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6~9 / 중보와 소유권
(요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요 17: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요 17: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요 17: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앞두고 하나님 아버지께 올리신 '대제사장적 기도'로, 그중 6~9절은 제자들(신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특별한 중보와 소유권을 다룹니다.
* 우리는 주님의 소유입니다 —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리켜 “아버지께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자기 힘으로 예수님을 선택하고 붙잡은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주님께 속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세상은 우리에게 직분, 재산, 명예, 가족, 경력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설명하게 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는 주님의 사람입니다. 인생 은퇴를 앞두고 있는 우리게도 이것은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직분은 내려놓을 수 있지만 소유권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목사라는 직분을 내려놓아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은 내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 주님은 자기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중보하십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부족함을 모르셔서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앞으로 흩어질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중보는 우리의 완전함에 근거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에 근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 주님께서 나를 붙잡고 계시는 것이 더 확실합니다.”
* 중보기도는 사랑의 가장 깊은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특별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보기도의 소중함을 배웁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나님 앞에 이름을 올려놓는 것입니다.
저도 설교하는 사역에서 기도하는 사역으로, 앞에서 이끄는 사역에서 뒤에서 축복하는 사역으로.
이제 더 많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후임 목회자를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직분은 내려놓을 수 있어도, 주님의 소유라는 사실은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소유된 사람을 위해 예수님은 지금도 중보하십니다.
사랑하는 집사님, 권사님,
이제 저는 여러분을 앞에서 이끄는 목회자의 자리에서는 내려오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의 자리에서는 내려오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는 서로의 소유가 아니라 주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자기 사람을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소유임을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직분은 내려놓을 수 있지만, 주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하옵소서.
이제 새로운 계절을 맞는 교회와 성도들을 주님의 손에 온전히 맡깁니다.
제가 앞에서 목회의 자리에서는 내려오더라도 기도하는 자리에서는 물러서지 않게 하시고, 남은 삶도 주님의 소유로 아름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