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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20:1-10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내용분해 : A.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무덤이 빈 것올 고함(1 -2절)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이 옮겨진 것을 목격함(1절)
2. 마리아가 베드로와 예수님의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다고 전함 (2절)
B.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예수님의 무덤이 빈 것을 확인함(3-8절)
1.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무덤으로 달음박질하여 감(3-4a절)
2. 다른 제자가 먼저 도착하였으나 허리를 굽혀
보기만 하고 무덤에 들어가지는 않음 (4b-5절)
3. 이어 도착한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가
세마포와 머릿수건만 놓인 것을 봄(6-7절)
4. 그제서야 무덤에 먼저 왔던 제자도 들어가 보고
시신이 없어졌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이 사실임을 믿음 (8절)
C. 두 제자가 쓸쓸히 집으로 돌아감(9-10절)
1. 두 제자는 아직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성경의 진술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음 (9절)
2. 빈 무덤을 확인한 두 제자가 쓸쓸히 집으로 돌아감(10절)
오늘도 우리에게 새 아침을 허락해 주시고,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아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닌 시작임을 말씀하시며 쓸쓸해 하지도, 좌절하지도, 절망가운데 있지도 말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육신의 슬픔 너머에 있는 새로운 시작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이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십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아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요한복음 20:1-10절 말씀으로 예수님의 무덤이 빈것에 대한 막달라 마리아의 보고 및 베드로와 다른 한 제자의 확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20장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해가 떠올랐던 새벽에 대한 기사로부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 (19:19) 이라는 죄명 (罪名) 아닌 죄명으로 십자가 수난(the Crucifixion) 을 당하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덤에 갇혀 있을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이라고 하신 스스로의 선언처럼(11:25),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인류 역사가 바뀐 것 입니다. 아담의 타락 후 인류 위에 줄곧 왕 노릇해 오던 죽음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망의 권세 아래 복종하던 인류는 이제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롬 5:17).
그러나 이 엄청난 소식이 알려지기 전에는, 예수님의 생전에 가장 가까이에서 그분을 따르던 제자들조차 슬픔과 두려움에 잠겨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들에게 나타나셔서 슬픔을 기쁨으로, 두려움을 용기로, 불신을 믿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제20장의 다섯 문단들은 빈 무덤에 대한 막달라 마리아의 보고로부터, 막달라 마리아와 도마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출현하신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1-10절은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된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가 그 무덤이 비어 있음을 발견하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제자인 요한에게 보고 하자,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가 그 사실을 확인한 것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빈 무덤 (the Empty Tomb)’ 은 예수님 부활의 확실한 증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빈 무덤을 확인하고서도 두 제자는 쓸쓸히 집으로 돌아갔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머물며 슬피 울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11-18절은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출현하신 것과, 마리아가 예수님의 명대로 제자들에게 가서 자신이 주님을 만난 사실을 알리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19-29절의 두 문단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출현하신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중 19-23 절은 부활의 첫날 곧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난 그 날 저녁에 있었던 일로서 도마의 부재(不在)시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출현하신 것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유대 당국자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걸어 잠그고 모여 있었는데, 이 때 부활의 주께서는 제자들이 너무나 필요로 하고 있던 ‘평강 (Peace)’ 을 전하시며, 못박힌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십니다. 이어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는 말씀과 함께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적 기도에서도 말씀하신 바와 같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회를 보내노라’(17:18,21)고 하심으로써, 자신이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는 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파송하신 것과 같은 맥락에서 파송하시는 것임을 보여 주십니다. 이는 곧 세상으로의 제자들의 파송은 예수님께 대한 하나님의 위임 명령의 확대 차원으로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리자들(Representatives) 로서 사명을 수행할 것임을 보여 줍니다. 이어 예수님께서 ‘숨을 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의 약속을 보증하는 상징적 행동으로서 장차 제자들이 받은 바 사명을 성령의 능력으로 수행할 것임을 보여 줍니다.
다음 24-29절은 일 주일 후 이번에는 도마를 포함하여 제자들이 모두 함께 모여 있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한번 제자들에게 출현하신 것을 보도하고 있는데, 부활의 첫날 저녁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던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25절)며 완강한 불신의 태도를 나타냈었습니다. 그러한 도마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재차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 도마에게 구멍 뚫린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며 믿음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결국 도마는 예수님께 대해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요한복음에서 도마에 관한 기사는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기사 중에 하나의 일화(Episode) 정도로 포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한복음의 문맥에서 예수님의 부활 기사는 도마에 관한 내용에서 그 절정 (Climax) 에 이른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도마는 실증주의자로서 불신적인 태도를 가진 자의 대명사인 것처럼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막달라 마리아나 다른 제자들 역시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서야' 믿었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확실한 증거인 빈 무덤을 보고서도 막달라 마리아나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 부활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성경의 증언과 예수님의 부활 예고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9절). 그리하여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주님을 직접 보기 전에는 여전히 슬픔에 잠겨 울고 있었으며 (11절), 다른 제자들 역시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셔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기 전까지는 두려움에 떨며 숨죽여 모여 있었습니다(19,20절).
이렇게 볼 때 도마의 경우는 너무나도 엄청난 사건인 부활을 제대로 믿을 수 없었던 제자들의 모습이 가장 극적으로 제시된 경우일 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단호한 자세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를 거부하던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 (My Lord and my God)’ 이라고 그의 신앙을 고백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 부활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성(事實性)을 강력하게 증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도마의 신앙 고백의 내용은 복음서 중에서 직접 예수님을 ‘하나님’ 이라고 고백하는 유일한 경우입니다. 이는 바로 본서의 서두에서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곧 하나님이심을 밝힌(1:1) 요한의 신학적 진술이 한 제자의 입술의 직접적 고백을 통해 반복되고 있는 셈입니다. 즉 저자 요한은 도마의 신앙 고백을 빌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기사를 보도하면서,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강조하고자 한 본서의 저작 목적을 다시 한번 명백히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29절)라고 하신 말씀 역시, 단순히 도마의 불신앙에 대한 책망의 차원에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물론 완강한 태도로 불신의 말을 한 도마에 대한 책망의 의도가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보고 믿은 자에 대한 책망이기보다는 ‘보지 않고 믿는 자의 복’을 강조한 말씀이라고 보아야만 합니다. 적어도 본서의 저자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그렇게 이해하고 기록하였다는 것은 본서의 기록 목적을 밝힌 30.31 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요한은 자신이 본서를 기록하는 목적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라고 밝히고 있는데 본서의 독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특히 요한이 본서의 일차 독자층으로 염두에 두었던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은 메시야를 정치적 차원에서만 이해하려는 유대적 사고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사실과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도마의 고백이야말로 예수님이 신적 메시야시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는 증언이 되는 셈인 것입니다. 아직 21장이 남아 있음에도 저자 요한이 본서의 실질적 결론이라고 할수 있는 본서의 기록 목적인 30.31 절을 20장 말미, 곧 도마의 신앙 고백에 이어 위치시키고 있는 것은 요한의 신학적 목적을 고려하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결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 쉽게 믿어버리기에는 너무도 엄청나며 한편으로는 두렵기조차 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고 만져보아야만 믿겠다’ 라고 하는 도마의 외침이야말로 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대신할 외침이 아니까요? 그러나 그런 불신의 사람 (?)에게 친히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며,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니라’고 말씀하신 부활의 주님의 음성이, 오늘 우리로 하여금 ‘보지 않고서도’ 도마가 드린 신앙의 고백을 드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건, "장차는 우리의 무덤도 빈 무덤으로 발견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음을 보도하는 본문에서 우리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장차는 우리의 무덤도 빈 무덤으로 발견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3-5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세례의 의의가 무엇입니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의의가 있습니다. 하나는 죄씻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두번째 의의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곧 우리의 죽음입니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도 함께 죽은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으며 장차는 우리의 몸도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20 에서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첫 열매가 있다는 것은 둘째, 셋째 열매가 계속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의 뒤를 이어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이상 무덤의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덤이 빈 무덤으로 발견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셔서 죽지 않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죽음을 맞게 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다시 사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마치 계명을 쫓아 안식일에 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무덤도 잠든 육체가 잠시 쉬는 안식처요 부활을 기다리는 대기소일 뿐입니다.
죽음이란 괴물은 참으로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집어삼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마저도 집어삼켰습니다. 죽음은 참으로 무서운 괴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써 이 죽음이란 괴물의 배를 가르고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를 믿는 모든 성도가 그의 뒤를 쫓아 하나님의 자녀로써 죽음으로부터 나올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믿는 자의 실상입니다. 주님의 빈 무덤은 죽음을 정복하신 그리스도의 승리요 또한 그와 연합한 우리의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 (고전15:55)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두란노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