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과 도림 선사 이야기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다.’
이건 아마 정말 부처님 이후 처음 말한 거예요.
이런 말은요. 선불교가 1300년 동안 한국 종교를 꽉 쥐고 있는 거지요.
지금 누가 감히 말 못해요.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내가 BTN 나가서 법문해가지고 그 사람들에게 사면초가된 거예요.
사면초가된 거예요.
그러나 그 사람들이 나한테 정식으로 반론을 제기한 사람은 없어요.
그 후로 내가 계속 나를 공격한 줄 알고
신문에다가 62개 질문을 던진 이후론 없어요. 모든 비방이 숙여졌지요.
이 조과 도림 선사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그리 되었네요.
이분이 어떻게 수행을 했느냐?
오래된 고목나무, 키가 큰 고목나무 위에 올라가서
새집처럼 꼭 앉아서 참선을 한다고요.
밑에서 보면 새집이라 오해할 정도로 앉아서 참선하고 있으니까, 볼 때는 그래요.
그래서 조과라고 그래요. 새 조(鳥)자, 집 과(窠)자 예요. 새집 과(窠)자,
그래서 호가 되어 버린 거예요. 조과 도림선사.
어느 날 백낙천이라는 분이 있어요.
당송(唐宋) 간에 문장가로 꼽히는 사람이에요.
당송8대가에 들어가는 사람이에요.
그러면서 정치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지금 같으면 도지사 급으로 있었지요.
그 사람이 환복(宦福)을 입고 많은 부하들을 데리고
조과 도림 선사 공부하는 데를 갔단 말이에요.
대체 저위에서 앉아 있는 모습이 꼭 새가 앉아 있는 거 같어.
그래서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스님, 위험하오. 위험하오. 위험하단 말이오.”
밑에서 그러니까, 도림 선사가 보니까,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어느 관리인데 상당히 고급관리인데,
자기보다 위험한데, 어찌 거기 앉아서 공부하냐 그 말이에요.
위험하다고 소리를 치니 이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배짱도 있지요. 감히 어떻게 중이 고관 대관한테 그런 말을 합니까?
그런 말을 직설적으로 못하고 빙 둘려서 이런 말을 합니다.
‘심화가 상교하니’ 마음 심(心)자에 불 화(火)자에요.
서로 상(相)자 부딪칠 교(交)자에 심화가 상교하니,
식, 마음, 생각은 허랑에서 들떠가지고 정적을 모르는구나 그랬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대단히 아주 무서운 충고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심화, 탐진이 그득해가지고 보니까 생각은 들떠가지고,
허랑, 들떠가지고 있는데, 적정 정정 그랬어요.
고요할 정(靜)자 또 선정이라는 정(定)자,
‘적정을 모르고 나대는구나’ 그 말이에요.
자 여러분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인지 압니까?
이 중생들이 그래요.
탐진치 삼독의 노예가 되가지고요. 마음은 들떠 있어요.
자기가 아는 것은 뛰어난 학식에다가 세상이 따라갈 수 없는
변재에다가 무서운 권력자에다가 안 그럽니까?
그러므로 오직 그 사람은요. 아만(我慢)이 등등해.
이게 문제인 게 아만이 등등해서 보이는 것이 없어.
자기가 하늘 찌를 정도로 생각해.
그렇게 되면요, 어떻게 되는지 압니까?
그렇게 되면은 짓는 것은 업이에요. 아만이 등등하다.
자기 비위에 안 맞으면, 자기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그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이번 사태에 난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는 줄 압니까?
십악(十惡)을 지으면 스님이 지옥 간다고 했지요.
스님 이야기가 아니에요.
≪아함경≫을 비롯해서 경전에 강조하신 거예요
부처님께서 십악을 지으면 지옥 가는 거예요.
그 사람은 오역죄(五逆罪)짓지 말라는 법이 없어요. 오욕죄 짓지요.
부모님 죽이고 부처님 괴롭히고 부처님 교단을 쓰러뜨리려고 하고
성인(聖人)을 죽이고 요런 무서운 죄 짓지 말라는 보장은 없어요.
그러니까 위험한 거요.
이거 이사람 안 그렇습니까?
조과 도림 선사가 볼 때는 내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니가 위험하다는 거라.
나는 떨어져 봤자 이 몸뚱이 하나 죽어도 지옥 가는 거 아냐.
너는 잘못 하면 무간지옥에 가면 겁(劫)에도 못 나와.
겁이 흘러가도 못 나와. 그 벌은 어떻고?
두 손을 자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야.
하루에 100번 독사한테 감겨서 수백천 마리에 감겨서
고통을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여.
거기는 3,000도 이상 끓는 물에다가 쳐박히는 것이
하루에 백번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여.
그걸 겁을 통해서 받는다 그 말이예요.
벌을 받는다 말이에요. 이것이 있어요.
이런 지옥이 있다는 말이에요.
이것을 확신하는 것이 현지사입니다.
그러므로 도림스님, 조과 선사가 백낙천이한테 지적한 거요.
‘나 걱정은 마쇼. 당신 걱정이나 하쇼.’ 그 말이에요. 이해가 되지요?
출처:2018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