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박성서의 노래 속의 WHY] "나라 잃은 설움, 노래로 어루만졌는데… 親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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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대중음악평론가
입력 : 2009.12.05 03:16 / 수정 : 2009.12.0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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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1세대 작곡가로 꼽히는 박시춘.‘ 가거라 삼팔선’‘전우야 잘 자라’등 한민족의 격동기를 노래로 담아낸 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논란이 되고
있다.
박시춘·반야월 등 '가요 1세대' 20명 친일사전 등재
지난달 '친일인명사전'에 이어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보고서'가
몰고온 파문에서 가요계도 예외가 아니다. 가요 1세대인 작곡가 김해송·박시춘·손목인·이재호와 작사가 반야월·조명암, 가수 남인수·백년설 등
20명이 등재된 것이다.
이 중 유일한 생존인물 반야월(94)은 올해 가요 데뷔 70주년을 맞았다. 그 첫 소감을 "내 음악 인생은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았다"고 밝힌 것처럼 우리 가요의 역사는 곧 수난의 역사였다.
"일제 때는 다 노래로 저항했어요. '황성옛터'
'애수의 소야곡' '목포의 눈물'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이 다 그래요. '눈물 젖은 두만강'에서의 임은 바로 잃어버린 조국이었죠.
"
그는 "일제의 총칼 앞에 나라 전체가 숨죽였지만 우린 갖가지 은유법을 써가며 노래로 저항했다"고 했다. 그렇게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을 노래로 대신 어루만져온 70년의 대가가 바로 '친일인명사전 등재'였던 셈이다.
친일인명사전 논란이 불거지던 올 10월 21일
우리 가요의 뿌리이자 기둥인 작곡가 박시춘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는 '박시춘 학술심포지엄'이 한국가요작가협회(회장 김병환) 주최로
서울 여의도에서 열렸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지명길)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송순기) 한국음원제작자협회(이덕요) 같은 단체가 후원한
심포지엄에서 '일제 말, 대중음악인 비판에 대한 변정(辨正)'이라는 주제로 토론이 시작됐다.
이동순 영남대 교수는 "친일인명사전은
박시춘의 활동을 친일을 향해 질주한 것처럼 평가하는 어설픈 방식을 택했다"며 "그가 작곡한 군국주의 성향 가요가 그의 작품 전체를 함축할 정도로
분량과 품질 면에서 문제적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어 음악평론가 조진형의 주장을 인용, '일제 통치 말기의 위협과 탄압에 버틸 수
있었던 이 땅의 백성은 없다. 그들이 작곡하거나 어떤 일에 참여하는 것은 강제된 어쩔 수 없는 부역으로 이 부역이 어찌 친일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친일 사전을 발간한 사람들이 수집한 자료는 대개 기록물이고 구체적 경험을 갖지 않았기에 위험한 양상으로 흐르게
됐으며 활동 자체가 전(前) 정부의 방향에 편승하여 황급히 추진된 경향이 없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아울러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20인
외에도 이난영 등 24인의 군국가요 관련 인물을 나열하며 당시 이들에 대해서는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적시한 뒤 선정기준과 일관성에
현저한 자기모순이 드러났다는 말도 나왔다.
실제로 이 '친일명단'에 수록된 인물들은 갖가지 수모를 당해야 했다. 이들의 업적을
기리는 가요제들이 이름을 바꾸거나 폐지됐고 생가가 출입 통제되고 나라 잃은 울분을 극명하게 표출해낸 '나그네 설움' 노래비는 오물로
얼룩졌다.
박 시춘은 누구인가. 민족의 애환을 달래준 '애수의 소야곡',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럭키 서울', 남북 분단의 아픔을
그린 '가거라 삼팔선', 6·25 한국전쟁 당시 발표된 '전우야 잘 자라'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1950~60년대
격동기를 노래로써 국민과 함께했던 작곡가다.
광복 이후 최초 히트가요인 '신라의 달밤'은 일제 때 만들어진 노래로 원곡 제목은
'인도의 달밤'이었으나 '이제 광복도 되었으니 우리 것을 되찾자'는 의지로 작사가 유호와 손잡고 노랫말과 제목을 바꾼 뒤 신라를 배경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가 남긴 3000여곡은 근대 한국 대중가요의 초석이자 근간을 이루고 있고 실제로 옛 가요 프로그램인 KBS
'가요무대'에서 800회 기념으로 펴낸 '가요무대 100선집'에는 박시춘의 곡이 무려 15곡이 수록되어 있다.
시대에 따라 각각의
잣대로 달라지는 정치, 사회적 여건에서도 대중가요는 온갖 수모를 겪어가며 고무줄처럼 질긴 생명력을 이어왔다. 때로 고무줄 잣대로 사람을 묶어둘
수는 있으되 대중들에 의해 불리는 노래까지 묶어둘 수는 없다.
갖가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 '친일' 기준으로 훼손된 가치가
훗날 후대에 의해서라도 제대로 재평가되기를 바란다. 아니, 평가 이전에 이들이 남긴 노래들은 우리 국민과 함께해 온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http://gall.dcinside.com/parkjunghee/9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