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해방구 율어(입구)로 향합니다.
정말로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죠.
버스를 타고가는 동안 이근술님의 설명은 계속됩니다.
우리는 다리건너 좌측으로 빠집니다. 오른쪽에는 고읍,들몰,낙안으로 빠지는 길이 보이는 군요.
들몰이라면 하대치의 아내 들몰의 고향이죠. 들몰댁의 친구도 화순으로 시집가서 들몰댁이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같은 들몰댁이라도 팔자가 천지차이가 되지만..."문딩이 가시내, 팔자도 참으로 험악하게 변했다."
그리고 산에는 김범준과 염상진이 김사용의 상여를 목격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 있습니다.
김범준은 자신의 일을 조용히 도와주시던 아버지 김사용을 생각합니다.
들몰에서 더가면 고읍이라는 곳이 나오죠.
전에는 여기가 벌교관아가 있던 곳이죠.
하지만 손자가 할어버지를 죽이게 되는 강삼죄로 관아가 낙안으로 옮겨가죠.
낙안읍성은 지금도 옛날 고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가집앞에 몇고량 몇평주니 집모양이 특이한 구조를 하느니 하는 표지판 때문에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설명이 과연 옛날 집을 설명하는데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있는 집도 있고 빈집도 있고합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먼저 사람이 되야 하는 것이여"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기억도 있죠.^^;
전통체험을 하러 온 어린이 교육인듯 했죠.
그리고 성벽을 타고 올라 마을의 모며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좋겠죠.
잠시 이야기가 딴데로 빠졌군요.
우리가 가는 길은 진광리를 지나칩니다. 양효석이 초소를 설치했다가 하대치에게 패배하는 장면이 나오죠.
그날 하필 때를 잘못만난 유동수는 양효석한테 죽죠,
뭐 단 사내가... 염상구와 유동수의 아내의 생각이었죠.
우리는 고개를 타고 올라갑니다. 밑에 다랑이논이 보이는 군요.
염상진네에게 쳐들어 갔다가 혼쭐이 난 심재모와 계엄군이 다랑이논을 타고 후퇴하죠.
아래에는 소로가 보이는데 염상진과 김범준이 이근술을 보러 율어로 바삐걸어가던 장면이 생각나는 군요.
여기서 율어면민들의 눈물겨운 탄원이 돋보이죠.
염상진이 김범준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여기서 처음이었죠.
잠시후 율어면 표지판이 보이고 버스는 고개마루에 자리를 잡습니다.
역시 율어는 가슴을 탁 트이게 해주는 군요.
산으로 둘러싸인 탁 트인 모습./!
정말로 천연의 요새입니다.
하지만 땅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우리는 이내 기분을 잡치고 맙니다.
온 천지가 쓰레기 더미군요.
전태일 열사의 기념동팡이 쓰레게 더미에 묻혀 있더니 여기도 그런 대접을 받는군요.
힘있는 자에게만 굽는 이 사회의 행태가 원망스럽습니다.
율어는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특징때문에 교통이 불편했고 그 덕분에 천연의 요새가 되었져. 그래서 염상진네가 수년에 걸쳐 율어를 해방구로 할 구 있었던 것이죠.
6.25종료후 까지도 빨치산들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금광이 있어 외부인의 출입이 많았는데 그래서 율어사람들이 폐쇄된 공간에 자리잡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인식 수준이 높았다고 합니다.
여기선 고두만의 아내가 율어를 출입하죠. 2세문제로..
결국 이때문에 심재모는 헌병대에 잡혀가고 천신만고 끝에 나와 단양으로 부임하게 되죠.
또한 남인태가 여기 보내지 안는다는 조건으로 돈을 받는 부정을 저지르게 됩니다. 결국 이근술이 여기에 옴으로서 '훼방을 놓게' 되죠.^^
다시 우리는 벌교 읍내로 내려옵니다.
소설과 실제와는 틀린 점이 잇는데 벌교 경찰서는 여.순 사건당시 반란군들이 퇴각하면서 불을 질렀는데 소설속에서는 점령하자 마자 불질렀다고 나와있죠.
다시 우측으로 소화다리가 보입니다. 부용교라는 새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때 붙여진 이름은 기억하라는 듯 남아 있습니다.
좌측으로 이근술과 이지숙이 야학을 열었던 교회가 눈에 들어오는 군요.
우측으로 다시 작가 조정래님의 생가가 보입니다. 초가집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꾼것을 빼면 그대로라고 합니다.
벌교 시내를 지나 선구교를 지납니다. 여기서 염상진네의 공격에 경찰들이 혼비백산 하여 도망치죠. 벌교는 약 2시간 동안 해방구가 되져/
강동식이 외서댁의 일을 알게 되는 것도 이때고요.
다시 철도 건널목을 건넙니다. 여기가 보도연맹이 뱀골재로 끌려갔었죠.
이들을 인질삼아 죽어던 장면은 지금도 우리를 몸서리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삼성병원이 보이고 근처 고깃집에 들러 여기서 저녁식사를 합니다.
기행을 마치고 회원들과 함께 고기와 소주한잔으로 회포를 풀어봅니다.
나름대로 느낀점을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서로 몰랐던 사람들끼리 이야기도 해보고...
난 벌교에 와보고 태백산맥을 읽기전에는 우리나라엔 왜 영화나 소설속의 장면을 직접 볼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벌교는 기대이상의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른 곳은 그저 관광용으로 전시되어 있을 뿐입니다. 죽은 집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벌교는 집에도 사람들이 지금도 있어 그때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남도여관에서 "나도 부끄럽드라고 잉"하시던 아주머니 처럼...
벌교 곳곳에는 그때의 역사적 교훈이 지금도 남아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한마디로 살아있는 벌교입니다.
벌교에서는 부산, 광주로 가시는 님들이 내리시는 군요. 오늘 설명해 주시니라 무진장 애를 쓰신 이근술님도 내리십니다.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어느새 어둑어둑 해져 있군요.
별보고 벌교에 들어와 별보고 나오는 군여..
순천역에 내리면서 오늘 우리를 여기저기 데려다 주신 남도관광 기사님과도 작별이로군요.
順天驛이라는 한자 간판이 보이는 군요.(한글 밑에)
땅이 험하여 순해지라는 뜻에서 순천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하죠.
잠시후 우리는 서울로 가는 열차에 오릅니다.(여수발 서울행 제 480무궁화호) 벌교, 순천과는 이제 작별이로군요.
자리가 모두 갈라져 있군요. 4명씩 한조를 이루어 띄엄 띄엄 앉아갑니다. 모두들 피곤한지 조용하군요.
오수역쯤 왔을까 범준님이 내리시는 군요.
어 분명 집은 남원이라 하신것 같은데...--;
그리고 롤링페이퍼 시간이 돌아오는군요. 서로간에 반가웠다고...
덕담을 주고 받습니다.
한편 부산으로 가시던 분들이 접촉사고라는 군요..--;;
다친분은 없으시다니 다행...
이젠 한분 한분씩 내리시는 군요.
수원역엔 23:44분에 도착합니다.
회원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수원분들과 함께 내립니다.
창공님, 아잘린 님과는 여기서 작별하고
여기서 하대치님 집까지 데려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즐거운 기행이었습니다.
*교통편
서울발 진주행 제 489 무궁화호(순천역 하차)
순천-벌교 남도관광
벌교시내 도보, 남도관광
여수발 서울행 제 480 무궁화호(순천역 승차)
*수고하셨습니다.
이근술님, 김재한님, 아지라엘님, 남도관광 기사님
벌교기행 참석한 회원여러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