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으로 네 번째 방문 길이었던 안양행.
정말이지 아무런 전이해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짐작만 한 채로 다녀왔던 3
월의 방문 이후 벌써 네 번째를 맞은 안양행의 심정은 전과는 조금 다른 것
이었다.
그간 담안의 가족들과의 편지 교류를 통해서 아주 조금이나마 그들의 세계
에 대한 이해가 생겼고 어느덧 내 가슴 속에도 그들을 향한 애정이 점점 더
깊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또 한 부분의
사역의 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보았기 때문에 이번 방문이
남다른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오나눔선교회의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작은 돌 하나라도 얹어서 힘이 되
고픈 마음에 그저 옆에라도 머물며 자리라도 지켜야지 했던 내가 목사라는
이유 하나로 설교를 맡아야 했던 그날이 그간 내 머리 속에 많이 머물렀었
다. 나도 보탬이 되어야 할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참 많은 사람들이 방문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고 성원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도 그들에 대한 상황을 더 모르면서도
주저 없이 섬김의 손길을 보태는 이들을 생각하면서 사랑은 이런 것이다라
는 아주 단순한 생각도 준비를 하면서 했었다.
담안에서 온 편지를 보면서 교우들이 눈물지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
간을 갖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분명히 있다고 여기게 되
었다고 하면 말이 이상한가...
아뭏튼 전보다는 기대와 희망을 더 많이 가지고 방문한 이번 교도소 방문에
서 먼저 내게 부딪힌 문제는 그곳 책임자와의 만남에서 나타났다.
책임자의 위치에서 방문자에게 당연히 당부해야 할 몫이 있음은 이해하면서
도 왠지 관료적인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었던 책임자와의 만남의 자리는 우
선 의욕을 꺾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도 우리의 방문을 이미
알고 있었고 어떤 일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기대를 갖고 있으리라 생각
했었는데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와 성의없는 대화는 안타까운 심정이 들게
했을 뿐이다. 10시부터 시작되어야 할 재소자와의 만남이 조금 늦은 입장으
로 인해 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으며 개인적인 그야말로 설교
를 하는 그의 모습에서 눈높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된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억지로 그 자리를 파하고 재소자와 만남이 시작된 것이 10시 34분.
준비가 별로 안된 부족한 사람이라 짧을 수밖에 없는 설교이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너무 아쉬워서 얼른 빠른 말로 설교를 마쳤고 다과를 곁들인 정겨운
대화를 하려는 때에 안타까운 소식은 또 들려왔다.
음식물 반입을 제한하고 있다는 소식...
결국 방문자를 대표하는 나눔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대표를 사정하러 보내
드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책임자를 만나서 양해를 구하는 일에 나섰고 쉽지
않은, 그래서 자꾸 엇갈리기만 했던 대화의 시간(사실은 통사정의 시간)을
통해 반입에 성공하게 됐다. 어쨌든 준비한 분들의 사랑스런 손길이 무색해
지지 않았고 정겹게 함께 먹으며 대화하는 재소자들을 바라보면서 다행이라
는 생각을 했다. 좀 전에 자존심이 많이 구겨지는 사태를 만난 사람답지 않
게 내 스스로 아주 기뻤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앞으로는 음식물의 제한이
많아질 것이라는 충분한 예상과 함께 말이다. 방문자를 대표하며 늘 애쓰시
는 나눔님에게 누가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램이다.
앞으로는 시간적인 제한도 더 강화될 것으로 짐작되기에 결코 마음이 가볍
지만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방문자들을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 준
재소자들이 고맙다.
굳은 얼굴의 굳은 표정을 짓고 지난달에 처음 만났던 무기수 성배는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웃으며 우리를 대했는데 아마 나눔님이 성배의 편지를 받
고서 답장을 아주 잘 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제
마음 문이 열리게 되어 상황을 힘겹게만 보지 않는 시각의 변화가 왔기 때
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전히 성경암송에 탁월한 성실함을 보여 준 동삼이도 웃으며 맞았는데 이
번에는 시편 42편을 암송하는데 성공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동삼이
랑 나눔님이 같이 암송하기로 하고선 나눔님은 못외웠다는 것이다.
나와는 이미 여러 번의 편지왕래를 통해서 친해진 광근님은 감옥 안에서 두
달 여를 키운 조그만 '부용'이라는 화초를 아주 작은 수제화분에 담아 선물
까지 해주며 나를 맞아 주었다. 얼마 전 선교회로 기도부탁을 하며 편지를
보냈던 그 과거가 무시무시했던 이 답지 않게 늘 해맑게 웃으며 지내는 광
근님이 다시 신앙을 가지고 살고싶다며 성경을 보고싶다고 해서 이번에 큰
맘먹고 성경한권 선물했다.
60대임이 확실한 신숭사 노인은 매달 특송으로 은혜를 끼치시더니 이번에는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다. 내 주소를 몰라 선교회로 편지를 보냈었다며 너무
도 반갑게 내 손을 잡으며 따뜻한 미소로 맞아 주신 그분이 늘 기억에 남는
다. 7월이면 출소한다며 한길교회에 꼭 한번 와서 예배드리고 싶다고 하시
는 그분의 얼굴은 깊은 삶의 통찰을 하는 분의 얼굴이었다.
25일이면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예산 사시는 한 분은 아직 무신론자라고 말
하면서도 우리와의 만남을 기다렸다며 고마워했고 가족을 만난다는 설레임
에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불법의료행위로 들어왔다는 한의사는 여전히 예의 그 여유로운 눈길과 말로
우리를 반겼다. 이 달 중으로 출소한다는 그분이 담밖에서의 만남을 하자고
할 때 참 기뻤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모습으로 보는 일은 참 행복한 일일
것이다.
정말 덩치가 큰 한 친구는 여러번의 만남에 이제 익숙해서 인지 조용히 미
소지으며 마음을 전하기에 바빴는데 그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좀 더 나누고
픈데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웠다.
말이 별로 없었던 몇몇 재소자들과도 이제 눈인사는 아주 익숙한 정도가 되
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고 이제 그들과도 편지왕래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프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푼수를 조금씩 떨어서인지 부담 없이 나를 대해주는 그분들이 참 고맙
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날의 우리 만남을 기다리다가 하루 전에 이감을
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멀쩡하게 잘 생긴 부산 친구는 이감을 가
지 않기 위해 일 하려고 신청도 했었는데 허가가 나지 않은 모양이다. 주소
를 알아봐서라도 그에게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담안의 가족들만 이 날을 기다리는 것은 분명히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교
회에서만 해도 다들 방문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직장 때문
에 여건이 안되는 분들이 많은데 이번에는 한길교회에서 4명이 참석했다.
김집사님은 성년도 되기 전에 상경하여 구로공단의 바닥에서부터 일을 배우
며 성실히 지내다 지금은 아주 작은 하은기공이라는 회사의 대표인데 떨리
는 목소리로 너무도 이웃에 대해 알지 못하고 살아왔었다고 평소에 말하던
분이다. 앞으로도 계속 방문자 명단에 있을 분이다.
다른 교회에서는 집사였다가 우리 동네로 이사와서 우리 교회에 출석한 지
는 얼마 되지 않은 김정선 씨도 방문자 명단에 늘 있을 분이다. 섬기는 일
에, 나누는 일에 익숙한 마인드를 가진 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도소 방문의 느낌은 남달랐나보다.
이번에 두 번째 방문이었던 우리교회 반주자인 세현이는 말도 못하고 왔다
며 아쉬워 했다.
쉼터의 분들도 깊은 성찰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분들이기에 앞으로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함께 할 것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 만남을 계속되어야 할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기도와 성실함과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방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편지 왕래와 출소 이후에도 수시로 기억하며 배
려하는 노력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절름발이 모양의 섬김이 되지 않을까 하
는 생각에 안타까운 심정이 되고 만다.
이 부분은 좀 연구해 봐야 할 일이고 우선은 삶 속에서 남이 아니라는 생각
과 늘 이어지는 중보기도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이다.
결코 사치스런 심정으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만나고 좀 먹이고 즐겁게 해
주는 일에 머물러서는 안될 일이기에 하나님께 무릎 꿇는 시간은 더 많아져
야 할 것이다.