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19(금) 갑자기 동장군의 기세가 다시 살아나 며칠간 이어진 강추위가 오늘 오후부턴 기세가 꺾긴 다기에
배낭을 챙겨 모처럼 수락산을 찾아 아름다운 강산에서 즐산 하며 건강한 하루를 가져 보았습니다.
수락산(水落山)이라는 이름은 거대한 화강암 암벽에서 물이 굴러 떨어지는 모습에서 따온 것이다. 암벽이 많이 노출되어 있으나 산세는 그리 험하지 않다. 주말이면 도심에서 몰려온 산악인들로 항상 붐비는 산이며 북한산(北漢山), 도봉산(道峰山), 관악산(冠岳山)과 함께 서울 근교의 4대 명산으로 불린다. 높이는 637m이다.
매월 김시습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 세조에 의해 군기 시 앞에서 거열형을 당한 사육신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지금의 노량진에 매장한 사람으로 [연려실기술]에 기록되어 있다. 권력욕에 취해 서슬이 퍼런 세조가 두려워 아무도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고 방치해 두었는데, 김시습이 거열형으로 찢어진 이들의 시신을 하나하나 바랑에 담아 한강을 건너 노량진에 묻었다는 것이다. 이때 만들어진 묘에 기초하여 숙종 때 사육신이 다시 복권되면서 사육신의 묘가 크게 조성되었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 묘이다.
천상병 시인은 1951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지금은 사회과학대학 산하)에 입학했으나 4학년 때 중퇴하였고 그 사이 부산시장 공보실장으로 일하다가 1967년 독일 동(東)베를린 공작단 사건, 일명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서 6개월간 옥고를 치른 후 선고 유예로 석방되었다. 이때 당했던 고문을 계기로 심신(心身)이 멍들게 되는 걸 알았습니다.
천상병 연보
연도내용
1930 | 1월 19일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2남 2녀 중 차남으로 출생. |
1945 | 해방과 함께 일본에서 귀국, 마산중학교 3학년에 편입. |
1949 | 당시 마산중학교 국어교사이던 시인 김춘수 시인의 주선으로 <문예>에 시 '강물' 등을 발표(추천 시인은 유치환). |
1950 | 전란 초기 미군 통역관으로 6개월간 근무. |
1951 |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입학. 송영택, 김재섭 등과 함께 동인지 <처녀지> 발간. <문예>에 평론 '나는 거부하고 저항할 것이다'를 발표. |
1952 | <문예>에 시 '갈매기'로 추천 완료되어 정식으로 등단. |
1954 |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수료. |
1956 | <현대문학>에 월평 집필, 다수의 외국서적 번역. |
1964 | 2년 여간 김현옥 부산 시장의 공보비서로 재직. |
1967 |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 약 6개월간 옥고를 치름. |
1970 | 고문의 후유증과 음주생활로 인한 영양실조로 거리에서 쓰러져 행방불명. |
1971 | 행려병자로 오인되어 서울 시립 정신병원에 입원. 유고시집 [새] 발간(살아있으면서 첫 시집을 '유고시집'으로 낸 유일무이한 시인이 됨). |
1972 | 친구 목순복의 손아래누이인 목순옥과 결혼. |
1979 | 시선집 [주막에서] 간행(첫 시집 [새]에 실린 작품들을 대부분 옮겨 실음). |
1984 | 시집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간행. |
1985 | 천상병 문학선집 [구름 손짓하며는] 간행. |
1987 | 시집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간행. |
1988 | 만성 간경화증으로 춘천의료원에 입원.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으나 불사조처럼 회생. |
1990 | 시집 [괜찮다 괜찮다다 괜찮다] 간행. |
1991 |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간행. |
1993 |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간행. |
1993 | 4월 28일 별세 |
1993 | 진정한 의미의 유고 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 간행. |
1993 | [천상병 전집] 간행. |
2007 | [천상병 평론] 간행. [네이버 지식백과] 천상병 [千祥炳] - 천진무구함과 무욕으로 무장한 시인 (나는 문학이다, 2009. 9. 9., 장석주, 도서출판 답게) |
오늘도 코로나 감염을 피해서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