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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로 불어나는 홍수, 대책 없나
지구촌 곳곳 홍수 피해 가속화 위기. 각국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대책 모색해야.
1992년 9월 22일, 프랑스 남부. 수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 시신이라도 찾아내기 위해 구조대원들의 분주한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올해 초 발표된 ‘기후 변동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1백년 동안 지구의 평균기온은 최소 1.5도에서 최대 6도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로 인해 전문가들의 미래 기후
변화에 따른 예측이 크게 비관론과 낙관론으로 나뉘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기온 상승 현상이 오히려 북부지방의 농업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 그에 반해 비관론자들은 “홍수, 가뭄, 폭염, 혹한 등이 지금보다 더욱 심각한 기후조건으로 형성될 것”이라고 어둡게 바라보고 있다.
비관론자들의 지적은 ‘지구온난현상’이라는 이상기온 현상이 미래에 불러올 내용들로서 심각히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세계 각 지역마다 갖가지 기상이변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으며, 해마다 뒤바뀌는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미리 대처하지 못해서 겪게 되는 사건 사고가 지구촌 전역에서 심상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기온 상승으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한바탕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강물의 범람을 야기시켜 막대한 재산과 인명피해를 초래한다. 또한 기온이 상승해 수증기 증발량이 늘어나면 강수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만큼 홍수가 잦아져 재난은 반복된다.
전세계 홍수 피해 갈수록 심각
올해 들어서도 6월에서 7월 사이 지구촌 곳곳은 어김없이 홍수 피해로 몸살을 앓았다. 6월경 연신 계속된 집중호우가 네팔을 덮쳐 홍수와 산사태로 최소 70여 명이 사망했다. 중국 중남부 지역에서도 약 2주간에 걸쳐 계속된 폭우와 홍수로 인해 약 2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작지들이 대거 침수됐고, 최소 157개소의 댐과 둑이 붕괴되고 파손되어 광시, 윈난, 광둥 3개 지역 피해액만 14억 위엔(약 2210억 원)이 넘었다. 6월 16일에는 100만 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홍수 피해를 입었으며 3,910채의 가옥이 파손되고 도로가 침수됐다.
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미국 남부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주도 6월 중순에 덮친 열대성 폭풍으로 인해 18명 이상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비가 그친 뒤 휴스턴 시는 곧바로 끊어진 전기와 도로 복구작업에 들어갔으며, 이번 수재 피해액이 최고 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7월 들어서도 홍수 피해는 곳곳에서 발생했다. 베트남 북부에서는 지난 7월 2일부터 4일까지 440㎜의 집중호우가 내려 적어도 32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또 1만 3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전해졌다.
7월 4일 밤부터 시속 160㎞의 강풍을 동반한 태풍 ‘우토’가 덮친 필리핀에서도 총 165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으며, 최소 130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홍수에 휩쓸리거나 감전당하거나 산사태로 인해 매몰되어 희생당했다. 11일에는 러시아 이르쿠츠크 지방과 대만 남부에 몰아닥친 폭우로 홍수가 발생해 10여 명이 사망했다. 그 가운데 대만 남부 지역에서는 열대성 폭풍우 ‘트라미’가 40년 만에 최악으로 불리는 홍수를 일으켰다. 18일, 인도는 폭우로 인해 최소 35명이 사망하고 5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대재난을 겪었다.
한편, 우리나라도 7월 14일 밤부터 15일까지 내린 폭우로 50여 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고, 5천여 가구가 침수되었다. 이날 내린 비는 37년 만에 가장 많은 양으로 올 들어 지난 6월까지 내린 양과 맞먹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경기 등 중부지방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비로 도심 곳곳이 물에 잠기고 거센 물살에 휩쓸려 내려갔을 뿐 아니라 시장 하나가 완전 초토화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홍수의 주범은 지구온난현상
지난 1997년과 1998년 사이 일어났던 대홍수 사건은 모두 엘니뇨 현상의 탓으로 간주되어 왔다. 시간당 최대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맹렬한 기세로 퍼붓던 집중호우의 원인도 엘니뇨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20세기에 비해 엘니뇨의 기세가 한풀 꺾였음에도 거대한 양의 강우를 동반한 폭우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은 심상치 않은 기후 변화를 분석해 본 결과 기온 상승이 수마의 주범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1925부터 1999년 사이 한반도 평균기온은 1.1℃ 상승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1960년대 39건에 불과했던 기상재해 발생 수는 1970년대 72건, 1980년대 89건, 1990년대 1백 11건으로 점차 늘어나는 결과를 보였다.
IPCC 보고서가 평균기온이 3℃ 이상 상승할 때 예상되는 지역별 영향에 대해서 예측한 결과, 유럽은 홍수가 증가하고, 아시아의 열대지역도 마찬가지로 강우량과 홍수가 증가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 인해 아시아의 열대지역과 건조지역의 농업 생산성은 저하되지만 북부지역은 오히려 농업생산성이 증가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시사했다.
기온 상승은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져 특히 해안 인접국가나 지역들이 수몰되는 피해를 겪게 되기 마련이다. 도서 국가의 경우 해면 상승으로 연안부는 침식되고 국토의 상실이 심각해질 것으로 예측되었다.
IPCC 보고서는 계속해서 기온 상승이 대륙별로 미칠 영향을 그리고 있다. 북미는 플로리다와 대서양 연안부에 폭풍우와 대형 파도의 위험성이 증가한다고 밝혔으며 아프리카는 해면 상승으로 세네갈 등 서부 연안국가에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중남미는 주요 농산물 생산이 감소할 뿐 아니라 생물의 다양성이 상실될 것으로 추정되었다.
공업화로 인해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CO2)의 배출량이 늘어나게 되면서 발생하는 기온 상승 현상은 인류가 낳은 최대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IPCC는 국제협력 차원에서 각국의 조직적인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지구온난화 사태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달을 위험이 크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홍수 피해 더욱 심각해질 전망
지난해 11월 초 유럽연합(EU)의 의뢰를 받아 ‘지구온난화가 유럽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데 참여한 영국 이스트 안글리아대학 환경연구소 마틴 패리 교수는 매년 유럽의 기온이 0.1∼0.4℃씩 상승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IPCC는 ‘지구온난화 예비보고서’를 통해 지난 40년 동안 빙하지역의 10%가량이 이미 녹아 내렸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로 지구 온도가 높아지면 그동안 유럽 지역을 강타해 왔던 폭풍도 더욱 강력해져 대규모 홍수사태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했다.
지구의 온실효과를 막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어 이산화탄소를 줄이면 되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4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각국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안을 세우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에 관한 국가간에 채택한 교토의정서 협약에서,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4을 뿜어내고 있는 미국 측의 돌발적인 파기 선언에 따라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억제하려는 시도도 무산될 위기에 처한 상태다.
이제는 각국별로 자국의 지형적 특성을 고려해 해면상승에 대비한 방파제를 건설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마련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또한 자연 재해에 대처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전담기구 설치와 국가 기후법 제정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각국 정부의 장·단기 종합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제3세계는 홍수에 무방비상태
그러나 제3세계 국가들은 수방 대책 마련이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여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수면 상승에 가장 취약한 나라들은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몰디브, 세네갈, 태국 등으로, 대부분 가난하고 인구가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다.
방글라데시는 해마다 홍수와 해일의 피해를 입고 있을뿐더러 국토의 절반 가량이 해발 5m 이하의 저지대이기 때문에 해수면 상승이 가속화 될 경우 침수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해 있다. 또한 마샬 군도의 경우 전 국민의 3/4 이상이 해변지역에 분포되어 살고 있기 때문에 방파제 건설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그러나 1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방파제 건설에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온상승의 원인은 선진국들에 의해 주로 빚어졌지만 정작 그에 대한 대가는 애매한 제3세계 국가가 치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시발점에 불과해 결국 지구촌 전역이 홍수로 시달릴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인 지구온난현상에 대해 공동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더 큰 규모의 홍수가 거침없이 지구촌 곳곳을 강타하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축대 붕괴, 산사태, 침수에도 늑장대응 여전 …
수방 대책 제대로 세우라
중앙재해대책본부가 잠정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 북부, 인천 지역에서는 지난 7월 14일 밤부터 15일까지 걷잡을 수 없이 퍼붓는 폭우로 인해 50여 명이 사망·실종됐으며, 주택 5천 가구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 단 몇 시간 만에 6개월치 가량의 엄청난 양을 한꺼번에 쏟아 부었다며 정부는 하늘을 탓한다. 하지만 피해 주민들은 관계당국의 늑장 대응이 이같은 피해를 더욱 부추겼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홍수는 천재(天災)이자 인재(人災)
지형적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우리나라는 하천의 유로가 짧고 급하며, 연강수량의 2/3가 여름철에 집중되기 때문에 홍수 피해가 많은 지역에 속한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수해는 지역적으로 발생하여 매번 극심한 홍수를 일으키는데 그 원인으로 빈번히 발생하는 태풍과 국지성 집중호우가 지목된다. 특히 우리나라 장마철의 비는 짧은 시간에 맹렬히 쏟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1일 강수량이 300㎜를 넘는 경우도 많고, 1시간 동안 100㎜를 넘는 집중호우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기후적 특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수방 시설은 너무나 형편없다는 지적이다. 하수처리만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도 도심지역에서 이같은 대규모의 수재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넋두리만 맴돌 뿐이다. 서울시의 하수도 시설 처리 용량은 시간당 강수량 74㎜ 정도밖에 되지 않는 반면 우리나라는 이를 넘어선 집중호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물이 빠지기보다는 오히려 하수구로부터 역류되는 사태가 빚어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또 서울 지하철 7호선은 개통 1년도 채 안된 신규노선임에도 불구하고 당초 물막이벽을 높게 쌓고 제방을 제대로 보강하지 않아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된다. 또한 빗물 배수펌프장을 제때 가동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피경고조차 하지 않아 인명과 재산피해가 컸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수펌프장은 수해 예방의 필수시설이라고 볼 수 있지만, 기존의 배수펌프장의 작은 배수용량으로는 100㎜ 이상 내리는 집중호우에는 역부족이다. 이러한 수방 대책에 대한 늑장대응과 예방책에 대한 무관심이 불러온 수재 피해는 한두 해의 일이 아니다.
안전불감증 이제는 접자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부터 매년 수재민이 발생했지만 부실한 예방책으로 이듬해면 똑같은 재난이 반복되었다. 그 때마다 어김없이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인재(人災)’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수해 발생 후 응급복구체계 미비를 탓하기보다 재난에 대비한 예방조치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은 재해 다발지역에 재해방지 시설을 집중 건설하는 등 대통령 직속의 ‘연방재해관리국’이 재해대책 통합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도 잦은 지진에 대비해서 총리 직속 ‘재해 정보반’을 운영하고 있어 24시간 재해발생을 감시토록 해 만일의 사태에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해로 인한 자연피해 규모에 비하면 예방시설에 지원되는 예산은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매번 발생하는 재해에 ‘외양간 고치기 식’으로 막대한 지원금을 쏟아 붓는 어리석음만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대비한 수방 대책에 필요한 예산지원에 적극 투자할 줄 아는 미래지향적인 정책방안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