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고 쓰기 전까지는 나에게 죽음이란 그 어떤 두려운 존재도 그 무엇의 의미도 아니었다. 나에게 죽음은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서서히 사라지듯이 나이가 들어 생이 다하면 힘든 이생의 삶을 접고 새로운 삶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이것도 인간의 삶의 한 단계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전혀 두렵지 않는다면 그건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사고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 좀 전 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가 어떤 사고로 인해 영원히 사라진다면 그것 또한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세네카 “루키리우스에의 서한집”에 의하면 죽음은 어디서 너를 기다릴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그것을 예상하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죽음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현실과 종이 한장 차이로 언제 어디서 나도 죽음을 맞이할 줄 모른다. 죽음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도 없고 만질수도 없는 먼 곳으로 영원히 떠나야하며, 죽음으로 인해 내 존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는건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다가온다. 육체가 땅에 파 묻혀 점점 썩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면 의미 없는 눈물이 흐르는건 무엇 때문일까? 가끔 난 이런 생각을 한다. 죽음은 그 어떤 의미로도 설명 할 수없다. 삶은 짧지만 죽음은 결국 인생을 영원하고 신성하게 만든다... 라는 말이 있듯이 죽음이 두려운 존재로 다가오는 것은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구에게나 오는 존재일 것이다. 죽음이 두렵다하여 없앨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에 대해 좀 더 준비를 해야 할 것이며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2. 왜 우리는 영웅의 죽음 앞에 열광하면서, 삶의 연장에 환호하는가?
위의 기사에서처럼 이순신은 한 나라를 위해 죽음을 택함으로서 우리에게 강인한 인상을 주는 영운중의 한 인물이다. 훌륭한 죽음은 전 생애의 명예가 된다... 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생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일들이 죽음으로 인해서 다시 되살아나며 사소한 일까지 그의 업적에 기록됨으로서 우리에게는 한 사람의 인생이 우상이 되고 그 사람이 우리인생의 한 목표가 된다. 죽음으로써 그 인생이 더 명예로워지고 더 빛이 나지만 결코 이것이 우리들 자신에게 이 상황들이 똑같이 주어진다면 죽음 그 자체만으로도 거절당할 것이다. 만약, 누가 “지금 당신을 영운으로 만들어주겠어요. 죽을 준비가 되셨나요?” 라고 말을 한다면 당연 아니라고 단호히 대답 할 것이다. 영웅으로 만들어준다 라는 말보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더 빨리 뇌리에 스칠 것이고 죽음이 최대의 공포인 우리들에겐 당연 거절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왜 우리들은 영울들의 죽음앞에 열광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위에서 말해듯이 내 자신 스스로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기 때문에 누가 죽어 영웅이 됐든 아니든 그냥 거기에 공감만 할 수 있으면 되지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으므로 우리들은 영웅들의 죽음에 열광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들은 영웅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더 오래살기를 바라는 것 같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은 참 간사 한 것 같다. 남이 죽으면 영웅이니깐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같은 조건에서 우리가 죽는다면 그건 또 싫어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할 생각 이며, 모두 짐작했던 결과이기 때문이다.
3. 왜 우리는 오래 살고자 하는가? 오래 살게 되면, 아니 영원히 살게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 왜 우리는 오래 살고자 하는가?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 오래 살게 되면, 아니 영원히 살게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냥 죽지 않기만을 원할 뿐 이다...
이 위의 질문에서처럼 보통 사람들의 대부분이 공감하는 대답일 것이다.
하지만 난 오래 사는 것에 대해서 그리 원하지 않는다. 죽음은 무섭고 두렵지만 영생을 원하지는 않는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살고 싶고 현재로서는 죽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언제까지나 늙어가면서 볼거 안볼거 다 보면서 영원히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서 난 이 질문들을 조금 바꿔 생각해보려 한다.
‘영원히 늙지 않고 현재 이 모습에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면 무엇을 할 것 인가? 정말 영생이라는 것이 좋은 것 일까?’ 영원히 늙지 않는다... 영원히 살 수 있다... 이건 정만 우리가 바라는 일이고 간절한 소망 중에 하나 일 것 이다. 좀 더 오래살기 위해 지금 현재 지구에서는 많은 연구와 실험을 가하고 있다. 위의 기사에서도 황우석 박사가 개발하는 연구도 우리들이 영생하기위한 한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찬․반 논란이 분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복제니 유전자 조작 등, 자연의 이치를 거스리면서까지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우리들은 무엇 때문에 오래 살기를 원하고 무엇을 위해 이 엄청난 일들을 벌이는 것 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죽는 것도 두렵고 무섭다. 하지만 영원히 사는 것도 무섭고 두렵지 않은가? 늙지도 않고 죽지도 못해 사는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끔찍한 생각부터 든다. 매일 보는 사람, 매일 같은 일상... 이것을 수백 수천 수 만년이 아닌 영원히 해야 한다며 정망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물론 늙지 않고 아름다운 현재 이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면 한순간은 좋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다들 늙어 병들어 가는데 나만 이 모습 그대로라면 이건 진정한 인간의 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매 순간 보아야 하며, 너무 힘들어 이 생을 잠시 떠나고 싶어도 죽지 못해 사는 삶이 진정 우리가 바라는 삶일까? 난 적어도 인간이라면 내 삶을 마무리하는 단계 정도는 있어야한다고 본다. 내 생의 짧지만 긴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 설령 그 단계가 죽음이라 할지라도 무섭고 두려울지라도 그 시간이 필요하다면 난 영원한 삶보다는 죽음을 택할 것 이다.....
첫댓글 [4]주제에 맞게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셨습니다.
[4]적당한 분량에 적절히 표현된 생각이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4] 질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시고 좋은 글이 나온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3] 자신의 주장을 잘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글도 잘 다듬어져서 보기 좋았습니다.
[3] 삶의 끝이 죽음인가요, 죽음이라는 단계가 따로 있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