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와 폭설 예보가 떨어졌다. 기상도를 구해 본 순간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단박이라도 다녀와야 할 일이었다. 소유하고 있는
통나무로 된 산막, 늦가을 다녀오면서 다시 와서 하지 뭐 한 일이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엄동이 된 것이다. 마당에 설치된 수도와 뒤 곁에 설치한 수도 동파가 걱정된 것이다. 급하게 차를 몰아 도착한 산막,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인적이 끊긴 산기슭, 나무로 된 문을 열고 차를 안으로 몰고 들어가 세웠다. 쓸쓸하였다. 나는 도착하면 습관적으로 혼자 도착하게 되면 내외 등 불을 켠다. 나 몰래 들어와 있는 녀석들을 내쫓기 위한 주술적 행위다. 과거 선조들은 해가 바뀌면 대문에 채를 걸어 두는 풍습이 있었다. 귀신이 집안으로 들어오다 채에 걸리라는 뜻이란다. 동짓날 붉은 팥죽을 먹는 이유도 붉은색을 싫어하는 귀신을 내쫓아 건강을 지키려는 주술적 의미다. 이런 발상처럼 환한 빛을 싫어하는 약점을 파고 드는 것이다. 누구에게? 두려움에게. 컴컴한 산 막을 대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두려워 진다. 불을 밝혀 환하게 만들어 놓으면 모든 것이 보이기 때문에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내에 들었다. 텅 빈 그 자체였다. 적막감이 모든 것이 쓸쓸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 느낌이 좋아 산 막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쓸쓸함도 금세 익숙해진다. 찻물을 우선 끓였다. 쉬어 이익하며 물 끓는 소리도 다정하게 다가온다. 이런 산막에서는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을 친구로 삼지 못하면 단 하루도 머물지 못하게 된다. 물이 엄청난 속도로 요동치기를 기다리며 창가에 붙어 섰다. 찬 기운이 느껴진다. 300여 년 된 감나무, 지체를 보존하지 못하고 쓰러져 너부러져 있는 모습이 사납게 다가온다. 차를 마신 후 단박에 나가 칠흑 같은 어두움을 오가며 뒷마당으로 옮겨야겠다 생각하였다. 긴장을 지속적으로 가슴에 묻은 채 내려와 그랬는지 마음도 목도 눈도 나의 모든 것이 칼칼하였다. 야밤 차 운전, 긴장의 끈을 놓으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에 핸들을 놓는 순간까지 긴장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그리고 도착하여 어두움과 쓸쓸함에 묻어 있는 두려움 역시 긴장하게 만드는 구석을 지닌 속성이다. 그래서
그런지 뜨거운 커피 한 잔이 마음을 풀어 놓는다. 금세 편해진다. 따스함이 안개가 서정성을 도모하듯 나의 마음을 촉촉하게 설정형으로 풀어 놓는다. 마지막 모금을 넘긴 후 뜰로 나왔다. 별이 그리고 은하수 하늘에 성근 거렸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빛이 나는 것이 바로 별이고 은하수다. 한참을 서서 할 일을 잊은 채 삼매경에 빠졌다. 의자를 끌어다 놓고 주저앉아 버렸다. 미지의 세계 별천지가 바로 지금의 하늘이다. 별자리를 찾을 궁리하자 구름이 하늘을 가린다. 일어서서 장갑을 끼고 오래된 감나무 기둥을 들었다. 생각보다 가볍다. 나이가 차면 진이 빠져 가벼워진다는 어머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병석에 몇 개월 누워 계시던 아버님께 면도를 해드리고 머리를 감아드리고 목욕을 시켜 드리기 위하여 안아 일으켜 드릴 적마다 점점 새털이 되어가셨었다. 모든 건사를 마친 후 어머님과 그 이야기를 나누면 어머님은 늘 그러셨다. 너희들이 아버님 등골을 다 뺏어가서 그런 것이라고..... 그 당시 기억이 나를 슬픔속으로 침몰시킨다. 나 역시 새털이 되어 가겠지, 어두움 속으로 숨고 싶어진다. 잘한 일보다 잘못하며 부모님을 마음 아프게 한 일은 평생 마음의 짐이 된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내가 나이를 먹어가다 보면 현미경으로 병원체를 규명하는 것처럼 세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서둘러 정리한 후 실내로 들었다.
일전에 누군가 놓고 간 좋은 안주가 있어 상을 차렸다. 그리고 텃밭에 아직 살아 있는 푸성귀 몇 잎을 따 삼 채 삼아 인삼주를 꺼내 두 잔을 마셨다. 취기가 나를 가두기 시작하자 침대에 가 엎드렸다. 그리고 작은 등불을 켜고 책을 양손에 들고 읽다 가물 가물...
너무 동창이 밝았다. 새들도 침묵이다. 그렇다면 밤새 눈이 왔다는 징조다. 살며시 커튼을 들어 밖을 보자 와우~~~ 설경이 근사하였다. 세상에 밤새 무엇이라더니 설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문을 열고 나가자 눈먼 지가 다가온다. 바람이 짓궂게 장난을 친 모양이다.
즐거움도 잠시 산 밑으로 내려가는 일이 걱정이다. 남향받이야 쉽게 녹지만 기온이 문제다. 차면 녹으면서 얼어붙는다. 그래도 즐겁다. 모든 것을 덮어 버리는 백설,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그러나 빛이 들고 시간이 흐르면 설국의 아름다움들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런 것이 우리들이 사는 세상 이치다. 변해 가는 설국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투영해 보았다.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아름다움을 차입하여 마음에 심어 놓아야 한다. 그것들이 바로 추억이 되니깐. 자연을 따라다니며 찾는 이유는 인간이 갖고 있지 못하는 자유로운 경치를 차경(借景)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더군다나 영혼이 맑아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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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녕하십니까?이곳에도 눈이 많이왔어요.사진을보니 우리동네에 내린 만큼은 내린것같아요.저의집 뒤에있는 대나무 숲에도 눈이쌓여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것같습니다.
눈이 아름답죠. 눈을 치우려면 등에 땀이 나지만, 그래도 좋아 눈밭을 걷죠. 날이 계속 춥고 눈이 많이 온다하는데. 건강관리 잘하셔요. 고향에 계시니 아늑하시죠. 항상 평화를 빕니다.
저의집 거실에 모셔있는성모님이십니다
보기가 좋습니다. 기도로서 성모님을 가슴에 안아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