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안애서 잡은 사진이라 조금 사진이 보기 그렇치만 널리 이해하시고~~
가라판시내 초입에서----(왼쪽에 모빌주유소와 같이 있는 맥도날드분점이 보여요)
오른쪽 건물은 1층에는 꽤 오래된 중국식당 광동주루, 2층에는 한국인 운영당구장(요즘도 하는지??)
멀리 보이는 높은 검물이 하파다이호텔 타가동
사이판에서 제일 복잡한 삼거리 ㅎㅎ (오른쪽 사이판오션비유호텔은 겉만 보기 좋아요)
오른쪽 검물이 DFS 갤러리아 면세점
왼쪽 파란지붕있는 곳이 하파다이쑈핑센터로 조텐마켓이 이 쑈핑센터안에 있고 면세점 문 건너편이 XBC
요즘 인기좋은 아이러브사이판 (문 앞에서 매일 저녁 이벤트를 해 줍니다)
몇일전 손님과 바로 상기 아이러브사이판 앞에서 손님을 만나기로 하여 갓더니
방글라데시 택시기사들이 몰려와 "아유차이니스(중국인이냐)?? 일리갈택시(불법택시냐)??"운운하며 경찰한테
전화한다고 법석을 떤다 하필이면 아는 놈이 하나도 없어 "전화 당장해라, 니네들이 뭔데?? 너희들 나 모르냐??
라비(방글라데시협회장), 몰라(먗냔전 미국으로 간 놈),마문 등등 방글라데시인들증 사이판에서 잘자리잡은
아는 이름을 대가며 역정을 내고 당시 몰던 차는 도요다 캠리였는데 불법택시하는 사람이 캠리몰고 다니는 것 보았냐??
내가 경찰에 전화하겠다고 하니 고개 숙이며 죄송하다고 연발하며 요즘 경기도 좋치 않은데 불법택시들
때문에 매우 힘들어 잠시 오해를 했다고 이해해 달라고 하며 손님에게도 사죄하는 잠시 소동이 있었다,
똑 같이 사이판에 와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택시사업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붑법으로 택시사업을 하는 사람들
결국 합법앞에 불법은 무용지물이며 요즘 불법택시하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고 음성화되어 잘 눈에 뜨이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사이판에서는 미국시민권자(원주민은 모두 시민권자들이다) 들만이 합법적으로 택시사업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합범화를 시키는 과정중에는 별로 보기 좋치 않은 (위장결혼)과 같은 과정을 거치긴 하였지만
방글라데시인들은 결국 사이판의 원주민들이 주로 하던 택시사업을 밀어내고 그들이 독점하고 있다.
아무 것도 없이 맨몸으로 사이판에 와서 그야말로 맨몸으로 그들은 이렇게 나마 합법적인 지위를 얻고 사업을 하고
살아가며 언제가는 이룰지 모를 아메리칸드림을 위하여 오늘도 몸부림치고 있다.
그들이 불법택시냐? 고 물어본 바로 불법택시는 대부분 조선족들이 하고 있는데
이제는 불법택시하는 사람들도 많이 줄어들고 밥벌이가 없어 벙망 많이들 사이판을 떠났는데....
우리와 같은 핏줄을 같고 있는 조선족들이 똑 같은 일을 하면서 방글라데시 합법적텍시를 무서워 공항에는
잘 올라가지도 못하며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와서 이야기지만 사이판의 불법택시 원조는 바로 저 이 재 원 입니다.ㅎㅎ
사이판에 와서 티니안전문여행사를 하던 95년부터 97년 상반기까지는 한국에서 하루에 비행기가 5대
(아시아나, 대한항공, 콘티넨탈, 노스웨스트등) 들어 오던 좋은 시절이였고 그당시 결혼만 하면
대부분 괌,사이판으로 신혼여행을 왔으며 심지어는 보험단체, 동네 계하는 아주머니단체 등등
한마디로 돈이 귀한 줄 모르던 시절,,,,,(금방 부자되는 줄 알았어요^^)
97년 8월인가??
괌에서 터진 대한항공의 추락사고~~~~
이것은 곧이어 불어닥친 IMF 사태의 전주곡!!!
정확히 97년 12월10일 거의 마지막으로 티니안섬에 40명을 관광 보냈다
그리고 97년12월11일부터 손님 0의 행진....
12월25일경이 되어서 한국에서부XJ 미리 예약하고 온 손님 2명 그리고 98년1월... 손님 0의 행진-----ㅜㅜ
한국의 친지들과 통화를 하니
어떤 분은 " 한국은 깨진 유리그릇이야...."
또 다른 분은 "60년대초로 돌아간 느낌이야..."
한국의 대형 여행사들의 계속적인 부도 소식...
그리고 사이판 현지 여행사 사장들의 증발...
그 때 그 충격이란??? ㅜㅜ
아무튼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집에서 빈둥빈둥
밤낮이 바뀐 생활....
곰곰 생각하다 차는 승합차가 2대나 있는데 이것을 활용하여 뭐 할 것이없을까 고민하다가
불현듯 생각난 것이 당시 사이판에 많이 와 있던 한국의 봉제공장들....
봉제공장의 공원들은 한국인이 사장이면 대부분 조선족
조선족...
그래 바로 이 것이다..
우리말이 통하는 사람들이니 봉제공장 조선족 사람들을 대상으로 관광안내를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갖고 우리집에서 일하던 조선족 아줌마를 앞장세워 관광안내 짜라시를 만들어
봉제공장 기숙사 방마다 돌리고 문앞에 부치는데 그 때 봉제공장 문앞에서 한국청바지를 좌판에
올려 놓고 남대문시장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젊은이들.....
바로 얼마전까지 잘나가던 한국여행사 현지 가이드들이 눈에 보인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그리고 몇일후 난리가 났다.
주말만 되면 전화가 쉴 새가 없다.
당시 관광안내문에 맨밑에 그냥 별 생각없이 넣어던 픽업서비스 1인당 $3
바로 이 것이 대박이 났다.
사이판에는 대중교통이 없어 봉제공장 근무하는 직원들이 어디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다.
다른 봉제공장에 친척이 와 있어 만나보려고 해도 한번 갔다 오려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그 때 봉제공장 조선족 사람들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그런 것이였고
어떤 사람들은 차를 탈때마다 " 이런 차를 운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들을 한다.
친척 만나거나 친구만나려면 마켓에 연락하여 물건을 사고 픽업서비스를 받거나
아니면 믿지도 않는 교회 같은 곳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너무나 바빴고 정신이 없었다
그 때 사이판 구석구석을 안다녀 본 곳이 없다.
지금은 봉제공장이 모두 철수하며 그런 못습들은 없어졌지만
사이판에 이런 모습도 있고 이렇게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라는 것을 새롭게 경헙한다
아무튼 그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조금씩 그런 칙업서비스를 하는 차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사이판불법택시드이 후에 우후죽순으로 생기게 된 동기이며 지금도 가끔은
사이판에 오래된 조선족들은 그 때를 기억하고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