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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영국 태생으로 어린시절부터 학교에 데려다 놓아도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무심한 얼굴로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아이였고, 청년 시절에는 병역을 기피하면서까지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완강히 자신을 지키는 좀 독특한 성향의 사람이었다. 초등학교는 관습을 거스르는 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기로 유명한 닐섬머힐 학교를 다녔다. 미술공부는 런던의 센트럴 스쿨 오브 아트에서 했는데, 거기서 헬린 옥슨버리를 만나 1964년에 혼인하게 되었다. 같은해에 첫 그림책 <보르카>로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수상했다. 헬린 옥슨버리도 남편의 영향을 받아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해서, 뛰어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이 되었다 |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변주가 존 버닝햄>> 열린어린이 바로가기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 존 버닝햄>> 열린어린이 바로가기 1936 존 매킨토시 버닝햄은 4월 27일 surry주 노울리지에서 태어났다. 찰스 버닝햄과 제시카 버닝해의 아들고, 세 아이 중 막내였다. 어머니는 성 토머스 병원에서 간호사 교육을 받았고, 그 다음에는 프뢰벨 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아버지는 셀리 오크 트레이닝 대학에서 공부했고, 프루덴셜, 샤프츠버리 협회, 런던 선교사협회에서 일했다. 친척 할아버지가 차린 매킨토시 사탕 회사의 영업 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존 버닝햄은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 데려다 놓아도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무심한 얼굴로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아이였다고 한다. 1939~45 자유분방하고 진보적이었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존 버닝햄의 어린 시절은 남달랐다. 전쟁기간 동안 가족과 함께 캐러번을 타고 시골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전쟁 기간을 보냈다. 존 버닝햄과 누이들, 엘스퍼스와 마거릿은 다양하고 진보적인 성향의 남녀 공학을 다녔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Farnham에 있는 집에 잠시 동안 머물렀다. 1950 부모님이 새로운 교육 방법을 시도하는 학교마다 보내는 바람에 아홉 군대의 학교를 전전하던 존 버닝햄은 A.S닐이 설립한 학교 AS Neill's Summerhill School를 다녔다. 서머힐은 관습을 거스르는 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기로 유명한 대안학교인데, 3년마나인 1953년에야 비로소 이 학교에서 영문학으로 학교 졸업장을 받았지만 미술과 그밖의 과목에서 낙제했다고 한다. 독특한 교수법으로 유명한 서머힐에서의 생활은 그가 그림을 가깝게 접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54 학교를 마치고 브리스틀에서 병역 면제 심사를 받고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등록했다. 2년 3개월 동안 병역 대체 의무로 산림 관리, 농사, 건물 짓기, 건물 허물기 등 인도적인 사회 복지 사업에 참여했다. 처음 서너달 동안은 서섹스에 있는 산림 관리 위원회에서 가로톱과 무거운 도끼로 가장 아름다운 나무들을 베곤 했다. 그 후 햄프셔에서 초기의 유기농 농장에서 끔찍한 추위 속에서 수백 그루나 되는 어린 과일나무에 받침목을 대주었고 과일이 익은 후에는 22구경 라이플총으로 운 나쁜 토끼들을 죽여야 했다. 하마터면 실수로 농장 관리인에게 총을 겨눌 뻔 했다. 런던에 있는 신경쇠약홪나 전용 국립 병원에서 환자를 옮기는 일, 국제 평화 봉사단에 소속되어 글래스고의 고반에 있는 빈민가를 재건하는 일, 남부 이탈리아 칼라브리아라는 낙후된 곳에서 학교 짓는 일 등을 했고, 이스라엘로 가서는 미국 퀘이커교도를 위해 일을 했는데 오래되고 낡은 마을을 부수고, 땅을 평평하게 해서 운동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3주하고도 며칠 동안을 곡괭이와 망치로 작업하다가 작업 속도가 너무 느려서 불도저가 필요하다는 결정이 난 후 불도저는 반나절 만에 일을 모두 끝냈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해 보는 것은 요즘 젊은이도 해 볼만한 귀중한 경험일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1956 병역 대체 근무가 끝난 후, 유고슬라비아를 방문해서 썰매를 타고 여행하며 집시 음악을 듣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이 여행은 나중에 <발랄라이카를 연주하고 싶은 생쥐>를 쓰는 데 영감을 주었다. 런던의 센트럴 미술학교에서 3년과정으로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화가 케이트 버간과 패브릭 그리고 연극 디자이너 버너드 네빌,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로렌스 스카프에게서 배웠다. 케이트 버간은 누군가에게 덤벼드는 것을 그리라고 했다.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저 개는 비늘이 있나?"이 말 때문에 그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웃게 된다고. 그 개는 비늘이 있기 때문에. 센트럴 미술 학교에서 무대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헬렌 옥슨버리를 만난다. 1959 잡지 <기니피그 The Guinea Pig>에 첫 번째 그림이 출간되었다. 이 잡지의 이름은 서섹스 주, 이스트 그린스테드에 있는 빅토리아 병원에서 아치볼드 맥인도우 박사가 치료하는 환자 모임의 이름을 딴 잡지였다. 이 환자들은 2차 세계대전 시절의 항공기 조종사들로 이스트 그린스테드에 있는 퀸 빅토리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디자인 분야의 국가 자격증을 받고서 센트럴 미술 학교를 떠났다. 1960~1962 이스라엘 여행을 여러번 했다. 텔아비브에서 요람 그로스가 토마스 만의 <요셉과 그의 형제들>로 인형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압력으로 그만두었다. 그에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영국에 돌아와서 런던 운송국의 포스터를 의뢰 받았을 때였다. 포스터 네 장을 소호에 있는 지하실에서 거주하면서 작업했다. 그것은 근사한 일이었다. 보수로 100파운드를 받았는데, 그 시절에는 꽤 많은 돈이었다. 게다가 포스터는 열 두 가지 내지 열 네가지 색으로 아주 잘 제작되었다. 포스터가 런던의 여러 지하철역과 버스 정거장에 붙자,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그 주면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사람들이 그의 포스터에 대해 얘기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사람들은 대개 무관심하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 많은 포스트 작업을 의뢰 받았다. 1963 해로우 미술학교와 센트럴 미술 학교에서 시간제 강사로 일러스트레이션을 가르치며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 <깃털 없는 보르카>를 쓰고 그려서 조나단 케이프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이전에 그의 포트폴리오를 본 다른 잡지사와 출판사에서는 일러스트레이션이 아니라 포스터 같다는 반을을 보였고 결국 직접 모든 것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보르카라는 기러기에 대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는데 조나단 케이프 출판사의 톰 마슐러가 보르카 이야기를 좋아해서 출판하게 된 것이었다. <보르카>는 조나단 케이프에서 컬러 석판 인쇄로 출판된 최초의 그림책이었고 이 작품은 그림으로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받았다. 그 후로는 그의 후속작이 언제 나올 것인지에 출판업자들이 주목할 만큼 그림책작가로 대접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이 출판된 지 30년이 지난 뒤, 영국 여행을 하면서 큐 가든을 방문한 보야드 로베 라는 미국인은 그에게 편지를 한 통 보내왔다. 보르카는 그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인 30년 전부터 그가 좋아했던 어린이 책인데 이번에 큐 가든에서 보르카가 여전히 살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이었다. 여행 중 큐 가든에 들른 그는 기러기들이 여러 마리 노닐고 있는 풀밭에서 어떤 부부와 보르카 보르카를 외치며 뛰어다니는 두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었다. 1964 <존 버닝햄의 ABC>가 출간되었다. 이언 플레밍의 작품 <치티치티 뱅뱅 : 하늘을 나는 자동차>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책에서 시각적 일관성을 찾는 이들에게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야기가 달라지는 버닝햄의 작품은 곤혹스러울 것이다. <깃털 없는 보르카>이후의 작품들은 일러스트 스타일을 그때그때 변화시키면서 그 이야기 전개에 따라 다르게 표현했다. 다른 스타일은 <치티치티 뱅뱅>에 그림 삽화에서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데, 이것은 다른 작가의 작품에 그림을 의뢰받은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이다. 동화에 나오는 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방식을 어떻게 풀 것인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자동차 모형을 만들어 낚싯줄로 천장에 매달아 놓고 여러 각도에서 자동차 사진을 찍었다. 그의 그림 중에서 이언 플레밍이 수정하고 싶어 한 부분은 단지 Paris 장면에 그려 넣었던 줄무늬가 있는 '담배'간판 뿐이었고, 헬렌 옥슨버리와 결혼하고, 런던의 힘스테드로 이사했다. <깃털 없는 보르카>로 케이트 그리너웨이상을 받았다. 1965 <발랄라이카를 연주하고 싶은 생쥐>와 <험버트, 퍼킨 씨와 런던시장>이 출간되었다.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 RIBA가 내는 회지의 표지 네 장 중 첫 장을 디자인했다. 딸 루시가 태어났다. 1966 <대포알 심프>가 출간되었고 놀이방과 학교에 붙일 수 있도록 한 띠벽지 <새의 나라>, <사자의 나라>, <이야기 나라>를 디자인 했다. 아버지 찰스 버밍햄이 사망했다. 1967 <하르퀸, 계곡으로 내려간 여우 : Harquin, The Fox who went down into the Valley> 1968 띠벽지 <정글나라>, <깜짝나라>를 추가로 디자인했다. 1969 <사계절>이 출간되었다. 60년대에 처음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시작했을 때 일거리를 찾아 뉴욕에 갔을 때 아프리카 민담에 그림 그리는 작업을 의뢰받았고 <색다를 줄다리기 The Extraordinary Tug-O-War>를 미국 플렛 출판에서 출간했다. 1970 <검피 아저씨의 드라이브>가 출간되어 이 작품으로 1971년엔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받아 이 상을 두 번 받은 최초의 그림책 작가가 되었고, 뉴욕 타임즈가 선정하는 '최우수 그림책 상'과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에서 명예상도 받았다. 1972년엔 보스턴 글로브 혼 북 상을 받았다. 이 해 10월 3일엔 쥘 베른의 고전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책을 쓰기 위한 자료를 모으려는 취지로 80일간의 여행을 시작했다. 1972년은 토마스 쿡이 첫 번째 세계 일주를 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여러 스폰서의 후원 아래 여행사가 짜 준 시간표에 따라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주인공 필리스 포그와 거의 같은 일정으로 여행을 했다. 이 여행에는 몇 가지 볼거리가 있었다.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본 에베레스트 산의 해돋이는 인도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인도에서는 토후국으 ㅣ왕족이 타는 마호가니로 된 호화로운 객차로 움직였다. 열차에 매달려 가는 사람들을 창살 사이로 보며 혁명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여행에서 돌아돈 그는 히드로 공항의 포장도로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 나서 쥘 베른의 필리스 포그가 마지막으로 갔던 곳, 리전트 가의 카페 드 파리로 갔다. 그는 다시는 영국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2년 동안 그렇게 했다. 1972 <80일간의 세계일주 Around the World in Eighty Days> 1973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1974 아이들의 첫 경험을 다른 작은 책 시리즈 <아기 the Baby>, <토끼 The Rabbit>, <학교 The School>, <눈 The Snow>가 1974년에,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75년에 <담요 The Blanket>, <찬장 The Cupboard> ,<개 The Dog> <친구 The Friend>가 출간되었다. 1977 <셜리야, 물가에 가지마> 1978 <셜리야, 목욕은 이제 그만>이 출간되었고, <네가 만약...>이 출간되고 독일 아동 문학상을 받았다. 딸 에밀리가 태어났다. 1980 <장바구니> 1982 <아기 힘이 세졌어요> 1983 <첫 번째 수놀이>시리즈, <수 세기>, <다섯까지>, <고양이들>, <돼지의 더하기>, <하나 읽기>, <하나씩 내리기>, 퍼핀 출판사에서 나온 케네스 그레이엄의 작품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The Wind in the Willows>에 그림을 그렸다. 1984 <우리 할아버지>가 출간되었고, 이 책으로 쿠르트 마슐러 상을 받았고, 1985년엔 뉴욕 타임즈의 '최우수 그림책 상'을 수상했다. <첫 번째 말놀이>시리즈 <킁킁 Sniff Shout>, <깡총깡총 Skip Skip>, <비틀비틀 쿵 Wobble Pop> 이 출간되었고, 다음해에 <쾅! slam Bang>, <매매 Cluck Baa>, <땡땡 윙 Jungle Twang>이 나왔다. 1986 <쥴리어스 어디있니? Where's Julius?> 1987 <놀며 배우는 책> 시리즈 <알파벳>, <색깔>, <123>, <반대발>이 출간되었고, <지각대장 존>이 출간되어 '부모가 뽑은 그림책 상'을 받았다. 1988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는 원시림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다했던 치코 멘데스에게 현정된 환경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이 해 온 일들 때문에 살해되었다. 1991 <알도> 1992 <영국 England> 1993 <크리스마스의 선물> 1994 <내 친구 커트니> 1996 <구름 나라> 1998 어른을 위한 책 <프랑스 France> 1999 <뭐라고?> 2000 <잘자라 우리 아가>출간되었고, 스카티스 상을 수상했다. 캐롤린 캐슬이 편집한 <모든 어린이를 위하여 : 글과 그림으로 보는 어린이를 위한 유엔 권리 헌장에 그림을 헌정했다. 퀸틴 블레이크가 선정한 내셔널 갤러리의 전시회, '그림이야기를 들려주세요!'에 참여했다. 2002 어른과 노인들을 위한 책인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이 출간되었다. 퀸틴 블레이크가 선정하고, 런던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시작된 어린이 일러스트레이션 순회 전시회 '마법 연필'에 참여했다. 2003 <마법침대> 2004 어른들의 어린 시절을 담은 책인 <우리가 어렸을 때>가 출간되었다. 2005 퀸틴 블레이크가 선정하고,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시작된 여행 일러스트레이션 순회 전시회 '모든 방향에서'에 전시를 했다. 한국을 방문하고, 서울 성곡 미술관에서 앤서니 브라운과 함께 전시회를 열었다. 2006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 Prizes and Awards 1963 Kate Greenaway Medal |
계속되는 나의 그림책 이야기 일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버닝햄은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재미마주의 이호백 대표는 "그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꾸준함에 있다"고 말한다. 버닝햄이 "나의 정신 연령은 다섯 살" 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작품이 유아의 사고 및 정서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 이며 그의 작품이 독자인 유아와 쉽게 상호작용하게 되어 작품에 포함되어 있는 작가의 반편견적 사고가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고 내면화될 수 잇음을 암시한다. 최근에도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를 발표해 아이들에게는 통쾌한 카타르시스와 재미를, 어른들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짧은 구성과 글이 더욱 어렵다는 그는, 어려웠던 작업 중 이 책을 꼽았다. 이 책은 아이를 윽박지르는 것보다 칭찬을 하는 것이 아이의 못된 행동을 다스리는 훌륭한 법이라는 것을 지혜롭고도 재치있게 표현한 책이다. 쉽고 반복적인 문장과 마치 어린이가 그린 그림처럼 의도적으로 모든 화면을 채우지 않는 미완의 작품을 그려내고 있는 그의 작품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반편견적 사고는 성, 나이, 계층, 가족구성이며 부수적으로 장애, 외모, 인종, 종교 등에 관한 것 역시 그의 그림책을 통해 습득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유아들은 21세기가 요구하는 개방성과 다양성의 가치관을 습득하고 발달시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의무와 책임을 동시에 갖는다. 뿐만 아니라 편견에 반하는 태도는 인간의 권리와도 직결된다. 따라서 유아들이 한 인간으로서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편견 교육이 필수적이며, 이를 존 버닝햄의 작품이 도와줄 수 있다. 유아들은 그의 그림책을 읽음으로써 예술작품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고 인생의 진리를 배워 가는 한편 반 편견적인 사고를 형성해 나감으로써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존은 아직도 여행과 모험을 즐기며 아내 헬렌 옥슨버리와 자유롭게 살고 있다. 그의 짧고도 긴 그림책 이야기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계속 이어질 것이다. 순간적인 동심을 영원한 감동으로 왜 우리는 존 버닝햄에 열광하는 것일까? 먼저 지난 20세기의 그림책에서 존 버닝햄을 빼놓고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다채로운 색채와 재미난 동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의 화려함도 정말 훌륭한 볼거리이다. 고전적 연극무대를 판타지와 동심의 세계로 끌어들여 정교한 그래픽을 선보인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도 정말 개성이 넘친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우연히 그려진 듯한 정감어린 주인공들과 잉크를 부어놓은 듯한 추상적 배경이 압도하는 존 버닝햄의 그림책처럼 순간적인 감을을 체계화한 이는 없었다. 바로 우리는 이런 자연스러움, 머리나 마음 속에만 맴도는 아이들 기분의 세계를 눈에 보여지게 그려낸 그의 그림들에 열광하게 된 것이다. 그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꾸준함에 있다. 1963년 <보르카>에서 시작하여 최근에 나온 <에드와르도>에 이르기까지 그는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동심과 그 동심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를 마음껏 펼쳤다. 그가 환경이다 세상의 폭력과 권위주의 같은 심각한 문제를 '심각함 없이' 그저 아이들의 단순함 속에 녹여서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떤 특별한 문학적 전개방식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고, 책 한 권을 만드는 순간 그는 그의 책 속 주인공들처럼 아이의 입장과 기분으로 들어갈 수 잇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는 '책을 만드는 존 버닝햄'이 한편으로는 어떤 색을 쓸까 고민하고 작은 점과 선 하나를 어떻게 그을까 고민하는 이 시대의 객기 없이 진지한 한 화가였음을 알 수 있다. - 그림책작가. 재미마주 대표 이호백의 조선일보 인터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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