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라(고전1:1-3)
3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 사도는 자신이 세운 교회들에게 문안 편지를 인편(人便)에 보냅니다. 교회의 성장과 복음 준수에 대하여 묻고, 때로는 교회내에 잘못된 사상과 윤리적 타락에 대하여 꾸짖기도 합니다. 오늘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의 문안인사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자신의 사도성을 나타 냅니다.
1절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갈1:1-2)이라는 말씀에서 바울의 사도성에 대하여 불신하거나 부정하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도됨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임을 변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소스데네는 바울의 2차 선교여행 때 고린도에서 바울로 인해 유대인들에게 폭행당한 고린도 회당의 회당장입니다)(행18:17)
즉 사도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신성하고 절대적인 권위가 있는 직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우실 때에 밤새도록 기도하신 후에 자신이 원하시는 이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눅6:12-13).
베드로 사도에게는 유대인들을 향한 복음 전파 역할이 주어졌고,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사도로 부름 받았 듯이, 오늘날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헌신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성도들은 어느 가정을 심방할 때에 그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하기를 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 보내실 때에 너희가 어느 가정을 가더라도 그 가정의 평안을 빌라(마10:12)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향한 문안편지의 시작 부분에서 교회와 성도의 은혜와 평안을 기원하게 됩니다.
이는 편지를 통하여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목적을 그들로 하여금 편안히 수납하도록 하려는 뜻이 담겨져 있고, 편지의 내용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록하였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부드럽고 온유한 책망은 강하고 억압적인 고자세의 질책보다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로 대화를 이어가게 되면 소기의 목적을 수월하게 성취할 수 있지만,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자세로 대화에 임하면 상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 반발하게 됩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의견을 경청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게 되면 상대방도 나의 의견을 존중하고 의사를 이해하려고 양보를 합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직임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여 충성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양무리를 예수님을 사랑하는 심정으로 돌봐야 합니다. 지혜서인 잠언에는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잠27:23)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내가 돌봐야 하는 양떼와 소 떼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고 양육해야 하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사랑으로 보살피고 정성으로 보호하며 인내하며 기다리며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끝까지 책임져야 할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내 가족이고 형제이고 이웃입니다. 내 몸같이 사랑하고 부지런히 보살펴서 그들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울타리 안에 있는 양무리를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야 하고 건강하고 평안하게 지내면서 잘 먹도록 양질의 먹이를 공급해야 할 책임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직분은 거룩하고 고귀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헬렌 골프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구두를 만드는 제화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구두를 만드는 제화공이 되었습니다. 내게 있어서 한 켤레의 구두를 짓는 것은 하나의 설교와 같이 거룩하다고 믿습니다”
바울 사도가 자신을 통하여 세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살피고, 양육하였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양무리에 대하여 내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며 보살펴야 합니다.
둘째,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거룩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2절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성도라 칭합니다.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이며 거룩하신 성령의 전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신분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에서 너희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므로, 성전을 더럽히지 말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성전은 깨끗해야 하고, 정리 정돈이 잘 되어있어야 하며, 꼭 필요한 것이 구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곳은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며,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곳입니다.
성전은 인생의 변화를 경험하여, 새롭고 향기나는 아름다운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 지는 곳입니다. 이 성전을 더럽힌다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룩하고 구별되어야 할 성도가 세상과 동일한 사고방식으로 생활한다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십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거룩한 성도’라고 지칭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거룩한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복음을 전하여 얻어진 소중한 열매이기에 보존하고 유지해야 할 책임과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동일한 역할을 맡겨 주셨습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거룩함을 유지하며 그의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산상 수훈의 결론은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고, 그를 아버지라 부르며, 그를 경배하며 살아가도록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때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라는 노래를 흥겹게 부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형제들을 보호하여 거룩함을 유지하여 아름답고 서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해야 합니다
3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에게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6:24-27)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복을 빌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 지어다”(빌4:21-23)
성도들을 문안하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여기서 ‘은혜와 평강’은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인사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의미합니다. 은혜는 죄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를 가리키며, 평강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 내적 평안과 안정감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적 축복과 보호를 강조하며,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축복을 빌 때 자주 사용됩니다.
같은 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공동체로서 일체감을 갖고, 서로의 평안과 안정감을 공유하여 시너지 효과를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공공체 안에 있는 무리들 즉 울타리 안에 있는 모든 양무리들의 안전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기원해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은혜와 평강을 누리기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시는 은혜와 복을 잘 간수하고 활용하는 것은 성도의 몫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잘 지키는 것이 무엇 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서 자유와 방종을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 합니다.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1.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후렴 :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2.내 맘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히인 보배로다
나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갈 자 그 아무도 없으리라
3.내 영혼에 평화가 넘쳐남은 주의 큰 복을 받음이라
내가 주야로 주님과 함께 있어 내 영혼이 편히쉬리
4.이 땅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있나
우리 모두다 예수를 친구삼아 참평화를 누리겠네
바울 사도의 교회와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함께하여 성도를 사랑하고 평강이 이루지는 것을 함께 누리며 거룩한 공동체로서의 삶이 영원토록 지속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예수사랑선교회 임 웅 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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