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다람쥐의 수명이 짧은 이유
이월란
죽이지만 않는다면 돌아가고 싶었다 흑백 사진 같은 하늘을 두고 왔다 녹지 않는 얼음 같은 긴 겨울을 두고 왔다 백골처럼 살을 버린 땅에서도 탯줄 같은 족쇄 사이 붉은 두 발이 자라고 있었다 떠도는 무연고의 기억 속에서 숨겨둔 요새의 열쇠 같은 사상 한 줄씩 들키며 산다
세습된 허기 앞에 앉을 때마다 나만 숭배하고 싶었다 아무도 감시받지 않는 비무장지대, 내가 만든 감옥에만 오래오래 갇히고 싶었다 전단지에 새겨진 나라는 풍선과 함께 터져버렸다 타이레놀과 거짓이 섞여있을 거라고 미래로 오고서야 내가 없다는 걸 알았다
철책을 넘어와 지루해진 자유가 걸리적거린다 세상 어디에서도 떠도는 혁명을 한 줌씩 손에 넣었을 때만큼 얼어붙은 경계를 맨손으로 건넜을 때만큼 간절해지지 않는다 몇 개의 커브 길을 돌아 동그라미에 갇혀버린 다람쥐 한 마리 겨울잠에서 깨어나 체의 몸이 되어간다
여기는 사형당하기 좋은 사각지대, 부르주아의 사상탑 같은 촛불 한 점 비루하다 꽃잎도 새도 어찌 북으로만 날아가는가 아지랑이 같던 꿈의 초안을 찾을 수가 없다 어젯밤 가장 인민적이고도 가장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의 부고를 베껴두었다
나의 심장이 나라를 버렸듯 나의 봄은 이제 나를 버린다
-어느 유타 탈북자의 유서
웹진 『시인광장』 2023년 6월호 발표
이월란 시인
2009년 계간 《서시》로 등단, 유타주립대학교 비교문학과 졸업. SLCC Chapbook Contest 당선, 시집으로『모놀로그』, 『흔들리는 집』 ,『The Reason』, 『오래된 단서』 , 『바늘을 잃어버렸다』(2023, 시산맥사) 가 있음. 경희해외동포문학상(시, 단편소설), 재외동포문학상(시, 단편소설) 수상. 현재 미주한국문인협회 이사.
[출처] 하늘다람쥐의 수명이 짧은 이유 - 이월란 ■ 웹진 시인광장 2023년 6월호 신작시ㅡ통호 제170호|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