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풍경과 경제성(?)에 반해 충동적으로 10년째 비어있던 폐가를 샀습니다.
4500만원에 대지 299평, 보고도 믿기지 않는 가격이었죠.
서울에 내 집 장만이 어려운 요즘 같은 시대에 서울 원룸 보증금으로 299평의 땅과 집이라니! 말 그대로 대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장과 가족이 있는 서울에서 250km 떨어져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회사를 그만 둘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 드는 마당에 회사에서 250km 떨어진 집을 사는 게 대수냐 싶었습니다.
| 299평, 지평선 뷰 시골집에 반하다
저희 집은 전라북도 김제,
한국지리 교과서에서 배우던 김제평야 논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299평의 마당에 두 채의 집(안채와 별채)이 자리잡고 있죠.
도면: studio S.A.M 윤민환 소장
위 도면에서 점선이 299평짜리 마당을 표시하고 있고 위의 집이 안채, 아래 집이 별채입니다. 도면에서의 아래쪽이 남향, 논을 향해 있어요.
여기가 안채이고,
뒤에도 어마어마한 마당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때는 땅부자라며 좋아했더라는...)
무엇보다 지난 봄에 제가 이 집을 보고 반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뷰'였는데요.
넓은 마당에 노랗게 피어있던 배추꽃이 너무 환하고 예뻤고, (사실 배추꽃은 한철이지만... 그래도 배추꽃이 다 진 지금도 여전히 예쁘긴 합니다 :))
집에서 이렇게 훤한 논밭 뷰(?)를 볼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신선했습니다. 거의 시력검사하던 때나 보던 평야였으니까요.
이게 집을 사던 4월의 모습이고,
이게 지난 7월 모습입니다. 초록초록 논이 이렇게 예쁠 줄이야! 집 앞의 논은 꼭 잘 가꿔진 잔디밭 같기도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파도가 치는 것 같기도 해 마음이 평온해져요.
물론 집의 경제적인 부분을 중요시하는 분들은 이렇게 논밭 한가운데에 있는 집을 절대 사지 않으시겠죠. 저도 경제적 가치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없는 것 같지만) 이 집이 논 한 가운데에 있다는 점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서른 둘이 될 때까지 토종 한국인으로 살면서 집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색달랐고, 이런 뷰를 보며 살다보면 마음 복잡할 일이 조금은 줄어들겠구나 싶었거든요.
비록 집 값 오를 일은 없어도, 서울 원룸 보증금으로 299평의 땅과 집에 이런 뷰까지 덤으로 오다니 집 참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놓치면 안 될 것 같았죠.
| 일과 쉼의 분리,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집
제 생활이 있는 서울과는 멀어도 너무 먼,
현실적으로는 절-대 사면 안되는 집이었지만,
생각을 달리 해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어차피 평일에는 잠만 자는 집, 주말에 제대로 쉴 수 있다면 조금은 멀리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회사와 가까운 집이 정말 나에게 좋은 집일까?
회사에 무슨 큰 일이 생겨도 절대 한달음에 뛰어갈 수 없는 그런 집이 좋은 집은 아닐까? (팀장님이 이 글을 안 봤으면 좋겠네요)
주 52시간제, 평일에 확실히 일하고
주말에 온전한 내 공간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당장 지친 마음에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기보다는
이게 훨씬 바람직하고 경제적인 선택이 아닐까?
(암, 그렇고 말고.)
반강제적으로라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내 집이 필요해.
만약 내가 집을 산다면 그런 집이어야만 해.
그렇게 대책 없이, 앞으로 회사를 열심히 다닐 생각으로 이 집을 샀습니다. (복선 아니고 진심)
| 시골 빈 집을 살 때 알아보아야 할 것
구매는 충동적이었지만 시골집을 취미 삼아 찾아본 건 사실 1년 정도 되었는데요. 원래는 서울과 가까운 강화도에 시골집을 마련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아둔 돈은 없는데 강화도 집 값(땅 값)은 1년 새에 무지막지하게 오르고, 1억 안쪽으로 시골집을 구매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리더군요. (강화도 갈 때마다 차가 막히던 것도 한 몫 했습니다)
‘역시 나에게도 주말 세컨하우스는 그저 꿈이구나’
포기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그때, 이 집이 제 인생에 들어온 거죠.
그래도 이 집은 싼 시골집인 것 치고 여러 가지 조건들이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보통 농가주택, 시골 빈 집을 살 때 체크하셔야 하는 것들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1. 등기가 되어있는 주택인지
2. 토지의 지목이 대지인지
3. 토지와 주택의 주인이 같은지
4. 주변에 혐오시설은 없는지 (축사 등)
5. 주변에 빈 집이 얼마나 많은지 (동네 전체가 빈 집인 경우도 있음)
6. (너무 싼 경우) 지상권 주택이지는 않은지
정도인데요.
저에게는 이 집이 서울에서 가깝지 않은 것 말고는 모든 게 완벽했습니다.
대지 지목의 땅 299평에, 그 위에 지어진 건축물대장이 있는 집, 토지와 주택의 주인도 같고, 가축 사육 제한 지역에, 마을에 빈 집이라고는 이 곳 한 곳, 게다가 마을이 아담해서 시골 텃세라고는 없는 그런 집.
하루 종일 햇살이 잘드는, 언젠가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잣집이었다던 이 집에서 '나 한 번 제대로 쉬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생애 첫 집이기에 디딤돌 대출이 가능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싼 농가 주택은 담보 평가가 나오지 않는다더라고요. 결국 거절 당했다는 슬픈 소식...)
Tip. 추가로 체크하면 좋을 조건들
위의 행정적인(?) 것들과 더불어, 리모델링 비용이 훨씬 비싸질 수 있는 조건들도 체크하는 게 좋아요.
1. 정화조 시설이 갖춰져 있는지
2. 상수도가 들어와 있는지
3. 화장실이 내부에 있는지
4. 슬레이트 지붕이지는 않은지 (철거 비용이 비싸고 전문 업체 필요)
5. 도로에 면해 있는지
물론,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집이 너무 마음에 든다 하면 실행에 옮기면 됩니다 ㅎㅎ
| BEFORE, 10년간 비어있던 집의 상태는...
물론 앞서 말했듯 이 집은 폐가.
전 주인 가족이 남겨놓은 시간의 흔적이 가득했습니다.
그대로 살 수는 없기에 리모델링을 해야 했고, ‘리모델링 비용이 설마 집 값을 넘어가겠어’ 라는 생각으로 집을 샀죠.
그런데.. 자세히 보니 집의 상태가....?
집은 비어있던 10년동안 쓰레기더미가 되어 있었고,
창고엔 쓰레기가 너무 쌓여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
안채 거실의 모습
한 평도 안되어 보였던 좁은 주방
그래도 저 타일 싱크대가 너무 귀여워서 보존 했답니다 :)
다..다이닝룸..?
건넌방은 그나마 상태가 양호했지만... 어린 아이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왠지 무서웠고 ㅠㅠ
건넌방 앞 툇마루(복도)를 지나,
안방처럼 보이던 방의 오른쪽의 문을 열면...
진입조차 불가능한 작은 방이 나옵니다.
들어가기 가장 무서웠던...!! 화장실...
그리고 40여년 간 한국의 역사를 볼 수 있었던 신문 벽지까지...
이렇게가 대략의 비포입니다. (오랜만에 과거사진을 보니 다시 심란하네요 ㅋㅋㅋ)
폐가를 청소하는 데에만 2주가 걸렸고, 비용은 현지 인력을 섭외하여 약 200여만원이 들었습니다.
안채 대청소하던 날이네요.
대청소 후에야 형체가 드러난 창고.
대청소하던날 앞 마당 모습입니다 (쓰레기가 어마어마했어요...)
그 이후에야 리모델링에 들어갔는데요. 다음 편들에서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을 산 지 5개월 차인 지금도 리모델링은 현재진행형이에요. (처음 예상과 달리 리모델링 비용이 집 값을 훌쩍 넘었답니다 하하)
다니는 직장이 있으니 셀프로 진행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고, 시골 집이라 그런지 공사를 진행할 때마다 뜻밖의 변수들이 튀어 나와서 돈도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결국 저는 리모델링 비용이 생각보다 많아져서 서울 전셋집을 처분하게 되었고, 저의 ‘세컨하우스 계획’은 ‘시골집 이주 계획’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서울에서는 1층에 상가가 있는 다가구 주택 전세에 살며 (전세가 1억 9천, 대출 80%) 빚이 대략 1억 4천만원 있었는데 이 큰 집을 사면서 빚은 1억원 가량 없어진 셈이니 훨씬 경제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
| AFTER, 바뀐 내부 살짝 미리보기
앞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 현재 모습을 살짝 보여드리려고 해요.
이제 막 이삿짐을 풀기 시작해서 좀 정돈이 안되어 보입니다만 비포를 생각하시면서 예쁘게 봐주세요. (이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격이었던 집주인...)
여기는 안채 거실이에요.
직접 만든 장식 선반을 제 취향의 물건들로 채웠고, 그 뒤엔 침실이 있어요. (저희 집은 문이 거의 없어요!)
침실에 들어가면....
저희 집 강아지, 주인 닮아 살짝 낯가리는 관종인 효리(8세, 닥스훈트)가 있습니다.
다시 침실에서 나오면 보이는 반대쪽 거실에는 이 집에 있었던 가구와 제 반려식물 등이 자리잡고 있고요.
그 뒷쪽으로 이렇게 주방으로 이어져요 (바깥 마당은 아직 공사 진행 중이에요! ㅠㅠ)
오늘 아침을 해먹었던 주방. 혼자 있을 때에는 그냥 이 아일랜드 조리대를 식탁처럼 사용하곤 해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부, 외부 인테리어가 진행중이라 다른 부분들은 앞으로 차차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요즘은 다들 깔끔하고 모던한 인테리어를 선호하는 것 같아 제 취향을 보여드리기가 살짝 눈치보이기도 하고 그러네요 ^^;; (이상한 데에 소심한 편)
| 김제평야 한가운데, 나만의 리틀포레스트를 꿈꾸며
저는 이렇게 이 집을 통해서 일과 일상을 분리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시도해보고 있어요. 그리고 그 몇 달 사이 실제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어요.
이 집을 사고, 이 집을 고쳐나가는 과정을 브이로그로 담다 보니, MBC 시사교양본부 소속 PD였던 제가 유튜브 제작 부서로 옮기기까지 했거든요.
조금은 무모한 시도일 수 있겠지만, 저와 같은 삶의 방식에 공감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오래된 시골 폐가를 저만의 리틀포레스트로 바꿔나가는 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봐주세요.
첫댓글 님의 멋진 선택에 응원을 보냅니대👏👏👏🙏🙏🙏
좋은 하루요 감사^^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다음편도 기대하면서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당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