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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성과 허무의식
-김철성 시집 『검은 강물, 서늘한 바람』을 중심으로
강 경 호
(시인, 문학평론가)
1.
김철성 시인의 시집 『검은 강물, 서늘한 바람』에는 시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 수놓아져 있다. 남원에서 태어나 어른이 되어 인천을 거쳐 광주·목포·영암을 지나 고향 가까운 담양의 전남도립대학에서 근무하게 된 그의 삶의 발자국들이 시집에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시집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온 인천과 고향에서의 추억이 보다 선명하게 찍혀있다. 낯선 이방인의 마을이었던 인천에서는 그곳 사람들의 가난하고 버겁지만 묵묵히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는데, 떠나오면 잘 보인다고 했던가. 시인은 인천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녹록치 않은 삶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들의 쓰라린 삶의 옷깃을 따스하게 만져준다. 다시 고향 가까운 곳에 돌아와 바라보는 변해버린 모습에 쓸쓸함과 허무를 느낀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오랜 세월 대처를 떠돌며 바라보고 느낀 것은 헐벗고 가난한 것들에서 생명성을 발견하고, 한편으로는 인생의 허무를 느낀다. 이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앞만 바라보며 달려가는 인간의 삿된 마음에 아프게 죽비를 내려치기도 하고 상처입은 것들에게 뜨거운 위무의 손길을 내민다. 그러면서도 고향에 돌아왔지만 기억하고 있는 옛날의 고향이 아니므로 변해버린 것들에 대해 쓸쓸함과 덧없는 생의 허무를 토로한다.
1
자꾸 달아나는
바람소리 잡기 위해
송림동 14번지 마당 한 귀퉁이
시멘트 바닥 까부시고
대나무를 심었다.
2
철탑산 산정
번화한 인천 훤히 내려다 보며
먹을 것과 땔나무만 있으면
가난도 가난 아니라며
아내와 나누는
우문우답(愚問愚答)
-「2002, 인천 송림동 일기」 중에서
김철성 시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 그의 인천 시편을 들여다본다. 그의 인천 시편은 모두가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송림동 14번지는 그가 살았던 곳으로 생각되는데, 그는 그곳에서 자연을 닮고싶어 “시멘트 바닥 까부시고/대나무를 심었다.” 이러한 의식으로 보아 그는 시멘트로 가득한 근대 도시 공간에서의 삶을 답답해 한다. 그리고 “번화한 인천 훤히 내려다 보며/먹을 것과 땔나무만 있으면/가난도 가난 아니라며/아내와” 말을 나눈다. 「2002, 인천 송림동 일기」에서 보듯이 시인의 의식은 도시에서 살지만 그 도시의 문명을 거부한다. 그의 의식은 농경사회 사람들의 의식은 물론, 가난하지만 자족하며 사는 청빈한 ‘선비정신’과 맞닿아 있다.
인천 송림동엔 “산비탈 축대 위 아래/제비집 같은 집들”이 있다. 가난한 달동네 마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팔도 사투리/외국인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천광길엔 무속인 집 깃발”이 펄럭인다. 그렇지만 “손때 묻은 천 원짜리 몇 장 들고” 노점상 할머니는 흐뭇해 하고, “실개천 닮은 골목길이/사람과 함께 흐”른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모자이크 벽화처럼 선명하게 다가온다.
연탄장수 권씨네 집
열매 빨갛게 익은 산사나무를
사이에 두고
홍련암과 기쁨의 교회가
마주보고 있다.
주일마다
염불소리와 찬송가 소리가
샘물처럼 흘러
서로 몸을 섞는다
송림동 달동네
하늘이 되고 땅이 되고
맑은 공기가 된다.
그 공기 속으로
날아가는 새들도
송림시영아파트 공원마당
해맑은 아이들도
외국인 노동자들도
낮술에 취한 취객들도
강아지들도
네 것
내 것 다툼 없이
가슴깊이 들어 마신다.
-「송림동 달동네」 전문
송림동은 달동네이므로 연탄을 때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연탄장수 권씨네 집”도 있는데, 그 부근에 “홍련암과 기쁨의 교회가/마주보고 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와 기독교가 마주보고 있으면 불편해 하기도 하는데, “주일마다/염불소리와 찬송가 소리가/샘물처럼 흘러/서로 몸을 섞”으니 “송림동 달동네” 가난하지만 “하늘이 되고 땅이 되고/맑은 공기가” 되는 불화가 없는 동네이다. 그러므로 “날아가는 새들도/송림시영아파트 공원마당/해맑은 아이들도/외국인 노동자들도/낮술에 취한 취객들도/강아지들도//네 것/내 것 다툼 이/가슴깊이 들어 마”시는 것이다. 어쩌면 지상의 유토피아가 송림동 달동네일지도 모른다. 실제의 삶이 버겁지만 평화롭게 살아가는 달동네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시인이 꿈꾸는 행복한 세상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가진 게 없으니/버릴 게 없는데/겨울나무들/제 이파리/다 버리고 있다.”(「가난」)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
인생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 시인은 인천을 떠나 어찌어찌 하여 마침내 고향 가까운 담양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게 된다. 대처에 떠나 살면서 늘 마음 속에 간직했던 고향을 실감하는 것이다. 그러자 마음 속에 두 가지 풍경이 교차하게 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천 생각’과 ‘고향 생각’이 그것이다. 그런데 늘 그리워하던 고향은 옛날의 고향이 아니어서 마음 한편이 아파오고, 떠나온 인천은 타향이지만 뜨겁게 다가온다. 유목민처럼 떠돌다 온 인천과 고향이 어느새 하나가 되어 타향이나 고향이나 안쓰럽게 마음 속에 자리잡는다. 인천은 생명성이 깃든 공간으로, 남원은 허무가 깃든 공간이 된다. 특히 그가 가슴아파 하는 건 고향의 실체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는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아파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30여년 객지 떠돌다 빈손으로
고향에 와
요천수 흐르는 물로
허기진향수를배 채우고,
저기에
지리산이 있고
교룡산도 고리봉도 그대로인데,
백공진산(百工鎭山)은 어디에 있나.
독우물 개징개재 너머
오래된 김해 김씨의 무덤들 아래
새로 난 전라선 철길 속에 파묻힌
천수답에 심어둔
유년적 꿈은,
부귀도 아니었고
공명도 아니었고
대통령과 장군은 더욱아니었다.
꼴베다 소 한 마리 키우며
마당에는 약병아리 풀어놓고
방 윗목엔 쌀자루와 고구마 두어 가마
뒤란 추녀 아래 장작더미 쌓아두고,
밤이면 쏟아지는 별빛 밟으며
달빛 환하면 뒷동산 마실도 나가고
겨울이면 산창 너머내리는
눈을 쳐다보면서
때로, 친구들과 막걸리 잔 기울며
이름없는 농투산이로
길고도 짧은한 세상 건너가는
촌부였다.
-「남원 1」 전문
고향에 돌아와 시인은 자신의 생의 궤적을 뒤돌아본다. “30여년 객지 떠돌다 빈손으로/고향에 와/요천수 흐르는 물로/허기진 향수를 배 채우고,” “저기에/지리산이 있고/교룡산도 고리봉도 그대로인데,” “유년적 꿈”을 생각한다. “부귀도 아니었고/공명도 아니었고/대통령과 장군은 더욱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30여년 동안 그가 무엇을 좇으며 살았는지를 통찰한다. 그가 꿈꾸었던 것은, “꼴베다 소 한 마리 키우며/마당에는 약병아리 풀어놓고/방 윗목엔 쌀자루와 고구마 두어 가마 /뒤란 추녀 아래 장작더미 쌓아두고,//밤이면 쏟아지는 별빛 밟으며/달빛 환하면 뒷동산 마실도 나가고” “친구들과 막걸리 잔 기울며/이름없는 농투산이로/길고도 짧은 한 세상 건너가는/촌부였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욕심없이 사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대처로 방랑하듯이 살아온 삶이었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30여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지난 날 꿈꾸었던 삶대로 살지 못한 자신의 삶을 통찰한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 바라보는 고향은 옛 고향이 아니다.
선산이 있는 독우물이었고
솔개 날아드는 고리봉이었고
달빛 쏟아지는 요천이었다.
개징개재 넘어 화전밭 가는 길
행여 그녀 있을까 기웃거렸던
어린마음이 가 닿았던,
독야청청 청대숲으로 울을 쳤던
주인 손길 닿아 하얗게 빛나던
반듯하게 다져진 황토마당 넓은
옥전동 끄트머리 집.
어느 날이었던가.
빛 바랜 추억 꿰맞추려 둘러보는
주인 떠난 후
손때 절은 안채며
황토마당도 장독대도 사라지고
울울창창한 잡목들만
바람에 쓸리는
반쯤 사라진 청대숲엔 산길 뚫리고
한낮인데도 인적 끊겨버린
후남이가 살다간 집
소나무만 휑하니 남은 동수네 집을 지나
황성옛터 같은 왕규네 집을 지나
후남이네 집 앞 서성이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아무리
기웃대고
둘러보고
소리쳐도
옛날의 그 모습,
그 사연 돌아오지 않는데
어디선가 뻐꾸기만 목 놓아 운다.
-「후남이네 집」 전문
“개징개재 넘어 화전밭 가는 길/행여 그녀 있을까 기웃거렸던/어린마음이 가 닿았던,” “독야청청 청대숲으로 울을 쳤던/주인 손길 닿아 하얗게 빛나던/반듯하게 다져진 황토마당 넓은/옥전동 끄트머리 집”을 30여년 만에 돌아와 바라보지만, “주인 떠난 후/손때 절은 안채며/황토마당도 장독대도 사라지고/울울창창한 잡목들만/바람에 쓸리는” 집이다. “반쯤 사라진 청대숲엔 산길 뚫리고/한낮인데도 인적 끊겨버린/후남이가 살다간 집”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아마 후남이는 화자가 마음 속으로 좋아했던 여자 아이일지도 모른다. 옛 추억은 가슴 속에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데, 후남이도, 후남이네도 어디론가로 떠난 빈 집은 옛 집 그대로가 아니다. 후남이네 집 뿐만 아니라 동수네 집은 “소나무만 휑하니 남”아 있고, “왕규네 집”은 “황성옛터”처럼 폐허가 되어 있다. 이렇듯 서운한 마음이 든 화자는 “후남이네 집 앞 서성이며/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렇지만 “옛날의 그 모습,/그 사연 돌아오지 않는데/어디선가 뻐꾸기만 목 놓아 운다.”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상실한 화자, 즉 시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변해버린 고향을 바라만 본다. 이쯤에서 시인은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다.
허무한 마음은 옹정리 친구들을 만나며 더욱 가슴이 저렸을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저 태어난 곳 잊지 않고 찾아온
그리운 놈들.
내가 살았던
집터와 우물만 남은
마을 고샅길 구석구석 둘러보며
무슨 생각들 했을까.
나이 들어도 마음은 코흘리개인데
들리는가.
외딴 국섭이네 집 뒷산에서
목 놓아 울던 뻐꾸기 소리
보이는가.
옥전동 시퍼런 대숲 황토 마당에서
세월 밀춰 두고 노닐던
참새 떼들.
고리봉 만학동
요천수 화전놀이 하던 모래밭과 거북바위
금지동초등학교 가던 논두렁길
하학길 옹정역에서 들려왔던
목쉰 기적소리.
쉰 줄에 들어서서
남원 도통동 천변 어느 식당에서 만난
옹정이 고향인 금지동초교 동창들.
오고 가는 술잔과
두서없는 안부에 실린
살아온 날들 그 모습 그대로의 파안대소들
뜨겁게 잡은 손 놓을 줄 모르다가
다시 헤어져야 한다.
집에 돌아와 시집을 읽지만
시가 읽히지 않는다.
친구들 얼굴과 이름만
보였다가 사라진다.
-「옹정리 친구들」 전문
화자는 “쉰 줄에 들어서서/남원 도통동 천변 어느 식당에서 만난/옹정이 고향인 금지동초교 동창들”을 만나 회포를 푼다. 술을 마시며 안부를 물으며 파안대소를 해보지만, “집에 돌아와 시집을 읽”어도 시가 읽히지 않는다. “친구들 얼굴과 이름만” 눈 앞에 “보였다가 사라진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자신처럼 변해버린 고향 마을을 보았을 것이다. 화자는 자신이 “살았던/집터와 우물만 남은/마을 고샅길 구석구석 둘러보며/무슨 생각들 했을”지를 궁금해 한다. “나이 들어도 마음은 코흘리개인데” 그래서 “외딴 국섭이네 집 뒷산에서/목 놓아 울던 뻐꾸기 소리” “옥전동 시퍼런 대숲 황토 마당에서/세월 밀춰 두고 노닐던/참새 떼”를 기억하고 있을텐데, 오늘은 그 옛날의 모습 사라진 고향 마을에서 세월의 흐름 속에 변해버린 고향 풍경에 상실감과 더불어 30여년 이라는 세월이 가져다 준 허무를 느끼는 것이다.
화자가 그 허무 속에서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남원시 수지면 남창리 산 127번지
진동고개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 아래
작은 무덤 하나
홀연히 길 떠나
구름처럼 떠돌다 바람을 먹고
물처럼 흐르다 이슬을 덮고 자다
한 줌 재가 되어 찾아온 고향
아! 따뜻하구나.
-「아버지 산소 1」 전문
고향에 돌아온 시인은 아버지 산소에 들른다. “남원시 수지면 남창리 산 127번지/진동고개”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 아래/작은 무덤”이 아버지의 무덤이다. 아버지는 “홀연히 길 떠나/구름처럼 떠돌다 바람을 먹고/물처럼 흐르다 이슬을 덮고 자다/한 줌 재가 되어” 고향에 묻히셨다. 시인 역시 아버지처럼 “구름처럼 흐르다” 고향에 찾아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왔다. 이제는 모두 저 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화자는 “아! 따뜻하구나.” 하고 탄성을 지르며 온기를 느낀다. 비록 살아서 마주볼 수는 없지만, 변해버린 고향일지라도 따스함으로 반기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이기도 한 시인은 오랫동안 대처로 흐르던 물이었다가 다시 고향에 흘러온 것이다.
물에서 태어난 인간은
물을 먹어야 산다
바다가 있는 인천
푸른 물 넘실거리는 목포
다시 요천수가 있는 내 고향 남원
나는 오랫동안 흘러왔다.
-「옹정리 2」 전문
시인의 고향 남원에는 “요천수”가 흐르고 있다. 유년에도 요천수는 흘렀고, 오늘에도 흐르고 있는데, 화자도 강물처럼 흘렀다. “물에서 태어난 인간은/물을 먹어야 산다” 인간도 강물처럼 흐르므로 물인 것이다. 그래서 “바다가 있는 인천” “푸른 물 넘실거리는 목포”로 흘렀던 것일까. 그리하여 마침내 시인의 발원지인 남원으로 다시 흘러온 것이다. “다시 요천수가 있는 내 고향 남원/나는 오랫동안 흘러왔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삶을 ‘강물’로 동일시하는 시인의 상상력은 ‘하늘’마저 ‘바다’로 인식한다.
전남도립대 캠퍼스 거닐다 널다란 푸른 하늘 올려다보면
찬바람 불어 물보라며 풍랑 이는 허공에
흰구름은 연락선 되어 이별 뒤로 한 채 마냥 흘러갑니다.
집시 같은 철새들 물고기 되어
고단한 삶의 여울 헤엄쳐 갑니다.
물 많은 담주(潭州)는 가을만 되면
하늘도 바다가 됩니다.
-「하늘 바다」 전문
대처를 흐르다 마침내 고향 가까운 담양에 흘러온 강물인 시인은 “전남도립대 캠퍼스”를 거닐게 된다. 그곳에서 “널다란 푸른 하늘 올려다보면/찬바람 불어 물보라며 풍랑 이는 허공”이 보이고, 그 하늘엔 “흰구름은 연락선 되어 이별 뒤로한 채 마냥” 강물이 흘러간다. “집시 같은 철새들 물고기 되어/고단한 삶의 여울 헤엄쳐” 간다. 시인이 흘러온 “물 많은 담주(潭州)는 가을만 되면/하늘도 바다가”가 되는 것이다.
3.
시인이 30여년 동안 강물처럼 이곳저곳을 흐르다가 정주한 담양에 와서 자신이 흘러온 곳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애틋한 마음을 가져보기도 한다. 특히 고향을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쓸쓸하고 허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가슴 속에는 푸르고 뜨거운 생명성이 자라고 있다. 그가 머물렀던 인천과 다시 돌아와 본 고향 남원에서의 허무 속에서 인간의 욕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욕망은 풍요로운 도시 공간인 인천의 한 켠인 송림동 달동네의 가슴 아픈 빈민들과 근대적 도시공간으로 변해버린 남원의 풍경이 그의 마음 속에 ‘인간다움’을 꿈꾸게 한 것이다.
임성역 앞 주점에서
막걸리 한 통 비우고
기차 안에서
시집을 읽다가
모내기 끝난 함평천지 바라본다.
위대한 종교와 철학
현란한 경제와 문화
알지 못하나
농토와 농부 없이
어이 목숨줄 이으리.
시 한 줄 안 읽고
어찌 정신줄 이으리.
-「광주행 열차에서」 전문
시인은 “임성역 앞 주점에서/막걸리 한 통 비우고/기차 안에서/시집을 읽다가/모내기 끝난 함평천지 바라”보며, “위대한 종교와 철학/현란한 경제와 문화/알지 못하나/농토와 농부 없이/어이 목숨줄 이으리.” “시 한 줄 안 읽고/어찌 정신줄 이”을 것인가를 깨닫는다.
“모내기 끝난 함평천지”의 모습은 조상 대대로 이어온 전통적인 삶의 방식인 농경사회의 전통이며 문화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어온 “농토와 농부”는 우리 민족의 삶의 근간이었기에 화자는 “위대한 종교와 철학” 그리고 “현란한 경제와 문화”를 “알지 못하나” 이와 같은 것을 토대로 살아온 정신은 “시”와 같은 것이어서 술 마시고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함평천지”를 바라보며 “시집”을 읽은 것이다.
농부들은, ‘심은 대로 거두는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시인은 근대의 공간인 도시에서 살면서 농부들처럼, 또는 시처럼 살아오지 못한 욕망의 존재였기에 시를 통해 통찰하며 반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호남선 열차를 타고 바라보는 남도의 산야는 그저 안쓰러운 뿐이다.
호남선 열차
차창 너머
한창 푸르러
눈부신
남도의 산야
쌀 남아
가축사료로 쓴다는
아픈 현실
아는지
모르는지
폭염 속
나락들
쑥쑥 자라는데
-「남도의 산야 1」 전문
“호남선 열차/차창 너머” 보이는 “한창 푸르러/눈부신/남도의 산야”는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쌀 남아/가축사료로 쓴다는/아픈 현실”이 있다. 이것을 “아는지/모르는지//폭염 속/나락들/쑥쑥 자라”고 있으니 시인의 마음은 더욱 가슴이 아프다. 생각해보면 지난 배고픈 시절에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아무리 풍년이 되어 쌀이 남아돈다 해도 쌀을 가축 사료로 쓰는 일은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모르는 들판의 곡식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폭염 속/나락들/쑥쑥 자라”기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푸른 전답과/농부의 땀내에서/생명의 노래/들리”(「남도의 산야 2」)는 것이다. 시인은 호남평야에서 생명성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생명성의 발견은 「춘래불이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늘 눈 어둡고
땅엔 농약 냄새
실개천에도
강, 바다에도 폐수
넘쳐나는데
삼천리 금수강산에
봄이라고 꽃 피어난다
향기가 없어도
봄은 봄이다.
-「춘래불이춘」 전문
자연을 정복대상으로 삼은 인간의 근대성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있다. 그래서 “땅엔 농약 냄새” “실개천에도/강, 바다에도 폐수/넘쳐”난다. 자연은 한 번 파괴되면 복원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자연을 학살하고 있는 현실이다. 농약을 쳐서 벌레나 병충해 뿐만 아니라, 끝내는 인간마저도 상처를 입게 되고 죽게 될 것이다. 이러한 대지에 또 다시 봄이 와 “삼천리 금수강산에/봄이라고 꽃 피어”나니, 시인은 “향기가 없어도/봄은 봄이”라며 절망한다. 그러면서도 봄을 포기하지 않는 자연의 순환을 희망으로 삼아 생명성을 또다시 꿈꾼다.
생명성을 꿈꾸는 시인의 시선은 보도블럭을 비집고 피어난 개망초 꽃에서도 발견한다.
살아도
살아도
아직도 몰라
인생이 뭔지
쓰고
써도
아직도 몰라
시가 뭔지
호남선 목포 임성역
가는 길
보도블럭 비집고
하얗게 피어난
바람에 살랑대는
인생 같고, 시 같은
개망초 꽃
-「개망초 꽃」 전문
시인은 지천명의 세월을 살아왔어도 “아직도 몰라/인생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뿐만 아니라 삶의 비의를 탐구하는 시인의 길에 들어서서 “쓰고/써도/아직도 몰라/시가 뭔지” 궁금해 한다. 화자가 “호남선 목포 임성역/가는 길/보도블럭 비집고/하얗게 피어난/바람에 살랑대는/인생 같고, 시 같은/개망초 꽃”을 바라보며 싹조차 틔우기 힘든 어려운 환경인 “보도블럭”을 비집고 꽃을 피워낸 개망초 꽃을 경이롭게 생각한다. 인생이란 어쩌면 개망초 꽃처럼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개망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으려는 정신이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