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가을 속으로
시월이 하순에 접어든 토요일이다. 어제 아침 비가 살짝 스쳐 지난 이후 기온이 제법 내려가는 듯하디. 어제 이어 도서관서 시간을 보낼까 싶어 아침 식후도 새벽부터 읽던 하기주의 ‘목숨’ 1권을 마저 독파했다. 작가가 해방 이전 일제 강점기 마산 지역 민초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 흥미진진했다. 일제가 농촌만 수탈 대상이 아닌 어장도 마찬가지였고 징용과 위안부도 언급되었다.
일과가 시작되어 엘리베이터를 나서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 꽃대감 꽃밭으로 가서 밀양댁 할머니와 통장 아주머니를 만났다. 꽃밭에 핀 횃불 맨드라미는 선홍색 꽃술 그대로였는데 오목눈이와 박새들이 날아와 놀았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벼 논에서 쫓긴 참새 떼처럼 사라졌다. 녀석들은 씨앗이 여무는 맨드라미 꽃씨를 따 먹으려고 도심의 아파트단지 꽃밭까지 날아온 듯했다.
그 새들에서 20여 년 전 한 선배가 떠올랐다. 나처럼 초등에서 중등으로 전직해 국어를 가르치다 퇴직한 선배였다. 그분은 봉곡동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정원에는 수석과 꽃을 가꾸었다. 겨울에는 화초와 잔디가 시들어 삭막했지만 조를 사서 이른 아침 뜰에다 뿌려 놓으니 새들이 창가로 날아와 쪼아먹고 가더라고 했다. 그 선배는 자제가 사는 생활권으로 이사해 교류가 끊어졌다.
새들이 날아와 노니는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용지호수 어울림 도서관으로 향했다, 나는 운영 주체가 다른 공공도서관을 두 군데 이용한다. 어제는 경상남도 교육청 도서관이었고 용지호수 어울림도서관은 창원시청에서 운영했다. 1인 사서가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을 찾아 집으로 빌려 읽은 책 3권을 반납하고 지방 일간지를 펼쳐 읽으니 사서가 조심스럽게 한 가지 양해를 구해 왔다.
오늘 어울림 도서관에서는 주말을 맞아 오전에 아이를 대동한 젊은 엄마들과 무슨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했다. 좁은 공간에서 약간 소란스러워도 이해해주십사고 했는데 내가 오히려 송구했다. 당연하게 아이들 독서 습관 형성 지도가 우선이니 나에게 마음 걸려 하지 마십사고 했다. 신문을 다 읽고 환경과 관련된 책을 1권 빌려 도서관을 나와 용지호수 산책로를 한 바퀴 거닐었다.
호수 산책로를 걷다가 도심 속 먼저 내려앉은 가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수면 가장자리는 물억새와 갈대가 이삭이 패어 가을 운치를 더해주었다. 호수 주변 공원에는 소나무와 편백이 숲을 이룬 속에 활엽수들도 섞였는데 단풍빛이 물들기 시작했다. 특히 일찍 낙엽이 진 고목 벚나무는 거의 나목이 되어 있었다. 맑은 하늘 햇살이 비치는 호숫가에서 집 근처 농협 마트로 갔다.
수요일과 토요일은 과일과 채소 알뜰 장터에서 종종 시장을 봐 간다. 전에도 사 간 적 있던 고구마 한 박스와 무를 한 개 사서 집으로 옮겨 놓았다. “형제가 여럿이라 두리반 밥상 펼쳐 / 흰쌀밥 구경 못한 보리밥 일색이고 / 겨우내 한 솥씩 삶아 점심 끼니 때웠다 // 가을볕 잘라 말린 고구마 빼때기는 / 봄날에 죽을 쑤어 양곡을 대신 삼던 / 그 시절 추억이 서린 잊지 못할 덩이다”
집 현관에서 되돌아서 반송시장으로 가면서 ‘고구마 덩이’를 운율을 남겼다. 내가 어릴 적 고구마는 간식이 아닌 주식으로 삼아 먹었다. 반송시장의 노점과 가게들에서 가을이 얼마만큼 침투했는지 엿보고 칼국수를 시켜 점심을 해결했다. 식후에 시장 거리를 마저 둘러보고 커피점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내려 손에 들었다. 얼음을 띄워 먹던 커피가 어느새 따끈한 걸 찾게 되었다.
원이대로를 건너 종합운동장으로 가니 체육관 앞은 프로농구 시합을 앞두고 팬들이 줄을 서서 표를 마련했다. 보조경기장 잔디밭에는 꿈나무들의 운동회가 열렸는데 지역 아동센터 아이들의 가을 축제였다. 주말 행사를 자원해서 돕는 분들이 예사로 보이질 않았다. 문성대학 캠퍼스는 어떠한가 싶어 그곳으로 건너가 봤더니 초중고 학생들의 수학 체험전이 성황리에 진행 중이었다. 23.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