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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산白石山-잠두봉蠶頭峰(1,365m : 평창)
*일 시 : 2005. 2. 20(일), 제16차 rtnah산행(32명), 날씨(맑다)
*코 스 : 모릿재-950봉-잠두산-1250고지-백석산-마랑치-(영암사)-던지골(대화리4반)
*산행시간 : 오전 9시 30분~오후 4시 33분 완료 → 총 7시간 03분간 소요
지난 02월 16일 ‘서울시 교장-교감회’에서 메일로 보낸 단문이다.
이름하여 <중년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의 제목이다.
‘집에서 누워 있지 말고 끊임없이 움직여라.
움직이면 오래 살고 누워 있으면 일찍 죽는다.
하루에 하나씩 즐거운 일거리를 만들어라.
하루가 즐거우면 평생이 즐거울 수 있다.
돈이 들더라도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라.
젊은 기운이 유입되면 활력이 넘치고 오래 살 수 있다.
성질을 느긋하게 가지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라.
조급한 사람이 언제나 손해보고 세상을 먼저 떠난다.
좋은 책을 읽고 또 많이 읽어라.
마음이 풍요해지고 교양이 쌓이면 품위 있는 중년이 된다.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대우를 받으려고 하지 말라.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지하철 경로석을 좋아하지 말라.
섣불리 행동하면 치매 초기로 오해받는다.
매일 목욕으로 몸을 깨끗이 하라.
그래야 사람들이 냄새나는 중년이라고 피하지 않는다.
병을 두려워하지 말라.
한 가지 병은 장수하고 무병을 과시하면 단명이 될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울려라.
바보 같은 사람과 어울리면 어느새 바보가 된다.
무엇을 남기며 얼마나 가치 있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라.
내가 가지고 떠날 것은 하나도 없다.‘
- 행복한 중년에서 -
백석산(1365)은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과 진부면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오대산에서 갈라진 한강기맥이 서진, 계방산(1577) 못 미쳐 1462봉에서 남쪽으로 갈라진 능선은 영동고속도로상의 속사리재를 넘어서며 또 다른 거대한 산줄기를 형성하는데 즉, 백적산(1142)-잠두산(1243)-백석산(1365)-중왕산(1376)-가리왕산(1561)-청옥산(1255)-남병산(1149) 등 1100미터를 넘는 즐비한 준봉들이 그것이다. 거맥 서쪽으로는 흐르는 물은 대화천으로 모여 평창강을 이루고, 동으로 흐르는 물은 오대천에 합수되어 정선으로 들어가 조양강이 된다. 그러니까 장평에서 평창으로 오는 23.8킬로미터의 길과, 이 산군 너머 동쪽 하진부에서 나전 삼거리까지 이어진 오대천 사이에 솟아오른 去脈群이다.
백석산은 이 거맥군의 능선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백석산은 북쪽의 잠두산(1243)과 연릉을 이루고 있어 동시등반이 가능하며, 남쪽으로 중왕산(1377), 서쪽으로 거문산(1171)이 솟아있다. 산 정상에 ‘흰 바위’가 있어 <白石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며, 정상 서편 산록에는 영암사가 있는데 100여 년 전 산삼을 캐기 위해 지은 산막이 사찰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잠두산 정상은 산죽으로 덮여있고, 백석산 쪽으로 내려가는 넓은 능선엔 가을과 봄엔 억새밭과 콩제비꽃 지대가 있어 눈을 아름답게 한다는 本 산악회 카페지기의 소개도 덧붙인다.
새벽 5시 50분.
승차지점인 발산동 <미즈메디> 병원 정문 앞에서 기다리며 바쁜 통화가 있는 시간이다.
만약을 대비해서 잠두-백적산 개념도 외에 사자-백덕산과 오대산국립공원일대 개념도까지 준비해 두 개의 서류봉투에 넣어 배낭과 소주박스 위에 얹어 두었는데 잠시 바람을 피해 뒤돌아서서 최영복씨와 통화하는 사이에 누군가 들고 가버렸다. 말하자면 절도를 당했다.
새벽이라 통행인도 뜸했는데 누군가 두툼한 누런 서류봉투 두 개가 돈이 되는 줄 알고 슬쩍 한 모양이다. 세상 참 각박하다는 평상적인 표현보다 이젠 막가버린 현실이 슬프다 못해 참담하기 그지없다. 값나가는 물건은 아니지만 당장 오늘 산행에 꼭 필요한 개념도라 적이 당혹했다. 그나마 어제 밤늦게 개념도 한 장을 별도로 상의에 보관해 두었던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행선지인 대화시내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복사기가 있는지의 여부도 미확인이고, 또 이른 아침시간에 복사기를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窮卽通이라. 생각해 낸 것이 중부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있는 도로공사 관리사무소에 들려 부탁하기로 했다. 톨게이트 우측 관리사무소에 들려 부탁했더니 여직원이 선뜻 응해주고, 복사기 사용료를 드렸더니 막무가내다. 기분 좋은 인상을 받고 돌아서는 발길이 새털보다 더 가볍고 유쾌했다. 비록 우리들에겐 중요한 물건이지만 가지고 간 사람에겐 휴지보다 못한 물건이다. 오늘 액땜을 했다는 편안한 결론을 내리니 한결 후련했다.
6명의 새 손님을 맞았다.
김병찬씨의 소개로 K-K-K-Y-J씨 등 5명과, 2일전 연락을 취했던 오류고교 교감선생님인 이문옥-오환숙 님 내외분, 그리고 정옥자씨의 부군인 이성재씨 등 8명이었다. 예약 취소자도 8명이었다. 32명의 일행을 실은 버스는 오늘 令愛의 결혼식으로 참여 못한 김00기사 대신 대타로 나온 새문화관광 조준희 기사(011-323-0029)가 오늘의 운행을 담당하게 됐다.
오전 9시 05분.
영동고속도로 장평IC를 빠져나온 버스는 31번 국도를 타고 남진, 약 5Km 지점인 신리 삼거리 신리초교를 좌측에 두고 좌회전이다. 장평-평창 가도에서 이 골짜기도로로 좌회전이다. 90년대 초까지는 신리골을 따라 모릿재까지 올라가는 길은 비포장 소로였는데 지금은 왕복 2차선 도로가 뚫려 평창읍에서 진부까지 새로운 지름길이 되었다. 15년 전의 기억이 필름처럼 생생할 리 없겠지만 버스는 ‘자작정’ 마을회관을 지나 모릿재를 관통한 모릿재 터널 앞에 멎었다. 작년 이곳을 다녀온 바 있던 양경태 대장님의 안내가 가장 정확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국책사업과 연관한 각종 개발사업에 대한 서현(한양대 교수·건축학)님의 <알프스 산맥에도 터널 뚫는데…> 조선일보 컬럼이 생각할 시간을 주어 소개한다. 이 시대가 한참 잘못 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우려에서 원문 그대로를 옮겨 보는 거다.
「세상이 여전히 이처럼 풍지다. 굴착기 소리로 시끄럽던 국토는 환경의 결투로 소란하다. 시대는 건설의 참회록을 요구하고 있다. 불도저를 전차처럼 몰면서 국토를 전장처럼 휘젓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싸우면서 건설하던 때에 토론은 무의미했고 결론은 신속해야 했다. 유적도 자연도 파고 엎던 시대였다.
우리 사회는 토론보다 결투를 앞세운다. 토론이라는 명목의 방송에서는 양쪽으로 갈라 앉아 말의 흉기를 휘두르는 사람들을 보여 준다. 대척점에 세운 상대를 모욕과 모략으로 굴복시키려는 것은 토론이 아니다. 사각탁자에서 이편저편 갈라 앉는 것은 내 몫을 챙기려는 협상에나 적당하다. 토론은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진행하는 것이다.
반동인지 빨갱이인지를 구분해야겠다는 유서 깊은 이분법은 환경 문제에서 유독 극명하다. 개발론의 주구인지, 환경론의 광신도인지 이마에 명찰을 붙여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자연은 선이고 도시는 악이라는 이분법이다. 개발은 이기적이고 보존은 이타적이라는 도식적 사고도 근거 없고 섣부르다.
▼개발은 악, 보존은 선?
환경을 바꾸는 것은 다음 세대를 전제로 한 작업이기에 중요하다. 그러나 바다를 제물로 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새만금 사업의 타당성은 아무리 고쳐 들어도 이해할 수 없다. 30년 만에 인구가 반으로 줄면서 몰락한 기존 도시를 옆에 두고 바다를 매립해 새 도시를 만들자는 제안도 설득력이 없다. 국토의 구석구석이 레저관광과 민자 유치와 개발이익 확보의 대상일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어이 준공하느냐, 모두 철거하느냐의 이분법에 의한 결단이 아니다. 들인 돈이 아까워 계속해야 한다는 건 내일이 없는 도박장에서나 듣는 이야기다. 이미 만든 구조물을 이용해 전대미문의 해상공원을 만들든, 풍력발전 기지를 만들든 아직도 더 많은 토론과 대안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천성산 터널공사 중단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내건 공약을 모두 실천해야 한다고 하려면 다음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니라 종교인 중에서 뽑아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가 널리 들리지 않는다고 목숨을 담보로 삼는 것은 종교인이 아닌 정치인에게 어울리는 무기다.
이런 중요한 사업을 진행할 때는 신중한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한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산을 돌아가는 우회노선이 산을 뚫고 가는 터널보다 더 환경친화적이라는 전제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2011년 준공을 목표로 길이 57km에 이르는 세계 최장의 고속철도 터널을 뚫고 있는 곳이 있다. 고타르트 베이스 터널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은 세계 최고의 환경국가라는 스위스이고, 터널이 뚫고 가는 곳은 알프스 산맥이다. 산천을 망가뜨리고 생태계를 찢어 놓는 것은 산을 타고 도는 도로들이다.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터널을 뚫고 미시령, 한계령 길을 폐쇄해야 설악산의 잘린 생태계도 이어지고 상처 난 환경도 추슬러진다.
터널이 지하수를 고갈시키리라는 막연한 판단과 그에 근거한 막무가내의 반대가 환경을 보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은 직접적이고 실천적인 탐욕이다. 미지근하다면 덥혀서라도 온천수로 팔아먹겠다고 설악산에까지 구멍을 내고 지하수를 퍼내겠다는 그런 탐욕이다. 씻어내야 할 것은 살가죽이 아니고 탐욕스러운 마음이다.」
오늘 일기예보는 구름이 약간 낀 맑은 날씨에 기온은 영하 12도라는 보도다.
새벽기온이 만만찮았지만 해발 850m 모릿재 터널 앞에서 만난 오지의 기온은 강풍과 더불어 체감기온이 가눔이 안 될 정도로 맹혹했다. 우측이 모릿재로 올라가는 코스다. 포장도로지만 적설량이 만만찮다. 3층 건물과 아담한 단층 목조건물을 지난 잠시 후에 만난 삼거리에서 좌측길을 따라 올라갔다.
9시 40분.
모릿재로 올라가는 舊 도로 마루에 올랐다. 좌측 백적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이정표가 서 있다. 우측 잠두산 입구 둔덕에 이동통신중계기지 철탑이 하늘 높이 서있다. 본격적인 등로다. 정강이까지 차던 적설은 무릎부근까지 차오른다. 시작부터 철저한 러셀에 의한 등로를 확보해야 할 오늘이다. 모처럼 참여한 K씨-양경태-최영복씨와 함께 4명이 선두에서 교대로 러셀을 담당했다. 약 100m 내외의 거리를 두고 교대하는 러셀작업이다. 늦어도 4시간 30분 전후로 잡았던 산행시간을 대폭 수정해야 했다. 상상치 못한 적설량은 오늘의 일정이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능선은 커친스 현상으로 적설량이 깊어 능선 좌우 사면을 뚫어 진행해야 했다. 그러나 능선 우측인 서쪽은 강력한 서북풍이 몰아쳐 오랫동안 지탱하기가 힘들었다. 다소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가능하면 좌측인 동쪽 사면을 뚫어야했다. 그러자니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雪砂丘가 아르답게 보였지만 선뜻 들어갔다간 허리 이상의 깊이다. 흐르는 콧물이 동결될 정도의 체감온도 25도 내외로 판명됐다.
10시 38분.
950봉에 올랐다. 안부 동쪽 사면은 따사했다. 후미를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가졌다.
산세는 대체로 서쪽은 험한 급경사, 동쪽은 완만한 형태다.
10시 57분.
본격적인 능선이다. 머리 위로 잠두봉과 그 뒤편에 백석산이 들어온다. 봄과 가을철이라면 단숨에 닿을 거리지만 오늘은 그게 아니다. 대화에서 조준희 기사님의 연락이다. 식당을 예약했다며 심설산행을 조심하라는 당부다. 아침에 봤을 때는 다소 깐깐하게 보였던 60대의 그가 일행을 염려하는 말을 남기는 것을 듣고는 햇살에 녹는 눈처럼 부정적이었던 첫인상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듯싶었다.
11시 30분.
조릿대 능선이다. 눈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안고 숨겨준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건가. 조릿대도 우듬지 일부만 보인다. 매서운 한풍이 가물치게 몰라든다. 앞이 보이지지 않을 정도의 은색의 눈가루가 찬란하게 역광에 반사한다.
누에머리산 蠶頭山이 턱 위에 꽂힌다. 밑에서 바라본 잠두산은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천상 뽕잎을 갉아먹고 있는 누에의 머리 그대로다.
11시 53분.
어렵게 잠두산에 올라섰다. 남쪽의 백석산이 指呼之間이다.
정상은 평지다. 신리골과 진부면 수항리 일대는 물론 멀리 대화와 방림면 일대도 눈에 파묻혀 긴 동면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목마다 만발한 설화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 은근한 피로가 엄습한다. 흥건했던 등의 땀은 어느새 건조해진 상태다. 강풍을 피해 따스한 곳으로 이동이 절실했다. 백석산을 향한 남쪽 능선을 향해 부지런한 행보다.
한 낮인 12시 12분.
눈에 덮인 너른 터를 골라 치르는 스탠딩 휴식이다.
후미도 곧잘 따라온다는 연락이다. 행여 염려했던 이문옥 교감님 내외와 이영옥씨 행보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인절미와 과일 한 조각을 얻었다. 피로가 다소 열리는 듯하다. 잠두-백적산이 우리 일행들만의 선택이었는지 알았는데 서울 000산악회도 우리 뒤를 이어 올라오는 모양이다. 산악회 선두 리더들을 만났다. 백석산 턱 밑 안부에서 000산악회 리더 3명이 러셀에 가담했다. 한결 여유가 있는 행보다. 모처럼의 러셀작업에 따른 피로가 허기증과 연결되어 피로가 가중되고 있다. 이럴 때는 정신력으로 버티곤 했던 것이 그 동안 산행에서 얻은 경험의 전부다. 허벅지가 뻐근하며 무릎의 통증이 침윤한다.
새로운 새해의 나이테가 더해졌다는 표시인가?
12시 40분.
1,260고지에 올랐다.
이제 백석산이 비슷한 눈높이에 걸려있다. 이내 다리의 통증이 멎어지는가 싶었다.
김병찬씨 일행들의 행보도 생각보다 원만한 편이다. 정옥자-이성재씨 내외와, 전금순씨도 수준급이다. 오영삼 이사님 내외와 송원동-박문식씨 일행도 여일했다.
오후 1시 22분.
후미리더 홍기오씨 형편이 궁금했다. 정재근 감사님과 오태식씨, 그리고 김자연씨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김총무님, 오뚜기같은 패기의 홍영미씨, 모처럼 참여한 김창돈씨, 강이사님 부부, 이춘옥씨, 막 금주를 시작했다는 강성윤씨 등 일행 29명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적설을 헤치고 백석산 정상에 막 오르고 있다. 흰 바위 때문에 명명한 <白石山>은 <白雪山>으로 변해있다.
오후 1시 45분.
뾰족한 암봉으로 이루었다는 백석산 정상의 너른 공터는 헬기장이며 두터운 눈으로 덮여있다. 백석산 서쪽은 급준한 암벽을 이루고 있고, 동쪽은 밋밋한 사면으로 이루어진 육산이라는 백석산이다. 암봉으로 보이던 것은 주능선 서쪽을 형성하고 있는 일정한 높이의 단애 모드는 눈에 덮여 백색 일색이다. 눈에 파묻힌 감각점은 확인이 어려웠다.
정상의 너른 공터는 강원도의 산은 이곳에서 모두 전망할 수 있는 곳이다.
북쪽 멀리 계방산-오대산-노인봉-황병산-대관령으로 이어지는 기맥과 대간도 뚜렷하게 보이고, 가까이는 잠두산-백적산이 바로 손끝에 닿는다.
서쪽으로 백덕산-거문산-금당산이 눈 밑으로 하늘금을 이룬다.
그러나 서쪽으로 내려다보는 전망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금당산-거문산 뒤로 태기산-청태산-대미산이, 그 뒤로 백덕산-사자산이, 그리고 더 멀리 치악산 주능선 보인다.
가리왕산-중봉-중왕산, 그리고 백석산에서 흘러내려 골짜기로 묻히는 지능선 모두가 흰 눈에 덮여 황소잔등처럼 리드미컬하다. 가리왕산 너머로 상원산-옥갑산의 긴 능선이 검푸른 실루엣이다.
간혹 구름은 떠있지만 혹한답게 하늘은 문자 그대로 碧空이며 그 전망은 가히 환상적이다. 1260봉 아래 안부에서 탈진에 가깝게 힘들어 하던 김자연씨를 대동한 정재근-오태식씨 두 분이 신리 쪽으로 하산했다는 후미대장인 홍기오씨의 전갈이다. 두 남자가 있으니 안심은 됐으나, 계곡을 러셀하며 내려간 그들의 행보도 꽤나 곤혹스러웠을 것으로 예상했다. 선두에게 걱정 말라는 말을 덧붙이고 끝머리로 합류하겠다고 했다. 정상에서 승인씨의 카메라로 29명의 일행들이 단체사진을 찍었다. 소지했던 디카가 동결됐는지 아니면 밧테리 방전인지 작동이 여의치 않았다. 예서 마량치는 약 1Km 거리다.
마량치를 통해 올라오는 30여명의 00산악회원들의 허연 콧김을 뿜으며 정상을 오르고 있다. 서로가 러셀을 해 놨으니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며 교차했다. 아무튼 백석산 정상부터 마량치까지는 럿셀작업을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이 여간 다행이 아니다.
시원스런 본디의 행보는 경쾌했다. 길목마다 <영암사 → > 이정표가 걸려있다.
2시 15분
정신없이 내려가는 능선이다. 조준희 기사님과 통화를 했다. 아무래도 약속한 오후 2시 30분은 고사하고 더 늦어지겠다는 연락을 주었다. 마을회관 앞에서 대기 중이라고 한다. 식당과의 시간약속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부에서 잠시 행동식을 꺼내는 시간을 가졌다. 이교감님이 준비한 따끈한 커피 한잔이 언 몸을 녹여주었다.
2시 20분.
너른 공터엔 00산악회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떠난 자리가 넓게 정지되어있었다.
눈 광장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곳은 산나물 밭으로 유명한 곳이다
백석산 동쪽 산록의 5월 중순은 온통 노랑제비꽃을 비롯해, 백석산의 상징인 곰취, 취나물 등 산채와 각종 야생화들이 저마다 생존의 잎을 내밀고 한창 익어갈 때다. 1300미터 산록이라는 고원지대 산사면에 형성된 이 희귀한 천상의 화원은 백석산만이 아니라 곰배령-가리왕산- 청옥산-방태산 등에서도 목격한바 있다. 1000m가 넘는 5월의 고산에서 만나는 능선의 초원지대는 환희의 세계다.
청옥산에도 육백마지기가 있듯이 백석산에도 이곳을 육백마지기란 이름을 붙였다.
이곳의 특산식물의 하나가 곤드레가 있다. 일명 고려엉겅퀴라고 불리는 곤드레는 과거 춘궁기를 넘기는 데 쓰였던 구황식물이었으나,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전국적으로 인기상품으로 손꼽힌다. 정선 읍내에 곤드레나물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싸리골식당 전화 (033)62-4554)도 있다. 박새 나물. 맹독성이 있는 이 나물도 무작정 채취하지 말고 식견가의 조언이 필요하다. 5월 중순 어느 때를 잡아 한차례 이곳을 찾고 싶은 욕망이 불끈하게 일어났다.
오후 2시 26분.
따스한 겨울날 능선에서 만나는 서서히 녹아버린 커친스현상처럼 흑색바위가 책갈피처럼 수십 층을 이루며 겹쳐있다. 마치 대패로 마끔질한 평평한 판자형 돌(판석)이 쌓여진 모양이 특색있게 보였다. 너와집의 지붕으로 이용할만한 돌로 안성맞춤이다. 그렇게 된다면 너와집이 아닌 돌집이 되겠지만......
2시 27분.
완만한 안부인 마량치 사거리다.
마랑치 고개에서 영암사는 지척이다. 우측 급박한 내리막과 혹풍이 기다리고 있다. 1365고지까지 올랐으니 그만큼 하산로도 급경사일 것이다. 거의 눈에 밀려 미끄러지며 내려가는 길이다.
2시 33분. 삼거리다.
곧장 가면 영암사를 들리는 코스이고, 좌측은 곧장 던지골로 가는 코스다.
길은 다소 완만하다간 이내 급경사다.
<영암사>
영암사의 해발고도가 1200여 미터로 단애 아래에 위치한다. 사찰부속건물인 요사채나 허름하고 퇴락한 여염집으로 보이는 영암사다. 절이라기보다는 한 움막에 가까운 작은 암자이다. 영암사는 원래 백석산, 중왕산 일대의 삼을 캐기 위해 심마니들이 지은 집이었던 것이 지금은 절로 변했다고 한다.
오후 2시 50분.
지그자그로 이룬 지루한 급경사 하산로다. 다시 맞은 삼거리다. 우측은 영암사로, 좌측은 던지골 길이다. 던지골 하산로는 러셀이 안 된 채다. 000산악회 젊은 친구가 러셀에 뛰어든다. 산 아래 던지골은 까맣게 내려다보인다. 백두산 천지연 만큼이나 V자로 깊숙하게 패인 던지골-간지동 계곡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비하다. 계속 이어지는 급경사다. 어느 산행기에서 본 기억대로라면 이 구간은 <살인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만큼 힘들고 급박하다는 얘기다. 이런 급사면일수록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신체적 조건에 맞는 호흡조절을 기한다면 무난할 것이다.
하산로에 눈에 덮인 바위들은 모두가 마량치 직전 능선에서 만났던 검은 바위형태 그대로다. 이곳 바위의 특징인가보다. 진달래 나목능선이다. 초봄 산행도 무척 아름다울 것이란 생각이다. 눈 속에 파묻힌 군용통신선은 영암사와 관계된 통신선인가? 뒤따라 내려오던 정영애씨와 합류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래로 내려가는 발목이 다소 시큰했다.
오후 3시 16분.
산죽지대다.
다른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지루한 내리막도 이젠 끝이 보이는 듯 했다.
오후 3시 16분.
길섶에 쌍분이 보인다. 어느 다정한 산촌의 커플이 다정하게 잠든 쌍분이 무척 평화롭고 시샘이 나도록 부럽다는 느낌이다. 이어 국유임도다. ⊃자로 돌아가는 임도인데 좌측 지름길을 이용해 바로 내려서면 금새 헤어졌던 임도와 만나는 4거리 갈림길이다. 쇠로 막든 출입금지 가로대와 각종 경고문 및 국유임도에 관한 내용이 실린 입간판이 보인다.
<신리 모릿재 13.6Km ← → 대화4리 5Km >
길고 지루했던 급경사 내리막은 끝나고 자동차 통행이 가능한 평탄한 하산로다. 던지골이 지척이다. 임도 통제소 무인박스가 긴 동면에 빠져있다. 잣나무림에 이어 낙엽송 나목림 지대다. 잣나무는 상록수지만 낙엽송은 초봄 연초록 새잎을 돋을 때가 가장 현란하다는 생각이다. 초봄의 산행은 각종 연초록빛 잎을 관상하는 재미로 산행을 즐긴다. 가을 단풍 숲의 귀족이란 낙엽송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미끈한 裸身을 자랑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냉대성 수목인 자작나무와 몸매가 비슷해 시각에 따라선 상당한 동질감을 발견할 수 있다.
눈에 덮인 산촌의 밭은 무엇을 재배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던지골’로 내려가며 문득 뒤를 돌아봤다.
골짜기사이로 준봉들 중 하늘을 찌른 흰 머리 백석산이 건방지게 버티고 있다.
이어 폐농가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사람이 살고 있는 농가나 각종 영업집들이 나타난다.
오후 3시 48분.
던지골 송어양식장이다.
그림같은 목조건물과 던지골과의 조화를 생각했다. 엇박자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버스를 던지골까지 부르기로 연락을 취했으나 예서 약 500m 아래 지점에서 통행이 불가능하다는 연락이다. 또 중도에서 이탈한 오태식씨 일행의 전화내용이 암담했다. 현재 미동조차 못한다는 김자연씨를 끌고 마을까지는 이동해보라는 부탁밖에는 대안이 불가능했다. 119 전화도 시간상으로 여의치 않았다는 전갈이다.
상황판단이 어려웠다. 오늘따라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왔다는 정재근 감사님, 휴대폰 밧테리가 기능을 상실했다는 오태식씨 등 통신이 두절되니 모든 게 혼미했다. 오히려 자신의 컨디션을 조절하지 못한 김자연씨의 최근 상황이 어렵고 미진하다는 판단으로 당황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오후 4시 10분.
000산악회 버스와 나란히 기다리는 지점에 내려섰다.
20분 후 후미 일행 모두가 당도했다.
4시간 코스를 7시간이 넘도록 치뤘으니 상황이 어려웠던 것이다.
아무튼 백석산까지 오른 29명 일행이 모두 무사히 도착한 점이 고마웠다. 그 동안 눈산해을 못했다고 투정(?)을 하던 일행들에게 확실한 심설산행의 고역을 원 없이 치르게 했던 오늘이다.
4시 30분.
대화로 이동했다. 오태식씨와의 마지막 통화대로 간지동 마을회관으로 차량을 이동하는 길목에서 나머지 3명의 일행들이 택시를 이용해 올라오는 일행과 만난 시각은 4시 33분이었다. 실조했던 김자연씨 구겨진 표정과 행색으로 미뤄 본인은 물론이지만 그간 두 분의 艱苦가 짐작됐다. 사유야 어쨌든 천만다행이다. 정감사님의 노력이 없었다면 김자연씨의 현재는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발 빠른 오태식씨의 조력이 오늘을 있게 했다.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 동안 누차 얘기한 대로 겨울 등산은 장비싸움이다. 허술하고 안이한 사고가 부른 원초적 실수다. 오늘의 경험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타산지석이 되었으면 싶다.
4시 45분.
예약한 대회의 ‘산해진미’ 식당으로 이동해 피로를 씻는 식사시간을 가졌다. 마치 구사일생의 경험을 치른 일행들의 무용담(?)이 어지럽게 두부전골 식탁에 흩어졌다. 적당한 반주가 피로회복제가 됐으면 싶었다.
5시 20분.
예상보다 약 2시간 늦게 식당을 떠나 귀로에 올랐다.
김병찬씨 일행과 몇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나머지는 깊숙한 피곤의 수렁에 빠져버렸다. 귀로는 방림-안흥-새말IC를 선택했다. 기진했던 정감사님이 충분한 식사량도 걸은 채 마신 반주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긴장이 급속하게 풀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려니 생각했지만 안흥을 지나 새말로 향하는 매화산 재를 넘어선 중로에서 잠시 정차해 구토(Over-eat)하는 시간이 있었다.
영동고속도로 일부구간이 다소 밀리긴 했지만 나머지 구간은 시원하게 뚫린 교통이었다.
오전처럼 수서입구-동작동에서 차례대로 하차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마지막 수다를 이었다.
“그 동안 미진했던 심설산행을 오늘 확실하게 마쳤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단연 김자연씨입니다. 용궁 문턱에서 귀환했으니까요. 다음부터는 철저한 개인장비를 갖추도록 당부합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 가장 애써 주신 정재근 감사님과 오태식씨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선두에서 러셀을 담당했던 선두대장-최영복씨-K씨, 그리고 처음 참여한 8명의 회원님들, 무사한 산행을 마친 모든 회원님들에게 오늘을 같이하며 자축의 박수를 칩시다. 오늘 안전운행을 담당하신 조준희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차주 산행을 알려드립니다. 운운 …… “
밤 8시 55분.
당산역에서 많은 일행들이 하차했다.
그리고 강서보건소 앞에서 김총무님과 홍영미씨, 저녁식사는 피곤해 자리를 다음으로 미루자며 하이웨이 팀들이 대거 하차했다. 발산역에 내린 시각은 9시 10분이었다. 그냥 지나치기가 섭섭해 들린 M주점이다. K녀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상황을 묻는다. 방금 뉴스 시간에 소백산 산행에서 사망사고가 있었다는 전달이다. 오늘 R씨는 00산악회산행을 했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생맥주 한잔을 뒤로 귀가하는 골목길이 비틀거렸다.
오늘은 얄밉도록 음주를 사렸었는데......
덤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우측 귀에 동상이다. 물집이 점차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한참동안 괴롭히겠거니 생각했다.
*대중교통
ᄋ진부~마평리행 버스 하루 9회 운행, 장평~신리쪽으로 가는 버스 및 택시가 있다.
ᄋ서울~장평 경유~진부행 버스(동서울터미널 30-40분 간격, 상봉터미널 1시간 10분 간격)
ᄋ장평-대화(평창시내버스운행, 대화4리 앞에서 하차진부 시내버스 정류장 : 0374-35-6963
○승용차
-하행(영동고속도로-장평IC-신리삼거리에서 좌회전-모릿재)
-상행(대화-방림-안흥-새말IC-영동, 중부고속도로-88도로-서울)
*숙박
대화면 소재지 : 도미성여관((033)333-2052) 산해진미(033-333-2757, 011-368-2757)
하안미리 민박집 : 하안미5리 이장댁 (033)332-4973. 대화면사무소 전화 (033)333-2301.
*별미 : 오대천변 모텔과 한우숯불고기구이로 유명한 마평관광농원(전화 (033)332-0368)
*생활습관 개선으로 건강을 지키자는 현대일본인들.
일본인들의 사망원인 중 약 6할이 암-심장병-뇌졸중 등 생활습관성 질병이 차지한다는 보도다. 생활습관적 질병예방을 예방하고 개선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평소의 건강을 지키기가 중요한데 이를 위한 5가지 건강 포인트를 자신의 생활습관을 되돌아본다.
-균형잡힌 식생활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습관을
-피로는 쌓이지 않도록
-흡연은 만병의 근원
-적당한 음주량 지키기
첫댓글 안녕하세요? 송회장님! 정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군요. 참으로 아름다웠던 경치를 구경하자니 그토록 힘겨운 순간도 겪을 수 밖에 없었나 봅니다. 암튼 우리 RTNAH회원님들의 단결력도 감동적이구요. 홧팅!!!
산행 첨부터 끝까자지..장장7시간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 힘안들이고 산행 함께할수 있었던건 선두에서 러셀하시느라 수고하신 님들덕이죠,정말 수고 많으셨구요 노고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수고들 많았습니다...자연님 혼나셧겠네요... 물망초님 미안합니다... 참석하겠다고 해놓고 연락도 못드리고 불참했습니다..몸이 안좋아서요...벌금낼께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