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 (외 2편)
신동옥
증오, 내게로
어느 죽은 자의 머리카락이 너를 친친
어느 죽은 자의 머리카락이 너를 하늘 너머로 실어갔다
머뭇머뭇 다가서며 스멀스멀 서로를 말미암는 악다구니며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멈칫멈칫 조금씩 스며드는 변명이
단 한 발짝의 무용도 안무하지 않았다*
증오, 내게로
몸부림마다 묻어둔 내밀한 문법이여
여태, 우릴 이력한 눈먼 믿음의 무릎이여
곡은 무용곡—모든 음악은 무용곡이다*
————
*제롬 벨Jerome Bel.
*김수영, 「반달」 가운데.
동복(同腹)
우린 한데 뭉쳤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빛의 내장을 관람했다
마치 차고 향긋한 알코올 병에 담긴 말벌처럼
세포 속에서부터 자라온 악몽은 더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처럼
—눈뜰 수 없어
—시간 됐어
—응?
—우린 오늘 떠나
누이, 잠옷을 마저 벗고 이마를 쓰다듬도록 질끈 눈감았지
손샅을 오므렸다 폈다 머리카락을 쓸고 볼을 매만지는 사이
포근한 그림자 이불 그늘의 빙점
부끄러운 몸짓으로 서로가 서로를 생식하는
부르튼 종아리에 돋아나는 실핏줄을 마저 닦는
우린 간신히 도사려 앉았다
고개는 서로의 어깻죽지에 파묻은 그대로
더운 국화차 한 모금
엷은 달빛 속엔 나귀와 수레
기다리는 것을
—우린 오늘 떠나
—굉장한 배를 준비했구나?
—책갈피에 숨겨두고 깜박한 돛대마저도
누이, 머리카락에선 잘 마른 건초향이 풍겼다
창문턱에 심은 덩굴식물은 사방의 운명을 지시하고
화분은 꽃대를 들썩여 향기로 가슴을 가득 메운다
꽃잎이 날아가는 하늘 켠에서
우리 서로를 마주하고……
책장 귀엔 감꽃 목걸이
베갯머리에 스민 페로몬
옷장 속엔 향긋한 스카프
식탁 위에서 꽃잎처럼 하늘거리던 손하며……
(이젠 이 손으로 채찍을 말아쥐어야 하다니!)
모두가 그립겠지만, 떠난다면
떠나야 한다면, 우린 또 그 끝을 한숨짓겠지
마당을 나서면 먹먹한 구름
묵직한 낯섦으로 덧칠한 기로
거대한 철교를 건너 달릴 때에는
고삐와 채찍
찢겨 나풀대는 우단과 레이스
파아란 잉크-빛 등자에 스미는
별, 마치
고요한 제의(祭儀)와도 같은 흩날림 속에
우린 여행이 끝나도록 함께 울었다
—응
—응
그러고는 놀랍다는 듯, 믿을 수 없다는 듯 엷은 웃음기를 나누었다
밤새 꽃병에 고여 무거운 증류수처럼, 서서히 쇠잔해가는 팔과 서로를 가리며
더듬
더듬
Back Door Man
기억나?
왜 하필 라면을 뽀개 먹었을까
아침이면 개미굴이 되고 말 것을 소란스러운
곳을 피해 손잡고 다니던 어느새 형수,
‘형이 그렇게 좋았다……’
형이 그렇게 좋았다 날계란 노른자를
입에서 입으로 건네줄 만큼 형수, 입술과
입술이 맞닿을 만큼 노른자가 멀쩡하게 형에게서
형수에게로 옮아갔다
그날 이후
거울 앞에서 나의 달은 폐색되었다
폐색.
형수,
마치 지난가을
하늘을 가득 메우고 날아다니던 박쥐떼처럼
‘누가 처마 밑에 저 많은 검은 날개를 숨겨두었을까’
누가 처마 밑에 저 많은 검은 날개를 숨겨두었을까
어느 하루는 머리를 박박 밀고
동네에 하나뿐인 이층으로 올라 끊어진 고압선을 꼭 껴안았다
내가 처음으로 울부짖던 소리
몸서리치며 떨며 비틀며
형수, 한사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오늘은 아지랑이도 꿈틀
버러지처럼, 알지 못할 곳으로 옮아가는 계절
형수, 사랑했던 뒤통수의 표정으로 신작로 건너 저수지 넘어 산도 구름도 넘어
아비도 어미도 더러운 자궁, 손가락도 가슴도 뭣도
필요 없다
내가 간다
형수, 이제 우리만의 집을 갖자.
주린 배를 움키고 엄마 몰래 뒹굴던 풀섶을 벗어나
형수, 발간 뺨으로 말했지
‘넌 내 하나뿐인……’
우리 이제 형의 아이를 풀밭에 낳아 하늘에 풀어 기르자.
배부르면 난 또 하늘 귀에 스민 형수
그림자를 핀셋으로 집어 아무, 표정을 짜깁고
형수는 내 얼굴에 스민 어둠을 끄집어내
한 땀 한 땀 우리만의 집을 뜨개질하면……
형수 이제, 우리만의 집을 갖자.
—시집『웃고 춤추고 여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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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옥 / 1977년 전남 고흥 출생.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1년 《시와반시》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웃고 춤추고 여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