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 이야기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통과하는 대림역은 교통의 중심일 뿐 아니라 특별한 풍경으로 주목받는 곳이다. 대림역 12번 출구로 나오면 대한민국이 아닌 중국의 한 도시와 같은 특이한 모습으로 방문자를 맞는다. 중국 간체로 표기된 수많은 간판들은 이곳이 중국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개인적으로도 대림동은 나와 인연을 갖고 있는 곳이다. 대학 졸업 후, 일할 곳을 찾아 헤매다 임시로 정착한 곳이 대림동 주변 철공소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대림동, 가리봉동, 구로동은 거대한 공장지대였다. 특히 가리봉동과 대림동은 소규모 공장들이 집결해 있었다.
철 가공 공장에서 약 4개월간의 반복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 기억난다. 거대한 파이프를 산소절단으로 가른 뒤에, 샤링 기계를 이용하여 넓게 펴는 과정은 단순하면서도 무척 힘이 드는 노동이었다. 더구나 조금만 소홀히 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위험이 곳곳에 넘쳐 있었다. 매일 점심시간을 짜장면 곱빼기로 때었으면서도 결코 질리지 않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런 추억들이 새롭게 변화된 대림동의 모습을 찾고 싶어서 2018년 친구와 함께 방문하기도 하였다. 엄청나게 많은 조선족과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곳이 어떻게 이렇게 변화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컸었다. 더구나 <범죄도시>, <청년경찰>에서 묘사된 부정적 분위기에 대한 진실도 궁금하였다. 대림동 조선족 거주 상징적 지역인 ‘대림 중앙시장’으로 들어가면 그곳은 새로운 세계이다. 중국어로 이야기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익숙하지 않은 냄새를 만나게 된다.
2019년 2월 설합병호(594호) <시사인>에는 특별한 기사가 실렸다. “‘대림동 한 달 살기’, 우리가 몰랐던 세계”였다. 시사인 기자들이 대림동 쪽방에 한 달간 기거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대림동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대림동은 분명 수많은 오해와 편견으로 가려져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의 근대사 속에서 상처 입었던 조선족들의 고국으로의 귀향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기자는 조선족 사람들이 작년 영화가 확장시킨 잘못된 인상을 불식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자율적인 방범대를 조직하여 치안을 유지할 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는 'F4'비자를 획득하여야 하는데 사소한 범죄도 연장에 불이익을 가져오기 때문에 무척 조심하는 분위기라 한다.
대림동에 조선족이 늘어난 이유는 2000년대 초 조선족에 대한 특별대우를 인정한 ‘재외 동포법’(2004), ‘방문취업제도 시행’(2007)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동시에 중국의 산업중심 지역에서 동북3성 지대가 이탈하면서 직업을 잃은 많은 조선족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리봉지역에 밀집하였지만 대림동 지역의 주택이 좀 더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고, 강남지역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이 쉬운 교통편이 있기 때문에 대림동은 조선족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대림동, 특히 조선족 거주지인 대림2동은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조선족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취업을 목적으로 입국한 조선족도 점차 안정된 활동을 위하여 영주권을 획득하기 시작하였고 완전히 한국으로 귀화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주변에 학원이 성행 중인데 그것은 영주권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기능사 자격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대림동에 거주하거나 거쳐 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의 60-70년대의 발전 경로와 유사함을 보여준다고 한다. 처음에는 노동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적은 자본을 바탕으로 개설한 가게를 통해 자산을 늘려가며 소위 ‘중산계층’을 형성하였다. 이들 중에는 대림2동을 떠나 주변 아파트 단지인 대림3동으로 이주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한국 사회와의 적응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즉 현재의 대림2동은 한국 사회로 진출하기 위한 조선족 들의 전초기지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림동에 대한 걱정스런 시각이 존재한다. 대림2동에 조선족 유입이 점차 늘면서 한국인들이 떠난 자리를 조선족이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조선족 중산계층이 떠난 자리를 중국 한족 노동계층이 대치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대한민국 서울의 한 지역을 이질적인 요소에 의해 변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분명 부정적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 특히 같은 민족인 조선족이 아닌 중국인이 수가 늘어난다면 정서적으로 반발을 동반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의 견해는 그렇기가 쉽지않다는 것이다. 조선족은 해외동포라는 특별한 상황이 고려되어 다양한 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에 확대가 가능했지만 외국인인 중국인에게 똑같은 혜택이 주어지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급속한 확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입국한 조선족들은 대개 3세대 조선족으로 이들은 한국어와 중국어 모두에 능한 ‘이중 언어’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3세대의 자녀들인 소위 ‘4세대’는 다양한 측면의 문제점을 갖고 있다. 먼저 부모들과 같이 한국에 거주하는 ‘4세대’ 조선족은 조선족의 정체성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 이들은 한국에 거주하면서 중국어 사용능력을 잃어버려 ‘이중 언어’능력을 상실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자연스런 동화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이들이 가진 중요한 경쟁력의 상실이라는 점에서는 안타까울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중국에서 성장한 후 한국으로 들어온 4세대들은 오히려 한국어에 익숙하지 못하면서 한국 생활의 난관을 맞게 되고 폭력적인 활동과 같은 부적응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시사인 기자들이 전하는 현재의 대림동의 상황을 보면서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 현실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인 문제에 대한 현지인들의 부정적 태도는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난민문제나 경제적 이유로 인한 이주에 대한 보수적 태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대림동 새벽인력 시장에서도 조선족이나 한족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한국인 노동자들의 불만이 크다고 한다. 보수 언론(동아일보)은 대림2동 초등학교의 신입생이 대부분 다문화 출신 아동들로 채워졌다는 보도를 통해 어떤 불안감을 부추기기도 한다.
대림동은 분명 우리가 가졌던 과거의 역사적 혼돈을 다시금 정리하는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일제 때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났던 사람들의 후손이 이제 다시 안정된 조국으로 회귀하는 일은 국가가 책임지고 진행해야 할 과제이다. 그들에게 충분한 법적, 사회적 혜택은 여전히 필요하다. 하지만 얼마 전 영주권자에게 공립 유치권 배정권을 박탈한 사건과 같이 어느 한계까지 국가의 혜택을 부여할 것인가는 여전히 논란의 소지를 갖고 있다. 조선족에 대한 혜택이 정당하다면, 영주권자에 대한 혜택 또한 정당화한 것인지? 아니면 국적을 가진 자와 영주권자, 비록 이들은 세금을 낸다는 사실에서는 동일하지만 똑같은 혜택을 부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대림동을 흐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인류의 역사는 더 나은 경제적 환경으로의 이동이었다. 수많은 유럽인들이 가난과 압박을 피해서 자유의 나라 미국으로 갔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목숨을 위하여 이곳저곳으로 방랑하고 있다. 유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도적 입국 허용은 어쩌면 당연한 인간의 행위이어야 하지만 이것을 정책적으로 선택했을 때 발생하는 수많은 비용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실천적 의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자칫 거대한 재앙으로 확대될 수 있다. 대림동은 변화하는 한국 사회의 혼란과 안정을 위한 사유의 장소이며, 다국적 세계, 다가치적 문화에 대한 고민을 함축하는 지역이다.
대림동이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의 이색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장소로 자리잡을 수 있다면 그것은 한국 사회의 건강성을 확인할 수 있음이며 우리 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하나의 방식을 제공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조선족은 너무나도 당연한 우리 민족이며, 민족의 프레임을 넘어 인간 그 자체의 자격을 통해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그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만 판단받고 대우받아야지 그가 선택할 수 없는 성별, 인종, 나이 등의 구별을 통해서 배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우리가 넘어서기 힘든 이기적인 본능, ‘자신의 것’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 들일 수 있는 최소한 한계를 규정하기 위한 노력과 항상 그 규정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를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림역 주변 중국식 식당의 음식은 여전히 입에 맞지 않고 냄새가 역하다. 하지만 이것은 경험에 의한 취향일 뿐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과의 만남, 내 것에만 머물지 않는 노력 등이 변화되고 있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낼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불편하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어떤 방식으로 결정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불편하더라도 이성적으로 필요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을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 불편함을 수용할 수 있다면 그때 대림역 식당의 냄새와 맛은 다르게 느껴질까?
첫댓글 이제 민족이나 국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경제적 위치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곤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수에 대한 배려에 따라 내일의 모습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