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 막판까지 중립노선을 고수하던
미국이 1917년 4월 참전을 결정하기까지 여러 사건이 겹쳐 일어났지만,
시민 여론이 참전 쪽으로 선회한 것은 '짐머먼 전보(Zimmermann Telegram)'가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였다.
1914년 시작된 1차 대전은 미국이 개입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유럽 전쟁이었다.
3국동맹(독일제국,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이탈리아 왕국)은 동쪽 러시아제국과
서쪽 영국.프링스의 3국협상 국가들과의 전쟁을 우세하게 치렀고,
미국 민주당 윌슨 행정부는 대서양 너머 전장에 무기를 팔면서 사태를 관망했다.
독일 잠수함 영국봉쇄 작전 중 영국국적 여객선 루시타니아 호가 격침(1915.5)되면서
1,198명의 민간인이 희생되고 그 중 미국인 128명도 목숨을 잃었지만,
윌슨 정부는 독일 정부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받는 외교적 해법을 택했다.
16년 윌슨의 대통령 재선 공약 중 하나도 '대외적 중립'이었다.
1917년 2월 1알 독일의 '무례한 잠수함 작전'으로 상황이 변했다.
저 작전으로 독일이 겨냥한 것은 군수품을 실어 나르는 미국의 상선이었다.
러시아 2월 혁명도 전세를 뒤흔든 결혁명 정부는 재국주의 전쟁에서 발을 빼겠다고 선언했고,
유럽 전선의 영.프 연합군은 동부 독일군까지 감당해야 할 판이었다.
전호아은 독일의 우위로 표나게 기울었고, 자신감에 부푼 독일이 미국에 참전할 테면 해보라며
뺴든 칼이 사실상의 선전포고인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었다.
앞서 1월 17일.
독일 외상 아더 짐머만(Arthur Zimmermann)이 멕시코 주재 독일대사(Heinrich von Eckardt)에게
양국 군사동맹을 추진하라고 지시한 이른바 '짐머만 전보'도 미국 참전에 대비한 거였다.
짐머만은 전보에서 미국 참전시 멕시코가 대미 선전포고를 하도록 하고, 전쟁에 필요한 군사.경제적 지원과
함께 1836년 미.멕시코, 아리조나 주위 멕시코 제편입을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영국 첩보부대가 그 비밀 전보를 입수해 해독한 뒤 윌슨 정부에 전달했고,
윌슨은 의회 동의를 얻어 3월 1일 국내 언론에 전문을 공개했다.
우리슨은 4월 2일 의회에 참전 승인을 요청, 6일 의회가 만장일치로 승인함으로써 1차 대전은 세계대전이 됐다.
최윤필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