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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각스님 육남매 출가이야기 (1)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우리 진가(陳家)네 호적등본은 정지한 듯 변함이 없다.
지난 1982년 내가 일본유학을 준비할 때 여권 발급에 문제가 될 것을 염려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호주를 큰 형으로 바꾼 것이 단 한번의 변화였다.
몇 십년간 변함없는 호적등본이지만 아마도 얼마의 세월이 지나고 나면 한 사람씩 세상을 떠난 표시가 기재될 것이다.
차례대로 떠나자고 약속했으니 막내인 내가 제일 마지막까지 호적등본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모님의 얼굴을 나는 사진을 통해서 알 뿐이다.
어릴때 부모님 얼굴을 모른다고 했더니, 큰 형이 친척집을 다 뒤져서 도민증에 붙었던 아버지 사진과, 친구 분들과 나들이 가서 찍은 어머니 사진을 구해다 주었다.
그리고 그 뒤에 태백산 홍재사에서 어머님의 보살계 수계산림 회향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얻었다.
그 사진에는 아버지와 큰 형이 빠지고 모친과 다섯 형제가 들어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재가(在家) 시절 가족에 대한 기억의 전부다.
형들은 부모님 특히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면 행복한 얼굴이 되곤 한다.
아버지는 여양 진(陳)씨로 훈장을 지낸 할아버지의 막내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가난한 선비집의 막내로 태어나 제대로 글공부를 하지 못했기에, 자녀교육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무척이나 자상하셨다.
당시 지방명문이었던 마산동중학교에 큰 형(천제스님)이 합격하자 큰 형을 위해 그 여름 마산으로 이사하셨다가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지금도 큰 형은 마산을 지날 때면 "마산은 아버지와 이별한 회한의 땅"이라는 말을 되뇌이곤 한다.
신창 표(表)씨인 어머니는 과묵하고 점잖은 분이셨다.
우리 여섯 남매를 키우는 것을 생의 전부로 여겼던 전형적인 이 땅의 어머니의 모습을 지녔다.
어머니는 뒤에 스님이 되신 친척 고모님의 권유로 한을 남기고 떠나신 아버지를 위해 49재를 지내드리기로 했다.
고승으로 이름높은 성철 스님을 찾아뵙고 부친의 천도를 부탁드린 것이 우리 일가의 불교와의 인연의 시작이다.
부친의 사망이 계기가 되어 우리육남매는 출가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부친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참담한 마음으로 있던 큰 형(천제스님)은 부친의 49재를 마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신변을 정리했다.
그리고 곧바로 통영 안정사 천제굴에서 수행하시던 성철 큰스님께 귀의했다.
나이 15세였다.
출가 암자인 천제굴의 '천제'는 뒤에 큰 형의 법명이 되었다.
그 때가 1952년, 부친이 사망한 해이면서 내가 이 사바세계에 첫 발을 디딘 해다.
지금도 큰 형의 누님스님이 외우고 있는 글은 당시 형이 느꼈을 인생무상을 뼈저리게 표현하고 있다.
'오호 애재라
부세사(浮世事)여
인생은 왜 앞길을 모르는가
석화(石火) 같은 인생의 평생
인생은 죽음의 길을 행하면서
왜 공포심이 없으며
왜 생로(生路)를 찾지 않는고
슬프다 인생사여
아무리 친해도 이별이 있고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사시(死時)가 있으니
이 어찌 하련고
벼슬이 높으면 죽지 않는가
생사에 얽매인 부세인(浮世人)이여
숨 한번 잘못 쉬면 가는 이 세상
일시 속속 성불도(日時 速速 成佛道)'
라는 내용의 편지를 당시 친구에게 보낸 것을 누나가 보았고 지금까지 인생무상의 경구로 삼고 있단다.
이 편지를 받은 1년 뒤 큰 언니까지 출가하자, 모친은 남편을 보내고 두 팔처럼 믿었던 두 자식까지 출가한 현실 앞에서 스스로도 출가를 결심했다.
모친은 다섯 명의 자식에게 출가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어린 나에게도 출가 의사를 물으니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나 역시 '출가할 것'이라고 분명한 의사를 표명했다고, 언니 스님은 지금도 자랑삼아 나에게 이야기 해주곤 한다.
이렇게 의견이 모아지자 모친은, 추억의 찌꺼기를 없애버리려는 듯 가족사진을 모두 불태우고 살림을 처분해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절로 갔다.
어머니는 1955년 태백산 홍재사 보살계 산림에서 자운 율사스님에게 출가를 앞두고 '성종'이라는 법명까지 받았으나 뜻밖의 병을 얻어 출가의 뜻까지는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출가하기 위해 절에 가던 날의 에피소드다.
교육열이 높았던 부모님 덕분에 형들은 한번도 학교를 결석한 일이 없었다.
아침 일찍 집을 떠나 태백산으로 향하던 우리 가족은 부산 근처를 지날 즈음에 날이 밝아 등교 길에 오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둘째 언니는 출가하러 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모친에게 오늘 결석해서 어쩌느냐고 걱정을 하였단다.
그리고 비로소 상황이 바뀐 것을 알아차리고는 마음이 몹시 쓸쓸했다고 회상하곤 한다.
그렇게 츨가해 수행자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여섯 남매는 이제 큰 언니 혜근스님, 큰 오빠 천제스님, 둘째 언니 적조스님, 셋째 언니 보명스님, 둘째 오빠 삼소스님, 그리고 나 본각이다.
#본각스님
첫댓글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_()()()_
옴 아비라 훔캄 스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