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민 금휼"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아하수에로 왕은 어전 뜰에 선 에스더를 보는 순간 그녀에 대한 사랑의 불길이 타올라 그녀에게 금홀을 내밀었습니다. 페르시아에는 왕의 부름을 받지 아니고는 왕에게로 함부로 나아갈 수 없다는 규례가 있었습니다. 누구든, 심지어 왕후라도 왕의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스스로 왕에게 나아가면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왕은 아무나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왕에게 나아가고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바로 왕이 그 스스로 나아온 자를 긍휼히 여겨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금휼을 내밀어 주는 경우였습니다(4:11). 아하수에로는 에스더를 보는 순간 너무 사랑스러워 이 금휼을 에스더에게 내민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에스더에게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우선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생명이 보존되었습니다. 그리고 왕과 대화를 할 수 있었고, 왕에게 무엇이든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아하수에로가 내민 금휼이 에스더에게 이러한 변화를 가져다주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여러분, 우리는 본래 아무도 스스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으로서 누구든 거룩하신 하나님께 스스로 나아갈 경우 죽음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서 죽을 자로 서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선 자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죽었습니까? 우리가 멸망할 자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오늘 도리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무엇이든 구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죽을 자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자가 되었습니까?
고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셔서 '금휼'을 내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금휼이란 다름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로 하여금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한다고 증거합니다(히10:19,20). 뿐만 아니라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 갈수 있게 되었다"고 증거합니다(히4:16). 또 성경은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아하수에로가 내민 금흘이 에스더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내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민 예수 그리스도를 만짐으로,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내민 예수 그리스도를 귀하게 여기고 그분의 구속 사역을 기억하여 영원히 기념하며 널리 전하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지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 죽을 자로 서 있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짐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함께 들어가도록 권해야 할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