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쓰다/김응
은행 갈 때면
꼭 내 손을 잡고 가는
할머니는 글자도 숫자도 모른다
읽지도 쓰지도 못하지만
도움 받은 사람들은 잊지 않는다
명절 때면 고마운 이들에게
작은 양말 상자라도 건넨다
숫자로 더하기 빼기를 셈하지 않아도
마음 더하기 마음, 마음 나누기 마음에 대한 답을 안다
글자로 마음을 쓰지는 못해도
사람들은 할머니가 쓴 마음을 읽는다
김응 시인의 시집 《웃는 버릇》에 실려 있는 시다.
이 시에서 “쓰다”는,
기록이나 표현의 기술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기억하고 마음을 나누는 실천적 행위를 말한다.
화자의 할머니는 글자와 숫자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본인의 마음을 쓸 줄 아신다.
도움 받은 사람들, 고마운 이들에게 잊지 않고
작은 선물이라도 보답을 한다.
여기에는 계산이 없다.
손익도, 대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이 마음을 기억하고 다시 마음을 쓴다.
할머니 주변 사람들도 그런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한다.
혹시 우리는, 사회적으로 측정 가능한 지식이나
능력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는 않는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말과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과연 사람을 제대로 읽고 있는 걸까.
마음을 제대로 쓰고 있는 걸까.
할머니의 “마음 더하기 마음, 마음 나누기 마음”이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