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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1392년에 ‘디자인’된, 600년의 숨결이 살아 있는 지혜와 역사의 도시이다. 그런가 하면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희망과 미래의 도시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 인구는 1046만명으로, 처음으로 인구통계를 내던 62년 전보다 10배 늘었다. 그러나 면적은 남한의 0.61%에 불과하다. 뉴욕의 1/2, 동경의 1/3 수준으로 인도의 뭄바이 다음으로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 서울에선 매일 247명이 출생하고, 106명이 사망하고, 189쌍이 결혼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매일 자동차가 15대씩 늘어나고, 29동의 건물이 지어진다. 연간 예산 22조원을 사용하고, 약 5만명의 공무원이 근무하는 서울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금융·문화·행정의 중심이다. 국제경쟁력도 높아졌는데, 도시경쟁력 세계 9위를 자랑한다.”
조은희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서울에 관한 각종 정보를 개관(槪觀)하는 것으로 강연의 서막을 열었다. 언론인 출신인 조 부시장이 서울시와 인연을 맺은 것은 3년 전인데, 오세훈 시장이 여성가족정책관으로 발탁했다. 임명장 받을 때 처음 만난 오 시장은 그녀에게 ‘여행(女幸) 프로젝트’를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여행은 ‘여성이 행복한 도시 만들기’를 의미한다.
“여행 프로젝트는 오 시장과 서울시 여직원의 간담회를 계기로 시작됐다. 한 여직원이 손을 번쩍 들더니 ‘시청에 출근할 때 하이힐을 신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건의했다. 하이힐을 신고 다니지 않는 남자 시장으로선 그 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야 서울시 보도블럭의 틈이 너무 넓어 하이힐이 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오 시장은 도시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때 ‘남성의 시각’만 고집하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오 시장은 그때부터 ‘여성의 시각’으로 도시정책·행정을 다시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서울시에는 약 150개의 과(課)가 있는데, 여성의 입장에서 정책을 세우자 당장 성과가 나타났다. 예컨대 주택국은 여성이 쓰레기를 버리기 좋은 구조로 주택이 건축되도록 유도했다.”
‘여성’이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하다
여성의 관점에서 배려하자 여성 친화적 시설이나 공간이 생겨났다. 단적인 사례가 화장실인데, 항상 ‘신사용’보다 ‘숙녀용’ 줄이 길었다. 남자보다 화장실 사용시간이 많음에도 여성용 변기는 적었기 때문이다. 변기 수의 남녀 비율을 맞추고 조도(照度)를 높이는 등 안전성을 추가했다. 보도블럭 틈을 2mm 이하로 줄이고, 유모차 이동을 방해하던 장애물도 없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변한다. 여성의 관점을 분명히 세우자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다. 공원에서 유모차를 빌릴 수 있도록 했고, 여성을 위한 비상전화기도 설치했다. 버스와 전철의 손잡이 높이도 남자 성인 기준의 ‘천편일률’에서 여성, 노인, 어린이까지 고려한 ‘자유분방’으로 바뀌었다. 심야에 여성들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는 여성 콜택시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여성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면 언제 어디서 택시를 타고 내렸는지 문자 메시지가 가족의 휴대폰에 뜨도록 했다. 아이를 키우느라 사회적 활동이 단절된 주부들의 취업과 창업을 돕기 위해 이른바 장롱 면허를 되살려 주는 ‘엄마가 신났다’ 프로젝트도 가동했다. 이 정책들은 세계 대도시 네트워크 여성포럼에 소개됐고, UN 공공행정 대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자칫 오해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겠다. 여성‘만’ 행복한 도시 만들기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조 부시장이 말한 것은 여성‘도’ 행복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성의 관점’은 노인, 어린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는, 모든 사람이 같이 행복해지자는 시정 철학의 상징적 표현일 뿐이다.
“모든 시민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물론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를 행복한 세상으로 안내하는 진짜 열쇠는 ‘예산’이 아니라 ‘배려’에 있다. 예산 수립과 배정 이전에 시민 각자의 욕구가 무엇인지 세심하게 읽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를 내걸고 2007년 출범한 다산콜센터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막차를 놓쳤다, 신호등이 고장 났다,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는데 약국이 문을 닫았다…. 누구나 이런 막막한 상황에 놓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곧바로 국번 없이 120만 누르면 된다. 심지어 오늘 기온은 몇 도인가, 외투를 입고 나가도 될 것인가, 점심에 얼큰한 매운탕을 먹으려 하는데 직장 근처에 매운탕 잘 하는 식당이 있나 등을 물어도 성실하게 답해 준다.”
365일 24시간 가동되는 다산콜센터는 출범 4년 만에 인지도 80%를 기록했다. 서울시민 10명 중 8명이 알고 있다는 말이다. 만족도는 훨씬 더 높아 95%나 된다. 실제로 대학생이 애인과 다툰 이야기, 어르신의 눈물겨운 하소연 등 서울시민의 희노애락이 다산콜센터 전화선에 흘러넘친다. 입소문이 나면서 국내 기업은 물론이고 23개 나라에서 배우고 있단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한 학자는 ‘하루 중에 즐겁다고 느낀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행복하다’고 정의를 내렸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 때처럼 세상이 뒤집힐 만큼 특별한 사건이나 너무 먼 곳에서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주변의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진짜 행복한 사람이다. 과거 반나절만 입어도 시커멓던 와이셔츠가 이틀 넘게 입어도 청결을 유지할 정도로 맑아진 서울 공기에서 나는 감사와 행복을 느낀다. 시내버스 90%를 친환경 CNG체제로 바꾸고, 새벽마다 구청별로 물청소를 실시했기에 이런 기적 같은 변화가 가능했다. 덕분에 서울 시내에도 유럽풍의 노천카페가 많이 늘어났고, 별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사면야가(四面野歌) 두렵지 않은 까닭
조 부시장은 “깨끗해진 것은 공기만이 아니다. 서울시의 청렴도가 이전보다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복마전(伏魔殿)’이란 오명을 얻을 만큼 솔직히 서울시에는 비리와 부패로 구속되는 공무원이 많았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렴도가 전국 16개 지자체 중 꼴찌 수준인 15위였다. 그랬던 서울시 청렴도가 3년과 1년 전에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오세훈 시장은 문화와 디자인에 역점을 두고 있다. ‘사람이 중심 되는 FUN한 디자인’이 이 정책의 핵심 키워드인데, ‘천원의 행복’, ‘시가 흐르는 서울’, ‘하이서울 페스티벌’ 등이 그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디자인 도시인 서울시는 특히 한강에 주목한다. 우선 한강변의 87%를 차지했던 콘크리트를 걷어내자 녹지 비중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지금까지 반포, 뚝섬, 여의도, 난지도 등 4개 특화지구를 완성했고, 용적률 완화를 조건으로 한강을 사유화하고 있던 강변의 병풍 아파트 일부를 전체 시민을 위한 공원과 녹지로 만들고 있다. 덕분에 한강을 이용하는 시민이 전에 비해 48%나 늘어났다. 물에 뜨는 섬인 ‘플로팅 아일랜드’와 서울 예술 섬이 완성되면 서울의 새로운 랜드 마크가 될 것이다.”
오세훈 시장 2기 체제를 맞아 서울시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야당 바람이 불면서 유권자는 서울시의원의 3/4을, 25개 중 21개 구청의 수장을 야당 출신으로 갈아치웠다. 지방자치의 핵심인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도 야당이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아니 사면야가(四面野歌)의 상황이다. 하지만 조 부시장은 조금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정무부시장은 항상 갈등의 현장을 지켜야 한다. 풀리지 않는 거의 모든 문제는 결국 나에게 온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중심을 잃으면 심신이 피폐해지기 쉽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기본’을 생각한다. 기본이란 시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여야가 그것을 위한 창의성 발휘의 그라운드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다. 성공하는 조직은 비전, 실행, 소통에서 탁월하다. 이 3가지 중에서 먼저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비전과 실행일 것이다. 그나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소통이 바로 그것인데, 그 누구도 대행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이 알지 못하는 정책, 시민과 소통하지 못하는 정책은 정책이 아니다. 시민과 소통만 된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
정리=정지환 인간개발연구원 편집위원/감사나눔신문 편집국장 lowsaejae@gam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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