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천계곡으로 들었다가
시월 중순 목요일이다. 근래 며칠 하늘은 티 없이 파랗고 맑아 전형적인 가을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구월 초순은 잦은 비로 ‘가을장마’라는 새로운 기상 용어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엊그제 북면 들녘을 지나니 대파가 자라던 농장에 스프링컬러가 가동되어 분수를 연상하게 했다. 어제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큰형님께 안부 전화를 넣었더니 마늘밭에 지하수를 퍼 올려 준다고 했다.
이번 주중 주간 일기 예보는 오늘 저녁부터 내일 아침 사이 우리 지역에 비가 살짝 스쳐 갈 모양이다. 비가 오면 난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는데 내일은 강수 여부와 상관없이 도서관으로 나갈 참이다. 새벽녘 잠을 깨 집에 빌려다 둔 책을 펼쳐 읽었다. 도서관에서 대출받은 책 다섯 권을 반납 기한 내에 읽으려니 새벽잠을 줄여야 해 하루가 26시간이면 좋겠다는 날이 있기도 했다.
아침 식후 느긋하게 시간 여유를 갖고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 꽃대감이 가꾸는 꽃밭엔 란타나와 금관화가 피어 화사했다. 옮겨와 심었는지 야생 구절초도 제철을 맞아 하얀 꽃잎을 펼쳐 보였다. 그 꽃을 사진으로 담아 몇몇 지기들에게 카톡으로 가을 가뭄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름답게 피는 꽃이라고 아침 안부를 전했다. 때로는 내가 꽃대감 꽃밭 홍보대사 역을 맡는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도로 건너편 이웃 아파트 지기와 함께 팔룡동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다른 문우 둘을 더 만나 넷이서 굴현고개를 넘어간 외감 동구에서 달천계곡으로 들었다. 지역 문학 단체에서 다음 달 초 갖는다는 걷기를 겸한 정기 모임 행사장 선정을 위한 사전 답사였다. 나는 그쪽과 결합 된 구성원이 아님에도 장소 물색에 길 안내를 부탁받아 기꺼이 동행하게 되었다.
사전 연락이 닿아 우리 뒤를 따라 나타난 한 문우와 주차장 곁의 정자에 올라 다과를 들면서 잠시 환담을 나누었다. 이번에 갖게 될 행사에는 고령자나 여성도 포함되어 산행 강도가 힘들면 장소를 더 평탄한 곳으로 변경시킬 의향도 갖고 있었다. 창원에 사는 이들이라면 천주산이나 달천계곡은 한두 번 다녀가 낯선 곳 아니겠지만 문학 단체 집행부는 사전에 세심하게 배려했다.
쉼터에서 달천계곡 들머리로 드니 유아원에서 나온 귀염둥이들이 보모를 따라 유아 체험 숲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미수 허목 유허지 빗돌을 거쳐 전망 정자를 지났다. 달천계곡은 바위 더미로 물소리를 내면서 맑은 물이 흘렀다. 간간이 지저귀는 새소리는 화음이 되었다. 길섶에는 꽃향유가 피어 향기를 뿜고 이고들빼기와 오리방풀도 철을 잊지 않고 노란색과 보랏빛 꽃을 피웠다.
일행들과 천주산 꼭뒤 임도를 따라 약수터에 이르러 샘물을 받아 마시고 잣나무 숲 삼림욕장까지 올랐다. 주차장 출발지부터 한 시간 남짓 걸렸는데 후일 예정된 행사에 참여할 노약자 회원에겐 무리가 되는 코스인가도 싶었다. 산행 코스 적합성 여부와 대체 장소 물색은 동행한 문우와 집행부가 정할 일이라 나하고 무관했다. 잣나무 숲에서 발길을 돌려 계곡 들머리로 내려섰다.
승용차를 타고 외감 둥구 한 식당을 찾아가니 점심때가 되어 넓은 홀이 거의 채워져 갔다. 우리는 빈 테이블을 한 자리 차지해 코다리찜을 시켜 놓고 잘라둔 두부와 밑반찬을 가져왔다. 시래기를 읽혀 찐 코다리가 나와 밥공기를 비울 때 곡차는 무제한 제공이나 난 쳐다만 보고 말았다. 식후에 이웃한 드립 커피 전문점에서 진한 커피 향을 맡으면서 일상의 소소한 얘기가 오갔다.
자리에서 헤어질 때 통영에서 달려왔던 문우는 손수 가꾼 열매채소를 나누어 고맙게 받았다. 끝물 가지였지만 미끈하게 생긴 녀석들이고 풋고추도 넉넉하게 따왔더랬다. 청정 지역 무농약 채소를 지혜롭게 먹는 방법은 손수 가꾸면 좋겠지만 그럴 여건이 못 되면 주변에 텃밭을 가꾸는 지인을 사귀어두라던 말이 떠올랐다. 지기로부터 가지와 풋고추를 받아 시장 걸음은 줄여도 되었다. 23.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