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 이렇게 앳될 때가 있었지.. 꼭 운동을 해서가 아니더라도
난 좀 남성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 사진은 그나마 경기중이라도 귀엽게 나온 거 같아서 퍼 온 사진..
인터뷰에서든 어디서든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는다.
여기에 몰아 쓰고 같은 질문을 받으면 이 글을 보라고 해야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88년 올림픽 복식 경기, 91년 지바에서 북한과 단일팀으로 출전한
세계선수권, 93년 예테보리에서 단식 우승한 세계선수권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88올림픽에서는 단식 우승에 대한 욕심도 내심 컸는데,
16강에서 중국도 아닌 소련 선수에게 무릎을 꿇으며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반면에 일찌감치 떨어져서 홀가분한 면도 없지 않았다.
양영자 선배와의 복식경기에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최강 중국팀은 끊임 없이 엔트리를 바꾼 끝에 대회 한 달 전에 명단을 확정했고,
그 팀이 바로 자오즈민-천징 조. 둘 다 왼손 드라이브가 전형이었고 맞상대 경험도 전무...
분석도 안 되어 있던 팀이라 경기를 하면서 약점을 찾아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 몇 번 랠리를 주고 받으면서 어렵지 않게 약점을 찾았다.
왼 손 조합이라 공을 치고 돌아나가는 선수 쪽으로 공을 주니 흐름이 원활하지 않았고,
둘이 발이 엉켜 넘어지기도 했다. 1세트 결과는 21-19 승리!!
2세트는 내 주었지만, 3, 4세트는 점수차를 더 벌이며 과감하게 밀어부쳤다.
마지막 자오즈민의 드라이브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체육관은
귀가 멍멍할 정도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정작 양영자 선배와 나는 가벼운
웃음만을 주고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1등을 해서 태극기가 올라갈 때는 눈물이 나지 않는데,
다른 선수들이 이겨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엔 나 혼자 눈물을 닦을 때가 많다.
1991년, 처음으로 남북단일팀이 결성되어 태극기가 아닌 한반도기를 가슴에 달고
뛰었던 지바에서의 단체 결승전도 잊지 못할 경기 중 하나...
헝가리를 꺾고 오른 결승에서 유순복이 덩야오핑을 2-1로 누르고 내가 가오준을 2-0으로
이기면서 중국의 기세는 꺾였다. 목이 터져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 대는 민단과
총련 응원단의 함성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날 중국 팀이 아니었다.
몸이 좋지 않던 이분희와 내가 조를 이룬 복식 경기에서 덩야오핑-가오준 조에
1-2 역전패를 당하면서 경기의 흐름이 넘어갔고, 내가 또 다시 덩야오핑에게
패하면서 승부는 원점. 이제 모든 것은 유순복과 가오준의 승부에 달려 있었다.
유순복은 강력한 백핸드 드라이브로 1세트를 따 내고,
2세트는 가오준이 거의 따 낸 승부를 과감하게 몰아부치며 결국 역전!
3시간 40여 분의 접전 끝에 승리가 확정되면서 남북 단일팀의 선수, 감독, 임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둥켜 안고 울었다.
시상식에서는 태극기가 아닌 한반도기가 올라갔고, 애국가가 아닌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선수든 응원석의 관중이든 모두 노래를 따라 부르며 펑펑 울었다.
원래 시상대에 올라갈 때는 트레이닝 복을 입는데 다같이 부둥켜 안고 울고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정신 없이 올라가서 잘 보면 우리만 반바지 차림이다.
탁구를 하면서 그 때 처음 울었던 것 같다. 그냥 눈물이 쏟아지는데..
그냥 힘들게 이겨서 흘린 눈물은 아니었으리라.. 그 때는 정말 통일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기쁨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기뻤지만, 그 후로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단일팀 결성 노력이 매번 물거품이 되어 아쉬울 따름이다.
내가 감독 생활을 하면서 꼭 한 번 다시 이루어 내고 싶다.
출처 : 굿바이셀리(goodbuyselly.com) 현정화 샵 스토리 中..
요즘에 '코리아'라는 현정화선수에 대한 영화가 나와서
여기저기 뒤적 현정화님이 직접 쓰신 스토리라길래
봤는데 찡하더라구요 ~ 링크 타고 들어가서 보시면
다른 스토리도 많아요 ^^
첫댓글 현정화님이 집적 쓰신 글이래요~
감동어린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