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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역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부르심
전남 해남 출신인 신현옥 목사는 어릴적 부터 산앙 생활을 열심히 해오기는 했지만, 자신을 신에게
의탁할 뜻은 없었다고 한다. "본래 나의 꿈은 세계를 무대로 하여 커다란 사업을 벌이는 것,
아니면 연예계로 진출하는 것이었다"고 술회할 만큼, 신목사는 남다른 꿈을 안고 자라났다. 그런데 비교적
유복했던 가정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신목사에게 역경이 닥치기
시작한 것도 이무렵부터, 가난이라는 굴레는 어린 손에게 이루 말할수 없는 설움을 안겨주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신목사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 부지런하고 영리한 한국인이 대개 그렇듯,
신목사도 노력 끝에 불를 거머쥐기에 이른다. 남편은 정비공장을, 자신은 청소사업을 하여 높은 소득을 올렸다. "미국에서 우리는 '하이클래스'의 삶을 누렸다"고 신목사는 회고한다.
여생을 안락하게 보낼 수도 있을 순간에 다다른 신목사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커다란 전화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된 것이다. 몇 년의 공백기를 제외하고는 미국에서도 변함없이 독실한 신앙생활을
지속시켜오던 신목사였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뜻은 단순한 신자 이상의 차원이었다.
"그것은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강권'의 상황이었다. 원래 사업가나 연예인을 꿈꾸던 나를 목회자로
쓰시려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너무나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너무나도 괴로웠고, 그때부터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목회자의 길을 걸으려는 신현옥 목사의 결심을 남편은 몹시 반대했고, 결국
이혼으로 이어졌다. 그때부터 아이 하나를 데리고 목회자 공부를 시작하면서, 신목사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혹독한 시련을 겪게된다. "정말 나처럼 고생하는 이가 또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호된 시련기였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역경을 헤쳐나갔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얼마든지 자유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오직 그 이유 하나만으로 몇 년 동안 밑바닥 생활을 겪어냈다.
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는 여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여자가 되기위해 모진 시련을 겪어내면서, 신현옥목사는 이 시기에 중요한 영적 경험을 하게된다.
즉 서럽기 그지없는 '타향살이'를 통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이다. 비록 가난의 굴레를 자신에게 안겨줘 결국 미국으로 향하게 만들었던 야속한 조국이지만,
야속한 만큼 마을 속 깊게 억누를 길 없는 뜨거운 애국심을 멈출 길이 없었다.
그래서 목회자로 거듭나게 되면 고국으로 돌아가 사역의 임무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목숨을 걸어가며 신학 공부에 매진한 결과, 신현옥 목사는 드디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게
되었고, 온갖 연단을 통과해 참 목회자로 태어나게 된다. 그 은혜는 진정 특별한 것이었다.
사람의 앞날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예언은 물론, 아무리 중한 환자라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하는
치유의 은사가 생긴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는 여자가 되었다. 은총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라고 신목사는 회고한다.
이후 신현옥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수가성세계선교교회'를 세워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오로지 하나님의 뜻으로 사는 신현옥목사에게,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한국에 교회를 개척하게 된것은, 아직도 소외도고 멸시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다.
5.6년 전부터 한국교회의 초청을 받아 부흥회를 인도하러 한국을 방문하곤 했는데, 한국사회가 발전하고
한국교회도 함계 부흥된 것을 확인하는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돌보아야 할 사람들이 많음을 발견했고, 그와
함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감을 느꼈다.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 나의 뜻을 널리 전파하라는 말씀으로 새겨들었다"라고 신목사는 판단했다.
IMF로 한국 사회 전체가 도통으로 신음하던 때였다. "괴로워하는 내 조국을 위해 하나님이 나를 도구로
쓰실 때가 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하여 20여년 간의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신목사는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던 조국, 한국에 정착한다.
'남성우월주의'의 편견을 과감히 돌파하며
신현옥목사가 귀국하여 처음으로 터전을 잡은 곳은 부산,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부산 지역은
사역을 하기에 가장 어려운 곳으로 정평이 나있는 데다. '여성 목회자'에 재한 차별과 질시가 여느 곳보다
심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는' 신목사는 만만치 않은 역경을 헤쳐나가며,
부산에 '수가성세계선교교회'를 설립하고 성공적인 목회 활동을 이루어 나간다.
수가성세계선교교회는 여인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는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수가동네를 상징하는 교회,
택하여 부스신 연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롬8:28.29)이 모인 곳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모임이다. 청.장년 및 가정 바로 세우기, 무의탁 노인및 청소년 가장돕기, 고아원 설립, 구호병원설립 및
기존 개척교회 돕기 등, 교회 사역의 방향은 무너져 가는 가정치유, 목회 치유를 통한 가정회복과 사회회복 등
이를 통해 "주님 나라를 확장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는것" 이라고 신목사는 밝힌다.
수가성세계선교교회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선교) 소속으로서 마지막 시대에 주님에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려는 하나님의 비전을 가진 전세계 복음공동체이자, 하나님을 소유하고 하나님으로 충만한 사람들과
목회자들을 훈련하는 다문화적이고 국제적인 목회를 수행한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이라는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속에 연단 시키고 인내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때에 은혜를
주사 미천한 벌레보다 못한 이 여인의 삶에 찾아와 새 생명과 소명을 부여하시고 믿음으로만 가능한 이 길을
걷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인간에게 체험과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보다 나은 열매를 맺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과정이다. 예수님 또한 인간으로 오셔서 사역을 하시기 전에 이러한 과정을 겪으셨다.
내가 아파 보지 못하고, 낮아져 보지 못한다면 결코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것이다"
어린시절, 가난과 소외로 불우한 성장기를 겪었던 신목사의 간증은 수가성세계선교교회가 갖는 소외계층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보여준다. 특히 방황하는 청소년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신목사는 그들이 어려운 환경에
시들지 않도록 영적 부모로서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
신목사가 하는 목회는 일종의 '선교'와 개념이 비슷하다. "한국에서 부흥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목회자를
중 무례하고 교만하고 예의가 없는 면면이 있다"는 것이다. 양보나 겸손의 미덕이 없는 모습을 많이 목도하게
된때부터 신목사는 "기적보다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부흥회나 세미나 에서 신자들이나
목회자들을 향해 기본은 강조하고 있다.
신목사 자신이 신유나 예언 등의 은사가 강하지만, 기본이 안돼 있는 이들을 향해서는 기본을 바로잡도록
역설하고 거침없이 잘못을 지적하기도 한다. 여성으로서 강단에서 강력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보니 간혹
남성들 입에서 '여자가~'라고 비판을 하는 말도 듣는데. 그런 때 신목사는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피해라는 판단이 서면 과감히 반격을 가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너무 강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제역할을 찾기 위한 과도기에서 발생되는 현상일 뿐이라고
신목사는 간주한다. 또한 신자들이 집회 때마다 신목사의 설교에 감동을 받는 이유에 대해 신목사는
"듣는 자들의 심성이 그만큼 준비돼 있기 때문"이 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계산 없이 주는 사랑,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으로서 '인간'이 먼저 돼야 할것"등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고통받는 이에게 용기와 소망을 불어넣어주는 수가성세계선교교회
"천국을 소유한 자, 즉하나님을 소유한 자는 담대하다. 두려울 것이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 인들이 해야할 일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목사의 권위는 겸손할 떄, 낮아질 떄 회복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범사에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찬송해야 한다. 원수 같은 자를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자가 진정 영화로운
하나님의 자녀이며, 교만하지 않고 양들을 올바로 이끌 수 있다." 목회자의 소명에 대해 자문을 던지는
신목사는 "행함이 가장 가까운 설교"임을 강조한다.
"내 중심이 진실해야 하며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서는 마음껏 말하고 표현하고 어린 아이같이 순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전하기 전에 성품이 변화되어야 한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 첫사랑을 회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 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베푼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곧 고아와 병자, 과부와 노숙자,
21세기가 밝아와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극명한 빈부의 차이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하루하루의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국내의 사정을 알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작으나마 희망을 안겨주고자
두 팔을 걷어부친 목회자가 바로 신현옥목사다. 신목사는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센터를 설립해 이들에게
의식주 해결은 물론, 물씀을 통해 용기와 소망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수가성세계선교교회의 목표" 라고 밝힌다.
"내 삶의 목표, 그리고 제가 살아 숨쉬는 이유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진실한 사랑을 주기 위함이다.
내가 겪은 고난과 연단의 과정은 목회자의 겸허한 소명을 다하게 한다. 나는 반드시 한국의 발전에 헌신하는
제2의 테레사, 아는 것을 행하는 한국 기독교계의 독립투사가 될것이다."
나는 한국 기독교계의 독립투사
'독립투사'를 자처한 심목사는, 요즘 나라 생각에 잠을 설칠 때가 많다.
"한국은 정말 썩어도 너무 썩었다. 사람들은 쾌락과 향락을 쫒아 밤을 지새우며, 보호를 받고 자라나야
할 소중한 청소년들은 온갖 유혹에 넘어가 인생을 망치고 있다. 정치인들은 양보하는 마음가짐 없이
당리당락에 따라 서로 싸우기에 바쁘다. 나라 전체가 서로의 생각과 사상을 인정하지 않고 분열되어 있다.
이러한 가운데 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도탄에 빠져간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인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한국에 왔기에 신현옥목사는 한국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날마다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히 "경제 문제는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뼈에 사무치고 있다. "내 경우를 보아도 그렇다.
굶주리고 살기 어려워지니까 미국으로 떠나게 되지 않았는가. 나라 살임이 어려워지면 사회도 병들게
마련이다. 우선은 우리 주위의 불쌍한 이웃을 돕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첫 단추가 된다."
이러한 신념을 실천하기 위한 신현옥 목사의 집념은 남다르다. 약 7개월 전 서울로 올라와 '수가성기도원'을
설립한 신목사는, 이곳에서 갈곶 없는 할머니들을 비롯,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100여명의 식구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해오고 있다. 이 식구들 중 절반 가량은 부산에서 함께 데리고 살던 200여명 중에서
서울까지 함께 온 이틀이며, 나머지는 서울에서 새로 합류하게 되었다. "사회복지 사업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 큰일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신목사는 힘주어 강조한다.
하지만 신목사가 거두어 보살피는 이 100여명의 식구들이 갈 곳 없는 '홀리스'는 아니다.
모두 앞으로 이 땅을 주님의 천국으로 일구어낼 목회자가 되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꿈나무들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일꾼이 될 사람이다'라고 아이들에게 항상 강조한다.
'하고싶은 공부를 마음껏 해라. 하나님의 나라. 이 나라를 살릴 '독립투사'가 되어라.
아이들의 정신 상태 역시 똑바로 박혀있다. 한 아이는 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데 , 영어,중국어,독일어,
등을 배우며 일등 목회자의 삶을 꿈꾸고 있다." 신목사는 이 아이들을 훌룡한 목회자로, 선교사로 사회복지
지도자로 키워낼 생각을 하면 신명이 저절로 난다고 한다.
'꿈나무'를 키우고 있는 신현옥목사의 마음은 뿌듯하면서도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로 충만해 있다.
100여명을 먹이고 재우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을텐데, 신목사는 개인적인 도움을
아무에게도 받지 않고 부산 시절을 포함해 4년째 이 생활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여자 혼자 하기 쉬운 노릇은 아니다. 한달 생활비가 2천만원에서 5천만원까지 들어갈 때도 있고, 힘들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라고 신목사는 고백한다. 공동생활에 들어가는 경비는 오빠와 함께 사업을 하며 충당하고
있다. 어렸을때부터 머리가 좋고 공부 잘 하던 오빠. 하지만 가난을 원죄처럼 떠안고 오직 살아남기 위해
낯선 땅 미국으로 함께 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오빠가, 이제는 당당히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누이의
목회사업을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있다. 신목사는 오빠의 헌신에 늘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면서, 함께 사업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돈은 버는 능력' 또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신의
거대한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금전이 요구된다는 깨달음이 들어서인 것이다.
신목사의 선입견을 물리친 개척정신과 에너지가 넘치는 도전정신은 비단 한국 교계뿐 아니라 이 사회 전체에
깊은 귀감을 제시한다. 최근 신현옥목사는 한국은 물론 전세계의 복음화에 앞장서는 하나님의 사역자의
사명을 받고 '세계기독교부흥사협의회'의 새로운 여성총재 목사로 선출되었다. 타 기독교 단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여성 목회자가 총재직을 수행하는 것이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신목사는 21세기 수가성세계선교회 총재. 국제 여성부흥사협의회 총재. 문화예술신학원 총재,
한국.이스라엘 기독교 여성지도자 협의회 총재. 한국기독교복음단체총연락 여성총본부장.
재미재단 세계복음화협의회 해외위원장. 대한교경신문 운영위원장. Christian Daily News TV운영이사장,
미국,한국,필리핀 수가성세계선교교회 당회장. 한국.필리핀 수가성세계선교신학교 학장,
서울 수가성기도원 원장, (주)수가산업 회장직 등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조국통일기도통지협회 대표총재인
피종진목사와 남북교회연합 금강산기도회에 전국 유일의 여성 회장이라는 이름으로 참석해 복음전파의
사역에 충실을 기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 등지에 사업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는 대형 집회를 열계획"이라는 신현옥목사의
포부를 들어며, 이땅에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그리하녀 다함께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신목사의 신념과 실천 정신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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