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주인공 2 (마 5:1-6)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오늘도 “행복의 주인공”이라는 제목으로 나머지 팔복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젊은 날 중국의 [마의 상서]를 공부하다가 자신의 얼굴부터 살펴보았더니 가난과 살인, 풍파와 불안, 비명횡사할 온갖 역마살이 다 끼어 있었습니다. 관상의 이론대로라면 그야말로 하지하(下之下), 최악의 상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내 관상이 이 모양인데 도대체 누구의 관상을 보아준단 말인가’한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습니다. ‘얼굴 잘생긴 관상은 몸이 튼튼한 신상(身相)만 못하고, 몸이 좋은 신상은 마음씨 좋은 심상(心相)만 못하다.’ 그래서 선생은 거기서 깨달음을 얻어 觀相不如心相(관상불여심상), 즉 관상은 마음의 상보다 못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시각에서 보면 심상 역시 절대적이진 않습니다. 나쁜 심상을 가진 죄인도 예수 믿으면 그 인생이 변화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복되신 하나님을 모실 행복의 주인공은 어떤 마음일까요?
5. 긍휼히 여기는 자입니다.
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명사 중 가장 많이 쓰인 말은 [라하밈]인데 이는 주로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가지는 혈육적인 사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항상 파격적입니다. 파격(破格)이란 일정한 관례나 격식을 과감히 깨뜨리는 것을 파격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자기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시는 것에서부터 그 파격성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그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셨고, 예수와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하늘에 속한 자가 되는 그 은혜까지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파격적입니까?
그러나 이 은혜를 실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 은혜를 받은 수혜자로서 양심에 위배되지 않게 최소한 내 이웃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6:15에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셨습니다. 나아가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 복되신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온전히 모실 수 있습니다. 요일4:12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했습니다. 긍휼은 심판도 이긴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약2:13).
6. 마음이 청결한 자입니다.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전도하면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때 무엇이라 대답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을 보여드리지요.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마음을 청결하게 하십시오.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말씀도 있지만 볼 수 있다는 말씀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의인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본다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 본다는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지고 알아지고 느껴지고 체험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임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회개함으로 마음을 청결하게 하면 교통의 문이 열립니다. 시35:13에 “나는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잠28:13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혹시 막힌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은 진실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기도도 좋지만 회개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죄(요5:42), 말씀대로 살지 않은 죄(신29:9), 요나처럼 사명을 회피하거나 불충한 죄를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기타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달음을 주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7.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9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하늘이 캄캄해지고 운명하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는가 하면 지진이 일어나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그뿐 아니라 무덤들이 열리며 죽은 성도들의 몸이 많이 부활하여 무덤에서 나오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그 모진 고통을 당하셨지만 누구 하나 미워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이것을 본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한 사람이 아닙니다. 거기 모인 모든 원수들이 말했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그리스도의 대승리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말 안 들어도 좋지만 너는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는 진짜 하나님의 딸이라는 말만은 꼭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받을 최고의 복이요, 하나님께 돌릴 가장 큰 영광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화평케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화평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마10:12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하셨습니다. 여기 집은 개인 집일 수도 있고 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라의 평안과 세계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시122:6). 화평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분란의 주동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늘 평안을 끼치시기 바랍니다. 눅24:36에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런데 요14: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신대로 단순한 축복이 아닙니다. 평강을 수여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성령 충만 받고 평강을 얻어야 합니다.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서로 자기 땅이라 주장하며 싸우고 있는데 방법은 서로 화평하고 공존하는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만이 가능합니다. 이스라엘도 유대교에 집착하지 말고 팔레스타인도 이슬람을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슬람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의 멸망은 이슬람 하마스를 받아들인 것이고, 아름답던 이란도 이슬람이 침투하여 자유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입니다.
10-12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자는 순교자입니다. 순교자란 죽어서도 순교지만 넓게는 살아서도 박해를 참는 자입니다.
막크 갈리(Mark Galli)박사는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순교를 당한 사람들의 사적을 연구하는 순교사학자인데 그가 많은 순교자들을 연구한 다음 결론적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순교자들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한 가지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 "그 순교자들은 죽음의 순간까지 하나님의 임재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임재의식이란 성령의 평강입니다.
벧전4:14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스데반 집사처럼 해와 같이 밝게 살려면 핍박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10-12절) 하셨습니다.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 핍박이 있습니다. 사탄이 가만 두겠습니까? 우리의 약점을 알고 찌릅니다. 주를 위해서 충성하려 할 때도 무슨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일이 없으면 어떻게 하늘의 상을 받겠습니까?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거부하거나 핍박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면 더 큰 치욕이 다가옵니다.
1938년 9월 9일 한국교회는 핍박이 두려워 큰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조선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신사참배를 가결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확히 10년이 지나 1948년 9월 9일에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서 이 나라는 두 동강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W.C.C 부산총회 때 이미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세속화 이교화 용공화된 천주교와 손을 잡고 세계 종교가 하나 되는 있을 수 없는 일에 일부 한국교회가 손을 잡았습니다. 그때 예고했지요. 원치 않지만 우리나라에 무슨 아픔이 다가올지 두렵다고요. 그럼에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피하면 더 큰 십자가가 다가옵니다. 반면 의를 위해 핍박을 당하면 하나님이 온전히 함께 하시는 행복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핍박을 당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참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핍박을 받으셨는데 나쯤이야 당연한 것 아닌가 하면 기뻐할 때 하늘의 온갖 상으로 복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복이시고 또 복을 주시는 복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모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예수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8가지 마음을 가져 복되신 하나님게서 온전히 함께 하시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