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후감 ; 정진옥
식물의 정신세계
Peter Tompkins, Christopher Bird; 정신세계사, 1998
작년 어느날, 자주 들리는 서점에서 “식물의 정신세계” 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 이를 구입하여 읽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실로 경이롭기 그지없어, 주변의 보다 많은 분들에게 이러한 내용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됐다.
바쁜 행보로 이민생활을 지탱해 나가다가, 우연한 계기가 있어 2006년 5월부터 산을 매우 좋아하게 된 나 – 물론 아내 다음 다음 다음으로 - 는 매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거의 예외없이 등산을 하며 – 하해같이 넓은 가슴의 아내에게 우주의 축복을 ! - 지내는데, 평소에 막연하게나마 산속의 동식물들을 대하면서, 우리들 인간들이 이들에게는 저승사자, 무뢰한 또는 악성 암세포와 같은 두렵고 해로운 존재일 것이라는 민망한 마음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을 읽어가면서, 사실이 그러하리라는 것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한송이 들꽃의 아름다움이 솔로몬의 영화보다 못하지 않다는 의미의 바이블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산을 다니다 보니, 식물들의 개성적인 아름다움이나 정교한 구조공학적 성장형태나 자기방어적 시스템구비 등이 결코 우연히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며 장구한 세월에 걸쳐 식물들 스스로의 사고와 판단과 결단으로 조금씩 조금씩 변형시키고 발전시켜온 진화의 결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식물들 스스로가 자기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어야 하며, 나비나 벌들의 취향이나 인식의 내용을 알아챔은 물론이고, 어떤 것이 그들에게 충분히 탐스러운 자태거나 매력적인 향기가 될 것인지에 대한 자체적인 판단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고, 또한 동료들이나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과 의견을 나누고 이를 자기의 성장방향에 반영할 수 있는 자율적인 의지와 창조적인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쩌면 모든 생명체들이 우리들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거의 모든 능력을 다같이 가지고 있고 이를 활용하여 그들의 생활을 발전적으로 원활히 영위하고 있을 것이나, 단지 우리들 인간들과 서로 소통이 안되는 관계로 우리가 그들을 무시하며, 그들을 하등생물이라고 낮추고 우리 스스로는 고등생물, 나아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시대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고, 따라서 기실 어리석고 무지한 존재란 다름아닌 바로 우리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사실 어떤 때는 “인간만이 중생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고, 인간 이외의 모든 존재는 모두가 다 부처의 상태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상념이 들기도 한다.
한송이 들꽃의 치장이 왕의 영화에 못지 않다는 비유는, 즉 이름 모를 평범한 식물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능력과 창조능력이 인간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말이 될 수가 있을 것이고, 그러한 꽃의 아름다움이나 꿀의 향기로움에 끌리는 벌나비의 인식능력이나 정서도, 인간이 꽃을 보면서 느끼는 인식이나 정서수준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별로 무리가 없는 예단이 아니지 않겠는가.
또 삶을 영위하는 기본양태가, 주변환경이나 다른 생명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라는 관점에서 식물들의 삶과 인간들의 삶을 비교해 본다면, 식물들의 삶의 이모 저모를 아직 소상히 알지는 못하지만, 식물들이 이 세상 거의 모든 생명체를 자양하는 기본이 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주변에 크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 인간들 보다는 식물들이 훨씬 더 환경친화적이면서 이타적인 양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겠다.
바이블의 창세기 제1장을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라는 절이 있다.
이어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라는 구절이 뒤로 나온다.
이로 보자면 식물의 출현이 인간의 탄생에 비해 3일이 앞선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 천지창조기간을 6일로 보는 시간단위에서의 3일이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과학적인 관점에서는, 수목이 지구상에 출현한 것은 대략 4억3천만년 전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현세인류의 시원은 약 20만년 전으로 본다고 하는데, 설사 100만년 전, 혹은 1000만년 전이라고 하더라도, 그 발생시기의 선후를 따지면, 인간의 역사는 수목에 비하면 아직 호적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라고 하겠다.
일반적으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할 경우, 식물들은 아주 장구한 세월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을 만한 - 에 걸쳐 대를 이어왔기에, 어쩌면 식물들의 삶이란 우리 인간불자들이 지향하고 있는 부처의 삶, 보살의 삶을, 아주 까마득한 옛날에 이미 다 실현해 낸 완전한 존재들이 아닐까 하는 매우 단순하고도 파격적인 생각을 해 본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보면 그 분의 삶의 중요한 고비에는 특히 나무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어머님인 마야부인이 룸비니 동산에서 ‘무우수’의 가지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에 탄생하셨다는 설화가 있고, ‘보리수’ 아래에서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셨으며,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셨다는 것이니, 나무들과 부처님이, 먹이사슬의 주와 종의 관계나, 지배하고 종속되는 대립적인 광경이 아니고, 따뜻한 우호 관계로 함께 호흡하고 상호 교감하신 것은 아닐까 싶게 평화롭기만 하다.
이래저래 나무를, 식물을, 동물을, 아니면 다른 뭇 생명체를 깔본다는 것은 하룻 강아지의 치기라고 할, 어리석음의 발로가 아닐까 싶어 진다.
또한 이 책의 후반부에 소개되는 찬드라 보스 ( Sir Chandra Bose ) 라는 이가 말한, “물체에 작용하는 힘에 대해 연구해나가는 동안, 나는 생물과 무생물간에 경계선이 없어지고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경이로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는 내용에 이르면 또 한차례 실로 놀랍고 신비한 마음이 된다.
코페르니쿠스적 대 전회라고 할까, 아니면 Paradigm Shift라고 할까, 아무튼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고 믿어 왔던 인간과 동물과 식물의 구분, 생명체와 무생명체와의 구별 등이 모두 우리들 인류의 무지의 소치이고 언젠가 우리들의 후손들은 이를 보다 확실히 인식하고 이해하여 전혀 새로운 생사관과 우주관을 지니게 되어 보다 더 평화롭고 친환경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어지지 않겠는가 생각되어지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발원해 본다.
아마도 이런 시기가 되면 불교에서의 “ 4부 중생” 의 개념이나 “보살의 삶” 이라는 개념이 모든 유정물들의 삶에서 보편적인 가치가 되어짐으로써 지금의 우리가 말하는 불국토라는 이상세계가 전 우주적으로 실현되어진 가운데, 모든 중생이 더 이상은 ‘중생’이 아니고 모두 다 부처와 보살이 되어 완전한 삶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아래의 내용은 2014년 8월6일의 월례모임에서 소개한 바 있으나,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여겨지므로, 비록 이 책에 수록된 내용이 아닌 것도 있지만, 여기에 그대로를 다시 소개한다.
***
클리브 벡스터 ( Cleve Backster; 1924~2013 )
1966년 미국의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인 클리브 벡스터는 검류계를 이용, 식물의 자극과 반응에 대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식물들도 특정상황에 직면했을 때 인간처럼 잠시 기절하거나 아예 실신함으로써 그 상황을 모면하려는 반응을 보였으며, 식물을 태우는 실험을 하려 하자, 죽은 척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나중에야 비로소 일상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감정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백스터는 드러시너( Dracaena; 백합과의 열대관목 )의 잎에 거짓말 탐지기를 연결시켰다. 그리고 물을 주었을 때, 뿌리에 물이 도착하기도 전에 드러시너가 반응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기분 변화에 따라 그려지는 파동과도 흡사하게 나타났는 바, 물을 주면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사람을 알아본다.
백스터는 식물이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지 실험했다. 어느 학생에게 식물을 다른 식물 앞에서 뽑아서 밟아 죽이게 했다. 남아있는 식물에 거짓말 탐지기를 연결시켜 놓고 학생들을 한 명씩 지나가게 했다. 그 식물은 다른 5명 학생들에게는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식물을 뽑아 밟아 죽인 학생이 지나가자 심하게 곡선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식물이 자기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나 사물을 기억하고 알아본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백스터는 드러시너가 다른 것에도 반응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거짓말 탐지기에 연결해 놓은 잎을 태워보자’ 라는 생각을 머리 속에 떠올렸다. 이 생각을 하자 성냥을 가지러 가기도 전에 그래프 종이 위에 상승곡선이 신속하게 나타났다. 그가 성냥을 가지고 왔을 때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더니 절정에 도달했다.
그 식물은 백스터가 자기를 태우겠다고 결심했을 때와 성냥을 가지고 왔을 때 위험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가 단순히 잎사귀를 태우는 척 거짓행동을 취하자 그 식물은 거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식물은 사람의 생각이 거짓인지 진짜인지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을 구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프가 갑작스럽게 변한다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심리 상태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그럼 드러시너도 그러한 심리상태의 변화가 있단 말인가? 드러시너가 백스터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단 말일까? 이 실험외에도 백스터는 상추, 양파, 오렌지, 바나나등을 비롯해 다수의 식물과 과일에게도 똑같은 실험을 하였고 역시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식물도 느끼고, 기억하고, 생각하고, 감정을 나타내며, 다른 식물이나 동물들과 교감하며 인간의 마음까지도 간파할 수 있으며, 우주와도 교신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들이 정밀한 실험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사유능력이야말로 인간의 고유한 속성으로서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보다도 인간이 우위에 설 수 있는 근거라고 믿었던 철학자들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문 분야의 지식만으로도 이 세상의 법칙을 해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과학자들이나 일반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주는 일이다.”
“이 책은 식물의 비밀들을 탐구함으로써 보편적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그 본질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이 책의 저자들은 식물의 놀라운 능력들을 밝혀낸 여러 가지 과학적 실험 결과들을 우리에게 소개해 줌으로써 전혀 새로운 세계를 알려준다 .분명한 사실은 식물이 언제나 들러리처럼 우리 인간 곁에 다소곳하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구상의 어느 생명체보다도 예민하게 주위에 반응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모든 생명들에게 기본 양식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찬드라 보스 ( Sir Chandra Bose; 1858~1937 )
1899년에, 무선전파를 수신하는 금속검파기는 계속사용하면 감도가 떨어지고 잠시 쉬게 하면 정상으로 돌아오는 등, 금속도 사람이나 동물처럼 피로와 회복을 겪는 현상을 발견함으로써, 생명이 없는 금속체와 살아있는 유기체라고 불리는 것들 사이에 경계선이 거의 없다고 발표했다.
식물에게서도 비슷한 결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일어, 정원에 있는 마로니에 잎과 시장에서 사온 무우 당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보니, 모두가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클로로포름을 쐬면 동물처럼 마취가 되고, 신선한 바람을 쐬면 마취에서 깨어나며, 도마뱀 거북 개구리 등의 피부와 포도 토마토같은 과일이나 채소의 껍질이 아주 비슷하게 반응함을 밝혔다. 결국, 동물 식물 금속 등으로 구분짓는 물리적 생리적 영역의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러한 현상들을 접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 – 빛속에 떠도는 먼지, 지구상의 온갖 생명체들, 우리의 머리위에 쏟아지는 햇빛같은 것들 – 에는 서로 삼투되는 통일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저는 3000년전의 우리의 조상들이 갠지스강변에서 외쳤을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조금은 알것도 같았습니다. - ‘이 우주의 천변만화하는 삼라만상이 사실은 하나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자야말로 영원한 진리를 얻은 자이다’ “
“자연의 모든 것에는 생명의 맥박이 뛰고 있으며, 이 상호관련된 자연의 참모습은 인간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을 때라야만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물체에 작용하는 힘에 대해 연구해나가는 동안, 나는 생물과 무생물간에 경계선이 없어지고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경이로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괴테 (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 : 지구도 식물이나 동물과 똑같은 리듬으로 숨을 쉬는 유기체이다.
페히너 ( Gustav Theodor Fechner; 1801~1887; 라이프치히 대학의 물리학 교수 겸 의학박사 ) : “식물은, 인간이란 두발을 가진 짐승은 왜 저리도 분주하게 돌아다닐까 궁금해하면서 자신이 뿌리를 박은 곳에서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다”
실제 산행에서의 경험 : Cholla Cactus의 튕겨드는 듯한 달라 붙음, Sugar Pine의 낙루 (송진방울), 큰 나무밑을 지나갈 때의 편안한 느낌이나 어떤 류의 기감
중생 ( Sattva ) : 뭇 생명, 모든 생류, 일체유정. 태생 난생 습생 화생을 총체적으로 뜻하며, 정식이 있는 생물, 즉 유정물 전체. 모든 존재물은 유정 무정간에 그만한 존재이유가 있으며 법 ( Dharma ), 즉 진리의 체성을 지니는 것으로, 유정물 뿐만 아니라 무정물까지도 성불의 대상임.
아메리카 인디안 : 거의 모든 인디언들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음.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고 자연과 자신을 하나로 보는 경향. “모든 것은 서로 통한다.” “신이시여, 제가 저 먹이를 잡지 않으면 안됨을 용서하소서.” “너의 몸이 나를 살찌우니, 나의 땀은 너를 배부르게 하리라.”
샤머니즘 : 이상심리상태에서 초자연적 존재(신령, 정령, 사령 등)와 직접 접촉ㆍ 교류하고, 이 사이에 예언, 복점, 치병 등을 행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적 형태.
우파니샤드 : 만유의 근본원리를 탐구하여 대우주의 본체인 브라만(梵)과 개인의 본질인 아트만(我)이 일체라고 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 인간은 업(業)에 의해 윤회를 반복하지만 선정(禪定) ·고행(苦行)을 투철히 하여 진리의 인식에 도달함으로써, 윤회에서 해탈하여 상주 불멸의 범계(梵界)에 이르는 것을 이상으로 함. - ‘네가 그것(아트만)이다 .’
첫댓글 식물의 정신세계 독후감을 작성한 정진옥님은 저와 함께 오랫동안 마라톤을 하고 잇으며 현재는 원불교 엘에이교당 선요가반에도 꾸준하게 5년넘게 나오고 있으며 저와 함께 일원상 부처님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