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가문 바탕에 주홍 글씨 A>
이 구절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은 끝났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무언가는 아직도 고요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슴에 금실로 수놓은 주홍글씨 A를 단 헤스터의 숙연한 얼굴, 핏기 없는 얼굴로 가슴에 손을 얹고 고뇌하는 딤스테일 목사, 마녀 요정과 같은 펄의 경쾌한 발걸음, 주름으로 쭈그러든 불구의 악마 로저 칠링워드 노인의 음흉한 미소가 - 한동안 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맴돌았다.
헤스터는 천성이 정열적이고 감정적이긴 하지만, 여리고 기품 있고 착하기만 한 미모의 여인이었다. 그러한 그녀가 빨갛게 타 들어가는 주홍색 표적을 가슴에 달고, 치욕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것은 언제부터, 그리고 무엇 때문일까? 딤스테일과 죄를 저지른 그 순간부터, 그리고 그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던가. 아마 로저 칠링워드 노인이 젊은 헤스터 프린을 속이고, 자신과 어색하고 거짓된 관계를 맺게 한 그 순간부터, 그리고 그 때문에 그녀의 영혼은 불행해졌을 것이다. 그러한 그녀가 너무나도 가엾었고, 그러나 펄을 돌보며 꿋꿋하고 강인하게 그 고통을 이겨낸 그녀가 도저히 죄인이라 할 수 없는 숭고하고 위대한 그런 사람 같았다.
과연 헤스터 프린은 진정 죄인이었을까? 지금 우리가 사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이 사회도 그녀와 딤스테일 목사가 순간 저지른 그것을 죄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마음과, 그 전후 사정을 이해한 후에는 충분히 용서 해 줄 수 있는 일로 생각된다. 그러나 신대륙에 청교도의 낙원, 순수한 영혼의 낙원을 세우고자 했던 당시에는,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것은 영혼을 더럽힌 것이므로 마땅히 구원받지 못할 일이었다. 이에 딤스테일 목사도 그렇게 고뇌하면서도 진실을 외면하며 위선적인 생활을 택했을 것이다.
인간이란 완전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구나 가슴에 주홍 글씨를 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므로, 주홍글씨를 거부한 딤스테일 목사도 인간이기에 그토록 괴로워했을 것이다. 또한 펄이라는 마녀와도 같고, 요정과도 같은 죄의 산물이요, 구원의 희망인 아이도 은연중에 인간으로서의 동정심의 결여된 자신의 속에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마지막 순간 목사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펄은 눈물을 흘림으로써, 목사는 분명 구원을 받았을 것이고 펄 또한 희로를 느끼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때의 감동을 아직도 난 잊을 수가 없고, 하나님의 이끄심에 따른 목사의 용기에 지금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또한 결국 인간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구원받을 수 있으며, 인간다운 행복한 삶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이 말하고 있음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청교도 사상에 대한 뭔가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는 듯한, 재미있으면서도 왠지 어려운 책이었다. 죄의 과정은 쓰지 않고 그 후의 대가만을 서술한 독특한 구성이 새로웠고, 예상치도 못했던 반전 순간의 감동 등으로 난 이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또한 기쁨과 슬픔을 등장인물들과 함께 느낄 수도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왠지 내가 좀 더 성숙해진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A라는 글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뇌어 보며 이제 펜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