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에게.
또 한해의 설을 맞이하며 금실로 이어진 나이테 하나가 지금 너의
눈엔 보이지 않지만 아름드리나무 어딘가에 아들의 이름으로 수를
놓았다.
한살 한살 더해가는 나이 안에서 바르고 씩씩하게 성장해가는
아들을 보며 여느 시간처럼 자랑스러움을 이야기한다.
설 명절이라 병영(兵營)에서 배려한 소박한 차례상!
포대장님을 비롯한 여러 간부님들과 전역을 앞둔 병장, 갓 전입한
신병까지 차례상을 바라보며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남다른
길이지만 저마다 가슴으로 느낄 감회를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아들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구나.
통제관님이 밴드에 차례지내는 너희들의 모습, 모습들을 사진으로
올려 주셨다.
짧은 휴가기간 중, 너와 얼굴을 대하며 몸과 마음으로 씩씩하게
성장해가는 네 모습에서 '아들'이라는 깊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선물인지를 조금씩 조금씩 헤아려가는 바보 아버지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너만의 설날 차례상 앞에서 조상님과
가족을 생각할 의연한 네가 장손답게 참으로 믿음직스러웠다.
설 연휴! 군인의 몸이지만 재미있는 시간이었는지..,
설날 휴일, 아들 면회가려고 여러가지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만,
결국 일상보다 바쁜 촌음(寸陰)의 시간이 되고 말았구나.
설날 아침 갑작스런 직원 부친상으로 정읍엘 다녀오고,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이삿짐을 정리하였단다.
북한산 족두리봉을 바라보는 아늑한 집이었지만 다양하게 변화하는
삶의 이야기들처럼 이젠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우리들만의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깊은 정(情)을 쌓아가자꾸나.
이사할 집의 인테리어도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고 오는 2월 28일이
길일(吉日)이라 하여 이삿짐센터와도 계약을 완료하였단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한 정든 집이라 아들의 소회(所懷)가
남다를거라 여기지만 새로운 집 또한 북한산자락을 등에 지고있으니
그리 낯설지만은 않더구나.
이삿날 아들은 곁에 없지만 작은 선물 하나를 미리 마련하려 한다.
마당한켠 화단에 2년생 대봉시와 사과나무 한그루씩을 심을거란다.
잔잔한 바다일 수만은 없는 너희들의 삶의 굴곡(屈曲) 속에서
유능한 언변(言辯)으로도, 화려한 주변환경으로도 혹 위로받지 못할
그 어느날을 위하여 정한수처럼 아버지의 소망을 담은 너의 나무가
네 곁에 함께 자라고 있음을 소리내어 알려주고 싶었다.
어제와 그젠 봄비와 같은 잔잔한 비가 세상을 적시었다.
설날과 함께 한 24절기, 우수를 지나 3월초면 바야흐로 개구리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아직 꽃샘추위와 같은 잔냉(殘冷)이 남아 있지만 시절은 어느새
입안 가득 꽃망울을 머금은 후레지아처럼 새봄을 예찬하고 있다.
마음만은 이제 곧 꽃망울을 터트릴 목련처럼 가벼움으로 생활하되,
몸은 밤낮을 가리지말고 건강관리에 유념하도록 힘쓰거라.
긴 연휴가 끝나고 내일부터는 또 그렇듯 새로운 일상들이 시작된다.
아버지의 다이어리에는 내일부터 상암동DMC 종합금융유통센터가
개점될 때까지 진행하여야 할 중요한 계획과 일정들이 빼곡히
적혀 있지만 열심으로 최선을 다하려 한다.
k-9과 여러가지 포 훈련만으로도 어깨가 무거운 아들이지만 실천을
당부하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여기고 가끔씩은 할아버지 할머니께도
안부편지 올리기를 소원한다.
비록, 시골에 계시지만 아버지의 정한수처럼 두분께서도 장손의
건강과 무탈한 일상을 기도하는데 게으름 없으시단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분께서 오래토록 함께 장수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홍복(洪福)이며 아들의 길운(吉運)임과 동시에 커다란 행복임을 결코
잊지 말거라.
우수가 지나고 경칩과 춘분이 자리하는 24절기처럼 시간의 흐름은
어느새 새봄을 맞이하고 여름을 가꾸어 가을과 겨울을 빛내어
또 그렇듯 새로운 한해를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염원하던 어느날, 아들이 전역을 하고 그 이듬해엔 두서너개의 빨간 열매들이 너를 반길 아름다운 기다림과 기쁨처럼..,
서로의 위치에서 지금 현재의 시간을 잘 다스리도록 노력하자꾸나.
거실과 주방가득 널브러진 이삿짐으로 어수선하지만 수능훈련생으로
이름하는 연경은 연휴기간과 마찬가지로 영어와 수학전투에
제 열정을 다하고 있다.
비가 그친 북한산 족두리봉 위엔 바다를 닮은 푸르른 하늘이
일요일 오후 선물이듯이 아들의 일요일도 평온하였기를 염원한다.
편지를 쓰는 이 시간이 아들이 읽을 시각엔 이미 과거로 이름하겠지만
뒤를 돌아보는 여유도 함께 공감하도록 하려무나.
아들.
지금 이 시각 움직이는 너의 모든 것이 네 삶에 가장 건강한 나이테로
이름한다는 것 명심하며 편안한 밤이길 희망한다.
사랑한다!
2015년 2월 22일 일요일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