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의 입시제도는 2~3년이 못 가서 거듭 바뀌며 반세기를 이어왔다. 입시경향에 따라 인기 과목과 비인기 과목이 나뉘고 배점에 따라 거의 폐기처분되다시피 하는 과목도 생겨났다. 교과서 암기 경쟁인 학교시험에 비해 사고력이나 창의력위주로 출제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고 실시한 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 지도 벌써 7년이 지났지만, 그 전의 대입예비고사나 대입학력고사 때와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출제경향에 따라 다음해 학교현장에서의 교육지침이 흔들리는 것도 여전하다.
가장 나쁜 것은 학교교육이 입시위주 교육으로 굳어지는 것을 막고 전과목에 걸쳐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도록 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내신제가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한 또 하나의 과열경쟁을 부른 점이다. 이 경쟁은 너무도 가혹해서 1.2학년 때 청소년다운 꿈(?)속에서 방황하거나 3년 간 치열한 `공부기계'로 살지 않으면 내신성적이 나빠져 3학년 때 전과목 만점을 받아도, 재수(再修)가 아니라 3~4수(修)를 해도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없게 돼버린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기둥을 치면 들보가 울리고 옥상을 치면 지하실바닥까지 울린다.대학입시 성격이나 방향이 조금만 달라져도 가장 화급하게 영향을 받는 고등학생뿐 아니라 중학생, 초등학생, 유아들까지 그 여파에 휘말린다. 유치원에서부터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예습복습의 습관을 들인다며 아이들을 교과과목에 얽어매 놓는 것은 그래서이다.
독일에 사는 한 후배의 부인은 어느날 초등학생 아들의 담임선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복습을 시키는 것은 좋지만 `절대로 예습만은 시키지 말 것'을 당부하는 편지였다. 아이가 예습을 했기 때문에 교과내용을 이해하는지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지 파악할 수 없어 지도가 어려우며, 아이도 한번 익힌 내용 때문에 학교공부에 흥미를 잃기 쉽다는 설명이었다고 한다. 독일을 비롯한 서구에는 학습참고서나 문제집 같은 종목의 책이 없다. 한국 전 출판량의 절반이 그런 책이라고 설명해줘도 그게 어떤 책인지, 왜 그런 게 필요한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교과서를 더 잘 연구해서 철저하게 만들면 될 것 아니냐"는 것이 그들의 반응이다. 학교 수업보다 학원 수업을, 학교 선생님보다는 과외교사를 더 믿고 의존하는 한국의 과외열풍은 더욱 상상조차 하지 못함은 물론이다.
엇바뀐 학교교육과 과외교육
전통적으로 과거시험이 신분상승과 생계수단이었던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입시가 그것처럼 과열되었다. 이상한 것은 그러다 보니 거꾸로 학습지도는 가정에서, 생활지도는 학교에서 맡게 된 점이다. 학교교육을 못 믿고 내 아이만 잘되게 하려는 학부모들은 거액의 사교육비를 들여 개인과외와 학원교습을 시킨다. 당일 예습은 고사하고 다음 학년 교과까지 미리 가르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교육열 때문이다. 반면 학교에서는 머리모양, 옷차림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구세대 유물인 군대식 규율을 강요한다. 학생들만 학교와 집 사이에서 등터진다. 그래서 학교를 감옥처럼 여겨 일탈자가 느는 것도 과외의존도를 높이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이 과외열풍은 괴물과 같아서 역대 정권이 금지조치를 내놓을 때마다 더욱 사나워지고 홍수와 같아서 한 곳을 막으면 다른 곳으로 터져 나간다. 어떤 제도나 단속도 "과외 없이 교육 없다"는 국민적(?)확신과 "돈=점수"라는 민간신앙을 막지 못해온 것이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대학수능시험이 너무 쉬워 변별력을 잃고 동점자가 많을 것으로 드러나자 논술과외가 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다. 언어영역 고득점자가 다소 유리하다는 보도가 나오자 언어영역 점수 따기와 논술에 대비한 저학년 과외도 조직되고 있다고 한다. 과외란 본디 학교 내에서의 학과목 외의 활동을 말하는 `엑스트라 커리큘럼'에서 나온 말이니 그 반대인`과내', 즉 학교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문법이나 낱말암기에 치중된 집체적 국어교육은 학생 개개인의 독서교육과 말하기 글쓰기 지도를 어렵게 한다. 특히 독서지도는 일부 학교에서만 독후감을 쓰게 하는 등 소극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폭넓은 독서와 토론으로 창조적 사고력과 논리적인 대화능력을 길러준다면 나중에 논술과외가 필요할 리 없고 책 안 읽는 사회와 학문의 위기를 걱정하게 될 리 없다.
`평생의 독서습관' 붙여주자
따라서 수많은 과외에 시달리며 `암기기계'가 되어 가는 어린이들과 과외를 안 시키면 삶이 불안한 과외중독증 부모들에게 나는 해결책으로 차라리 독서과외를 시킬 것을 권한다. "또 과외냐"며 펄쩍 뛸 건 없다. 방과후 `과내 공부'로 하든지 과외비 대신 책을 사주고 인터넷 독서방이나 학부모들의 자원봉사로 어린이들을 조직, 스스로 읽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릴 때부터의 독서습관'을 몸에 붙여 평생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단, 어린이들의 특성상 독서를 지겨운 학과목처럼 만들어 책 읽는 재미를 뿌리뽑고 책을 멀리하게 만들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
공부해라 공부해라하는 잔소리처럼 매일 책 읽어라 책 읽어라 한다. 누구는 몇권 읽었는데 너는 몇 권밖에 못 읽었냐고 비교한다. 독서숙제를 매일 검사하고 점수를 매긴다. 독서과외 숙제는 어떻게 하고 TV나 보고 있느냐고 꾸짖는다. 슬슬 읽으면 야단치고 맹렬히 읽어야 칭찬한다. 책은 되도록 어른이 보기에 양서, 무게 있고 권위 있는 `권장도서목록'에서만 골라준다. 그러면 그 아이는 책이라면 평생 싫어하고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단연코 읽지 않을 것이다.
그 반대로 하면 성공한다. 어린이 독서지도에서는 스스로 재미있는 책을 골라 읽고 싶어하도록 `자발성'을 키워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이 열렬한 교육열을 잠시 자제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어린이들의 독서활동을 지켜봐 주는 것이 좋다. 강요나 경쟁에 의한 억지 독서는 책읽기를 또 하나의 학과목처럼 지겹게 만들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