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 백일홍
백일홍(百日紅)
名花不能壽(명화부능수)-이름 있는 꽃은 오래가지 못하니
此理良可歎(차리량가탄)-이런 이치 참으로 한탄스럽다
梅菊尙未幾(매국상미기)-매화와 국화도 오히려 얼마 못 가는데
桃李奚足筭(도리해족산)-복사꽃 오얏꽃이야 말해 무엇하리
衆芳俱已凋(중방구이조)-많은 꽃들이 모두 이미 시들고
暑天張火傘(서천장화산)-여름 하늘이 불볕더위를 내리쏟는다
使有頃刻花(사유경각화)-이럴 땐 잠깐이라도 피는 꽃이 있으면
猶足成奇玩(유족성기완)-오히려 특별한 감상거리가 된다
況玆日日紅(황자일일홍)-하물며 이렇게 날마다 붉어져
强及三月半(강급삼월반)-석 달 반이나 이어지는 꽃이랴
開者未遽落(개자미거락)-핀 꽃이 아직 지기도 전에
未開續續綻(미개속속탄)-꽃봉오리가 계속 이어서 터진다
凄含凉露姸(처함량로연)-쓸쓸히 서늘한 이슬을 곱게 머금고
晃帶朝霞爛(황대조하란)-환히 아침노을을 띠어 찬란하다
萬翠壅不流(만취옹부류)-주변이 온통 푸름으로 꽉 차 있는데
突兀臨西岸(돌올림서안)-우뚝하게 홀로 서쪽 언덕에 서 있다
娉婷姑射姿(빙정고사자)-어여쁜 고야의 자태요
團團啓玉粲(단단계옥찬)-동글동글 옥을 쓸어 놓은 듯하다
拓窓朝復暮(척창조복모)-창문을 열고 아침이고 저녁이고
不厭千回看(부염천회간)-천 번을 보고 보아도 싫증이 안 난다
遂令卉譜中(수령훼보중)-드디어 꽃나무 중에서
儼然爲之冠(엄연위지관)-의젓하게 으뜸을 삼게 하는구나
對此重有感(대차중유감)-이를 마주 보고 있으면 거듭 느낌이 있으니
智愚無定案(지우무정안)-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往往始幽仄(왕왕시유측)-때로는 그윽하고 외진 곳에서 시작하여
聲光溢汗簡(성광일한간)-명성과 영광이 역사책에 크게 남기도 한다
八十釣璜叟(팔십조황수)-여든에 옥황을 낚은 노인장이
一朝參十亂(일조참십란)-하루아침에 열 명의 공신 대열에 들어갔으니
매천집(梅泉集)
백일홍 필 때 시집간 딸집에 가지 마라
“Code Blue, Code Blue”
서울성모병원 옥내(屋內) 확성기에서 나오는 외침이다.
또 한사람 귀한 생명이 이 세상을 떠나고 있구나 !
“성모 마리아님 저 생명을 좀 더 이 세상에 머무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병원에서 여러 가지 병으로 고통 받고 무서워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겉옷을 만져 병이 나을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신약성경 마태복음 9장 20절)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은 너무 불쌍합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초점 없이 멍하게 보는 필자의 시야(視野)에 8월에 핀 백일홍(百日紅) 한그루가 화사하게 붉다.
폭염과 녹음 속에 붉은 꽃이 더욱 돋보인다.
성모병원 정원 백일홍은 어떤 의미를 알고 심었을까?
태생적 환경의 영향은 속일 수 없는 것일까
필자는 백일홍을 보면 아름다움보다 가난을 상징하는 속설(俗說)이 먼저 생각난다.
“백일홍 필 때 시집간 딸집에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백일홍이 필 무렵에는 식량이 바닥난 시기다.
고구마도 아직 크지 않았다.
보리양식도 떨어졌다.
햅쌀은 백일홍이 완전히 지고 난 10월경에야 나오기 시작한다.
백일홍은 대략 7월 초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서 9월 말까지 약 100일간 꽃이 피어 있다.
모처럼 친정어머님이 오셨는데 양식이 없어 밥을 못해주는 딸의 심정이 오죽하랴 !
백일홍은 약 3개월을 피기 때문에 꽃의 생명력이 길다.
백일홍이 피는 시기에 다른 꽃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로지 백일홍만이 홀로 고고하게 피어 있는 것이다.
소나무를 독야청청(獨也靑靑)이라고 하면
꽃 중에서 이처럼 “독야홍홍(獨也紅紅)”하는 것은 백일홍뿐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는데, 정말 백일홍(百日紅)은 100일을 필까?
백일홍이라해서 열흘을 넘어 필수는 없다.
그런데 왜 100일 동안을 핀다고 “백일홍(百日紅)”이라 했을까?
꽃 하나가 피어 백일동안을 견디는 것이 아니다.
먼저 핀 꽃이 져버리면 여럿으로 갈라진 꽃가지 꽃대에서 뭉게구름이 솟아오르듯이 계속 꽃이 피어오른다.
작은 꽃들의 피고 짐이 이어지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 꼭 같은 꽃이 계속 피어있다는 착시(錯視)현상으로 보일 따름이다.
백일홍 노래함(詠紫薇花)
一園春色紫薇花(일원춘색자미화)-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펴
纔看佳人勝玉釵(재간가인승옥채)-예쁜 얼굴 옥비녀보다 곱구나.
莫向長安樓上望(막향장안누상망)-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마라
滿街爭是戀芳華(만가쟁시련방화)-거리에 가득한 사람들 모두 다 네 모습 사랑하리니.
정철(鄭澈)
백일홍(百日紅)은 중국 꽃이라 한다.
백일홍을 한자(漢字)의 다른 이름으로 “자미화(紫薇花)”라 한다.
紫-자주빛 자
薇-백일홍 미(장미 미 자로도 쓴다)
여기서 “자주색(紫朱色)”은 보라와 빨강 사이의 색이다.
영어로는 “purple”라 하는데 미술전문가들은 파랑과 빨강 사이의
보라색(red-violet)을 부를 때에만 “purple”이란 단어를 쓴다고 한다.
원산지 중국에서의 “자미(紫薇)”는 끈질긴 생명력을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왕의 정치를 맡아보는 관청을 한림원(翰林院) 또는
중서성(中書省)이라 하였는데 “자미성(紫薇省)”라 바꾸어 불렀다.
그리고 이곳에 근무하는 관리들을 “자미객(紫薇客)”이라 하였다.
자미원(紫薇垣)은 북두칠성(北斗七星) 북쪽에 위치한 별자리다.
자미원(紫薇垣)은 중국 천제(天帝)의 거처인 황궁(皇宮)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자미(紫薇)꽃의 생명이 길기 때문에 황궁(皇宮)을 백일홍에 비유한다고 생각한다.
중국 사람들은 붉은색을 좋아하는데 자미(紫薇)와 관계되는 것은 아닐까
서울성모병원 정원에 백일홍(百日紅)을 심은 것은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이 아닐까
“환자들이여 낙심하지 말고 백일홍처럼 끈질기게 버티어라”고
억지라도 의미를 갖다 붙여 보고 싶다.
조선초기의 문인 멋쟁이로 불리던 강희안(姜希顔1417~1464)은 그가 쓴 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백일홍을 매화·소나무와 함께 1품으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백일홍을 상찬(賞讚)하기를
“비단 같은 꽃이 노을빛에 곱게 물들어 사람의 혼을 빼앗는 듯 피어 있으니 품격이 최고이다”라고 평가했다.
백일홍(百日紅)하면
고창 선운사, 강진 다산초당과 강진의 백련사,
경주 서출지(書出池) 방죽의 아름다움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두 군데 있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瀟灑園)과 식영정(息影亭) 앞으로 흐르는 개울을 “자미탄(紫薇灘)”이라고 부른다.
냇물 주변에 수백 년 전부터 수십 그루의 백일홍이 열을 지어 피어 있다.
오죽이 아름다워 “백일홍 여울”이라 이름을 붙였을까!
마치 최치원이 해인사 계곡에 단풍이 물들어 붉게 흐르는 계곡이라 하여 “홍류천(紅流川)”이라 이름붙이것과 같다.
자미탄(紫薇灘)
花能住百日(화능주백일)-꽃이 능히 백일을 가나니
所以水邊栽(소이수변재)-그래서 물가에 심은 까닭이랍니다.
春後有如此(춘후유여차)-봄 진난 뒤에도 이와 같으니
東君無乃猜(동군무내시)-어찌 봄이 시기를 안 할 수 있겠어요?
정철(鄭澈)
지금은 광주호 댐 공사로 물속에 잠기어 볼 수 없게 된 자미탄(紫薇灘)은 식영정(息影亭) 앞 절벽 아래로 흐르는 창계천에 무성하게 자라서 진홍색 백일홍 꽃으로 장식했다고 한다.
이 소쇄원과 식영정 절경을 노래한 “성산사선(星山四仙)”이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등 호남 가사문학의 산실이며 주역들이다.
필자는 2012년 8월에 이곳 소쇄원과 식영정(息影亭)을 답사하면서 자미탄(紫薇灘) 아름다움을 만끽한바 있다.
또 백일홍 명소(名所) 한군데가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에 있는 조선시대 오희도(吳希道1583~1623)가 살던 집 “명옥헌(鳴玉軒)”의 정원이다.
자연을 벗 삼아 살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아들 오이정(吳以井1574∼1615)이 명옥헌(鳴玉軒)을 짓고 건물 앞뒤에는 네모난 연못을 파고 주위에 백일홍을 심었다.
소쇄원과 같은 아름다운 민간 정원으로 꼽힌다.
소쇄원이 그러하듯이 이 명옥헌의 물소리도 구슬이 부딪쳐 나는 소리와 같다고 여겨, 명옥헌(鳴玉軒)이라고 하였다.
건물에는 명옥헌 계축(鳴玉軒癸丑) 현판과 더불어 삼고(三顧)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인조왕이 오희도(吳希道)에게 세 번이나 찾아와 벼슬을 하라고 권한 현판이라고 한다.
삼국지에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 삼고초려(三顧草廬)를 비교케 한다.
백일홍(百日紅)
紫薇雖艶太支離(자미수염태지리)-배롱나무 꽃이 비록 곱기는 하지만 너무 지루한데
百日繁花尙戀枝(백일번화상연지)-백일 동안 활짝 핀 꽃이 여전히 가지를 연모하네.
正似中書老學士(정사중서노학사)-참으로 중서성의 늙은 학사와 같거니.
遲回不去鳳凰池(지회불거봉황지)-머뭇거리며 봉황지(鳳凰池)를 떠나지 못하고 있네.
김창업(金昌業)
백일 동안 쉬지 않고 피는 배롱나무 꽃이 곱기는 하지만
너무도 지루하게 오래 피는 것이 마치
“뭐 좋은 꼴 보려고 옷에 똥칠하면서 오래 살아” 하면서도
폭염에 약간만 어지러워도 “덜컹”하는 것이 마치
충분히 늙었는데도 이승을 꽃피우려는 내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