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어떤 예감처럼 단풍은 온다. 잠시 말없이 걷다 만나는 낙엽은 꽤 신중을 기한 듯이 우리에게로 온다. 소멸하는 것들이 소멸하는 자들에게 와서 톡톡 어깨를 두드리는 풍경을 보노라면 그것은 마치 온 우주의 고요한 노크처럼 들린다. 저 한 번의 조우를 위해, 태양은 조도를 낮춰가며 나무 한 그루를 잘 기르고 익혀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격려일까, 혹은 축복일까. 아니면 회한의 깨우침일까. 모든 세계가 한 해의 기억으로 물들어간다. 세계가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