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의 생각
조 용 미
내 손을 주머니로 가져갔던 그 저녁은 살아 있는 듯 몹시 추웠다 물건처럼 나는 한쪽 손을 전달했다 낯선 골목을 익숙한 듯 바라본다 당신은 나의 괴로움을 모른다 당신은 나의 정처 없음을 모른다 당신은 이 세계가 곧 무너질 것을 모른다 우리는 잠시 코트 주머니 속의 공간을 절반씩 나누어 가졌다 당신이 그 순간을 기억해낼 수도 있다는 희미한 가능성을 나는 염두에 둔다 우리는 아주 먼 오래전에 한 번쯤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당신이 하게 되려는 그 순간 손은 주머니에서 문득 빠져나왔다 그날 밤은 몹시 추웠던가 당신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나온 손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단정하게 손목 아래 가만 놓여 있다 당신이 하려던 생각처럼 우리는 죽기 전에 한 번쯤 만났을지도 모른다 서너 번일지도 모른다 온전하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기억이란 무엇인가 나는 당신의 거짓을 모른다 당신의 죽음을 모른다 저녁의 감정을 가장한 당신의 슬픔을 모른다 이 세계가 실재가 아님을 모른다
- 시집〈당신의 아름다움〉문학과지성사 -
당신의 아름다움 - 예스24
“아름다움이 확장될수록 슬픔이 깊어진다”고통의 심연에서 길어낸 상처의 미학 깊고 섬세한 시선으로 생의 풍경들을 응시해온 조용미의 일곱번째 시집 『당신의 아름다움』(문학과지성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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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시집 〈당신의 아름다움〉 문학과지성사 /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