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륙도
수선화
이제 더 이상 꽃샘추위가 ‘춘래불사춘’이란 말을 만들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인간들 스스로 만든 코로나 바이러스에 봄을 빼앗기면서 공포감에서 생긴 감정이다. 식목일과 한식이 겹친 날 축복처럼 해맑은 하늘이 열렸지만 불안감은 여전했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조금이라도 떨쳐보고자 평상시 같았으면 성당미사에 참례하고 있을 시각에 교우 네 부부는 의기투합하여 봄 소풍을 나섰던 것이다. 신종코로나가 만든 사회적 거리두기엔 다소 안 맞지만 서너 달을 갇혀 지낸 갑갑함을 떨쳐보자는 심사에서였다. 일차로 찾은 간절곶을 둘러보고 나서 내가 오륙도를 가자고 제안했을 때 일행은 거리가 멀다며 별로 탐탁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년인생에서 봄꽃 수선화에 오륙도를 배경으로 멋진 부부사진을 남겨보면 좋을 거라고 권했다. 보름 전 신문 포토뉴스에 실린 샛노란 수선화가 떠올랐던 것이다. 신문에선 샛노란 수선화도 아름다웠지만 오륙도 바다가 보석처럼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황홀할 정도로 빛나는 해면 때문인지 웹사이트에도 오륙도 수선화를 포스팅한 글들이 꽤나 올라 있었다. 신문에 실린 오륙도 해맞이공원 수선화 사진을 책상머리에 붙여놓고 찾아갈 날짜를 재고 있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다. 전철에 올라 중간에 버스만 갈아타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지만 전철이나 버스 손잡이가 코로나바이러스 온상이라고 하도 떠들어대는 바람에 위축되고 말았다.
오륙도 해맞이공원 수선화는 기존의 탐방로를 벗어난 공원 초입 언덕 위에 있어서 꼭꼭 숨어있는 형국이었다. 간절곶 출발하면서 우려했던 대로 수선화는 보름 사이에 태반이 시들었고 서있는 꽃들도 우중충했다. 화무십일홍을 생각지 못하고 찾은 게 잘못이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로 시든 꽃을 여러 차례 카메라에 담자니 코로나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행에게 권했던 수선화 부부사진은 언간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오륙도 해맞이공원을 찾은 사람들은 비록 마스크로 입을 단속한 모양새지만 주차장에 차를 세우기 어려울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명성이 식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오륙도가 봄꽃 사진명소로 꼽히는 것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오륙도와 푸른 하늘 그리고 새하얀 구름이 바다를 배경으로 어우러진 때문일 터이다. 거기에다 금년엔 노란 수선화까지 더해져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으니 왜 아니었겠는가. 금년 봄에 오륙도를 찾았던 누군가는 너무 멋진 것들만 합성해 놓은 것 같아 오히려 비현실적 비주얼로 비치더라고도 했었다. 수선화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가에서 주로 자란다. 수선화에 얽힌 설화로는 연못가에 핀 수선화가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취해 “어쩜 이리도 예쁠까, 이 세상에선 내가 가장 아름다울 거야!”라며 자만했었단 얘기가 있다.
그때 지나가던 새가 수선화보다도 더 아름다운 꽃이 있다며 환상을 깨주자 이에 부끄러워진 수선화는 그늘로 숨고 말았다는 것.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도 수선화를 찬양하는 시를 지었을 정도로 수선화는 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꽃임에 틀림이 없다. 수선화는 어떤 꽃보다도 먼저 봄을 알리는 알뿌리 식물 중 하나로 밝은 노란빛은 주위를 화사하게 하고 마음까지 밝게 만드는 봄을 대표하는 꽃으로 자리 잡았다. 수선화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생동감 있고 발랄한 노란색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도 이와 유사한데 나르키소스의 전설로 유명하다.
수선화의 속명이기도 한 Narciss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인 나르키소스에게서 유래한다. 나르키소스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소년으로 남녀 모두 그를 사랑했으나 그는 모두를 싫어했다. 나르키소스에게 거부당한 어느 요정이 자신이 겪은 것과 똑같이 이루지 못한 사랑의 괴로움을 나르키소스도 겪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이때 요정의 소원을 듣게 된 아프로디테가 요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하여 나르키소스는 맑은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벌을 받게 된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면 그 모습이 흐트러져 버리고 너무 멀리 물러나면 자신의 모습은 이내 사라져 버렸다.
자신의 모습이 비친 물가에서 떠나지 못한 나르키소스는 결국 물에 빠져 숨을 거두고 만다. 여러 요정과 신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나르키소스가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를 아름다운 수선화로 만들었다. 고개를 숙인 모양을 하고 있는 수선화를 보면 나르키소스가 호수를 들여다보는 모습이 연상된다. '자기애'와 '자기주의' '자만' '자아도취'라고 하는 수선화의 꽃말 또한 이 신화에서 비롯되었다. 동화작가이자 원예가인 타샤 투더는 수선화 없는 생활이란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수많은 꽃을 기르고 정원을 가꾼 그녀는 수선화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고백하였다.
매년 가을 엄청난 양의 구근을 심었다고 하니 달콤한 향기를 내뿜는 수선화의 매력에 푹 빠졌던 것이리라.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도 수선화를 찬양하는 시를 지었을 정도로 수선화는 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꽃임에 틀림이 없었다. 수선화는 어떤 꽃보다도 먼저 봄을 알리는 알뿌리 식물 중 하나로 밝은 노란빛은 주위를 화사하게 하고 마음까지 밝게 만드는 봄을 대표하는 꽃이 아닐 수 없다. 수선화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생동감 있고 발랄한 노란색이다. 오늘은 사진촬영명소 스카이워크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투명한 유리바닥으로 내려다보이는 쪽빛바다와 하늘에 떠있는 듯한 느낌으로 오륙도를 바라볼 수 있는 명소가 코로나 앞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오륙도를 탐방했던 젊은이들 중에선 이상화 시인을 흉내 내어 ‘코로나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었다. 그가 말하는 들판이 바로 오늘 우리가 찾은 해맞이공원이었다. 사람들은 짙푸른 바다와 만개한 유채꽃을 배경으로 폰카메라를 눌러대기에 바빴다. 같은 바닷가인데도 조금 전 들렀던 간절곶과는 탐방객 숫자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오륙도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우리 일행을 제외하면 노인네 그룹은 눈에 띄질 않았다. 한창때인 중년에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를 열창했던 사람들이니 우린 퍽 오래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