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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각스님 육남매 출가이야기 (2)
나는 언제부터인가 마음 속으로 우리 형제를 육바라밀 수행자라고 부르곤 한다.
혜근 스님은 보시바라밀, 나는 지혜바라밀, 어쩌면 그렇게 수행하고자 하는 염원에서 인지도 모른다.
혜근스님은 그야말로 남에게 온통 베푸는 보시의 삶을 살고 있다.
월정사 적멸보궁에서 부처님께 손가락으로 등명(燈明)을 삼아 밝히고, 우리 6남매 모두가 참다운 수행자로서 살아가기를 서원하는 소신공양을 행한 일이 대표적인 예다.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에는 그 사람을 위하여 수년동안 기도로써 베풀어 준다.
1년 전부터는 하도 열심히 능엄주 기도를 하기에 누구를 위한 기도냐고 물어보았더니, 사제 스님 절의 불사 원만성취와 내년에 있을 샤키야디타(국제여성불교도대회) 대회의 성공, 그리고 또 누구 누구를 위한 기도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천제스님은 성철 큰스님의 맏 시봉인 관계로 많은 분들이 잘 아는 스님이다.
15년간 총무원 종정사서실을 지키면서 남다른 면모를 간직해온 분이다.
수행에 엄격하시고 청정가풍을 지키신 성철 큰스님을 모시는 마음가짐이 몸에 배어 혹시 누가 될세라 늘 그림자처럼 처신하신다.
사서실 소임을 살던 시절, 해제를 하고 올라오는 사제스님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이 찾아가면 언제나 월급을 가불한다고 농담처럼 이야기 했다.
천제스님도 이제는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뒤늦게 큰스님의 뜻을 펴고자 부산 큰스님 인연 터에 가르침을 받드는 봉훈(奉訓)의 전각을 짓느라 현재 애를 쓰고 있다.
고령에 불사로 애쓰는 천제스님을 만날 때 마다 생전에 제자를 몹시 아꼈던 성철 큰스님의 자비가 드리워지기를 기도한다.
형제중 셋째인 적조스님, 위로 세 형제(천제 혜근 적조)가 아래 세 형제의 교육과 생활 전반을 맡아서 지도하기로 약속을 했단다.
나는 적조스님의 담당이다.
1967년 이래 석남사 운문사에 함께 있으면서 나의 걸음걸이, 밥 먹는 것, 웃고 이야기하는 것, 도반들과 사는 일상에 이르기까지 적조스님께 꾸중을 듣지 않은 항목이 없다.
석남사에서 발우 공양할 때, 남은 무 깍두기 하나 먹으려고 접시의 국물까지 닦아 먹다 야단을 맞은 적이 있다.
"깍두기가 하나 남았으면 먹지 말고 그대로 남겨둬야 많이 덜은 어른이 찬상에 되돌려 놓을 것 아니냐"는 불호령이었다.
다른 스님들이 잔뜩 덜었다가 도로 내놓을 것까지 마음을 써야 하나 하는 억울함이 가득 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나도 남을 가르치면서 때로는 한발 앞서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지극한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는 것'이라는 것을 적조스님의 꾸중을 통해 깨달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넷 째 보명스님은 형제 중에 제일 고생을 많이 했다.
요즈음은 몸이 병약하다.
성격도 솔직담백해서 금방 화를 냈다가도 씽긋 웃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우리 형제 파수꾼으로서 누가 나쁜 이야기를 하면 그날부터 그 사람과는 담을 쌓아버리는 격한 성격도 있지만, 인정 많고, 가진 것 없는 사람 사정 잘 아는 정감 넘치는 스님이다.
부모님에 대한 정성도 남달라 부모님 제사는 늘 보명스님이 맡아서 지내고 있다.
다섯째 삼소스님, 부산 정혜사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
절 앞 오륙도를 바라보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살고 있는지 1년에 한두 번 만나서는 그 속마음을 알 수가 없다.
어떤 때는 속마음조차도 없어 보이는 무심도인이다.
부엌에 들어가면 주걱 국자서부터 깔끔히 정돈돼 늘 정갈하다.
지금 살고 있는 작은 토굴도 혼자서 자재를 사서 지었다고 한다.
하도 조용한 성격이라 함께 있어도 없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무슨 말을 해도 웃기만 한다.
바로 밑의 동생인 나를 무척 좋아하는 형이다.
늘 바쁘게 사는 나를 위해서 부산에 가면 스스로 운전기사를 자처하는 마음 좋은 형이다.
삼소스님의 도반들이 활발한 종단활동을 하는 것에 비해 볼때 삼소스님은 참 조용하게 정진하고 있다.
부산에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삼소스님께 들르려고 한다.
스님에게서 느끼는 여유와 정적이 나의 부산함을 쉬게 하기 때문이다.
나 본각은 막내로 태어나서 부모님께 걱정을 남겼고 형들께 고생을 끼쳤다.
어린 나 때문에 모친은 뜬 눈으로 밤을 새웠고, 형들은 가슴아파했다.
이제 50을 넘기고 60을 바라보면서, 학자이고 교수이기 이전에 언제나 수행자 집안의 일원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늦게 철이 난 탓인지 요즈음 들어 부쩍 부모님과 스승님, 형들의 은혜에 감사하다.
참다운 승려의 길을 걸어가는 것으로써 모든 분들께 보은하고 싶다.
너희 집안이 이렇게 망할 줄은 몰랐다고 위로하던 동네 친척의 말과 같이 세속에서는 '망한' 집안일지 모르지만 우리 육남매가 부처님 법의 집에 다시 태어나서 부처님의 가계(家系)를 이어가려는 것이 자랑스럽다.
부처님의 가계를 더럽히지 않는 수행생활이 되도록 서로 격려하면서 정진하고자 한다.
#본각스님
첫댓글 옴 아비라 훔캄 스바하()()()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