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웬만하면 시간을 내서 꼭 보게 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우리말 겨루기'라는 게 있습니다.
KBS1의 장수프로그램 중 하나라서 알쏭달쏭한 우리말 모이가 밑천이 다 했는지
널리 알려진 뜻 풀이보다 감춰진 뜻을 내세워서 더 헷갈리게 합니다.
오늘은 널리 알려진 '에누리'와 '차별'에 대해 짚어보려고 합니다.
‘에누리’는 원래 ‘물건을 팔 때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것’을 뜻했습니다.
일종의 ‘바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반대인 ‘값을 깎는 일’로 씁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우리 사전은 두 가지를 모두 표제어로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런 에누리마저 요즘은 한자말 ‘할인(割引)’과 외래어 ‘세일’ ‘디스카운트’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순우리말 에누리를 일본말로 알고 있는 사람까지 있으니….
‘차별’이란 낱말도 에누리와 닮았습니다.
성 차별, 인종 차별 등 차별이 들어가서 좋은 말은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입길에 올리는 걸 꺼리는 금기어가 됐습니다.
그런데 요즘 새로운 흐름이 생겼습니다.
‘상품의 차별화’니, ‘자신만의 차별화된 제작 방식’ 등에서 보듯
차별을 권장하는 사례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즉, 마케팅 전략 차원이나 몸값을 올리려면 차별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깨소금 맛’과 ‘고소하다’도 이중적 표현입니다.
깨소금은 볶은 참깨를 빻은 데다 소금을 넣은 것으로, 고소한 맛이 일품이지요.
그런데 입길에 오르내리는 ‘깨소금 맛’은 그게 아닙니다.
남의 불행을 은밀히 즐긴다는 뜻으로 변해버렸으니까요.
‘고소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중은 볶은 깨나 참기름 따위에서 나는 맛이나 냄새라는 뜻 외에
‘미운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속이 시원하고 재미있다’는 뜻으로도 씁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충분히 예상되는 감정이지만, 없어져도 좋을 낱말이 아닐까요.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뜻하는 ‘이판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은 불교에서 왔습니다.
‘이판’은 속세를 떠나 수도에만 전념하는 일을,
‘사판’은 절의 재물과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일을 일컫습니다.
이판 일을 하는 스님이 이판승, 사판 일을 하는 스님은 사판승이었지요.
한데 언중은 이 둘을 합친 이판사판을 전혀 다른 의미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단어의 의미와 용법은 언중이 규정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뜻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단어와 접하면
그렇게 만든 언중마저 놀라게 됩니다.
오늘은 또 어떤 말들이 우리를 놀라게 만들까요?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