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우리나라 최고의 외과 의사로 인정받고 있는
이국종 교수는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에 허덕이면서
부유한 삶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
가난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게다가 가장인 아버지는 6·25 전쟁때 지뢰를 밟아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친
장애 2급인 국가유공자였다.
이국종 소년은
중학교 때까지 학교에 국가유공자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이름은
그에게 반갑지 않은 이름이었다.
‘병신의 아들’이라고
놀리는 나쁜 친구들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마다
술의 힘을 빌려 말했다고 한다.
“아들아 미안하다”
이국종 교수는
중학교 때 축농증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다.
치료를 받으려고
이 병원 저 병원 문을 두드렸는데,
국가유공자 의료복지카드를 내밀자
다른 병원에 가보는 게 낫겠다
며 내치듯 돌려보냈고,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때 이 교수는 아직 어렸지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냉정하고
비정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데 자신을 받아줄 다른 병원을 찾던중
그는 자기 인생을
바꾸어 놓는 의사 한 분을 만나게 된다.
‘이학산’이라는 외과 의사였다.
그분은
두 손에는 날카로운 매스를 들고 있지만,
가슴에는 따뜻한 사랑을 품은 의사였다.
그는 어린 이국종이
내민 의료복지카드를 보고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인술(仁術)의 의사 이학산은
진료비도 받지 않고 정성껏 치료해 주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하고
격려해 주었다.
그 한 마디가
어린 이국종의 삶을 결정하게 했다.
이학산 선생님은 나라를 위해 싸운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으니
진료비도 받지 않겠다 하셨고,
그 후 이국종 소년이 병원에
갈 때마다 열심히 공부하라고 용돈까지 챙겨주셨다.
이학산선생님은
모두가 이 교수와 그 가족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등을 돌릴 때,
군말 없이 두 손을 내밀어 소년 이국종을
보듬어주면서 차가운 세상에도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소년 이국종은 마음속 깊이 감사함을 느꼈고,
그분과 같은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의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을 돕자,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살자’라는
대표하는 삶의 원칙도 그때 탄생했다.
이국종은
가난과 장애로 인해 무시받았던 서러움을 맛보면서
“아픈 사람에게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
이라고 다짐했고,
이를 실천했다.
이국종은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외과의사가 되었다.
“환자는 돈 낸 만큼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받아야 한다.”
이것은 그의 대표적인 삶의 원칙이다.
이학산이 없었으면
오늘날의 이국종이 없었을 것이다.
차가운 말 한마디,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의 가시 같은
말 한마디는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었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깊이 생각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한 사람의 인생을 아름답고
복된 인생으로 바꾸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