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들녘에서
언제부터인가 정년이란 나이로 生業에서 밀려난 이웃 老年의 일상을 보면서 남의 일 만은 아닌 것임을 느꼈다. 아마 그 무렵이 내 나이 쉰은 지났던 것으로 생각된다. 거리에서. 공원에서, 빌딩 숲 그늘진 곳에서, 무료한 시간을 주체 못하고 서성이는 노년들, 초점 없는 시선은 외로움으로 먼 虛空을 바라만 보고 있는 노년을 보면서 너무도 초라하고 안 서러운 마음 금할 수 없었다.
나만은 죽는 그 날까지 일손을 놓지 않으리라 생각도 하고, 일손을 놓고 산다면 저렇게는 시간을 죽이며 살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일손을 노아야 한다면 한적한 시골에서 채소밭이라도 가꾸며 책을 벗 삼아 책 속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가슴에 담고 思惟하면서 살리라고도 생각했다
先進국 여러 나라에서는 노인 복지 문제를 국가가 그의 부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에서 할 수 있는 분야에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부모의 거주지 인근에 자녀가 거주하도록 政策적인 配慮를 한다는 것이다. 즉 부모의 처소로부터 수퍼(국)이 식지 않을 거리에 자녀가 거주하도록 정책적인 안배를 한다는 것이다. 국가나 사회가 아무리 노인 복지 정책을 완벽하게 한다 하드라도 血育의 보살핌만은 못한 것이 東西洋 어디서나 人間의 세상은 같은 모양이다. 최선책은 아니지만 차선책으로 바람직한 대한 같다.
이런 면에서 모두 딸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한결같이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딸이 없고 보니 아들에게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아들마저 멀리 떨어져 태평양건너 미국에, 그리고 서울에 살고 있는 처지고 보니, 최후의 순간이 온다 해도 臨終을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그 누구도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고 아쉬움이 없지 않겠지만, 많은 아쉬움 가운데 어린 아이들의 눈높이로 다가가지 못하고 언제나 訓育이랍시고 서투른 내 방식대로 주문만을 한 것이 많은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나이 들어 외로움 때문만은 아니다.
박목월 시인을 아버지로 유 익순 장로를 어머니로 둔, 서울대 박 동규 교수의 신작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 신작 에세이를 읽고 지난날이 아쉽기만 한 것은 부모란 이렇게 자녀에게 용기와 사랑을 함께 심어주워야 하는데, 이 작품을 읽고 아이들 눈높이로 다가가서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 남지만, 이미 때는 늦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현관에 어쩌다 뒤집어진 뒷 굽이 다 닳고 해어진 아버지의 구두를 보고 눈시울을 적시는 딸이나 가족이 함께 하는 가정이라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고, 그 노년은 가장 아름다운 삶이며, 성공한 삶이 아닐까? 나이 들어 행복한 노년은 가족이, 자녀가, 어버이 가슴을 바로 읽을 줄 아는 자녀가 옆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노년이 될 것이다. 이런 자녀가 있기까지는 그가 젊을 때 어린 자녀의 눈높이로 가슴을 다독이는 자상하고 진실한 사랑을 그 자녀에게 심었기 때문임을 박 동규 교수의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를 읽고 뒤늦은 깨달음이 아쉽기만 하지만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라 생각하면 오늘에 感謝해야 할 것 같다.
나름 데로 老後를 생각하며 많지는 않지만 노후에 크게 아쉽지 않으리만큼 이라고 생각한 노후의 대책이 1997년 말 물 그 품이 되어 버렸다. 이로 인한 심적인 충격으로 한동안 마음의 큰 병을 얻어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이 와중에도 나보다는 아내의 충격이 더욱 심해, 이러다간 온 가족이 함께 陷沒할 것 같아 앞에 온 시련에 循應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불가 피에 협력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알기까지는 마음만의 병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몸도 망가지는 아픔 을 격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 2000년 8월 11일 갑자기 다리에 통증이 왔다. 진단결과는 허리 협착증으로 통증이 온 것이란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첨단 의술로 이 정도는 간단한 레이즈 수술로 완치가 되리라 생각했으나, 그것은 나의 희망 사항일 뿐, 평생을 병마와 동행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凡事에 마음을 비우고 老年三魔(病苦, 孤獨, 金)를 求道의 정신으로 마음에 보듬고 살아가야 할 도리밖에 없었다. 이렇게 갑자기 몸이 탈이 나고 보니 生業에서 밀려나 목적 없는 세월 앞에 서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열심히 치료를 하다 보니 완치는 아니라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하지만 목적 없는 시간 앞에 처음 1년은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시간표를 만들어 기획된 삶을 살려고 아침이면 산행으로 몸을 단련하고 그동안 생각해 두었든 책을 골라 독서로 시간을 메워 보았으나 이 역시 시력의 한계로 2, 3 시간에 불과 하고 어영부영 목적 없이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4월 미국에 손자 돌잔치에 갔다 오면서 아들로부터 노트북 컴퓨터를 하나 들고 왔다. 40년 전 군에서 타자를 쳐보고는 처음 쳐보는 키보드 앞이라 여간 서툴지가 않았다. 이렇게 컴퓨터를 접하게 되어 다시 부산진 우체국에 나가 기초를 익혀 나가면서 같이 배우는 노년의 학우들과 자연스레 벗으로 사귈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처음에 전자 우편이란 메일로 세계 어디든지 몇 초안에 정보와 소식을 전할 수 있고, 우주만큼이나 넓고 깊은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바람직한 노년 생활이란 각자 나름대로 철학이 있겠지만, 정보화 시대에 동참하면서 사이버 여행도 즐기고 우주만큼이나 넓은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면서 스스로의 취향에 맞추어 즐기는 것도 노년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컴퓨터로 인하여 사귄 심 봉필 선생님(경헌 실버2기생)께서 주신 정보에 의하면 부산의 60세 이상의 노년을 위한 실버 학교가 개설되어 2기로 수업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 어느 한 지역의 편중을 막기 위해 각 구별로 5, 6 명씩을 사회 복지과에서 접수를 받아 부산대학교에 통보한다는 것이다. 이 정보로 구청에 선착순으로 접수하여 부산대 경헌실버3기로 등록하여 수료까지 한 지금, 在日 實業인 김 경헌 회장님의 깊고 높은 뜻으로 부산의 노년을 맞이한 노인들의 뜻있는 노후를 맞도록 큰 헌금을 희사하여 경헌실버 대학을 부산대학에 개설하신 김 경헌 회장님과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에 감사 할 따름이다.
스스로 健康한 歲月을 보내기 위해서 이렇게 釜山大學 경헌 실버에서도 受業을 받고 같은 老年들과 함께 하면서 어떻게 하면 보다 보람 있게 老年을 가꾸어 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이에 대한 여러 情報도 交換 하면서, 그 한 가지 방법으로 컴퓨터를 배워 지금은 사이버 旅行을 즐기며, 有益한 情報를 涉獵하고, Digital Camera 로 旅行地에서 寫眞도 찍어 Photoshop 으로 사진을 꾸며서 E-mail로 멀리 異國에 있는 자녀에게 添附해 傳하기도 하고, 때론 컴퓨터에서 畵像 으로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 對話를 하기도 한다.
지난 2002년부터 컴퓨터를 배워, 이왕이면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워드프로세스 국가자격 시험을 보았다. 인터넷으로 접수를 하고 고사장에 가보니 모두가 청소년이고 나이 많은 분이라야 30, 40 대 몇 분이 있고, 내가 최 고령자였다. 필기는 한번에 당장 합격을 했는데 실기는 집에서 연습할 때는 7분여 시간이 남는데 시험장에만 가면 긴장이 되어 옆자리 중학생들의 자판기 소리에 질려 오타를 연발하고 실패를 거듭하고 5번 만에 워드프로헤스 2급 실기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또 2006년에는 경성대학 평생교육원 부설 골드에이지 노년대학 1, 2 학기에는 같은 노년들의 컴퓨터 입문을 주 강사 외 보조로 도우미를 하였다. . 2007년부터 골드에이지 과정에서 컴퓨터가 빠지는 바람에 지금은 남구 제2정보센터에서 노년들에게 Swish 라는 프로그램으로 영상제작을 지도 하고 있다.
어느 때 3代가 함께 사는 親舊로부터 電話를 받았을 때, 電話선을 타고 어린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 소리가 정겹고 귀여운 소리로, 인간다운 삶의 소리로, 들려 무척 부러운 生覺을 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人間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불편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三代가 한곳에서 生活 했든 옛날 農村의 大家族의 삶이 오늘날과 같은 老人 문제는 없었는데, 社會가 變遷 하면서 오늘과 같은 老人 問題가 생겼다.
이런 면에서 바람직한 代案은, 子女와 父母가 近 거리에 언제나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距離에 산다면 이상적인 代案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學友 중에 두 아들과, 딸과, 본인 4가족이 각각 A P T를 한 團地에 마련하여 入住할 準備를 한다고 했다. 이분들 家族은 무선일이든 家族모두가 同參할 수 있는 距離에 있음으로 家族愛도 남다르리라 생각한다. 참으로 賢明한 選擇을 한 家族이라 생각하며, 무척 부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지난날 생각은 나이 들어 일손을 놓고 나면, 시골에 가서 채소밭이라도 가꾸며 좋은 책이나 읽고 思惟하며 살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컴퓨터가 있고 컴퓨터를 이용해 부산의 노인들이 젊은이들도 어렵다는 Swish 프로그램을 이용한 멋진 작품을 만들어 친구, 가족, 손자, 들에게 실력을 과시하는 노인들과 동참 하고 있다.
急速히 變遷해 가는 情報화 社會에서 젊은이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은 감각으로 Digital 문화에 동참 하면서, 멋진 노후의 삶을 살고 있는 원로방 사이버 회원들이다. 같은 노년을 맞이하고도 어떻게 세월을 활용 하느냐에 따라 그 질이 다르다. 이런 면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은, 부산 원로 방 Swish 클럽 회원 들이라 생각된다. 序頭에서 言及한 그러한 부류의 노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뜻있고 활기찬 세월을 가꾸어가면서 즐기며 생활 하고 있다.
부산 원로방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부산 원로 방 김 홍만 회장님, 이 의규 선생님, 박 영기 선생님, 이 철부 선생님, 장 병수 선생님, 총무 박 문자 여사님, 김 연엽 여사님, 그밖에 여러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기 때문임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난날 중요한 자리에서 일익을 담당하셨든 知誠을 겸비한 훌륭한 분들과 자리를 같이 하며, 컴퓨터를 통한 배움이 있고, 정겨움이 묻어나는 웃음과 함께 즐거운 세월을 만들어가는 만남이 있기에 오늘이 외롭지 않다.
부산진구 개금동 (和允) 卞 明植 : 닉네임<그리고>
첫댓글 그리고님의 자서전...읽고 공감하는 바가 많습니다.노년에 컴을 벗삼고 동년배의 남녀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요.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자족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저는...누가 뭐래도 스스로 행복하다 느끼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언제나 바른생활 선생님 배울것이많은 그리고님 저가 이근래에 본 분들중에서 정말로 선생님을 만나게 된것을 소중한 인연이라고 자신이 고마워 하는분 입니다. 모든것을 극복하시는 능력과 헤처나가시는 모습은 언제나 우리가 본받을 일입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건강하시고 가정에행복도 가득가득 충만 하십시요 선생님 우리황혼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지는해가 지구 반대 편 에서 다시 솟아 오르니까요 우린 솟지는 못하지만 노력하면 좀 머물러 줄거예요
그리고님의 진솔한 이야기에 공감을하면서 우리의 모든 노인들의 진로에 다시 고민을 하지 않을수 없군요.그래도 늙었지만 늙지않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건강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살아 보렵니다.자녀들에게 의존하지 않는것도 문재이지만 의존할 형편이 못됨도 더 큰 문재가 아닐까요.큰욕심버릴래요. 건강하기만 바래야지요.그래도 우리는 행복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