 신경썼던 시베리아와 같은 추운 작전지역에서 당분은 열량을 공급하는
데 좋은 재료임을 반영한 것이죠.
비교적 달콤한 건빵과 별사탕의 전설적 조합은 이렇게 등장한 겁니다.
이렇게 발전한 건빵은 2차대전까지 일본 육군과 해군의 전투식량으로 사용되고 패전후
창설된 자위대의 전투식량으로도 활용됩니다. (대전중 일본 해군의 건빵은 육군용보다
더 큽니다. 이건 영국해군 전통이 좀 남아있는 경향이라 볼 수 있겠죠.)
단, 별사탕의 경우는 1960년대가 넘어서며 제외대고 대신에 오렌지맛 스프레드로 대채
됩니다.
지금 일본 자위대는 건빵을 먹지는 않습니다만 여전히 비상식품 목록에는 남아있으며
또 일본 민간인들에게 건빵은 비상식량의 대표격으로 인식됩니다.
그래서 요 옆동네 친구들에게 과자처럼 건빵을 인식하는 우리가 좀 독특하게 보이나
봅니다.
개인적으로 이쪽 방면에 관심이 많은 절친한 일본인 친구가 있다면 한국군 별미 튀김
건빵을 한주먹해주고 물을 3컵정도 퍼먹이거나 아니면 물을 아예 안주고 싶다는 악마
적인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마 이 시대의 당분에 덜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건빵이 마치 과자
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의 우리 혀는 단맛에 푹절어서 어지간해서는
단맛을 못느끼죠.)
바로 우리 조상들이 그랬겠죠.
그래서 지금의 우리도 건빵을 과자와 비슷하게 대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과자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게 전투식량이건 비상식량이건 따질 상황은
아니겠죠.
p.s:
근대까지 유럽의 선원들은 곧잘 안익힌 고기를 먹었다고 하죠.
괴혈병 예방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게 맛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여튼 날걸 꽤 먹었다고
하는군요.
이러다 된통 당하는 경우도 생겼으니...
19세기경 북극해를 탐험하던 한 영국 탐험대가 곰을 잡아먹고 전원 굉장한 고통을 주
는 알지못하는 병에 걸려 전멸합니다.
최근에야 그들의 미이라화된 시체를 보고 그 원인을 알게 됩니다.
바로 곰고기속에 있던 선모충에 걸린 것이죠.
교훈이라면 '잘 익혀먹자' 가 아닐런지.
p.s:
그로기(groggy)란 말도 영국해군의 술배급에서 나온 말입니다.
1700년대에 영국해군은 그 이전의 맥주보다 보관성이 좋고 값싼 럼주를 해군 수병들에
게 지급합니다.
그러다 Old Grogram이란 별명을 가졌던 에드워드 버넌(Edward Vernon)제독은 그의 술
취한 수병들에 넌덜머리를 내며 1740년, 그의 별명을 유명하게할 명령을 내리죠.
앞으로 럼을 줄 때는 1/3이상의 물을 혼합하여 줄 것.
수병들의 반응은 오데서 개짖냐? 였습니다.
그래도 명령은 명령이니 럼에 물을 타서 주는 일은 시행됐고 무려 1960년대까지 영국
해군에서 계속 남게 됩니다.
중요한건 수병들은 물탄 배급 럼주를 물탄만큼 더마시며 버넌의 별명을 딴 grog(술취
한)상태에 빠져버립니다.
아마도 제독 영감님을 안주삼았겠죠.
그리고 여기서 다시 술취한 것만 아니라 정신 못차리는 상태를 의미하는 groggy란 말
이 파생된 것이고.
p.s:
신대륙 아메리카에 발을 댄 청교도들, 필그림 파더즈, 의 경우 메이플라워호의 항해일
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겼다고 하죠.
'식량도 다 떨어졌고 맥주도 다떨어졌다.'
맥주도 식량으로 취급받던 좋은 시절이었죠.
p.s:
중세이후로 빵은 꽤나 딱딱하고 질겼던가 봅니다.
밀가루만 들어간 것도 아니고 때에 따라서는 괴이한 것들이 들어가기도 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프랑스등에서는 빵을 두손으로 찢어서 먹을 정도가 되야지 성인으로 취급해준
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고 하죠.
p.s:
이전에 잠깐 나온 가축의 경우, 배에서도 어느정도 가능합니다.
배는 거주와 작업, 전투구역외에 선창이란 공간이 있고 이 공간은 어디가는 것없이 바
로 배에서 당장 쓸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 가축을 넣고 사육해보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
죠.
이런 배만의 특성은 대포가 지상보다 배에서 더 호의적으로 평가됐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줍니다.
무거운 대포, 포탄, 화약을 한방에 넣고 대포를 쏠 위치까지 준비할 수 있으니 대포가
지상에 대해서 더 호의적인 평을 들을만도 했죠.
여튼 이런 배만의 특징덕분에 유럽의 가축이 저멀리 아메리카땅까지 가서 일부는 야생
화되버리는 현상도 벌어진 겁니다.
남미 원주민을 놀라게한 천둥을 뿜는 막대로 무장한 용설란싹처럼 흰 인간과 거대한
괴물(말)의 조합이 무슨 수로 됐나를 본다면 놀랄 일도 아니겠죠.
그러고보니 재미있는 동물 승객이 있었는데 바로 개구리입니다.
메리로즈를 발굴하던중 작은 나무 물통이 발견됐는데 그 속에는 개구리 뼈가 남아있었
다죠.
날씨를 알기위해 개구리를 승선시켰다는 기록이 사실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죠.
p.s:
건조식품 나온 김에...
참고로 이곳의 몇몇 분들은 몽고 유목민의 빠른 진격속도의 한 요인으로 말린 고기분
말을 언급하시기도 합니다.
가축 한마리 잡아서 그 가죽속에 모조리 싸놓을 정도로 말려서 가루낸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유목민만의 것이냐를 본다면 답은 아니올시다 입니다.
그 제작과 전례는 유목민들이 했을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몽고인들이 돌아다닐 때는 그런 건조식품류는 드문건 아니었습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과연 어떤 식으로 식품을 보관했나 본다면 명확해지죠.
진정한 차이는 유목민 출신들은 훨씬 조악하고 적은 분량으로도 참고 견디며 생활하는
데 매우 익숙했다는 점입니다.
각종 염분이 들어가 쓰다못해 끈적거릴 정도의 물에 빈약한 곡물(잡초씨앗이라 하는게
나을)가루와 저런 고기 분말, 저급차따위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남는데 익숙한 자
들이 극악의 야전 상황에서 행군을 한다면 그거야 기본기 살리는 것정도죠.
그렇지 못한자들에게야 고난의 강행군이지만 말입니다.
아, 그러고보니...
17세기말경에 프랑스군이 서양에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저런 고기 분말을
끄집어내어 전투식량으로 삼아볼 생각을 합니다.
마르텡 보로스라 불린 이 가루는 병사들이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어느정도였냐면 배급이 이뤄지면 고개를 절래절래 휘저으며 식사를 거부할 정도로 말
입니다.
결국 군대의 지휘관들과 군대를 조직한 물주들도 식사를 거부하는 병사들을 어찌하지
못하자 마르텡 보로스를 다시 역사의 뒤안길로 쳐넣어버립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식사거부란게 때에 따라서 굉장한 파급력을 가지기도 한다는걸 증명
한 사례랄까요.
p.s:
한편 건빵과 함께 선원들의 주식이자 중요한 수산품도 하나 존재합니다.
바로 대구였죠.
나중에 이 생선을 잡기위해 각 국가들이 서로 경쟁하고 진짜로 총포를 동원해 분쟁과
전투를 치루기도 합니다.
대구는 잡히는대로 소금을 치고 건조시켜서 건대구로 만드는 경우가 흔합니다.
산지와 비교적 가까웠던 영국등지라면 생것도 먹지만 역시 냉장고 없던 시절에는 말려
서 저장이죠.
당연히 배의 식량으로도 상당량이 소모됐으며 심지어 메리로즈의 식량창고에서도 건대
구들이 발견되기도 했다하죠.
건대구는 유럽에서는 일상적인 식품이었고 개중에는 스페인처럼 지금까지도 일상적이
자 꽤 고급 요리재료로 이해하는 곳도 있습니다. (스페인의 경우 건대구 사업에 뒤늦
게 뛰어들어 맛들인 예겠죠.)
한편 북구에서는 건대구를 독특하게 건조하여 쓰기도 합니다.
추워지기 시작할 즈음에 말리고 땅에 파묻어 천천히 얼림으로서 동결건조와 유사하게
처리해버리는 것이었죠.
또 이 지역의 알칼리성 토양특성덕분에 대구의 지방분과 단백질이 적당히 변화, 풍미
를 다르게 한다는 잇점도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캐비어도 원래는 땅에 파묻어버렸다
죠. 산지 주변의 토양중에 있는 붕소 성분이 들어가 맛을 독특하게 하기도 하는데 요
즘은 붕소성분이 몸에 안좋다는 이유로 빠져지고 한다고 하죠. 개인적으로는 못먹어봐
서 뭐라할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만든 북구식 건대구는 몇해씩 보관하기도 하며 나중에 먹을 때는 잿물에 담궈
서 불려먹기도 합니다.
먹어본 사람의 말로는 값은 비싼데 그 흐무적대는 반투명한 비누맛나는 조각이 끔찍했
다나 어쨌다나.
p.s:
전국시대, 일본인들이 야전에서 가져다녔던 식량중 꽤 독특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엉과 같은 식물을 장과 소금에 절여서 말린 것이죠.
이건 평시에는 새끼줄을 꼬아 포장용 재료로 사용합니다만 여차하면 바로 반찬으로 둔
갑해버리죠.
말린 식용식물로 다다미를 짜서 공성중의 비상식으로 쓸 생각을 한 판이니 놀랄만한
메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p.s:
사이다는 일본 육군과 해군이 모두 병사들에게 많이 지급하려고 하죠.
물론 여기서 사이다는 독립전쟁당시의 미군(대륙군)들이 때때로 지급받았던 사과주가
아니라 청량음료입니다.
러일전쟁 이후 보여지는 당분보급에 꽤 신경을 쓴 흔적인듯 싶습니다. (일본군에게서
러일전쟁의 흔적을 빼내기란 매우 힘들 겁니다.)
심지어 일본군의 전투식량중에는 비상식 계념으로 군량정이란게 있었답니다.
포도량과 같은 단당류에 효모등을 처리해서 넣은 것이었죠.
사이다에 얽힌 일본군의 이야기중 꽤 재미있는건 바로 항공기 승무원들의 이야기일겁
니다.
사이다는 항공기 승무원들에게도 지급됐고 또 기압이 낮은 곳에서 사이다가 어떤 일을
벌이는가 본다면 말입니다.
부주의하게 사이다를 따다가 콕핏 전체를 사이다로 도배하고 자신도 목욕해버린 승무
원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진 것이었죠.
사카이 사부로도 비행중 사이다를 따다 뒤집어 쓰는 바람에 끈끈한 콕핏에서 불쾌감을
느낀 이야기를 할 정도니.
그리고 마시고 나온 사이다병은 곧잘 화장실로 돌변했다고 하죠.
그런데 이렇게 오줌이 찬 사이다병을 적지에 던지는 일에 대해서는 아직 접하지 못했
습니다.
미군등의 항공기 승무원들은 사이다를 마시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비행기속에서 병이나
콘돔에 오줌을 싸고 그걸 폭탄과 같이 투하했다고 하죠.
이 버릇은 월남전까지 폭격기나 관측기 조종사등에서는 남아있었다고 하죠.
특히 관측기 조종사들은 곧잘 병에다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넣어 던짐으로 조촐한
폭격을 하는 취미도 있었다고 하죠.
진주만에서 격추되어 미군에 의해 전시된 일본해군 함상공격기의 유품중 식사에 관련
된 것.
1쌍의 종이로 포장된 나무 젓가락.
2통의 밥통조림: 1개는 팥밥, 1개는 버섯넣어 맛을 낸 조림밥.
2통의 연어 통조림.
1통의 모리나카 드롭스: 에니메이션 반딧불의 묘에 나온 것과 유사하게 생긴 물건.
1갑의 모리나카 캬라멜: 이게 의외로 오래된 장수만세! 과자.
1병의 미츠야 사이다. (이게 아사히거던가... 첫 판매가 메이지 시대라던가?)
첫댓글 이런건 다음의 '나시카'님 블로그 가면 엄청 많던데.. 별사탕도 일본에서 넘어온 습관 같더군요. 자위대 건빵에는 별사탕이 들어있더군요.... 미군 군가 중에 '친구가 식탁에서 떨어진 비스킷에 맞아 죽었다'라는 가사도 었는 거 보면 어지간히 싫어했는가 봅니다. 사이다 하니깐, 위키피디아 '진수식' 항목에 보니깐, 금주법 시대에 미국해군 수상함/잠수함 중에 사이다로 진수한 배가 몇척인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럼 미군도 일본 자위도 먹지않는 건빵을 한국군만 먹고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역시 우리나라는 항상 한발 뒤쳐진다니까...ㅋㅋㅋ
자위대 전투식량에는 건빵이 있습니다. 그것도 주식으로요.
전문적인 견해는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건빵~ 먹으면 맛있삼. 특히 배고플때 먹으면 너무너무 맛있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