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결과, 한국 중서부인 한강 하류역의 경기도 파주시 운정 지역의 이탄층에서 1700 B.P에 해당하는 옥수수 화분화석이 확인되었고 중부 내륙인 충북 진천 송두리에서는 1500 B.P에 해당하는 옥수수 화분화석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진천에서는 밭농사의 지표식물인 메밀화분과 같이 산출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야생종이 아닌 경작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일단 전혀 생각치 못 했던 부분에 대한 논문인지라 신기할 따름이었고, 화분분석을 전공한 분석요원에게 이 논문에 대해 문의를 했다.
필자가 궁금한 것은 세가지.
1. 옥수수 관련 화분분석 연구는 살펴보니깐 이 논문의 저자인 이상헌 선생님밖에 없는 것 같다. 왜 그런가?
2. 지금 이러한 분석결과가 어느 정도로 믿을만 한 것인가?
3. 옥수수의 전파 경로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로 진행되었는가?
그에 대한 답변.
1. 실제 벼과 식물은 현미경만으로 분석하기에는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플랜트-오팔과 같은 방법을 활용해서 보다 세밀하게 살펴보고 경작 유무를 살펴보는 것이다.
2. 일단 본인이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시료도 적고, 관련 연구가 워낙 안 되어 있다보니 뭐라고 검증할 수가 없을 듯 싶다. 특히 현미경으로 확인 가능하다는 scbrate 돌기는 실제 사진을 살펴보면 거의 확인이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실제 이러한 자연과학분석에 있어서 분석가의 노력함과 안목이 분석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질학회지의 권위를 생각해보면 이렇게 실린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3. 북미와 인접한 유럽을 경유해 서남아시아에서 육로로 중국까지 옥수수가 전해졌다는 연구 성과가 있으며, 당대 초기(2~5세기)에 서남아시아로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파되었다고 보는 연구가 있다. 그리고 이 논문의 저자도 그러한 중국에서 교류를 통해 옥수수가 들어왔다고 보는 것 같다.
이상이었다. 그렇게 답변을 듣고 나니 또 궁금한 점이 생겼다.
1. 옥수수가 대서양을 통해 유럽으로 먼저 전파되고 그 다음에 서남아시아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해졌다고 해보자. 그리고 그 옥수수가 중국에서 재배되었다고 한다면 기록 남기기 좋아하는 중국 양반들이 분명 문헌에 적었을 가능성이 높다. 옥수수가 중국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어떻게 활용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다. 그나저나 옥수수를 의미하는 한자가 있는지조차도 모르겠다. 하지만 와타나베 미노루가 지은『일본식생활사』(1998, 신광출판사)라든가, 이성우가 쓴『한국식품문화사』(1984, (주)교문사) 등을 보면 옥수수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옥수수가 설령 동아시아에서 재배되었다 한들, 폭넓게 활용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다.
2. 2~5세기 당나라에서 옥수수가 재배 혹은 활용되었고, 그것이 3~5세기 한반도 중서부(한강 하류)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파되었다면 그 교류의 주체가 꼭 백제라고 볼 수 만은 없다. 한성백제가 그 시기에 한강 유역을 장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황해도 일대의 대방세력 혹은 그와 연계된 낙랑세력 역시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 지역에서의 말갈과의 관계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5세기 고구려의 남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단순히 한성백제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 개빈 멘지스의『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라는 책과 필자가 예전에 썼던 글(http://cafe.daum.net/yeohwicenter/4NNT/28)에서 나와 있듯이 만약 당시 중국인이 부상국이라 불리는 중남미를 알고 있었다면, 위와 같은 옥수수 전파 역시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라...생각만 해도 흥분되고 재밌다!
덧글 1. 논문 첨부파일은 여기를 클릭!
한국 중서부지역의 홀로세 후기 옥수수 화분.pdf
덧글 2. 모단님이 말씀하신 논문 2편도 추가로 첨부합니다.
혹시 몰라 이것도 구해놨는데 역시 필요하신 분이 계셨네요. ^^
[zea]Chun-Hai Li et al., 2009.pdf
[zea]Xiaoqiang Li et al., 2007.pdf
첫댓글 그 논문의 저자가 인용한 문헌 중에서 옥수수가 당나라 시대에 전래되었다는 주장의 근거는 Li, X.Q. et al.(2007b)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논문의 초록만 읽어 보았는데, rice, buckwheat, barley, millet, wheat 등이 재배된 흔적이 나타난다는 내용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www.history21.org에서 논문을 찾아서 올려 달라고 요청을 했으니, 원본 논문을 보면 그 논문 저자가 주장하는 정확한 학명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논문(Earliest direct evidence for broomcorn millet and wheat in the central Eurasian steppe region)에 중국에서 broomcorn millet을 기원전 3천년 전부터 재배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 논문의 저자가 말한 millet이 broomcorn millet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듧니다만, 일단은 원본 논문을 보고서 국내 저널에 수록된 논문에서 주장하는 신뢰도를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경험으로 보면 대개 이런 센세이셔날한 논문은 근거없는 주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고대 문헌에서 수수를 黍로 표시했을 것 같은데, 기록만 가지고 어떤 주장을 펴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사한 곡식이나 식물에도 동일한 이름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음. 저도 모단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아! 그리고 그 논문 2편은 제가 갖고 있는데, 지금은 없어서~나중에 집에 가게 되면 제가 까페에 올리든가 하겠습니다. 지난번에 이 글을 올리고 그 논문 2편도 같이 첨부한다는 것이 깜빡했습니다. 죄송하게 됐네요. 아! 혹시 그 논문을 보시고 코멘트 해주실 부분이 있다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
올려주신 논문을 다 읽어 보지는 않고 키워드 검색만 해 보았습니다.
옥수수의 학명이 "Zea mays"라고 하는데, Li et al (2007b)의 논문에서 그런 단어가 아예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foxtail millet(Setaria italica), broomcorn millet( Panicum miliaceum)과 같은 작물의 이름이 나오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벼과 식물인 조(粟)와 기장(黍)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옥수수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그 논문에서 옥수수 운운하면서 Li et al (2007b)의 논문을 근거로 제시한 것은 거짓 또는 날조(fake)라고 판단 하였습니다.
저는 그런 식의 거짓 주장에 대해 신뢰를 주지 않는 성향이라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www.history21.org에 여기에 올린 글(여휘님의 글에 대한 짧은 소개 포함)을 소개하였습니다. 공개 게시판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허락을 받지 않고 인용한 것에 대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흠. 그 영어로 된 논문들을 아직 저는 다 읽어보질 않아서요. 암튼 용어 상의 문제가 있고 그걸 논자가 의역(?)해서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면 그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역사21에 가도 모단님 글은 못 찾겠습니다. ㅋㅋ 대신 다른 분이 제가 이글루스에 썼던 포스팅을 언급하신 건 봤네요. ㅋ 이곳은 자주 가는 곳이 아니라서 신경을 거의 안 쓰고 있었는데 오늘 둘러보니 좋은 글도 많고, 학술지 편찬도 하고 앞으로 종종 들려야 할 것 같습니다. ㅋ 암튼, 논문에 대한 간략한 코멘트 감사드립니다~뭐 저도 한번 읽어는 봐야할 것 같네요 ㅋ
어찌하다 보니까 다음에서 사용하는 이름과 그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이름이 다르게 되었습니다. ^^
아~그러셨군요. 어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