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황청심환과 침향환의 퇴출
내가 우연히 한약을 접한지도 50년이 되었다.
대학 2학년 겨울 방학 때 풍기 서울서점에서 당시에는 거금인 5천원을 주고 동의보감 한권을 사서 읽은 것이 그 시발점이다. 당시 신문에 동의보감 전편(全篇)번역본이 나왔다고 한 광고를 우연히 보고 나서다.
그 후에 75년경에 고물장사가 갖고 다니던 원본도 구해서 지금도 갖고 있다.
졸업을 할 때 까지 몇 년을 읽고 또 읽어서 통달을 하였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서적을 탐독 하여, 강릉으로 와서 직접 한약 취급하기가 곤란한 의약분업이라는 사태를 맞아 그 서적들을 정리하니 큰 박스로 몇 개가 되었다.
그것들은 지금 창고에 잘 모셔져있다.
그 동의보감에는 천개가 넘는 처방약이 개록되어있으나, 실제로 활용되는 처방은 3백 가지가 넘지 않는다.
또 처방약품 중에서도 지금은 구하기가 힘든 약제나 사용이 금지된 약품도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처방이 우황청심환(牛黃淸心丸)이다.
중국 송나라때의 의서인 태평혜민화제국방(줄여서 화제국방)이라는 책에 소개되었으나, 우리나라의 처방이 아니므로 애초부터 구득하기 어려운 것이 많고, 과학이 미미한 시대의 것이라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되지 않은 처방이다.
동의보감은 단지 여러 중류의 의서들을 집대성한 것이기에 취사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대표적으로, 주사(朱砂)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수은과 유황의 화합물로, 靈砂(영사)와 함께 인체사용이 금지된 약물이다. 무기수은이기 때문에 당장은 독성이 나타나지 않으나 장기간 축적이 되면 큰 문제를 일으키므로 사용이 금지된 약물이다.
석웅황(石雄黃)은 비소(砒素)화합물이라, 역시 사용이 금지된 약물이다.
또 영양각(羚羊角)이나 서각(犀角)이라는 약물이 있는데, 이는 아프리카 영양과 무소 또는 코뿔소의 뿔이다. 이는 구할 수도 없고 또 국제 거래 금지 물품이다.
또 그것이 무슨 효능이 있을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또 용뇌(龍腦)가 있으니, 인도네시아 또는 남양군도에 서식하는 나무의 수지(樹脂)로, 빙편(氷片)이라고도 하는데, 시원한 향이 일품이다. 나도 몇 번 써 보았지만, 역시 구득하기가 어렵고 비싸다.
위에 열거하는 약물(藥物)은 이미 사용하지 않는 것이므로 원래의 ‘동의보감’과는 거기가 멀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우황과 사향이다.
위에 열거한 약물을 제외하면, 이제 마지막으로 청심환의 효력을 상징하는 것으로는 우황과 사향만 남는다.
우황은 오래 기른 소의 담낭에 병적으로 생긴 담석 덩어리를 말한다. 하지만, 요즘은 2~3년이면 소를 도축하기 때문에 이런 소에서는 우황을 얻지를 못한다.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나 많은 소가 그냥 방목되는 아르헨트나의 캠페스 같은 곳에서는 혹여 구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쪽에서 우황이 수입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그러니, ‘우황은 없다’가 답이다.
다음으로는 사향(麝香)을 말할 수 있는데, 나도 한번 구해서 청심환을 만들어본 적이 있다. 40여 년 전에.
한참 한약을 취급하던 때에, 제천의 어떤 고물상이 고물을 사러 돌아다니다가, 누군가가 노루를 잡았다하여 가보니 그게 궁노루 –사향노루였다고 했다. 사람들이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 고물상은 적당한 푼돈을 주고 그 노루를 갖고 오다가 그 노루의 향낭(香囊;숫 노루의 생식기 앞에 있는 향주머니)만 싹둑 잘라서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그 현장을 벗어난 후, 그 사향을 팔아서 기와집 몇 채를 샀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예전에는 아이들이 중이염을 앓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진시향을 좁쌀 만큼 떼어서 귀에 넣고 솜으로 막아주면 낫는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내 누님도 그렇게해선가 고친적이 있다.
이 사향노루 역시 천연 기념물이고, 강원도 인제에서 몇 마리가 발견되기도 했고, 비무장지대에 얼마 정도 남아있겠지 싶은 희귀 동물이고 멸종위기 종이다.
현충일이면 비목(碑木)이라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데, 가사가 너무 애닮고도 좋아서 내가 애창하는 곡이기도 하다.
그 노래 2절은,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달빛타고 흐르는 밤’으로 사작한다. 궁노루의 울부짖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때 등장하는 동물이 궁노루, 즉 사향노루다.
이 사향 역시 ‘없는 약물’이다.
說에는 러시아에서 궁노루를 길러서 일정량의 사향을 체취하여 한국과 중국에 수출한다고 하는데, 중국넘들이 가격을 올려서 조선의 광동제약에서도 사기가 어렵단다,
아무튼 우황과 사향의 거래가격은 칼로그램당 3억원을 홋가하는데, 그나마 없다.
그래서 이제는 사향대체물질 –무스콘 –을 쓴다.
그러니 만원 내외의 청심환을 사면서, 우황 사향의 함량을 묻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사향을 제대로 넣었다고 하는 것도 개당 4만원에 팔았는데, 그나마 생산이 중지되고 말았다. 우황과 사향이 없어서.
예로부터 조선의 청심환은 중국인들에게 최고의 인기품이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어려운 일이 닥칠 때 마다 청심환 한 알을 뇌물로 주면 모든 일이 무사통과되는 것을 알 수있을 만큼 유명했다.
나도 할아버지가 위독하단 전화를 받고 청심환을 챙겨서 풍기로 갔던 생각이 난다. 그 때문인지 몇 년을 더 사셨다.
이제는 빠질 건 다 빠지고 냄새만 남은 청심환은 더 사먹을 가치가 없어졌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침향환이다.
근자에 경향각지의 신문이나 TV광고에 침향환에 대한 광고가 무수히 행해지고 있다.
그 효능 효과에 대한 광고는 금지되어있기에, 그 제품을 먹고 어떤 효과를 본다고 광고할 수는 없지만, 설사 광고가 허락한다 하더라도 그 제품을 먹고 어떤 효과를 보았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50년 한방을 하면서 나는 침향을 한 번도 써 보지 않았고, 침향이 등재된 처방도 본 적이 없다.
참향의 기원 또한 두 가지가 있는데, 침향나무가 물에 잠겨서 오래 묵으면서 썩지 않고 탄화(炭化)되어 물에 가라앉아서 뜨지않고 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는 설 – 나도 이 숯덩이 같은 것을 갖고 있었고, 지금도 아랍권에서는 기도의식 때 이 나무를 태우는 습속이 남아있다.
침향에 대한 또 다른 설은 침향나무에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창처가 나면, 그 상처를 낫게 하는 수지(樹脂, resin)이 분비되고 이 수지를 채취한 것이 침향이라는 설이다.
매우 그럴듯해 보이나, 그렇게 얻어지는 침향이 어디 그리 흔해서 세상에 넘쳐나겠나?
실제로 베트남 여행의 필수코스로 가이드에 의해 침향매장을 방문해보면, 1세트에 150만원씩에 팔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고, 그들 약장수에 속아서 많이도 산다.
레진- 송진 같은 것-을 한 방울 떨구면 스트로폼 덩서리가 슬슬 녹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석유화합물인 스티로폼이 역시 휘발성분인 레진을 만나면, 그 화학반응으로 자연히 녹게 마련인데. 그게 무슨 큰 작용을 해서 콜레스톨 덩어리를 녹이는 것처럼 과장하는 것은 100% 낚시질이다.
그런 물질을 개발했다하면 노벨상 몇 개는 받을거다.
예수 탄생장면에 혹 등장하는( 4대 복음서에 그런 장면이 없는 것도 있다,) 유향(乳香)이나 몰약(沒藥) 같은 것도 다 감람나무 수액인 것이요, 침향도 이와 다르지 않다.
향료나 방부제(미라를 만들 때)로 쓰일 뿐, 의약품으로는 쓰지 않는다.
내가 직접 침향 캡슐을 먹어보니 송진 캡슐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누가 송진을 먹는 약에 쓰던가?
지난 얼마 동안 광동제약 식품부에서 판매한 침향만 5천억이 넘는다 하니, 기절할 노릇이다.
우리 보건복지부는 무얼 하는지?
어떤 돌팔이 여의사가 입안에 붙이는 글루타치온을 팔아서 엄청난 거금을 벌어서 호의호식한다고 자랑하던데, 이런 것도 단속하고 처벌해야 옳다.
날도 더운데 더 더운 얘기를 써서 정말 미안하지만, 이 글을 읽은 사람만이라도 더 이상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낚시질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그런데 쓸 돈이 있으면 내게 갖고 오시라.
맛있는 술과 안주를 장만하여 숲속 팬션이나 냇가에 가서 이야기 꽃을 피우며 취하도록 즐겨보세.
甲辰年 末伏이 지나도 더운 날
豐 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