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열 두 사람이 모여 앉았다. 자신을 개방하기 위한 집단이었다. 자기 소개를 위해 명찰을 달아야 했다. 빈칸에 이름을 적으려는데 진행자의 주문이 덧붙었다. 이름 대신 별칭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별칭이라는 뜻밖의 요구에 나는 머뭇거렸다. 자신을 상징할 만한 별칭을 가진 적이 없었다. 내세울 별칭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갑자기 나의 존재가 싱겁게 움츠러들었다. 개성없고 무미건조한 성격으로 스스로 단정지어졌다. 짧은 순간의 당혹한 맞닥뜨림이었다.
별칭이 없는 사람은 즉석 작명하라는 진행자의 도움말이 들렸다. 재빨리 머리에 스치는 단어가 있었다. 초록색깔 크레파스를 집어 백지에 적었다.
'파초'
스무여 개의 심성훈련 순서가 이틀 동안 마라톤 진행되었다.
자기자랑, 가고싶은 곳, 슬펐던 일, 기뻤던 일, 보고싶은 사람 등... 유치할 것만 같은 질문들이 유치하지 않게 진행되었다. 개방하며 수용하고, 분석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며 절대 신뢰할 것을 선서한 탓인지 나는 아주 진지하게 모든 순서에 임했다. 그것은 정서의 밑바닥을 파헤쳐 자기를 돌아보는 소중한 작업이었다.
이틀 간의 심성훈련 마지막 시간에 팀원들이 전해준 카드에는 나에 대한 느낌이 적혀져 있었다. 남국의 '파초'가 지닌 이미지와 본인의 솔직하고 다감한 분위기가 썩 잘 어울린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우연한 모임에서 "파초!"하고 반갑게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의 진행자였다. 이름보다 나의 별칭이 기억에 남더라는 말을 덧붙이고 그는 웃으면서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장난처럼 백과사전을 꺼내 파초에 대해 찾아보았다. 식물성 파초에 대한 내 지식은 선명하지 못했다. 이파리가 넓고 긴 사진 옆에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파초: 파초과에 속하는 중국 원산의 여러 해 풀로서 온대지방에서 관상용으로 널리 가꾸고 있다. 높이는 3미터 가량 자라며 길이가 1-2미터나 되는 넓은 잎은 다 자라면 아래로 늘어진다. 여름에 황갈색 단성화가 피고 파초의 줄기, 뿌리, 잎은 황달 또는 외과의 약재로 쓰인다' 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모양새가 풍성한 것이 옹졸하지 않거니와 약재로도 쓰이는 용도가 어여쁘게 보였다.
사실, 그날 별칭으로 사용한 '파초'는 어릴 적 고향집 간판에 걸린 상호 중 하나일 뿐이었다. 가끔 어머니의 친구분들이 어머니를 부를 때 쓴 호칭이기도 했다. 그 외에 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후에도 별칭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학생들과 집단상담을 할 때라든지 상담자원봉사자로서 심성훈련을 진행할 때면 당연하게 '파초' 라고 쓴 명찰을 붙이곤 했다. 아스름한 기억 속에서 건져 올린 하나의 단어가 자신에 대해 상징성을 지니는 기회를 더하자 스스로 반문했다.
그날 왜 문득 파초가 떠올랐을까?
그것은 자아에 대해 사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삶 속에 휩싸여 희석되는 자신의 개체를 건져 올리면서 사랑하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해 나는 서른 여섯 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산시중앙동 1가 8번지. 출생하기 이전부터 열여덟 살에 이르도록 살아온 고향집의 현주소이던, 1960년대를 전후한 그곳은 내 생애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기억되고 있다.
밀수와 깡패와 술집이 번성하던 유흥가에 우리집이 있고, '파초다방'이라고 쓴 간판이 이층 외벽에 크게 붙어 있었다. 그 글자는 내 머리에 자연스럽게 입력된 최초의 문자였다.
'
파초다방'이던 우리집 좌우에는 극장과 목욕탕이 있었다. 비상문으로 연결된 극장은 아버지의 일터로 우리 형제들의 놀이터와 다름없었으며, 목욕탕은 고아원에서 운영하여 원아들의 법석거림이 그치지 않았다. 극장과 고아원이 사통팔달 연결된 우리집 안마당은 한가운데 자리한 통로일 뿐,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시멘트로 덮여져 있었다. 그곳에 씨를 뿌릴 수 없음이 내 유년을 가장 슬프게 했다. 거기서 이사를 하는 것이 나의 꿈이었으며 그 꿈은 부모님의 죽음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졌다.
객식구의 내왕이 많았던 고향집에 대한 추억은 온통 사람들의 얼굴로 짜여져 있다. 초록 들판을 고향으로 가진 사람들이 산촌의 풀꽃들을 줄줄 외어가듯이, 나는 극장 간판 뒤에서 새우잠을 자던 꼬마들로부터 우리집을 거쳐간 다방 식구들과 옆집 고아들의 슬픈 이름을 계속 들먹일 수 있다. 돌아보면 사람과 사람의 숲 속에서 벽에 배인 커피냄새와 함께 윙윙거리는 영상음향을 들으며, 술과 유흥이 난무하는 좀 별난 곳에서 성장한 셈이다.
꽃씨를 부릴 데라곤 수돗가의 깨어진 진흙구덩이가 전부이던 고향집. 강아지를 키울 곳이라곤 부엌아궁이 근처밖에 허락 받을 수 없던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면서 자랐을까?
몇 년 전 모 잡지사로부터 '고향의 여름'에 대한 원고를 청탁 받은 적이 있다. 제목에 걸맞는 추억이라곤 아무리 생각을 가다듬어도 오색기 펄럭이는 극장 앞에서 초저녁부터 관객을 불러모으던 악극단들의 가두무대와 쓸쓸하게 떠나던 무대 뒤의 모습이 우선 떠올랐다. 그리고 어둠이 이슥해지면 곁문 안에서 패싸움을 하던 깡패들의 기합, 길가 평상에서 밤하늘을 이불 삼아 잠들던 취객의 처량함. 음독에 실패하고서 통곡하던 술집주인 남자의 모습이 달빛처럼 뇌리에 흐르고 있었다. 락희회관 담벼랑에 몸을 숨겨 훔쳐보던 캬바레의 불빛도 우리에게는 은밀한 아름다움으로 간직되었다. 그런 것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고향의 여름이었다. 모성에 힘입어 하얀 이를 드러내고 깔깔거리며 신나게 다가오는 고향의 것들을 기꺼이 글로써 형상화 할 수 있었다.
그것이활자화되자 같은 주제로 글이 나란하게 실렸던 문우 왈, 별난 곳이 고향배경으로 등장하여 나에게 이상한 선입견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문우가 농촌 풍경과 고향 인심을 절절히 마음에 두고 있는 만큼 내게도 사람과 사람의 무리 속에 어우러진 애틋한 향수가 있었다.
특히 놀이공간으로 사용된 극장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늘상 감상하는 스크린을 통해 사랑을 꿈꾸었으며, 텅빈 객석의 정적은 고독에 대해 어렴풋이 가르쳐주었다. 무대휘장을 잡고 놀다가 이층에서 떨어진 사고와 의자 밑 청소용수로 파놓은 샘에 빠져 죽을 고비를 겪는 등의 으스스한 기억도 지나고 보니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극장간판 뒤에서 새우잠을 자는 머슴애들의 구부린 등과 그들의 시커멓게 탄 냄비 밥에서 내가 누리는 풍요를 부끄러워했으며, 그들이 덜깬 잠을 쫓아 풀통을 들고 선전포스터를 붙이러 나가던 새벽풍경도 가슴 시린 것 중의 하나였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그 시절에 또래의 뒷모습에서 느낀 순수한 동정은 오래 지속되었다. 그리고 벽을 넘어 들려오는 고아원 아이들의 목소리도 내게 쉬 잊혀지지 않았다. 그네들이 치마 속에 감춘 미제 우유덩어리를 내게 슬며시 나누어주던 모습도 얼룩진 눈물자국과 함께 기억에 자리했다.
벼와 보리를 구분하지 못한 나는 자연적인 것보다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돌아보면 그럴 수박에 없는 환경이었다. 아름다운 소리로 가득 채워져야 할 그 나이 때에 쓰르라미 울음조차 기억할 수 없다면 분명 내 유년의 비극일 것이다.
그비극성을 다소 완화시켜준 분위기가 찻집'파초'이었다. 목재로 마감된 바닥에 남쪽 전면창 가득 쏟아지던 햇살과 석회로 조형된 벽 사이로 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아침의 그곳을 나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휴일이거나 임대에 따른 공백기간이 생기면 동네아이들과 소꿉놀이 장소로 이용되었으며, 좀더 커서는 그 창에 기대어 바람소리 듣는 것을 좋아했다.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안정되지 못하고 국토개발과 재건운동이 한창이던 당시이건만, 기억 속의 고향은 풍성하고 여유로운 도시로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고향의 특질인 모성애 때문일 것이다. 세월과 함께 잃어버리기 쉬운 실제의 고향보다 가슴속의 고향이 생명력 있어 더욱 아름답다.
나의개인사적인 토양이 될.
첫댓글노산 이은상을 비롯한 우리나라 문단에 기라성 같은 거목들을 배출한 도시 마산은 수출자유지역을 비롯한 산업도시로서도 한국경제에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었는데... 그 도시의 한복판에서 성장하면서 겪었던 추억담을 리얼한 터치로 되살려낸 작가의 필력이 돋보입니다. 자아에 대한 사색이자 인간에 대한 천착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좋은 글 올려주신 안귀순 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노산 이은상을 비롯한 우리나라 문단에 기라성 같은 거목들을 배출한 도시 마산은 수출자유지역을 비롯한 산업도시로서도 한국경제에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었는데... 그 도시의 한복판에서 성장하면서 겪었던 추억담을 리얼한 터치로 되살려낸 작가의 필력이 돋보입니다. 자아에 대한 사색이자 인간에 대한 천착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좋은 글 올려주신 안귀순 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글도 사람도 빈틈없이 깔끔한 분이라 제가 무척 좋아하는 분이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