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기오에서 8시 20분에 버스를 타고 비간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쯤.
▲ 버스안에서 먹을거리를 파는 아저씨 ▲
비간으로 가는 도중 잠시 쉬었던 버스 휴게소
400년이나 스페인에 지배를 받았던 필리핀. 비간에 가면 스페인식 건물과 거리가 많이 남아
있다는 소리에 ‘개성 있는 도시’라는 약간의 환상을 갖고 있었지만 막상 버스 터미널에서 몸을 내렸을 때는 좀 실망스러웠다. 훵한 공터 주차장과
왱왱거리는 트라이 시클 소음이 다른 도시들과 별 다를 바 없었다.
터미널에서 조금 걸어 나갔다. 이 도시에 대하여 소개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길게 줄지어 서 있는 트라이시클 운전사사 중에서 한명을 찾았다.
필자 : “아저씨 제가 여기 처음 왔는데 돌아보고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몇 시간이나 걸릴까요?”
운전사: “트라이시클을
원해요 아니면 칼레사를 원해요?”
▲ 비간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볼 수 있는 극장
▲ 칼레사 - 마닐라에서는 바가지로 유명하다 ▲ 트라이시클 -사람 뿐 아니라 많은 짐을 실을 수도 있다
잠시 생각했다
마닐라에 있는 리잘 파크(바기오에도 리잘 파크가 있음) 주변에 이
마차들이 많은데 관광객에게 요금을 속이는 경우가 많고 실랑이도 잦아서 왠지 선택하기가 껄끄러웠다. 비간은 마닐라 같지는 않겠지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지 않는가?
필자 : “트라이시클로 합시다. 얼마 입니까?”
운전수도 이런 경우가 드물었는지 동료들을 불러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의논을 한다.
운전사 : “시간 당 150페소”
필자가 살고 있는 퀘존의 경우 빌리지 마다 트라이시클의 가격이 다르지만 한 2~3분 정도 거리를 타고 5페소에서 10페소를 지불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적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 “좋아 출발 합시다, 나는 이 도시에 스페인식 건물이 남아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볼만한 것 있으면 다 알아서 보여주세요”
뙤약볕과 먼지를 뚫고 트라이시클이 탈탈탈탈 달리기 시작한다.
▲ 드물기는 하지만 도심 도로 주변의 집에서도 돼지 키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운전사가 어디를 소개 시켜 줄까?’ 기대하면서 무작정 달리기 시작하던 도중에 UNIVERSITY OF NORTHERN PHILIPPINES 이라는 대학이 보여 잠시 멈추었다. 대학 내 시설들 사진 찍고 싶다고 하자 대학 경비가 필자를 사무실로 데려간다(필리핀에 있는 몇몇 대학은 정문 통과시에도 신원을 꼭 확인한다).
사무실 직원 : “어디서 왔어요?”
필자 : “한국에서 왔습니다”
직원 : “사진을 찍으려는 목적이 뭡니까?”
필자 :
"필자는 여행 중인데 필리핀 대학을 보고 싶습니다“
직원 : “우리는 허락할 수 없습니다”
▲ UNIVERSITY OF NORTHERN PHILIPPINES 의 정문과 대학생들
학교 앞에 많은 대학생들이 보인다. 모든 대학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필리핀 대학이 교복을 착용한다. 그리고 중고등학교가 합쳐져 4년
교육이기 때문에 대학생들도 많이 어리다.
여학생에게 잠시 묻는다.
필자 : 교복 색깔이 다른 사람이 저기 보이는데?
여학생 : 그건 전공이 달라서 그래요.
다시 트리이시클을 타고 달린다. 운전사가 자신 있게 나를 데려온 첫 번째 장소는 Luis Chauit Singson 의 집.
트라이시클 운전기사 말이 이집이 이 지방에서 꽤 잘사는 사람의 집인데 동물을 모으는 게 취미인 사람이라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도마뱀, 앵무새, 타조, 호랑이, 뱀, 돼지 등 여러 동물을 볼 수 있기는 한데 동물의 가짓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별로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좀 재밌는 볼거리라고 하면 바로 이 호랑이 새끼. 지금 이 호랑이는 우리에 갇혀 있는게 아니라 바로 현관 기둥에 매어져 있는
상태다. 필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호랑이 곁 2m 까지 접근하고 말았다. 갑자기 발 밑에 나타난 호랑이에 너무 놀라서 간이 확 내려앉을
뻔했다.
집에 있는 관리인에게 ‘한 번 만져 봐도 되느냐?’고 묻자 낯선 사람은 공격 당할 수 있다며 제지 한다.
▲ 집 기둥에 매어 놓은 호랑이
젠장 위험하다면서 저런 곳에 묶어 놓고 개마냥 키우다니... 하마터면 여행 둘째 날 무릎 밑이 날아갈 뻔 했다.
운전사 : “브라덜(Brother) 이제 스페인 거리를 보여줄게 다시 시내로 돌아갑시다”
얼마 전부터인가 필자를 계속 Brother라고 부르는 운전기사.
비간의 스페인 거리는 마닐라 퀘존에 살면서 종종 들었었다.
‘필리핀은 400년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비간 도시에 가면 스페인식
건물들과 거리가 많이 남아 있다’고 이곳에 온 가장 큰 목적도 바로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였다. 그 기대 끝에 온 비간이라 그런지 운이
좋았다. 매년 9월 8일이 스페인 거리 축제의 날이라서 거리에서는 긴 퍼레이드가 계속 되고 있었는데 1년 한번이니 365분의 1에 당첨된 것
아닌가.
▲ 스페인식 건물들과 거리 ▲ 퍼레이드
▲ 퍼레이드 참가 중인 비간의 학생들
낡고 오래된 건물과 거리. 날이 좀 어둑어둑 해지고 거리에 조명 시설을 했다면 더 아름답고 이국적인 모습들이 보였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참 사진촬영과 퍼레이드 구경을 하고 있는데 운전기사가 형님께서 필자를 또 부른다.
“어이 형제 높고 오래된 종탑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비간 도시 전체를 불수 있어, 가 볼 텐가?
“갑시다”
시내에 있는 성당을 지나 좀더 외곽으로 나가자 또 다른 성당이 나오고 성당뒤 언덕에 서있는 오래된 듯한 종탑이 보인다.
▲ 비간의 성당과 종탑 ▲ 바기오의 대성당
▲ 비간 성당의 내부 ▲ 비간 성당
▲ 라왁의 성당 ▲ 마닐라 성당 내부의 모습
아시아의 필리핀에는 성당이 매우 많다.
이에 관해 필리핀에서 활동중인 김요셉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아시아의 이탈리아, 필리핀...
대구교구 김 요셉 신부
현재의 필리핀은 1521년 포루투칼인 페르라르도 마젤란이 세부 막탄섬에 상륙하면서 서구에 알려지게 됩니다. 그 후 포루투칼과 스페인의 식민지 영토세력 다툼에서 필리핀은 스페인에 정복당하게 되고, 그때부터 19세기 말(1898년)까지 약 33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가 됩니다.
당시 유럽 열강의 식민지 나라들이 그러하듯, 식민지 나라들은 유럽인들의 문화, 종교를 그대로 수용하게 됩니다. 필리핀도 스페인 식민통치와 더불어 그들의 문화는 가톨릭 문화권으로 바뀌게 됩니다. 13세기부터 이슬람 회교도들이 전파된 민다나오 지역과는 상대적으로 루손섬과 비사이얀 지역은 90%에 육박하는 가톨릭 전교률을 보이며, 곳곳에 스페인식 건물과 성당 건물들이 지어지게 되고, 현재에도 4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교회들을 루손섬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외국인 와서, 한국의 유교문화(장유유서, 등)나 불교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과 한국인을 안다고 할 수 없듯이, 필리핀도 가톨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필리핀과 필리핀인을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긴 역사와 함께한 필리핀의 가톨릭 문화는 그것이 신앙화 되었든 아니든 간에, 생활양식으로, 혹은 삶의 일부로 남아 있습니다. 성상에 대한 공경심리와 집집마다 있는 성화상과 예수성심, 성모성심상들, 주일날 온 가족이 함께 성당으로 향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은 필리핀 가정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생활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체제 자체도 이러한 가톨릭적 배경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나라이며, 피플파워1, 2(독재에 대항한 민주 무혈 혁명)도 카르디날 신 추기경님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교회 주도하에 일어났으며, 교회의 달력(전례력)에 따라, 즉 부활, 성탄, 위령성월 등에 따라 그들의 명절과 휴일을 맞고 있으며, 9월부터 시작되는 캐롤송, 성탄준비, 성탄절을 앞둔 9일 새벽미사 (새벽3-4시) “심방가비” -거의 모든 필리핀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참여합니다-, 등, 아시아의 이탈리아와 같은 가톨릭 문화를 가진 나라가 바로 필리핀이라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종탑에 올랐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종탑의 바닥과 종에는 수많은 낙서들로 채워져 있다. 종탑 안을 둘러 가며 사방을 전망했다.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멀리 무덤들이 보인다.
▲ 종탑과 종탑 내부 그리고 종탑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무덤
필자 : “형제 나 저기에 가보고 싶네”
운전수 : (흠칫 놀라며) “아닌 거긴 왜?”
필자 : “우리나라 무덤과는 형태가 달라
난 영화에서나 저런 식의 무덤을 보았지 실제로는 처음 보는 거야”
운전수 : (떨떠름한 듯)“그래 가 보지”
트라이시클로 또 달렸다. 허름한 가옥들 사이로 생긴 골목 입구에 트라이시클을 세우고 골목 사이를 걸었다. 오염된 물은 가옥들 사이를 흐르고
이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아가들의 옷을 더럽히고 있었지만 사람들 모두 아무런 문제없이 살고 있는 듯 하다.
멀리 종탑에서는 참 아름답게
보이는 무덤이었으나 막상 가까이 가보니 그렇지가 못했다.
묘지 한켠은 많은 쓰레기들이 널부러져 다니고 무엇보다도 무덤과 무덤 사이가 너무
좁고 그 좁은 틈 사이는 덤불로 덮여 있어 접근이 힘들었다.
▲ 무덤 입구에서 섬뜩하게 날 노려보던 염소와 무덤과의 간격들이 너무 좁은 모습
필자 : “형제 이렇게 무덤사이가 좁아서야 가족들이 어떻게 이곳을 찾아 올 수 있을까?”
운전사 : “그래도 다
찾아온다네”
필자 : “좀더 올라가보고 싶은데 길을 찾을 수 없고 무덤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가?”
운전사 : “괜찮네 밟고 올라가도록
하지”
무덤과 무덤을 요리 조리 뛰어 다니며 올라가 본다. 멀리 정리가 잘된 묘지가 보이는데 운전사 말로는 좀 사는 사람들의 무덤이란다.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트라이시클 운전사와 작은 식당에 가서 같이 저녁을 함께 한 후
계약했던 대로 3시간 450페소를 지불한
후 헤어졌다.
라왁으로 가는 버스가 18시 30분에 있다고 한다.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월간]수사연구 2003. 11월호
필리핀 주재관
차경택 경정
(전략)
.필리핀의 치안여건이 이처럼 열악한 데에는 여러 가지 진단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정치, 경제적인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별론으로
하고 경찰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것들을 그 원인으로 들어보고 싶다.
첫째로, 경찰력 부족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경찰관 1인당 담당인구가 약 721명에 이르고 이들 중 상당수가 남부지역에서 반군
소탕작전에 투입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담당인구는 1,000명에 근접하는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필리핀 정부 및 경찰당국은 이러한 심각한
경찰력 부족현상을 인식하고 오는 2005년까지 경찰관 15,000명을 증원하여 1인당 담당인구를 630명 선까지 낮추는 방안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예산부족 등 여러 가지 난제로 인해 실현여부는 미지수다.
이처럼 심각한 경찰력 부족이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수도인 메트로마닐라 지역에서 경찰관서를 방문하기 전에는 길거리에서 정복을 입은 경찰을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고 대부분의 주거단지, 건물, 업소, 심지어 동네 구멍가게조차도 무장한 청원경찰을 고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민간경비업(private security)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나라가 아닌가 추정되기도 한다. 필리핀에 관광오신 분들이
관광차 쇼핑몰에 들렀다가 입구에서 무장한 청원경찰이 모든 출입자의 소지품을 예외 없이 수색하는 것을 목격하면서부터 이곳의 치안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
.
.
(중략)
.
.
넷째로, 납치강도(KFR :
Kidnap-For-Ransom) 문제이다.
KFR은 영문 그대로 몸값을 목적으로 사람을 납치한 뒤 석방의 대가로 금품을 빼앗는 범죄로,
워낙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작년도에는 대통령이 직접 ‘납치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납치범죄가 자주 발생하거나 검거실적이 저조한 지역의
경찰지휘관에 대한 문책을 공언하면서까지 경찰의 적극적인 대응을 독려할 정도이며, 최근에는 그 빈도가 상당히 내려간 것
으로 보이지만 특히 2001년경에는 거의 매일 KFR 범죄가 언론에 보도되어 마치 일상적인 사회현상의 하나로 치부될 만큼 자주 발생하였다.
필리핀내에서 발생하는 KFR은 크게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과 경제적 동기에 의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치적 동기에 의한 KFR은 크게 반군세력 필리핀내에는 MILF, 아부사야프 등 회교반군과
▲ 버스 터미널에 붙어 있던 수배전단. 납치범들이라고 한다
신인민군(New People's Army) 등 공산반군이 아직도 활발하게 준동하고 있음(자세한 반군현황 후술).들에 의해 그들의 세력확장이나 테러, 활동자금 마련, 반정부활동의 일환 등의 목적으로 저질러지는 경우와, 정치 또는 사회적 이익집단 등에 의해 정적제거나 반대집단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저질러지는 경우 등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중략)
이에 비해 경제적 동기에 의한 KFR은 그야말로 납치강도 전문 범죄조직에 의해 순수하게 몸값 갈취를 목적으로 저질러지는 경우로 피납자들의 위해 가능성은 정치적 동기에 의한 KFR보다 낮지만 발생빈도에 있어서는 대부분을 차지한다.
경찰청 관계자에 의하면 부유한 중국계 필리핀인 사업가들이 가장 자주 KFR의 표적이 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납치될 경우 경찰에 신고하기보다는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비교적 거액의 몸값을 순순히 지불하고 해결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기 때문이라 한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필리핀내의 KFR은 이미 일종의 “business"이며 business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좋은 고객(good customers)"을 주요 표적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냐는 반응을 보이면서 최근 들어 이들 중국계 필리핀인 사업가들이 서로 힘을 합쳐 KFR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방안의 하나로 납치될 경우 지불할 몸값에 일종의 “몸값 상한선(ransom cap)"을 정해놓고 그 이상의 액수는 지불하지 말도록 서로 논의한 바도 있다고 한다.
필리핀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납치사건 현황은 따로 통계가 없어 정확한 실상을 알 수는 없으나 꾸준히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외국인 납치가 유난히 많았던 2001년도에는 한국을 비롯한 각국 공관이 잇따라 자국 관광객의 필리핀 여행자제 또는 금지조치를 발표하여 관광객 입국이 현저히 감소하고 외국인 투자자의 철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기도 했다.
외국인에 대한 KFR은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극소수였으나 2000.4월 아부사야프 회교반군에 의한 외국인 납치사건 이후 연이어 2001년까지 주로 필리핀 남부 휴양지에 대한 반군의 습격 및 외국인 납치가 3건 발생하였고, 반군들이 이들 외국인 납치를 통해 막대한 몸값을 챙겼다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여타 지역에서의 외국인 납치도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에 대한 납치사건 한국인이 납치된 경우는 2001년 1건 1명, 2002년 1건 2명, 2003년 현재 3건 3명이며 이중
2002년도에 발생한 납치사건은 MILF 반군에 의한 것이고 나머지는 납치전문조직에 의한 것임. 이중 몸값을 주고 석방된 경우가 3건, 몸값을
주지 않고 석방된 경우가 1건이고 나머지 1건은 피납된 뒤 피해자의 기지로 탈출하였음은 2000년 이전까지는 신고된 바가 없고 이후 해마다
1-2건씩 발생하였는데, 갑자기 금년 8월 한달 동안에만 2건이 발생하였는 바, 우려되는 것은 행여나 이들 KFR 전문조직들이 주요 고객(?)을
중국계 필리핀인에서 한국인으로 변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
.
(이후 생략)
3) 라왁에서 빠구풋으로
저녁 21시쯤 라왁에 도착했다. 작은
터미널.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는 빠구풋까지 한 번에 가보고 싶은 마음에 그 늦은 저녁시간에도 빠구풋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 터미널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에게 말을 건네었다. 여기서 좀 황당한 일이 생기는데 마닐라를 떠나 지방으로 갈수로 사람들이 순박하고 친절했다. 그런데
유독 터미널에서만 불친절을 많이 느끼는데 친철하다, 불친절하다 이런 감정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일 수 있으므로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라왁의
버스 터미널에서 당한 일은 불친절을 넘어 잘못 판단했으면 위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필자 : “실례하지만 빠구풋으로 가는 버스가 지금 있습니까?”
청년 : “지금 정류장에 대기 중인 저 버스가 막차인데 곧 출발 할
겁니다”
필리핀 지도 상 빠구풋은 좀 작은 점으로 표시 되어 있다. 이런 작은 도시에 밤늦게 도착하는 것은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라왁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하고 청년에게 다시 물었다.
필자 : “내일 빠구풋으로 떠나는 버스가 몇 시에 있나요?”
청년 : (히죽거리며)“매일 이 시간에 이 버스 한대 밖에
없어요”
이상했다. 도시가 작아서 버스가 자주 없다고 가정을 하더라도 아침일찍이나 점심쯤에 버스가 운행을 하는 게 보통이지 저녁 21시가 넘어서
한대의 버스만 운행 한다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었다. 혹시나 해서 재차 물어 보았지만 청년은 웃으면서 같은 대답을 할뿐이다.
왠지 기분이
알쏭달쏭 꾸리꾸리 해지기 시작하고 나의 작지만 예리한 눈이 옆으로 쪽 째진다. 터미널에 있던 나이 지긋한 분에게 다시 같은 질문을 하자
나이 지긋한 분 : “빠구풋에 가려고? 아!~ 저 버스가 지금 빠구풋에 가는 막차야. 그런데 지금 이 시간에 거기에 가면 밤 22시가 넘을 테고 그러면 트라이시클도 없고 길도 안보이고(필리핀은 가로등 없는 곳이 많다) 굉장히 위험해. 그러지 말고 하룻밤 이곳에서 묶은 후에 내일 아침에 가는 버스를 타도록 해요”
‘내일 아침에 가는 버스가 있다’는 말을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확실히 듣자 심기가 영 불편했다. 뒤를 돌아보니 청년은 사라지고
없었다. 필리핀은 지방 도시에 가면 거의 가로등이 없다. 필리핀 현지인도 늦은 저녁에 빠구풋에 가면 위험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청년 말만 믿고
그 버스를 탓으면 정말 X될뻔 했다.
필자가 ‘게스트 하우스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묻자 나이 지긋한 분은 나에게 ‘어느 정도 가격의
숙소를 원하냐’고 물었고 필자가 ‘300 페소 정도 되는 방을 원한다고 하자’ 핏자이 게스트 하우스(필자가 5박 6일 여행하면서 제일 깨끗했던
곳)라는 곳을 알려 주고 트라이시클 기사 까지 불러서 잘 안내 해 주라고 당부까지 하고는 혹시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네주었다.
이런 불쾌한 일화를 글로 남기는 게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세상 어느 곳에나 좋은 사람이 있으면 좀 이해 못할 사람도 있는 것이기
마련인지라...
자료출처 - 필리핀카페24 글쓴이 - 강진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