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문학세계 김윤선 1952년 장영희는 태어나면서부터 소아마비를 앓았다. 자라면서 목발과 휠체어를 벗삼아 의지해 왔다. 서강대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척추암이 몸으로 침투하여 오랜 병고를 치르면서 또 간암으로 전의되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집필을 했다. 아버지 장왕롱 서울대 영문학 교수의 육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나 부모님께 사랑을 받았지만 자신의 걷지 못하는 불편 때문에 사회의 모욕적인 대우를 받기도 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가 업고 다녔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는 목발을 짚고 아버지가 근무하는 서울 부족 중고등 학교를 다녔다. 딸 곁에는 늘 어머니가 있었고 장영희는 어머니께 미안한 생각만 들었다. 대학교 입학 때 장애라는 이유로 어느 곳에 시험도 칠 수가 없었고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다. 입학 원서를 넣을 때 아버지가 딸의 휠체어를 밀고 이 학교 저 학교를 다녔지만 모두가 고개를 흔들며 거역을 당했다. 체능이 안된다는 이유 때문에 문전 박대를 당하던 순간 아버지의 눈물을 보며 가슴에 피멍이 맺혔다는 장영희의 말이다. 마지막 서강대에서 장영희를 받아 주어 학교를 가게 되었고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뉴욕 쥬립대학을 입학하게 된다. 미국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도서관 계단을 오르내릴 때 제일 힘이 들었다는 고백을 했다. 그리고 대학원 논문을 쓰면서 3년 동안 온 정성을 쏟아 논문을 썼다. “자연환경과 과학에 관한” 논문 쓰던 시간 논문만 통과 되면 집에 간다는 생각에 잠을 자지 않고 논문을 마무리 하였다. 유난히 까다로운 담당 교수님께서는 눈문이 80프로 긍정적으로 보셨기에 마음이 들떠있었다. 마지막 기숙사 정리를 하고 논문을 제출하면 집에 간다는 생각에 이미 짐을 다 싸서 가방에 넣었다. 옷과 중요한 책 그리고 모든 것을 가방에 넣고 기숙사를 떠났다. 방을 나서던 순간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차 한잔을 하고 싶다기에 친구집에 차를 타고 달려갔다. 그런데 차를 주차하고 친구와 한잔 마시는 동안 차 트렁크에 실어놓은 가방을 도둑이 훔쳐가 버렸다. 가방의 중요한 물건도 그렇지만 3년동안 에너지를 모두 다 쏟아부은 논문을 가져갔으니 하늘이 노랗게 변해 버렸다. 이제 죽는 길 밖에 없구나 어떻게 쓴 논문인데 돌아갈 기숙사도 없고 앞이 보이지 않는 장영희는 친구집에서 일주일을 굶고 밤낮으로 누워만 있었다. 컴퓨터도 없던 시절 타자로 모든 것을 다 작성해야 하니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다시 회생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혼수상태에 빠져 일주일 동안 기진 맥진 해 있을 때 담당 교수님께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께서 자료가 있으니 다시 시작하라고 하시며 자신의 집에서 일 년동안 만 함께 살자고 하셨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버지 장왕록 교수로부터 "사람도 죽고 사는데, 그만한 일로 낙심하지 말라"는 엽서를 받고서 겨우 마음을 다잡고 일어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담당 교수님의 큰 베려에 다시 정신을 차려 논문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지도교수님도 장영희의 사정을 듣고는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에 힘입어 1년만에 겨우 박사 논문을 다시 썼고,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중학교부터 대학원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사 과정의 논문과 장영희의 걸어온 길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다고 한다.
『내 생에 단 한번 』 첫 번째 수필집에서 한번 걸어보고 싶고 어머니께 기대지 않는 딸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아버지 장왕룡 서울대 영문학 교수를 평생 존경하며 함께 하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교육을 본받아 영문 학자가 되었고 함께 번역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과서 최초의 번역자가 장 왕룡 박사님이시다. 아버지의 번역을 함께 도우며 자신의 길을 만들었고 서강대를 졸업하면서 서강대 영문학 교수가 되었다.
『 문학의 숲을 거닐다』 “이 책은 나의 ‘손 내밈’이다. 문학의 숲을 함께 거닐며 향기로운 열매를 향유하고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나누고 싶은 나의 초대이다. 내 안의 책들이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법, 내가 다른 이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법을 결정지었고 내 안의 힘이 된 것처럼, 누군가 이 책을 통해 문학의 숲에서 사랑을 만나고, 길을 찾는다면, 그래서 더욱 굳건하게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면 그처럼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나는 20년 간 샘터를 읽으면서 장영희를 알았고 장영희 글을 한편도 빼놓지 않고 다 읽었다. 장영희의 수필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고 암이 침투 했을 때 쓰린 아픔을 참아야 했다. 우리 사회에서 청정 숲속과 같은 사람, 어둠에서 등불로 학생들에게 공부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주춧돌과 같은 교수님이 시다. 이 책들에서 발견한 희망, 용기,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장에 소개된 ‘문학의 힘’이란 제목의 칼럼에서는 암 진단을 받고 연재를 중단하는 심경을 고백하면서 윌리엄 포크너의 말을 인용한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문학작품들 속에서, 또한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보고 들은 삶의 체험 속에서 얻은 인생의 의미가 곳곳에 녹아 있는 책이다 누가 명품 가방을 들던 좋은 옷을 입던 무슨 상관 할 필요가 없다. 남대문 시장에서 싸구려 옷을 입고 노점상 가방을 들어도 내 가 편하고 좋으면 그뿐이다. 누가 무어라 하든 모든 일들은 내가 만들어 살고 내 안에서 만족과 행복을 만드는 것이다.
장영희의 “문학의 숲속을 거닐다” 명작들의 숲속을 들어서면 편편이 언어의 세포들이 내 몸속으로 스며 들며 짜릿한 쾌감이 일어난다. 세계 문호들의 넓고 깊은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지며 감동의 숲속으로 몰아 넣는다. 문학속에서 자신의 미래 꿈을 키워가던 아름다운 시간 깊은 산 청정수를 온몸으로 심취하는 기분이다. 장영희 교수님이 어린시절 주변의 따가운 눈총과 차별 대우를 받을 때 그 감정을 무엇으로 표현 할 것인가? 휠체어를 타고 명동거리에서 쇼윈도 마네킹의 옷을 보던 순간 구걸 온 걸인을 취급하던 주인의 태도에서 그 모욕과 상처에 쓰린 가슴의 어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은 겉면을 보고 판단하고 장애를 가졌다고 외면하던 그들에게 손님도 차별을 해야 하나요? 마음속으로 묻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긍정적인 사고와 사랑으로 늘 입가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린시절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어놀 때 계단에 앉아서 물끄러미 노는 아이들만 바라보고 있을 때 먼 발치에서 그 광경을 본 어머니의 마음은 오죽 하셨을까? 평생 딸에게 죄인의식을 느꼈던 어머니는 딸에게 미안한 생각뿐이었다.
"뒤돌아보면 내 인생에 이렇게 넘어지기를 수십 번, 남보다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에 좀 더 자주 넘어졌고, 그래서 어쩌면 넘어지기 전에 이미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나는 번번이 죽을 힘을 다해서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난 확신한다."
- 조선일보 고별칼럼 "문학의 힘" (2004년 9월 25일자) 중에서
"장영희의 수필집"
"내 생에 단 한번" "문학의 숲을 거닐다" "살아온 기적과 살아갈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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