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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오 파스1990년 노벨상 만찬 연설
1990년 12월 10일
국왕 폐하, 신사 숙녀 여러분.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탄력적인 것이므로, 여러분은 앞으로 길고 긴 180초 동안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한 세기의 끝뿐만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시대의 종말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들이 무너진 자리에서는 무엇이 태어날까요?
보편적인 화합과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의 시대가 밝아오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부족적 우상숭배와 종교적 광신이, 그 뒤에 불화와 폭정을 줄줄이 거느리고 다시 돌아오게 될까요?
자유 속에서 풍요를 이룩한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들은 가진 것 없는 나라들을 대할 때 좀 더 이기심을 버리고 더 깊은 이해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가진 것 없는 나라들은 자신들을 실패로 몰고 간 폭력적인 교조주의자들을 경계하는 법을 배우게 될까요?
그리고 내가 속한 세계의 한 부분,
라틴아메리카.
특히 나의 조국,
멕시코.
우리는 마침내 진정한 현대성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그 현대성이란 단지 정치적 민주주의, 경제적 번영, 사회정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전통과 화해하고
우리 자신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그 답을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최근의 과거는 우리에게 한 가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역사의 열쇠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세기는 수많은 물음표를 남긴 채 끝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도 하나 있습니다.
우리 행성의 생명은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진보를 향한 우리의 무분별한 숭배와 자연을 지배하려는 투쟁에서 이루어 낸 발전 그 자체가 이제는 자살을 향한 질주로 변해 버렸습니다.
우리가 은하계와 원자 입자의 비밀을 해독하기 시작하고,
분자생물학의 수수께끼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자연의 중심부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나라가 어떠한 정치적·사회적 조직 형태를 선택하든,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절박한 문제는
자연환경의 생존입니다.
자연을 지키는 것은
인간을 지키는 것입니다.
세기의 끝에 이르러 우리는 우리가 하나의 거대한 체계,
아니,
여러 체계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체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식물과 동물에서 시작하여,
세포,
분자,
원자,
그리고 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고대 철학자들이 우주를 일컬어 말했던
‘존재의 사슬’
그 사슬을 이루는 하나의 고리입니다.
인간이 행해 온 가장 오래된 몸짓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태초부터 오늘날까지 우리가 날마다 되풀이해 온 몸짓입니다.
고개를 들어
놀라움 속에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는 것.
그러한 응시는 거의 언제나
우주와 형제라는 느낌으로 끝납니다.
몇 해 전 어느 날,
나는 시골에 있었습니다.
밤이었습니다.
맑고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두운 풀숲 사이에서
귀뚜라미 날개의 딱지에서 울려 나오는
금속성 소리를 들었습니다.
밤하늘이 두근거리는 듯한 움직임과 그 작은 곤충의 음악 사이에는
기묘한 교감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런 시구를 썼습니다.
하늘은 드넓고
저 위에서는 세계들을 씨 뿌린다.
흔들림 없이,
이 깊은 밤을 뚫으며
송곳 귀뚜라미는 계속 간다.
별들,
언덕들,
구름들,
나무들,
새들,
귀뚜라미들,
그리고 인간들.
각자는 자기 세계 속에 있고,
각자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세계들은
서로 응답하고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자연과 맺는 형제애의 감정이 다시 태어날 때에만,
우리는 생명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형제애(fraternidad).
이 말은 자유주의 전통에도 속하고,
사회주의 전통에도 속합니다.
과학의 전통에도 속하며,
종교의 전통에도 속합니다.
나는 잔을 들어 올립니다.
이것 역시 오래된
형제애의 몸짓입니다.
국왕 폐하의 건강과 행복과 번영을 위하여,
그리고 고귀하고 위대하며 평화로운
스웨덴 국민을 위하여
잔을 듭니다.
옥타비오 파스현재의 탐색La búsqueda del presente1990년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
나는 인간이 인간이 된 이래 모든 사람이 입에 올려 온 한마디로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말은 모든 언어에 그에 해당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언어에서나 그 의미의 폭은 매우 넓습니다.
로망스어에서 ‘은총(gracia)’은 정신적인 것에서 육체적인 것까지 아우릅니다. 인간을 오류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 신이 베푸는 은총에서부터 춤추는 소녀의 우아함, 수풀 속을 뛰어오르는 고양잇과 동물의 우아함까지 이릅니다.
은총은 용서이며, 사면이며, 호의이며, 혜택이며, 명성이며, 영감입니다. 말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방식의 아름다움이며, 좋은 예절을 드러내는 몸짓이며, 마침내 선한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은총은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선물입니다.
그것을 받은 사람, 곧 은총을 입은 사람은 인간으로서 도리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를 표합니다.
지금 이 가벼운 몇 마디 말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 감정의 무게가 이 말들의 가벼움을 보충해 주기를 바랍니다.
만일 이 말 하나하나가 물 한 방울이라면, 여러분은 그 물방울을 통해 내가 느끼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
고마움.
그리고 지금 여러분 앞에, 스웨덴 문학의 집이면서 동시에 세계문학의 집인 이곳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느끼는, 말로 정의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존경과 놀라움이 뒤섞인 감정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언어는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는 정치적·역사적 실체보다 훨씬 더 광대한 현실입니다.
그 한 가지 예가 아메리카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유럽의 언어들입니다.
영국·스페인·포르투갈·프랑스의 문학과 비교할 때 우리 문학이 처한 특수한 상황은 바로 이 근본적인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우리의 문학은 이식된 언어로 쓰인 문학입니다.
언어는 하나의 땅에서 태어나 성장합니다.
공통의 역사가 그것을 먹여 살립니다.
그러나 유럽의 언어들은 자신이 태어난 땅과 고유한 전통으로부터 뽑혀 나와, 아직 알려지지도 않았고 이름조차 붙지 않은 새로운 세계에 심어졌습니다.
그 언어들은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렸고, 아메리카의 사회들과 함께 성장했으며, 변화했습니다.
같은 식물이면서
동시에 다른 식물입니다.
우리 문학은 이식된 언어가 겪은 변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 참여했고, 오히려 그것을 가속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문학은 단순히 대서양 건너편 유럽 문학을 비추는 거울이기를 그만두었습니다.
때로는 유럽 문학에 대한 부정이었고, 더 자주 그것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이러한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관계가 끊어진 적은 없습니다.
나의 고전은 내 언어의 고전들입니다.
나는 어느 스페인 작가와 마찬가지로 로페 데 베가와 케베도의 후손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나는 스페인인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히스패닉아메리카 작가들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브라질·캐나다의 작가들도 각각 영국·포르투갈·프랑스의 전통을 마주하며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메리카 작가들의 이 특수한 위치를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려면 일본·중국·아랍의 작가가 유럽의 어떤 문학과 나누는 대화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명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는
같은 언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유럽인이면서,
유럽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작품들이 우리를 대신해 말합니다.
금세기 문학에서 일어난 가장 커다란 새로움은 아메리카 문학들의 등장이었습니다.
먼저 영미문학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에는 두 개의 큰 가지를 가진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등장했습니다.
히스패닉아메리카 문학과
브라질 문학.
이 세 문학은 서로 크게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된 특징을 지닙니다.
문학적이라기보다는 이념적인 투쟁,
즉 세계주의와 토착주의, 유럽주의와 아메리카주의 사이의 투쟁입니다.
그 논쟁에서 무엇이 남았습니까?
논쟁은 사라집니다.
작품은 남습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유사성을 제외하면 세 문학 사이의 차이는 많고 깊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문학적인 차이라기보다 역사적인 차이입니다.
영미문학의 발전은 미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한 역사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반면 우리의 문학은 우리 민족들이 겪은 정치적·사회적 불행과 격동 속에서 발전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역사적 결정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제국이 황혼을 맞고 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시기에도 예술과 문학의 위대한 작품과 찬란한 순간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백과 두보는 당 왕조의 몰락을 목격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의 화가였습니다.
세네카와 루카누스는 네로와 동시대인이었고 그의 희생자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차이들은 문학적인 것이며 각 문학 전체의 성격보다는 개별 작품과 관련됩니다.
그런데 문학에 과연 하나의 ‘성격’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서로를 구별해 주는 공통된 특징의 집합을 문학이 가지고 있을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학은 붙잡을 수 없는 환상적인 ‘성격’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문학은 서로 대립하고 서로 친화하는 관계로 연결된
유일무이한 작품들의 사회입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영미문학 사이의 최초이자 근본적인 차이는 기원의 차이에 있습니다.
우리도 그들도 처음에는 유럽의 투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섬에서 왔고,
우리는 하나의 반도에서 왔습니다.
지리·역사·문화의 관점에서 모두 중심에서 벗어난 두 지역입니다.
그들은 영국과 종교개혁에서 왔고,
우리는 스페인·포르투갈과 반종교개혁에서 왔습니다.
히스패닉아메리카의 경우, 스페인을 다른 유럽 국가들과 구별하며 독특하고 독창적인 역사적 모습을 부여한 특징들을 굳이 모두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스페인도 영국 못지않게 중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다만 그 방식이 다릅니다.
영국의 주변성은 섬이라는 조건에서 비롯되고 고립을 특징으로 합니다.
배제에 의한 주변성입니다.
스페인의 주변성은 반도라는 조건에서 비롯되며 서로 다른 문명과 과거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데 있습니다.
포용에 의한 주변성입니다.
훗날 가톨릭 국가가 될 스페인에서 서고트족은 아리우스파 이단을 믿었습니다.
수세기에 걸친 아랍 문명의 지배, 유대 사상의 영향, 레콩키스타와 그 밖의 여러 특수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메리카에서는 이러한 히스패닉적 주변성이 다시 나타날 뿐 아니라 더욱 증폭됩니다.
특히 멕시코와 페루처럼 오래되고 찬란한 문명을 가진 나라들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스페인인들이 멕시코에서 발견한 것은 단지 하나의 지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역사를 발견했습니다.
그 역사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신전과 신들을 지녔던 콜럼버스 이전의 멕시코는 지금은 폐허 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정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 정신은 신화와 전설, 공동생활의 방식, 민중예술과 관습이라는 암호화된 언어를 통해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멕시코 작가가 된다는 것은 바로 그 현재, 그 현존이 우리에게 하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그 목소리를 듣고,
그것과 이야기하고,
그것을 해독하고,
그것을 말하는 것.
이 짧은 우회를 거친 뒤라면, 우리를 유럽의 전통과 동시에 연결하면서 또 갈라놓는 기묘한 관계를 조금은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분리되어 있다는 의식은 우리 정신사의 끊임없는 특징입니다.
때로 우리는 그 분리를 하나의 상처처럼 느낍니다.
그러면 그것은 내면의 분열, 찢긴 의식으로 변하여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또 어떤 때에는 그것이 하나의 도전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를 행동으로 내몰고 다른 사람들과 세계를 만나러 나가게 하는 박차가 됩니다.
물론 분리의 감정은 보편적이며 히스패닉아메리카인들만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 시작됩니다.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우리는 낯선 땅 위로 떨어집니다.
그 경험은 결코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됩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밑바닥에 놓인 헤아릴 수 없는 심연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행동,
우리가 행하고 꿈꾸는 모든 것은
분리를 넘어 세계와 다른 인간들에게 이어지기 위해 놓는 다리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 인간의 삶과 인류의 집단적인 역사는 모두 원래의 상태를 다시 세우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끝나지 않았고,
끝날 수도 없는,
분열의 치유.
그러나 나는 이 감정을 또다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서 이 감정이 무엇보다 역사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우리 자신의 역사에 대한 의식이 됩니다.
그 감정은 언제, 어떻게 나타났으며 어떻게 하나의 의식으로 변했을까요?
이 두 가지 질문에는 하나의 이론으로 답할 수도 있고 개인적인 증언으로 답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후자를 택하겠습니다.
이론은 많지만
완전히 믿을 만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분리의 감정은 나의 가장 오래되고 희미한 기억과 뒤섞여 있습니다.
첫 울음.
첫 두려움.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나도 세계와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이어 주는 상상과 애정의 다리들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멕시코시티 교외의 한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허물어져 가는 오래된 집.
정글처럼 우거진 정원.
그리고 책으로 가득 찬 커다란 방.
그곳에는 나의 첫 놀이와 첫 배움이 있었습니다.
정원은 세계의 중심이 되었고
도서관은 마법의 동굴이 되었습니다.
나는 책을 읽었고 사촌들과 학교 친구들과 놀았습니다.
그곳에는 무화과나무가 있었습니다.
식물로 이루어진 신전.
네 그루의 소나무,
세 그루의 물푸레나무,
밤이면 향기를 내는 꽃나무,
석류나무,
잡초밭,
스치기만 해도 보랏빛 상처를 내는 가시식물들.
그리고 흙벽.
시간은 탄력적이었고
공간은 회전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현실의 시간이든 상상의 시간이든 모든 시간은
바로 지금이었습니다.
공간 역시 끊임없이 변했습니다.
저곳이 이곳이 되었고,
모든 곳이 이곳이 되었습니다.
골짜기,
산,
먼 나라,
이웃집 마당까지.
그림책들, 특히 역사책을 탐욕스럽게 넘기면서 우리는 수많은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사막과 정글,
궁전과 오두막,
전사와 공주,
거지와 군주.
우리는 신드바드와 로빈슨과 함께 난파했고,
다르타냥과 함께 싸웠으며,
엘 시드와 함께 발렌시아를 점령했습니다.
나는 얼마나 칼립소의 섬에 영원히 머물고 싶었던가!
여름이면 무화과나무의 초록 가지들이 카라벨선이나 해적선의 돛처럼 흔들렸습니다.
바람을 맞는 그 높은 돛대 위에서 나는 섬과 대륙들을 발견했습니다.
나타나는가 싶으면 곧 희미해지는 땅들.
세계는 무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은 마음대로 빚을 수 있는 물질이었고,
갈라진 틈 하나 없는
하나의 현재였습니다.
그 마법은 언제 깨졌을까요?
갑자기 깨진 것은 아닙니다.
조금씩, 조금씩.
친구가 우리를 배신한다는 사실,
사랑하는 여인이 우리를 속인다는 사실,
자유를 외치는 사상이 독재자의 가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리가 흔히 ‘깨닫는다’고 부르는 것은 느리고 구불구불한 과정입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오류와 기만에 공범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곧 잊어버리기는 했어도 최초의 신호였던 한 사건을 나는 비교적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아마 여섯 살쯤 되었을 것입니다.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았던 사촌 누나가 미국 잡지 한 권을 보여주었습니다.
넓은 대로를 행진하는 군인들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아마 뉴욕이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이야.”
그 몇 마디가 나를 뒤흔들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종말이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리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나는 막연하게나마 몇 년 전 저 멀리에서 전쟁이 끝났고, 군인들이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행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게 그 전쟁은 다른 시간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아니고,
여기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은 내가 틀렸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문자 그대로
현재에서 쫓겨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시간은 점점 더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공간도,
여러 공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경험은 계속 되풀이되었습니다.
어떤 뉴스,
아무렇지도 않은 한마디,
신문의 제목,
유행가 한 곡.
그 모든 것은 바깥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였으며 동시에 나 자신의 비현실성을 폭로하는 신호였습니다.
세계가 둘로 갈라졌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현재에 있지 않았습니다.
나의 ‘지금’은 흩어졌습니다.
진짜 시간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정원과 무화과나무,
친구들과의 놀이,
오후 세 시의 햇볕 아래 풀밭에서 졸던 시간,
살짝 벌어진 무화과 열매―검붉은 숯불 같지만 달고 시원했던 그 열매―
그 모든 것이 속한 나의 시간은 허구의 시간이었습니다.
내 감각이 아무리 반대의 증언을 해도,
저쪽의 시간,
다른 사람들의 시간이야말로 진짜 시간이었고,
현실의 현재였습니다.
나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현재로부터의 나의 추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현재에서 쫓겨났다고 말하는 것은 역설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경험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처음에는 형벌처럼 경험하고, 나중에는 의식과 행동으로 변화시킵니다.
현재를 찾는다는 것은 지상의 에덴을 찾는 것도, 날짜가 없는 영원을 찾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진짜 현실을 찾는 일입니다.
우리 히스패닉아메리카인들에게 그 진짜 현재는 우리 나라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영국인들,
프랑스인들,
독일인들.
뉴욕의 시간,
파리의 시간,
런던의 시간.
우리는 그 현재를 찾아 나서서 우리 땅으로 가져와야 했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나는 문학도 발견했습니다.
나는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나를 시 쓰기로 이끌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정의하기 어려운 내적인 필요가 나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나는 깨닫습니다.
내가 말한 ‘현재로부터의 추방’과 시를 쓰는 일 사이에는 비밀스러운 관계가 있었습니다.
시는 순간을 사랑합니다.
시는 그 순간을 한 편의 시 속에서 다시 살리고 싶어 합니다.
시간의 연속에서 순간을 떼어내어
움직이지 않는 현재로 만듭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왜 시를 쓰는지 묻지 않은 채 썼습니다.
나는 현재로 들어가는 문을 찾고 있었습니다.
내 시대의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내 세기의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얼마 뒤 이 집착은 하나의 고정관념이 되었습니다.
나는
현대적인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나의 현대성 탐색이 시작되었습니다.
현대성이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그것은 모호한 말입니다.
사회가 여러 개이듯
현대성도 여러 개입니다.
각 사회에는 저마다의 현대성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그 이전 시대를 가리키는 ‘중세’라는 말처럼 불확실하고 자의적입니다.
우리가 중세에 비해 현대인이라면,
미래의 어떤 현대성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그들의 중세가 되는 것일까요?
시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이름을 과연 진정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현대성은 자신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관념일까요?
신기루일까요?
역사의 한 순간일까요?
우리가 현대성의 자식일까요?
아니면 현대성이 우리의 창조물일까요?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현대성을 따라갑니다.
우리는 그것을 추적합니다.
당시 나에게 현대성은 현재와 뒤섞여 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현대성이 현재를 만들어 냈습니다.
현재는 현대성이 피워 낸 가장 극단적이며 마지막인 꽃이었습니다.
내 경우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상징주의 시대 이후 우리 시대의 모든 시인은 자석처럼 끌어당기면서도 끊임없이 달아나는 그 형상에 매혹되어 그것을 뒤쫓았습니다.
첫 번째는 보들레르였습니다.
그리고 현대성에 처음 손을 댄 사람도 그였습니다.
그러나 손에 닿는 순간 그는 발견했습니다.
현대성이란 손가락 사이에서
흩어져 버리는 시간일 뿐이라는 것을.
현대성을 뒤쫓은 나 자신의 모험을 여기서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은 금세기의 거의 모든 시인들이 겪은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성은 하나의 보편적인 열정이었습니다.
1850년 이후 현대성은 우리의
여신이자 악마였습니다.
최근에는 현대성을 몰아내려는 듯 ‘포스트모더니티’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티란
더욱 현대적인 현대성 말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라틴아메리카인들에게 시적 현대성을 추구하는 일은 우리 국가들을 현대화하려 했던 반복적이고 다양한 역사적 시도와 나란히 진행되었습니다.
그 경향은 18세기 말에 시작되었고 스페인까지 포함했습니다.
미국은 현대성과 함께 탄생했고, 토크빌이 이미 1830년에 보았듯 미래의 모형이 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우리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현대성으로부터 멀어지던 순간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 나라를 ‘유럽화’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현대적인 것은 밖에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수입해야 했습니다.
멕시코 역사에서 이 과정은 독립전쟁보다 조금 앞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 19세기 내내 멕시코인들을 갈라놓고 열광시킨 거대한 이념적·정치적 논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개혁 프로젝트 자체의 정당성보다는 그것을 실행하려 했던 방식을 문제 삼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멕시코 혁명.
20세기의 다른 혁명들과 달리 멕시코 혁명은 어떤 유토피아적 이념의 표현이라기보다 억눌려 있던 역사적·정신적 현실의 폭발이었습니다.
정치이론에서 끌어낸 원칙을 실현하려는 이념가 집단의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숨겨져 있던 것을 빛 아래 드러낸
민중의 격동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멕시코 혁명은 혁명인 동시에,
아니 어쩌면 혁명 이상으로,
하나의 계시였습니다.
멕시코는 현재를 밖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한 곳은
안이었습니다.
묻혀 있었지만 살아 있는 현재.
현대성을 찾으려던 우리의 탐색은 우리 자신의 고대성, 민족의 숨겨진 얼굴을 발견하게 했습니다.
뜻밖의 역사적 교훈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교훈을 배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전통과 현대성 사이에는
하나의 다리가 있습니다.
고립된 전통은 돌처럼 굳어 버립니다.
고립된 현대성은 공기처럼 흩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둘이 만날 때,
하나는 다른 하나에게 생명을 주고
다른 하나는 그것에 무게와 중력을 돌려줍니다.
시적 현대성을 찾아 나선 나의 탐색은 12세기에 그 말이 지녔던 알레고리적·기사도적인 의미 그대로 진정한 quête, 즉 탐색의 여행이었습니다.
나는 성배를 구해 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황무지를 지나고,
거울의 성들을 방문했으며,
유령 같은 부족들 사이에서 야영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현대의 전통을 발견했습니다.
현대성은 하나의 시파가 아니라
하나의 계보입니다.
여러 대륙에 흩어진 하나의 가족입니다.
그 가족은 2세기 동안 수많은 역경과 불행을 견뎌 냈습니다.
대중의 무관심,
고독,
종교적·정치적·학문적·성적 정통주의의 심판.
현대성이 하나의 교리가 아니라 전통이었다는 사실 덕분에 그것은 지속되는 동시에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양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각각의 시적 모험은 서로 다릅니다.
각 시인은 이 경이로운 말하는 숲에 서로 다른 나무 한 그루씩을 심었습니다.
작품들이 서로 다르고 길도 서로 다르다면,
이 모든 시인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의 미학이 아닙니다.
탐색입니다.
현대성이라는 관념이 신기루이며 빛의 반사로 이루어진 한 다발이라 할지라도 나의 탐색 자체는 허황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현대성의 탐색은
기원을 향해 내려가는 일이었습니다.
현대성은 나를 나의 시작으로,
나의 고대성으로 데려갔습니다.
단절은 화해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시인은 세대들의 강물 속에서 뛰는
하나의 맥박이라는 것을.
현대성이라는 관념은 역사를 연속적이고 직선적이며 반복되지 않는 과정으로 보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부산물입니다.
그 기원은 유대-기독교 전통에 있지만 기독교 교리와는 결별합니다.
기독교는 이교도의 순환적 시간을 밀어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시작이 있었고 끝이 있을 것입니다.
연속적인 시간은 타락한 인간들의 행동이 펼쳐지는 무대인 세속적 역사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신성한 시간에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최후의 심판 이후에는 천국에서도 지옥에서도
미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원 속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생성이 아니라 존재의 승리.
그러나 새로운 시간,
우리의 시간은 기독교의 시간처럼 직선적이지만 무한을 향해 열려 있고 영원을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세속적 역사의 시간입니다.
되돌릴 수 없고,
영원히 완결되지 않으며,
끝을 향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시간.
역사의 태양은
미래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미래를 향한 움직임의 이름은
진보입니다.
기독교인에게 세계, 즉 옛말로 ‘세속’이라 부르던 지상의 삶은 하나의 시험장입니다.
영혼은 이 세계에서 구원받거나 길을 잃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관에서 역사의 주체는 개인의 영혼이 아니라 인류입니다.
때로는 인류 전체로,
때로는 인류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선택된 집단으로 나타납니다.
서구의 선진국들,
프롤레타리아,
백인종,
혹은 다른 어떤 존재.
이교와 기독교의 철학적 전통은 존재를 찬양했습니다.
충만함,
완전함,
결코 변하지 않는 것.
그러나 우리는
변화를 숭배합니다.
진보의 동력이자 우리 사회의 모델인 변화.
변화에는 두 가지 특별한 형태가 있습니다.
진화와 혁명.
하나는 속보이고,
다른 하나는 도약입니다.
현대성은 역사적 운동의 가장 앞선 끝이며,
진화 또는 혁명이라는 진보의 두 얼굴을 구현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진보는 자연을 지배하고 그 거대한 자원을 이용하는 데 적용되는
과학과 기술
이 두 힘의 공동작용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현대인은 자신을 역사적 존재라고 정의해 왔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회들은 변화와는 다른 가치와 관념으로 자신을 정의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폴리스와 원을 숭배했지만 진보라는 개념은 알지 못했습니다.
세네카는 모든 스토아 철학자들처럼 영원회귀를 고민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었습니다.
성 토마스는 피조물에서 창조주에 이르는 존재의 단계라는 사다리를 세웠습니다.
그러한 관념과 믿음들은 하나씩 버려졌습니다.
내게는 이제
진보라는 관념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시간과 역사,
그리고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역시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황혼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현대성이라는 관념의 쇠퇴와 ‘포스트모더니티’라는 의심스러운 개념의 유행은 예술과 문학에만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2세기 이상 인간을 움직여 온
근본적인 관념과 믿음의 위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첫째,
무한을 향해 열려 있으며 지속적인 진보와 동일시되는 역사 과정이라는 개념 자체가 의심받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길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연자원은 유한하며
언젠가는 고갈됩니다.
더구나 우리는 자연환경에 어쩌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혔으며 인간이라는 종 자체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보의 도구였던
과학과 기술은
너무나 명백하고 끔찍하게
파괴의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핵무기의 존재 자체가 역사에 진보가 내재한다는 생각에 대한 반증입니다.
그리고 그 반증은,
다른 말로 부를 수 없습니다.
파괴적인 반증입니다.
둘째,
20세기 역사적 주체, 즉 인류 공동체가 맞이한 운명입니다.
민족과 개인이 이토록 큰 고통을 겪은 시대는 드뭅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다섯 대륙의 전제정치.
원자폭탄.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잔혹하고 치명적인 제도 가운데 하나인
강제수용소의 확산.
현대 기술이 가져온 혜택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금세기에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겪은
학살,
고문,
모욕,
인간성의 훼손,
그리고 수많은 다른 고통 앞에서
눈을 감을 수는 없습니다.
셋째,
필연적인 진보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의 조부모와 부모 세대에게 역사의 폐허―
시체,
황폐한 전쟁터,
파괴된 도시―는
역사 과정이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믿음을 부정하지 못했습니다.
교수대와 폭정,
전쟁과 내전의 야만은
진보를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
역사의 신에게 바쳐야 하는 피의 몸값으로 여겨졌습니다.
신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헤겔의 표현을 빌리면 잔혹한 책략으로 가득한, 신격화된
이성 그 자체.
그러나 역사에 합리성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증발해 버렸습니다.
질서와 규칙성, 일관성의 영역 그 자체,
즉 정밀과학과 물리학에서도 오래된 개념인 우연과 재앙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불안한 부활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천년이 끝나갈 때 사람들이 느꼈던 공포와,
우주의 한 주기가 끝날 때마다 아스테카인들이 느꼈던 불안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이 급한 열거를 마무리하며,
역사의 발전 법칙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던 모든 철학적·역사적 가설들의 붕괴를 말해야겠습니다.
그 신봉자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시체의 피라미드 위에
강력한 국가들을 세웠습니다.
이론적으로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그 오만한 건축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감옥으로 변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들을 무너뜨린 것은 이념적 적들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피로와
자유를 향한 열망이었습니다.
유토피아의 종말일까요?
그보다는,
역사의 전개를 미리 알 수 있다는 관념의 종말입니다.
역사적 결정론은 값비싸고 피비린내 나는 환상이었습니다.
역사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움직이는 존재,
인간 자체가
불확정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짧은 검토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매우 높은 확률로 하나의 역사적 시대의 끝과 또 다른 시대의 시작에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대의 종말일까요?
아니면 변형일까요?
알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유토피아의 붕괴는 거대한 공백을 남겼습니다.
그 이념이 실제로 시험받고 실패한 나라들에서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열정과 희망으로 받아들였던 나라들에서 말입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은 일종의
정신적 노천 상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를 억압하는 동시에 위로해 주었던 종교적·정치적 체계의 그늘 아래 살았습니다.
사회는 역사적 존재이지만 모든 사회는 역사를 초월하는 믿음과 관념들의 집합에 의해 인도되고 영감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러한 초역사적 교리 없이 살아갈 준비를 하는 최초의 사회입니다.
우리의 절대적인 가치―종교적이든 철학적이든, 윤리적이든 미학적이든―는 이제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위험한 실험입니다.
전통적으로 공적 삶에 속했던 관념·실천·신념이 사적인 것으로 바뀌면서 생겨나는 긴장과 갈등이 사회 구조 자체를 무너뜨리지 않을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이 다시 오래된 종교적 격정과 민족주의적 광신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이데올로기라는 추상적인 우상이 쓰러진 자리에
부족과 종파와 교회의 묻혀 있던 격정이 다시 살아난다면 끔찍한 일일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 징후들은 불안합니다.
역사에 목적과 방향을 부여하는, 내가 ‘초역사적’이라고 부른 이데올로기들의 쇠퇴는 전면적인 해결책을 암묵적으로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점점 더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한적인 처방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상식적인 태도입니다.
미래를 위해 법을 만들겠다고 나서지 않는 것은 현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당장의 필요만 해결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현재는 우리에게 더욱 전체적이고 엄밀한 성찰을 요구합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생각해 왔고 지금도 굳게 믿습니다.
미래의 황혼은
오늘의 도래를 알립니다.
오늘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비판적 시선을 되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장경제의 승리―상대방의 실패에 의해 얻어진 승리―만을 단순히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은 효율적인 장치입니다.
그러나 모든 장치와 마찬가지로
양심도 없고
자비도 없습니다.
시장을 사회 속에 편입시켜 사회적 합의의 표현이자 정의와 형평의 도구가 되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발전한 민주사회는 부러울 만한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적인 빈곤의 바다에 떠 있는
풍요의 섬들이기도 합니다.
시장 문제는 환경 파괴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염은 공기와 강과 숲만 더럽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도 오염시킵니다.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더 많이 생산하려는 광기에 사로잡힌 사회는
관념,
감정,
예술,
사랑,
우정,
심지어 인간 자체까지
소비의 대상으로 바꾸려 합니다.
모든 것이 사고,
사용하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물건이 됩니다.
우리 사회만큼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낸 사회는 없었습니다.
물질적인 쓰레기와
도덕적인 쓰레기.
‘지금’을 성찰한다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거나 과거를 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현재는 세 시간―과거·현재·미래―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것을 손쉬운 쾌락주의와 혼동해서도 안 됩니다.
쾌락의 나무는 과거나 미래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자랍니다.
죽음 역시 현재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잘 살기 위해서는
잘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빛과 어둠이 번갈아 나타나는 현재는 두 개의 반쪽,
행동과 관조가 만나는 하나의 구체입니다.
우리가 과거와 미래,
영원과 무(無)의 철학을 가져왔듯,
언젠가는
현재의 철학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적 경험은 그 철학의 토대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아무것도,
혹은 거의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인들은 조금 알고 있습니다.
현재는
현존들이 솟아나는 샘입니다.
현대성을 찾아 떠난 나의 순례에서 나는 여러 번 길을 잃었고,
여러 번 나 자신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나는 나의 기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발견했습니다.
현대성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현대성은 오늘이며,
가장 오래된 고대입니다.
내일이며,
세계의 시작입니다.
천 살이면서,
방금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나우아틀어로 말하고,
9세기 중국의 표의문자를 그리며,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납니다.
온전한 현재.
방금 땅속에서 발굴되어 수세기의 먼지를 털어 내고 미소 짓다가,
갑자기 날아올라 창문 밖으로 사라지는 현재.
시간들과 현존들의 동시성.
현대성은 바로 직전의 과거와 결별하지만,
그것은 천년의 과거를 구해 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신석기 시대의 작은 풍요 여신상을
우리와 동시대의 존재로 만듭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현대성을 뒤쫓지만 결코 붙잡지 못합니다.
현대성은 언제나 달아납니다.
모든 만남은 하나의 도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껴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사라져 버립니다.
손에 잡힌 것은 한 줌의 공기였을 뿐입니다.
그것은
순간입니다.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새.
우리는 그 새를 살아 있는 채로 붙잡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날개를 펼쳐 사라지고,
한 줌의 음절이 됩니다.
우리의 손은 다시 텅 비어 있습니다.
그때,
지각의 문들이 살며시 열립니다.
그리고
또 다른 시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그것을 찾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찾아 헤매던,
진정한 시간.
그것은
현재.
그리고
현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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