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 노적봉에서
현대 인류 문명사에서 금세기 코로나는 지금 사는 사람들의 사후에도 뚜렷한 획이 그어져 있을 테다. 삼사 년 지속된 코로나는 우리 생활에서 변화가 가장 더디게 오는 가정의례와 경조 문화까지 바꾸어 놓았다. 중년 이후 삶에서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동문회나 계 모임도 한동안 열리지 못해 갑갑증을 느껴야 했다. 그런 속 지난해 가을부터 코로나 펜데믹이 풀려 일상을 되찾았다.
일 년 전 이태원에서 믿기지 않는 꽃잎이 떨어진 일이 일어났다. 코로나가 풀린 이후 첫해 시월 주말 한밤중에 수많은 젊은이가 도심 골목으로 몰려나와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였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동기회에서는 작년 비보가 전해진 이튿날 새벽 이미 정해 놓았던 동선을 따라 정읍 내장산으로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우리도 코로나로 한동안 못 봤던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지난 추석 무렵부터 초등 동기 단톡에는 올가을 소풍 공지가 오르기 시작했는데 그날이 시월 셋째 일요일이다. 전세버스가 부산에서 출발 창원 마산으로 와 고향 의령 친구들을 태워 진주를 거쳐 신안 천사대교를 찾아 퍼플섬 보도를 걷고 목포 유달산을 등정하는 길을 떠났다. 정성 들여 준비한 안주와 술을 싣고 만난 친구가 35명이었는데 현지에서 서울 친구들이 합류하기로 했다.
서진주 나들목에서 기사는 차량을 남해고속도로로 돌려 사천휴게소에 들렀다. 짐칸에서 산악회가 쓰는 접이식 야외용 탁자를 여러 개 꺼냈다. 몇몇 친구들은 좌석과 짐칸에 싣고간 음식을 꺼내 펼쳤다. 출발지 부산에서는 따뜻한 밥과 시락국을 넉넉하게 준비해 왔다. 부전시장에서 콩나물을 판다는 여자 친구는 매번 상어 내장을 삶은 두치를 술안주로 마련해 와 생선회보다 좋았다.
고향 의령에서도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가 돼지고기 수육을 준비해 왔다. 그 밖에도 봄날에 딴 두릅은 장아찌로 담가왔고 햇김치는 제피향이 나서 입맛을 더 돋우었다. 창원에 사는 총무는 전날에 준비한 간식 봉지와 함께 생수와 술을 준비했는데 소주가 3박스니 60병이고 캔맥주는 2박스라 40개였다. 술이 많다고 여겨졌지만 이전에 행사를 치르면서 가늠이 된 숫자였다.
사천휴게소 주차장에서 하루를 함께 보낼 친구들과 빙 들러 서서 아침 식사와 함께 예열을 추진하는 장약으로 맑은 술을 권커니 받거니 했는데 나는 거리를 두었다. 아까 차내에서 인사가 오갔지만 아침을 들면서 지역을 달리해 사는 친구들과 그간 밀린 인부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서울에서 목포로 내려오는 친구들은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평택을 지난다는 연락이 왔다.
버스는 섬진강을 건너 광양으로 내려서 목포로 가는 고속도로를 달려가다 월출산을 비켜 정남진 휴게소에 잠시 들린 이후 냅다 달려 전남 신안으로 향해 압해대교를 건넜다. 천사대교를 지나 서울에서 내려와 기다리던 친구를 만나 퍼플섬 입구 주차장에서 아까 아침과 같은 점심상을 차렸다. 본래는 현지에서 맛집을 찾아 식도락을 즐겨보려 했는데 준비한 음식이 남은 해결책이었다.
점심 후 퍼플섬으로 가니 외진 곳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세 개 섬을 보랏빛으로 꾸며 놓았더랬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생태보도교 따라 안좌도에서 간조가 되어 갯벌이 드러난 반월도와 박지도를 둘렀다. 버스에 승차해 무안을 거쳐 목포로 나가면서 친구들은 차내에서 흥겨운 가무로 야유회의 분위기를 돋우었다. 나는 친구들과 나선 가을 소풍 시상을 몇 자 남겨 놓았다.
목포로 들어 유달산 기슭 주차장서 가까운 노적봉에서 단체 사진을 남기고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 않은 유달산 마루까지 올라갈 겨를이 나질 않아 대학루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서울 친구들은 유달산에서 작별하고 버스는 다시 아침에 왔던 길을 따라 돌아오면서 친구들은 도로교통법을 장시간 어겨 가며 넘치는 여흥을 주체 못해 맘껏 발산하고 함안 월촌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왔다. 23.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